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안에 괴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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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바딕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4
최근연재일 :
2025.04.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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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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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 31. 여명의 시작

DUMMY

‘그게 무슨 말이죠?’



서관호는 손바닥 크기의 잭나이프 칼집처럼 생긴 통신장치에,


암호문을 적어 최나 소장에게 보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금일 부로 작전이 취소되었으니, 빠른 기한 내에 인근 부대로 복귀하길 바랍니다.’



잭나이프 칼집에 숨겨진 작은 모니터에서,


‘G.G.E 특수 임무 부대 소속’만 알아볼 수 있는 숫자와 특수문자로 이루어진 암호문이 뜨자,


서관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잭나이프의 칼집을 꽉 거머쥐었다.



‘보고를 드렸습니다만, 지금 부대원 중 한 명이 작전을 수행 중 순직했습니다. 저희는 순직한 부대원을 위해서라도, 이 작전이 계속 진행되길 원합니다.’

‘바벨탑은 현재 위험 지대로 분류되었답니다. 만약, 사흘 내로 바벨탑에서 벗어나지 못하실 G.G.E에서의 직위 해제와 더불어, 고층에서의 시민권이 소실되오니, 잘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서관호는 칼집을 잡은 채로 부들대는 손아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세면대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았다.


어느덧 중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


낡은 주름 사이로, 벌겋게 충혈된 두 눈.


그리고, 그 벌게진 충혈 속에 비추어진,


지금까지 죽었던 동료들의 잔상이 핏빛처럼 번지고 있었지만...



“X같네. 정말...”



잔상은 곧, 고등학생이 된 자식들로 변해, 아내로 변해, 거울 속에 떠올랐다.



“씨X...”



정의도. 구원도 없는 이런 골목에서,


월급만 많이 주는 이런 직장에서 얼른 퇴근한 뒤,


원수 같은 자식들과 여우 같은 마누라의 등쌀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씻은 뒤에 맥주 한잔하는 것이, 결코 이기적인 건 아닐 것이다.


서관호는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


세면대에 물을 튼 뒤 벌겋게 충혈된 두 눈을 문질러 닦았다.



----------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살려줘요. 미안해요...”



하... 내 입에서 번져 나온 하얀 김이 나의 차디찬 감정을 타고,


‘사람과 동물 섞어 둔’ 새로운 인류에게까지 뻗어갔다.


두 손 모아 비는 그들의 모습을, 나는 묵시록 속 첫 번째 짐승이 되어 과감하게,


가여운 자들의 날개를 뜯어 먹으면서, 단지 걸었다.



“잘못했어요. 그러지 마세요.”



애원하며 비는 그들의 모습.


아직도 꿈속에서 선명히 기억나는, 죽은 자들의 얼굴.



“... 너희들은 신수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인류의 적. 그뿐이다.”



내 손에 타고 흐르는 믿음이, 오로지 당신을 위해서.



“제발... 형님. 제발 우리를 해치지 마. 내가 더 맛있는 밥 줄게...”



죄악감이,


무섭게,


나를,


옥죄었다.



“하...”



나는 눈을 떴다.


라프가 내 머리 위에 올라타, 벽에 기대고 있던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신수... 반인간.”



라프,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때의 ‘새로운 인류’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날 만났던 새로운 인류와는 다른, 인간과 어떠한 동물이 합쳐진 모습은 아닌,


인간 자체가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머리와 하반신에 덮여 묘하게 빛나는 흰색 털과,


크고 늘어진 귀는 분명 동물의 모습과 흡사했으니,


나는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왜 눈을 감냐? 내가 무서운 거야? 라프”

“라프. 너는, 내가 어떻게 보이지?”

“너는... 좋은 인간처럼 보인다. 라프”

“왜 그렇게 보이는 거냐?”

“좋은 인간은 냄새가 다르니까. 나는 사람의 감정을 냄새로 알 수 있다. 네가 사람이나 신수에게 검을 겨눴을 때나, 말단 마을에서 사람의 목을 베었을 때도, 네게선 악의나 적의의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라프”



나는 눈을 떴다.


라프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네게선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냄새가 난다. 라프.”



라프는 내 머리 위에서 뛰어 내려와, 두 발로 섰다.


그러자, 라프의 몸이 점차 커지면서, 선우민과 비슷한 10대 초반의 몸으로 변했다.



“너는 왜 고층으로 갈 생각인 거냐? 라프”



라프는 아까보다 커다란 눈망울로 신기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왜인지 그때 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


라프에게서 고개를 돌려 이 회색빛의 공간을 살필 뿐이었다.



“고층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게 누구냐? 라프”

“... 네가 잘 아는, 그 녀석... 박사다.”



라프는 내가 박사라고 말하자 묘하게 빛나는 머리털을 곤두세우더니,


먼지의 사뿐한 일렁임과 함께 천장에 뚫린 구멍 속으로 몸을 감췄다.



“왜 그런 싸이코 녀석과 만나고 싶은 거냐? 라프”



라프는 몸을 숨긴 채 말했다.



“나는 녀석에게, 너와 선우민에 대한 것을 물으러 가는 거다.”

“... 왜 그런 걸 알고 싶어 하는 거야? 라프”

“최근 들어 감시당하는 느낌과 추격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말이야.”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대장과 그녀를 이용하면서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이냐고.


내게 대장을 닮은 선우민과 그녀를 닮은 라프를 보낸 건, 박사 네 녀석 짓이냐고.


만약 그런 거라면, 나는 녀석의 의도를 알고 싶었다.



“만약, 박사가 전부 꾸민 거라면 넌 어쩌고 싶은 거냐? 라프”

“...”



... 나는 오로지 신념만을 위해,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런 나한테 있어 박사는, 구원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무구한 시체들을 밟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가는 나한테.


박사는 최고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죽여야겠지.”



하지만, 나는 그 빌어먹을 녀석을 죽일 것이다.


나는, 이미 다짐했었다.



“그렇다면, 나도 데려가라. 그곳에 내 친구가 있다.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시, 너를 따라온 건 잘한 것 같다. 라프.”



라프의 큰 눈망울이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소리 없이 내려와, 내 머리 위로 착지했다.


나는, 고층에서 이 골목으로 쏟아지는 쓰레기들의 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신수가 바벨탑 내부에 침투했다! 모든 구역을 폐쇄해!”



서관호는 신수로 비상이 걸린 바벨탑의 30층을 돌아다니며, 정해숙과 태진을 찾았다.


그 둘은 폭발물을 설치할 장소를 선정하기 위해 흩어진 상태로,


현재 연락이 끊어짐과 동시에 비상시 만나기로 되어있었던 장소에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씨X...”



원칙대로라면, 그들을 버려야 했다.


버리고 이 바벨탑에서 혼자 빠져나와야 했다.


그것이, 자신이 G.G.E에서 훈련받던 내용이었지만,



“... 경기자들은 방에 들어가 대기하도록! 곧 전투 요원들이 도착하니까 오인 사격 당하기 싫으면 방 안에서 대기해!”



서관호는 바벨탑 요원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계속 그들을 찾아다녔다.


그것이, 그래도 지금까지 고생한 그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되었기에,


천사의 조각상과 그 주위에 벤치가 설치된 휴식 장소를 지나서,


100여명이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대형 뷔페를 지나서,


서관호는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심어진 어느 실내 정원에 도착해, 걸음을 멈췄다.



“흠...”



실내 정원에서 울려대는 신수를 알리는 경보소리.


그 속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진 유백화’.


그는 연신 턱과 입을 만지작대면서,


천장이 다른 곳보다 높은 이 실내 정원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서관호는 진 유백화를 보고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신수에게서 벗어나는 것처럼, 천천히 그에게 들키지 않도록, 뒤로 물러났지만,



“다시 돌아간 건 별로 좋지 않아. 친구. 이미 네가 지나왔던 길은 신수로 득실대니까.”

“신수?”



서관호는 고개 돌려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는 신수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신수가 누군가의 몸속에 알을 심어서 단속을 피한 것 같단 말이야.”

“... 이미 저희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엑스레이 검사나 피검사를 전부 실시 했는데 말이죠.”

“이 녀석의 알은 동그랗게 생기지 않았고, 사람의 신체 부위처럼 생겼거든. 게다가, 피검사로는 백혈구 수치가 살짝 높게 나오는 정도라, 걸리지 않지.”

“그걸... 어떻게 아시죠?”

“네 여자 동료, 그 녀석도 감염되어 있어 일부로 죽인 뒤 이것저것 조사해 본 거지.”

“... 뭐?”



서관호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지금까지 쌓여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훈련받았고, 많은 부대원을 교육했는데... 나이가 나이인 건가?



“역시 너는 그녀와 관계가 깊었구나. 연인? 아니면, 썸녀?”

“... 그냥, 동료였어... 그런데, 너는 제멋대로 그녀를 죽였지...”



서관호는 자신이, 진 유백화를 뭐라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골목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많은 이들을 이간질하여 갈라놓았고,


때에 따라선 동료를 버리기도 하였으며, 나아가서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그런 자신이, 지금 와서 ‘진 유백화’에게 화를 내는 건, 그저 나이 탓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뭐, 위로라고는 뭣하지만, 그녀는 이미 신수에게 몸을 빼앗겼거든. 요즘 들어, 골목 마을에서 ‘기생형 신수’들이 깽판을 부려서 말이야. 뭐, 보다시피 이젠, 이 바벨탑까지 침투했지.”

“... 그녀가, 신수에게 몸이 빼앗겼다고? 그건 말도 안 돼. 그녀의 시체는 신수처럼 없어지지 않았으니까...”

“당연하지. 이번 ‘기생형 신수’는 ‘주변 사람’들이 모르도록 천천히 숙주의 몸을 장악하거든. 내가 죽인 그녀도 한 절반 정도만 몸을 뺏겼다는 말씀. 참... 영리한 녀석들이야.”



진 유백화는 들고 있던 사검으로 자기 어깨를 툭툭치면서, 서관호에게 다가갔다.


서관호는 그런 그에게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멈춰. 한발만 더 뒤로 가면, 너도 신수의 숙주 신세니까. 거기에 멈춰 있어.”



진은 사검의 손잡이와 검집을 쥐고, 가로로 세웠다.



“내가 누굴 도와주는 게 취미는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내가 마음에 든 녀석만큼은 확실히 지켜주는 의리남이니까.”



진 유백화는 손에 쥔 검집에서 사검을 뽑아 들었지만, 그가 쥔 사검에는 칼날이 없었다.


그저, 서관호의 주변으로 살랑이는 바람만이 춤추듯이 떠돌다가, 젖은 땀을 식혀 주듯 와락 몰아치니.


툭툭.


서관호의 주위로 가느다랗고 반투명한 실들이 우수수 비처럼 떨어져, 사라졌다.



“이게... 기생형 신수?”

“이거 생각보다 많은 숫자네. 아마, 내 예상으론 이 바벨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



설마, 최나 소장이 퇴각하라는 것도, 이 신수 때문인가?


서관호는 과연 정해숙과 태진이 살아 있을지 걱정되는 것보다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이틀 후, 나는 바벨탑 근처에 있는 주둔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적막함만이 남아 대기에 떠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건가? 바벨탑 주둔지에 아무도 없다니...”



김류나는 하나뿐인 눈을 비비적대면서, 적막한 주둔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전투했던 흔적이나, 도망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거... 신수에게 당한 건가?”



자르빌이 주둔지에 있던 빈집에서 나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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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4 - 34. 저주받은 곳 25.04.01 6 0 12쪽
197 4 - 33. 저주받은 곳 25.03.28 7 0 12쪽
196 4 - 32. 저주받은 곳 25.03.25 7 0 12쪽
195 4 - 31. 방주 25.03.21 7 0 12쪽
194 4 - 30. 방주 25.03.17 8 0 12쪽
193 4 - 29. 수정된 장 25.03.14 7 0 12쪽
192 4 - 28. 수정된 장 25.03.11 7 0 12쪽
191 4 - 27. 수정된 장 25.03.08 7 0 12쪽
190 4 - 26. 최초의 왕 25.03.05 8 0 12쪽
189 4 - 25. 최초의 왕 25.03.04 8 0 12쪽
188 4 - 24. 바라는 자들 25.03.01 7 0 13쪽
187 4 - 23. 바라는 자들 25.02.26 8 0 12쪽
186 4 - 22. 바라는 자들 25.02.23 8 0 12쪽
185 4 - 21. 피어난 장 25.02.20 8 0 12쪽
184 4 - 20. 피어난 장 25.02.18 8 0 12쪽
183 4 - 19. 피어난 장 25.02.16 7 0 12쪽
182 4 - 18. 지금까지 25.02.13 7 0 12쪽
181 4 - 17. 지금까지 25.02.10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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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4 - 15. 각오한 장 25.02.06 8 0 12쪽
178 4 - 14. 각오한 장 25.02.05 8 0 12쪽
177 4 - 13. 각오한 장 25.02.02 8 0 11쪽
176 4 - 12. 퇴장과 입장 25.01.30 8 0 12쪽
175 4 - 11. 퇴장과 입장 25.01.28 9 0 13쪽
174 4 - 10. 집결 25.01.25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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