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39. 남겨진 자들

“뭣? 모자란... 놈?”
저 입만 산 것 같은 ‘입’의 말을 들은 진의 이마에 핏발이 곤두서면서, 그의 주변으로 칼바람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 지식이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법. 사람마다 자극되는 ‘호기심’은 다른 법이니깐요. 그런데, 그걸 모자랐다고 표현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하네요. 자고로 진짜 ‘모자란 사람’이란 알고자 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하는걸요?”
“엄... 그, 그러냐...?”
갑작스러운 예루의 연설을 들은 입... 배낭은, 마치 진짜 사람처럼 입을 구기면서 당황해했고, 그걸 본 진의 회전하던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서관호는 배낭이 저 기다란 몸통에 덩그러니 달린 입으로만 인간의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하는 것 같다고, 저 입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면서, 생각했다.
“흠흠... 뭐... 제가 반신수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반신수라는 말 말고도 전문 용어가 따로 있긴 하지만, 대부분에 사람은 반신수라 하니까 그렇게 말하죠.”
서관호는 앞머리를 옆으로 찰랑- 움직이면서 마치 교수가 강의하기 전에 모습처럼 목을 가다듬는 예루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예루는 세기의 천재인 그 박사라는 남자가 뽑았다는 ‘신수 연구 개발 부서’의 연구원.
방금 그녀가 했던 말도 상당히 의미가 깊긴 했지만,
박사 학위를 따는 것보다도, 그 어떤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보다도, 경쟁률이 높은 ‘신수 연구 개발 부서’에 취업했다는 것은 이미 그녀는 세간에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신수 연구 개발 부서’의 조교들이라도 할지언정 대학교 교수들을 상대로 강의하러 다니는 일류들인데,
예루처럼 박사 직속 연구원인 1급 연구원이라고 한다면, 아마 돈을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그녀의 강의를 듣지 못한다는 뜻으로서,
서관호는 이와 같은 기회는 아마 평생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반신수라는 건, 기본적으로 두 종류가 있어요. 자연적으로 발생한 ‘반신수’와 인공적으로 발생한 ‘반신수’죠. 여기서 9할 이상이 인공적인 반신수라면, 극히 드물게 자연적으로 반신수가 발생하기도 해요.”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예루의 모습을, 서관호는 과연 저 진이라는 남자가 귀 기울일지 의아했지만,
의외로 그는 예루의 말에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귀를 아주 잘 기울이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적인 반신수라는 말씀.”
서관호는 자랑스럽게 입을 으쓱대면서 말하는 저 정체 모를 것에,
왠지 돋아 있는 소름이 가라앉고, 친근한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자연적으로 발생한 반신수는 또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건 너무 길어지니까, 가장 큰 특징만 놓고 보면 바로 ‘정신적인 면’을 ‘반신수’와 ‘신수’를 나누는 기준으로 삼아요. 쉽게 말해서, 반신수는 신수와 다르게 인간의 언어와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거죠. 뭐, 이게 조금 애매한 것이, 일반 신수들도 인간을 흉내 내는 경우가 있기에 면밀하게 심리 감정을 받아봐야 하지만...”
예루의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의 한쪽 눈이 고층을 슬며시 올려다보았다.
“뭐, 요즘은 심리 감정이 아니라도 기술이 발전해서 신수와 반신수를 유전자 특징으로도 분류도 할 수 있죠. 조금... 시간이 필요하지만요.”
“그러면, 지금 이 입은 인간을 흉내 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진은 여전히 사검을 배낭에게 겨눈 채, 경계하듯 바람을 좌우로 몰아치면서 예루에게 말했다.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인간을 흉내 내는 신수들을 많이 연구해 봤는데, 그들은 결국 ‘흉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어요. 예시로, 갑자기 상황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질문’을 할 시, 신수는 고장 난 기계나 AI처럼 이상 행동을...”
예루는 갑자기 말하다가 말고, 배낭의 기다란 입 앞으로 자신의 찰랑거리는 앞머리를 들이댔다.
“배낭씨는 고층에서 뭘 먹고 싶죠?”
“뜬... 뜬금없이 뭔 소리야?”
배낭은 예루의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의 눈동자가 갑자기 ‘입’ 앞까지 들이닥치니, ‘입’을 격하게 뒤로 빼며 당황해했다.
“배낭은 반신수가 거의 확실한 것 같네요. 만약 신수였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어떠한’ 어색한 행동을 취했을 거예요. 그 어색한 행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당황’이라는 것과 다르니, 전문가가 아니면 멋대로 판단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러면... 인공적인 반신수는 뭔데?”
“그건, 실험적으로 탄생한 신수이거나, 신수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 낸 존재 혹은 조종하는 존재를 통칭해서 인공적인 반신수라...”
“마치 나처럼 말이냐? 라프.”
어느 틈에 커다란 솜뭉치 하나가, 예루의 머리 위에 두 발로 서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진의 바람이 격하게 요동치며, 그녀의 머리 위 커다란 솜뭉치를 향해 휘날렸지만,
솜뭉치는 휘날리는 진의 바람을 사뿐하게 타고, 서관호 옆에 안착했다.
“나는 G.G.E의 연구원들이 싫다. 라프.”
하반신과 팔에 덮인 새하얗고 복슬복슬한 털.
상반신은 사람처럼 옷을 입은 채, 얼굴도 사람처럼 생겨,
흰색 머리칼에 튀어나와 있는, 털이 덮인 커다란 귀.
이런 생명체는 작은 몸에 비해 짐승처럼 커다랗고 단단해 보이는 손톱을 예루에게 겨누면서,
상어처럼 뾰족한 이빨들을 드러내며 적대감을 표했다.
“라프... 당신은... 선우민이 탈출시킨 반신수...”
기괴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위협받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늘 호기심 잃지 않던 예루의 초록색 눈이, 그녀의 앞머리 사이에 조용히 감추어졌다.
“...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라프 덕분에 신수에게 붙잡혀 신체가 변형된 분들의 신약을 개발할 수 있었어요. 애초, 저희가 반신수를 연구했던 이유는...”
“닥쳐라. 라프.”
하얀 생명체는 하얀 털들을 곤두세우면서, 옆에 있던 서관호를 거대해진 한 손으로 거머쥐었다.
“저 여자를 넘겨라. 아니면, 이 남자를 죽일 거다. 라프”
뭣? 나를 죽이겠다고? 서관호는 갑자기 고무줄처럼 늘어난 라프의 팔에 놀랐지만,
그것보다도 왠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생명체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 라프. 이 사람들이 우리를 고층으로 데려가 준다고 하니까, 죽이는 건 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배낭의 입이 길게 늘어나며 이 라프라는 생명체를 타일렀지만,
“고층 따위 나는 안 가도 상관없다. 라프”
화르륵- 라프는 마치 하얀 불꽃처럼 타오르면서, 서관호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윽!”
서관호는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압박감에, 신음마저도 겨우 뱉어냈다.
무거운 잔해에 깔리면 이런 느낌인가?
서관호는 자신이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레슬링 놀이할 때가 기억났다.
친구들은 레슬링한다 싶고, 샌드위치처럼 한 명이 맨 밑에 둔 채, 다른 한 명이 거기 위에 올라타 깔아뭉개고, 또 한 명이 올라타 깔아 뭉개고...
결국 맨 밑에 있는 친구는 차츰차츰 싸여오는 압박감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만그만 죽겠다.’라고 하며 항복하고...
지금 자신은 이런 기분을, 딱 죽기 직전만큼 느끼고 있었다.
“아니. 조금 진정하라고 그래야지...”
“저 여자에게서 거짓말의 냄새가 난다... 나는 거짓말쟁이는 싫어한다. 라프.”
라프의 말을 들은 배낭의 입이 예루를 보면서 ‘입’을 옆으로 까닥 움직였다.
“이봐... 거짓말이라니?”
배낭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으며, 어딘지 장난기가 감돌던 이 생명체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 그게...”
예루는 앞머리를 좌우로 찰랑거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딘지 불안하게 배낭의 입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어서 진실을 말해주는 게 좋을걸? 라프는 나조차도 속도로는 이기지 못한다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여자도, 이 남자도 죽일 거야. 아무리 ‘바람’이 빠르다고 할지언정 말이지~”
배낭은 주뼛대는 예루와 그런 예루를 막아선 채 라프를 향해 사검을 겨누고 있던 진에게 말했다.
진은 배낭이 넌지시 던진 도발에도 라프를 응시한 채,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저는 그분에게 부탁받은 이상, 당신들을 고층으로 데려갈 생각이에요. 뿐만아니라... 제 지인이라면 G.G.E에 의심을 피할 수도 있죠. 제가 손이 닿는 데까지 지원 해드릴 테니...”
“... 그런다고 과거는 달라지지 않아. 라프.”
라프는 짐승과도 같은 커다란 손톱을 서관호의 목 가까이 대었다.
“싫으면 관둬라. 이 남자는 너희들에게 그리 소중한 것 같지 않으니 그냥 죽여야겠다. 라프...”
서관호는 목 가까이 다가오는 라프의 커다랗고 뾰족한 손톱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기적적으로 ‘신수 해방 교단’에게서 생존했는데,
난생처음 보는 반신수라는 생명체에게 허무하게 죽을 줄이야...
휙!
바람 이는 소리가 목 근처에서 들려와, 자신은 목에 있는 경동맥이 그여서 죽겠구나, 라고 서관호는 생각했지만,
휘---이익-
곧, 선풍기를 강풍으로 돌렸을 때와 비슷한 바람 소리가 목 밑에서 들려, 서관호는 슬며시 눈을 떴다.
“...”
진의 강풍과도 같은 바람이, 자신에 목 밑으로 뻗어온 라프의 커다란 손톱을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가로막고 있었다.
“제... 제가 갈게요... 그러니까, 그분을 해치지 마세요...”
예루는 결국 진을 지나쳐, 라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라프는 서관호의 목 밑에 대고 있던 커다란 손톱을 거두었다.
“신약... 개발로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그게 그나마 위안이 될 거로 생각했지만...”
서관호는 후... 안심하면서, 다가오는 예루를 보며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러자, 자신을 옥죄고 있던 라프의 커다란 팔이,
어느 틈에 예루를 거머쥘 것처럼, 그녀를 두고 손을 벌리고 있었다.
“... 하지만, 라프는 진실을 원하는 것 같으니까... 제가 말해드릴게요.”
라프의 거대해진 손은 예루의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신수’의 무(無)수명에 관한 연구... 그것을 사람에게 접목할 계획이었어요.”
“누구의 지시로 말이냐? 라프...”
“상층부의 지시였어요. 그들은 막대한 지원금과 어느 정도 법에 대한 자유를 약속해 주는 대신, 우리에게 ‘불로장생’이라는 흔해 빠진 부탁을 했죠... 그래서, 그 시작의 일환이 바로 인간을 신수화시켜 불로장생을 생기게 한다는 것... 간단한 생각이지만 아주 현실성 있는 실험이 시작된 거죠.”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다. 인간일 적 기억은 있지만, 그건 결국 다른 사람이었다. 라프”
“네... 그 부분에 있어, 저희는 인간이 ‘신수화’ 되어버리면, 결국엔 자신의 인간성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만 한다는 걸 실험 결과로 얻을 수 있었어요. 물론, 상층부는 이런 부작용 없이 자신의 자아를 유지한 채 ‘불로장생’를 얻고 싶어 했기에, 일단 이 실험은 보류되었는데... 되었지만, G.G.E의 사령관은 이 기술에 흥미를 느꼈죠. 신수화가 된 사람... 즉, ‘반신수화’된 이들은, 신수를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개발된 ‘칩’이 ‘신수’보다도 훨씬 잘 통했을뿐더러, 신수만큼 강화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생체 병기’였으니깐요.”
예루의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의 한쪽 눈이, 라프를 바라보다가 곧 바닥을 향해 축- 처졌다.
“박사님의 직속 경호 생체 병기인 ‘신인’들과... 제가 개발한 인공지능 생체 병기 ‘G1004’도... 전부 여기서 탄생한 존재들이에요. 뭐,,, 요즘, 박사님의 신인들은 ‘G.G.E 신수 연구 개발 부서’에서 선우민을 지키느라 밖에는 나오지 않지만 말이죠.”
‘선우민’이라는 이름을 들은 라프는 점차 그 커다란 손이 작아지며, 곤두선 새하얀 털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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