배낭 안에 괴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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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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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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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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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8. 바벨탑

DUMMY

“그 오로라 공주님의 명령은 거지 같기로 소문이 자자하니까, 말이야. 큭”



정해숙은 죽은 듯한 쾡 한 눈으로 테이블에 놓인 한 서류를 슬쩍 쳐다보았다가,


기지개를 쭈욱- 켠 다음, 다시금 몸을 추욱- 의자에 늘어트렸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작전에 임하면 되는 거죠?”



정해숙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말했다.



“그래... 태신이는 보급받은 초소형 폭탄 N-7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운반책으로, 수진이는 받은 폭탄을 바벨탑에 설치하는 폭파반으로, 나와 해숙이는 경기자가 경기에서 승리하는 걸 돕고, 나머지 인원들을 보조하는 서포터로,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아까 주었던 서류에 담겨 있었을 테니, 숙지가 끝났으면 서류는 이 자리에서 태우는 거로 하지.”



서관호는 부대원들이 평소보다도 부정적인 낯빛과 의견을 많이 내비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작전, 스케일은 크고 위험도도 높은데, 고작 4명의 인원으로 해내야 하는 터무니없는 임무였다.


심지어 지금까지 수행했던 대부분의 임무가 적의 ‘심리적 교란’이나 ‘단체의 와해’였던 우리에겐 이번 임무는 전문성이나 실전성에 있어서 확실히 부족하긴 했다.



“너무 그렇게들, 걱정하지 마. 뭣하면, G.G.E에다가 지원요청을 할 테니까.”



서관호는 이들은 이렇게 타이르긴 했지만...


이미 그는 오늘 이들과 만나기 전, G.G.E에게 지원요청을 보냈었다.


하지만 G.G.E의 오로라 공주... 최나 소장은 현재, G.G.E는 ‘골목 대장’과 ‘신수 해방 교단’의 문제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녀는 만약, 임무 수행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후퇴해도 상관없다고, G.G.E의 사령관님도 이를 감안하고 있다고 했다.



‘...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는 게 좋겠지?’



팀원들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 바벨탑에 있는 주둔지에 잠입했으니까...


G.G.E의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다른 ‘비공식 게이트’의 ‘무법 지대’에서 약 한 달간을 생활하며 못 볼 꼴을 다 봤으니, 서관호는 이 임무를 성공시키고 싶었지만,



‘하... 집 가고 싶어라.’



그는 솔직한 심정을 마음속으로 내뱉었다.



----------



골목 속, 구불구불한 흙길을 밟으며 나아가던 나는,


이내 흙길을 가로지르는 터널과 그 터널 위에 지어진 3층짜리 주택에 다다랐다.



“내가 먼저 도착했거든.”

“무슨, 내가 더 빨랐어.”



그곳에는 이미 두 소년이 먼저 도착하여,


서로 먼저 도착했다고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다,



“... 신수가 나올 수도 있으니,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여긴, 사력자만 있는 게 아닌 데다가, 깊은 골목으로 가고 싶거든 적어도 골목에서의 주의 사항을 숙지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두 소년을 향해, 경고했다.


선우민... 녀석과 닮은 이 소년이라면, 깊은 골목에서도 문제없을 테지만, 그건 그저 과거의 그 사람이었고.


이런 애들이 과연, 깊은 골목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를 ‘깊은 골목’으로 안내해 줄 거라는 그 사람... 설마, 그 사람은 바벨탑에 있는 거야?”



자르빌이 선우민과 말다툼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난 듯이 내게 말했다.



“그래. 녀석은 바벨탑에서 도박에 빠져 있을 거다.”

“... 도박에 빠져 있다고? 그렇다는 건, ‘고층 사람’으로 있다는 뜻?”

“그렇다만...”

“바벨탑은 기본적으로 고층에서 손님으로 참가한 인원과 골목 사람들을 철저히 분류하고 있을텐데...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나려고 하는 거지? 거긴 우리 X 요원 자격증도 통하지 않을 건데?”



자르빌은 나를 보며 질문에 의문을 섞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라면 가능할 거다.”

“... 아저씨라면 가능하다고?”

“그래. 너희는 따라만 오면 돼.”



나는 자르빌의 의문에 찬 눈을 지나쳐, 터널 위 주택을 바라봤다.


3층으로 지어진 이 주택은,


골목 사이에 있는 거대한 터널 위에 지어져 있었으며,


겉보기론 저택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족히 다섯 세대의 가족이 살고도 남을 만큼 널찍한,


안전만 하다면 자그마한 전초기지로 써먹어도 될 만큼, 큰 것 같았다.



“터널 안쪽에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어.”



김류나가 내 옆으로 다가와, 터널 안쪽으로 손가락을 뻗으면서 어느 벽면을 가리켰다.



“비밀 통로라 저렇게 보이긴 하지만, 벽을 밀면 출입구가 보인다고.”



김류나는 매고 있던 배낭을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터널 안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



“오! 비밀통로?!”



선우민과 자르빌이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말한 뒤,


김류나를 가로질러 터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렇게 밀면 되려나?”



선우민이 김류나가 가리킨 벽면을 손으로 슬쩍 밀었지만, 벽면이 꼼짝도 하지 않자 더욱 세계 벽면을 밀쳤다.



“바보야. 여긴 내게 맡기라고.”



자르빌이 선우민을 말린 뒤 벽면을 유심히 살피다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벽면에 쌓아져 있던 한 벽돌로 손을 올렸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라고.”



스윽- 자르빌이 손으로 민 벽돌이 부드럽게 안쪽으로 들어가며,


이윽고 벽돌 긁히는 소리와 함께, 벽면이 땅으로 꺼지면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어떻게 안 거야?”

“류나 누나가 벽을 안쪽으로 밀어야 한다고 했으니, 일단 미는 형식의 잠금장치라는 뜻일 테고, 밀어서 들어가는 형식이라면 분명 벽면에 작은 틈이 있을 테니까 ‘당연한 추론’을 한 거지.”

“당연한 추론...”



자르빌의 으쓱이는 추론에, 선우민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획- 앞으로 뛰어나가며 계단을 올라갔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이긴다!”

“... 뭣! 치사하게!”



자르빌은 선우민보다 한 발 늦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 긴장감 없는 녀석들이네...”



김류나는 이런 두 소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저 건물 안에는 신수를 죽인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최수호는 3층짜리 주택을 어딘가 미심쩍은 듯이 올려다보다가,


라프가 그곳을 향해 코를 킁킁 대자, 김류나에게 말했다.



“있을 수도 있다는...”

“누군가가 있다. 라프.”



김류나의 말이 무색하게끔 라프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최수호의 머리 위에서 뛰어 내려와 두 소년이 들어갔던 비밀 통로로 4발을 이용해 달려갔다.


나는... 어디선가 느껴보았던, 갑자기 나타난 익숙한 이 기운에, 그저 골목의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한쪽 팔에 G.G.E라고 각인된 전신 슈트나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어느 골목 속.


그곳에서 두꺼운 파일철을 품에 품은 한 여인이, 전신 슈트를 입은 박사에게 다가갔다.



“박사님. 신수 해방 교단의 ‘그분’에 추적을 포기하는 건가요?”



여인은, 품에 품은 파일철을 손으로 꾹 움켜쥐면서,


길게 내려 눈을 가린 앞머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네요. 용사분들도, 드론도, 전부 그분을 포획, 포착하는데 다소 아쉬운 결과를 냈으니 말입니다.”

“... 박사님이라면, 분명 다른 방법도 알고 있을 텐데...”

“예루양, 아쉽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탐구할 때는 인내심이 필요한 법이죠. 특히나 상대는 소원에 대한 보상. 어쩌면, 저희가 그를 마주할 수 없는 것도, 묵시록을 향한 여정과도 같겠죠.”



박사는 생각에 잠긴 것처럼 골목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사람은 더는 없지만, 그분에 대한 여정은 계속될지니... 이젠, 옛 친구를 연구하지 못한다는 건 아쉽습니다만, 지금은 한발 물러날 때인 것 같군요.”



박사는 뒤에 서 있던, 머리 대신 ‘동그란 링’이 떠 있던 거구의 근육질 생명체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이 프로로타입 버전의 G1004는 전부 합격점을 넘어서 완벽하군요. 비록, 용사의 명령으로 ‘그분’의 추적을 도중에 멈추긴 했지만, 애초 명령을 우선시하도록 설계되었으니, 앞으로도 ‘깊은 골목’을 탐사할 때 용사 일행들을 보조할 수 있을뿐더러, 때에 따라 전투용이나 미끼용으로도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박사의 말을 들은 예루는 볼을 붉히면서, 몸을 좌우로 왔다 갔다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 그래도... 아직, 손 볼 곳이 많으니까... 조금 더 힘내 볼게요.”

“좋은 자세입니다. 탐구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깐요. 늘 생각하면서, 발전하는 게 탐구자의 기본 소양이죠.”

“헤헤...”



예루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헤실거리며 웃다가,


번뜻 무엇이 생각난 것처럼 몸을 크게 들썩였다.



“아! 그러면, 제 작품들을 바벨탑에 투입해 볼까요?”

“흠... 뜻은 알겠습니다만, 바벨탑을 무력으로 점거하는 건 이미 G.G.E에서 한 번 실패했기에, 별로 추천은 하지 못하겠군요.”

“그게 아니에요. 바벨탑에서 치러지는 경기에 참여시켜 보는 거죠. 거기엔 내로라한 실력자도 많으니까, 좋은 표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박사는 턱에 손을 얹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래도 힘들겠어요. 도전한다는 건 좋은 거지만, 괜히 지금 그곳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군요.”



박사의 단호한 거부에 예루는 아쉬운 듯이 볼을 부풀렸다.



“자~ 그러면, 이제 저희도 슬슬 철수하도록 하죠.”



박사의 말에도, 예루는 박사의 뒤에 서 있던 자기가 만든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결심하며 품에 품은 파일철을 꽉 거머쥐었다.



----------



나는 자르빌이 열었던 비밀 통로에 들어서,


투박한 검은 벽돌로 쌓아진 나선형 모양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


거실로 보이는 널찍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벗겨질 대로 벗겨진 벽지와,


바닥에 까는 타일도 이미 남아 있지 않아,


회색빛 콘크리트만이 남은 전형적인 골목 속 폐허였지만,


다른 폐허와 다르게 천장에는 사람이 한 명 정도 드나들 수 있는 구멍과,


그 구멍에선 수많은 넝쿨이 퍼져 나와 이 회색빛의 천장을 뒤덮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신비로운 유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위에 뭔가 있는 것 같다. 라프”



회색빛의 거실을 두리번거리던 라프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자, 자르빌과 선우민도 라프를 이어 내게 다가와,


넝쿨이 뻗어 나와 있던 천장의 구멍을 바라봤다.



“그래.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로군.”



익숙한 기운.


여정을 함께했던, 그리운 기운...



“내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오지.”



나는 천장을 미처 타지 못해, 축- 처져 있던 넝쿨 몇 가닥을 움켜잡은 뒤, 2층으로 올라갔다.


주택 2층엔, 1층의 회색빛 방과 다르게 넝쿨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 넝쿨들은 앞에 있는 한 방으로 전부 이어져 있으니,


나는 넝쿨들을 밟으며, 초록빛의 방으로 들어갔다.



“너는... 해백인가?”



그곳엔 상처투성이인 한 남자가, 하반신이 넝쿨로 감싸진 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아... 그분이 오셨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입만 열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내가 널 보게 되는 건, 내가 고층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난 다음일 줄 알았는데...”



해백의 중얼거림.


나는 내가 맨 배낭에서, ‘배낭’이 입으로 물고 나온 단도를 손에 거머쥐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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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4 - 34. 저주받은 곳 25.04.01 5 0 12쪽
197 4 - 33. 저주받은 곳 25.03.28 6 0 12쪽
196 4 - 32. 저주받은 곳 25.03.25 6 0 12쪽
195 4 - 31. 방주 25.03.21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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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4 - 29. 수정된 장 25.03.14 6 0 12쪽
192 4 - 28. 수정된 장 25.03.11 6 0 12쪽
191 4 - 27. 수정된 장 25.03.08 6 0 12쪽
190 4 - 26. 최초의 왕 25.03.05 7 0 12쪽
189 4 - 25. 최초의 왕 25.03.04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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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4 - 22. 바라는 자들 25.02.23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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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4 - 17. 지금까지 25.02.10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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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4 - 15. 각오한 장 25.02.06 7 0 12쪽
178 4 - 14. 각오한 장 25.02.05 7 0 12쪽
177 4 - 13. 각오한 장 25.02.02 7 0 11쪽
176 4 - 12. 퇴장과 입장 25.01.30 7 0 12쪽
175 4 - 11. 퇴장과 입장 25.01.28 8 0 13쪽
174 4 - 10. 집결 25.01.25 7 0 12쪽
173 4 - 9. 집결 25.01.22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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