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44. 감염

“이미 네 육체는 머리를 제외한 몸 대부분이 신수에게 감염되었다. 우리도 너를 치료해주고 싶다만...”
G.G.E의 검은 슈트에서 새어 나오는 투박한 남자의 목소리.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의 무정한 말투는,
그가 겨눈 총구에서 이미 총이 발사되어, 내 뇌수를 좀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늦어버린 건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총구의 뻥 뚫린 공허함이 나를 무감각하게 바라보자, 나는 눈을 감았다.
단념하거나, 포기한 건 아니었다.
그저 무서워서, 그런 거였다.
나는 영화에서 본 적 있었다.
총을 맞고, 머리가 터져 죽거나 피를 흘리며 질질 몸을 끌다가 죽는 장면을, 영화에선 심심치 않게 써먹는다.
이제 나도 그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될 거로 생각하니, 나는 몸이 떨리고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부디, 나를 원망해라...”
그의 마지막 말에, 내 머릿속에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짜증 나는 누나도, 자상한 아빠도, 엄격한 엄마도...
한 줌의 덩어리와도 같은 기억이 되어서 내 머릿속으로 굴러들어 오다가,
탕!
총의 소음이 되어 내 귓가를 관통했다.
나... 드디어 죽은 건가? 생각보다 아프거나 그러지 않았다.
신수에게 몸이 잠식당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죽음이란 원래 이런 느낌인가?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탕! 탕!
내게 겨누고 있던 G.G.E의 총구는, 왜인지 주춤주춤 물러나며 내 뒤로 총을 쏘고 있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덜덜 떨리면서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여 뒤돌아보았다.
“... 신... 신수...?”
갈치처럼 생긴 길쭉한 몸통에, 거머리와 같은 동그란 입을 지닌. 한 손 크기에 신수.
그것들은 G.G.E의 총알 세례를 받을 때마다 우수수 땅에 떨어져 내렸지만,
그 즉시 엄청난 물량으로 다시금 빈자리를 채우면서, 내 쪽으로 헤엄치듯이 날아오고 있었다.
“...”
나는 몰려오는 신수에게 정신이 팔린 G.G.E 요원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내가 대놓고 앞에 서 있었어도, 거의 없는 사람처럼 대하며 몰려오는 신수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하긴, 지금 당장 저 신수들을 처리해야, 본인들이 죽지 않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신경 끄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조금씩, 몰려오는 신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이라면... 나는 G.G.E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다.
도망칠 수 있어도, 몰려오는 신수에게 달려가는 자살과 비슷한 행위이긴 했지만,
내가 진짜 몸이 신수처럼 변해 버린 거라면...
“멈춰!”
G.G.E의 요원이, 몰려오는 신수 쪽으로 냅다 달리는 나를 보며, 총을 겨누면서 외쳤다.
하지만... 그는 총을 쏘지 못하고 그저 나를 멀뚱히 바라만 보다가, 이윽고 닥쳐오는 신수들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왜 그는 나한테 총을 쏘지 않은 거지? 내게 이런 생각이 들기도 전, 나는 이 엄청난 수의 물고기 신수들이 내 주변으로 지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하하... 진짜... 내 몸이... 신수에게 감염되었어?”
신수들은 나를 보고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유유히, 내 주위를 빙 둘러서 헤엄쳐 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두 손을 포개 떨리는 시선 앞으로 가져갔다.
웃음이 나왔다... 내 몸속에 그 실 가닥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너무 나와서... 나는 신수들 사이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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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 연구 개발 부서’ 호위를 마친 이서준은,
임무를 마저 수행하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바벨탑 근처 상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챙그랑!
바벨탑 주변에 있던 상가의 창문들이 깨지는 것을 시작으로,
몸통은 갈치처럼 생겼지만, 입은 거머리처럼 동그랗게 생긴 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
이서준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수의 신수들을 보자,
자연스럽게 슈트 팔목을 감싸고 있던 덮개를 연 뒤, 거기에 있던 ‘긴급 지원 레버’를 당겼다.
이 레버는 최근에 생긴 슈트의 기능으로,
딱히, 통신하지 않고도 긴급한 상황에서 지원이 필요할 때 이 레버만 당기면 알아서 현재의 데이터가 본부 쪽에 송신되었고,
본부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종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실 가닥 신수들이 환경에 맞추어 형태를 변화시킨 건가?’
분명, 도로에 있던 신수들은 대부분 처리했을 텐데...
아직도 이만한 숫자의 신수가 있다는 것과 그 생김새가 달라졌다는 건,
실 가닥 신수들이 줄어든 개체수를 충당하고자 형태를 변화시킨 걸 수도 있겠다고, 이서준은 생각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신수들, 지금 우리들과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는 변화된 몸으로 전투를 빠르게 회피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신수가 우리를 우회하듯이 주변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 젠장... 이렇게 되면, 신수로 인한 피해 범위가 커질 텐데... 용사... 그래! 보고 받기론, 이곳엔 용사들이 와 있다고 했지?’
그들이라면, 분명 우리를 도와 이 많은 신수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겠지.
어쨌든 이 물고기 신수들은 물량에만 치중했는지, 실 가닥 신수들과 맷집이 같거나 더 약한 것 같으니까...
이서준은 지니고 있던 ICG란 무기로 날아오는 물고기 신수들을 얼리면서,
팀원들에게는 뭉쳐서 최대한 탄약을 아끼며 장기적으로 버티라고 명령했다.
“팀장님... 이 신수들, 얼린 것은 아무 반응도 없는데, 총을 맞은 것들은... 다시 실 가닥으로 풀어지고 있어요...”
“... 총기를 이용한 제압은 최소화해! 반복한다. 총기는 최대한 사용하지 말고, ICG로 전부 얼려버려.”
ICG, 우리들이 흔히 ‘한기 방화기’로 부르고 있던 이 총은 박사가 발명한 대(對)신수 무기 중 하나였다.
이 무기는, 이런 실 가닥 신수처럼 물량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신수를 위해 만들어진 총으로,
닿는 즉시 일대를 얼려버려 화염 방사기처럼 광범위한 피해를 줄 수 있지만,
화염 방사기와 다르게 상관없는 구역에는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어, 안전하게 신수를 공략할 수 있었다.
“... 여기 B팀은 탄약도 ICG 연료도 거의 다 떨어져서...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네요.”
대략, 20분 정도 흘렀다.
신수들이 아무리 회피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들, 이 20분 동안 몰려오는 신수의 물량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하늘은 물론이거니와 바벨탑과 주변에 있는 상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걸 가득 채운 이 수만 마리의 물고기 신수들은,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고 계속 주위를 맴돌면서, 물결이 되어 우리들을 수면 아래로 점점 빠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 이 빌어먹을 용사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아직도 용사의 지원이 없다니... 이서준은 연료가 떨어진 ICG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등에 메고 있던 총을 꺼내 들며 생가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신수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설마 그 망할 놈의 이미지를 챙기느라, 민간인을 끝까지 대피시키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 그림은 좋다. 용사들은 민간인을 대피시키고, G.G.E 요원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붙잡아 둔 신수들을 처리한 뒤, 그들을 애도하는 모습을 매체에 마케팅하고...
‘씨X 우리가 왜 희생 따위를 해야 하는 건데...?’
이서준이 속으로 짤막하게 욕설을 뱉어내며, 이런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기는 바벨탑으로 들어간 ‘신수 연구 개발 부서’의 구장류 팀장이다. 이제 곧, 그곳으로 사력자 세 명이 지원 갈 거니, 알아 두길 바란다.”
사력자라면... 용사들처럼 초인의 힘을 지닌 자?
그렇다는 건,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말이지?
이서준은 구장류 팀장에게, 알겠다고 보고한 뒤,
팀원들에게 가까운 건물로 들어가 거기에서 최대한 몸을 사리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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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에서, 물고기 떼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
햇빛이 물고기 신수들 사이로 미약하게 들어와, 나의 시각을 자극하는 기묘한 기분.
나는 물고기 신수들로 가득 찬 어딘지 모를 이 공간을 정처 없이 걸었다.
나의 떨리던 손은 이제 잠잠해졌고, 뻣뻣해진 몸은 느슨하게 풀렸다.
이게 그... 너튜브에서 보았던, 인간이 죽음을 직면했을 때 거치던 5가지의 단계 중에 마지막 단계인 ‘순응’이라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죽기 싫었고, 죽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단지 내가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지금 이런 빌어먹을 기묘한 상황을 마주하니 그런 것인 것 같았다.
‘이제 어쩌면 좋지...?’
이 상태로 집에 돌아가면, 내 몸속에 있던 신수들이 가족이나 다른 이들을 해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러면, 어쩌라는 말인가? 바벨탑에 들어가 골목으로 내려가라는 말인가?
그... 죽음보다 더한 것들이 있다고 하는, 밑장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싫었다... 그곳은, 살만한 곳이 못 된다고, 매체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그곳에서 올라온 사람이 강연했을 때도, 하던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비공식 게이트들을 하수구처럼 바라보았다.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오물이 가득 찬 그런 하수구... 그런 하수구에 들어가라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고 했는데...’
나는 나를 살해하려고 하던, G.G.E의 총구와 그 차디찬 G.G.E의 검은 슈트가 떠올랐다.
나는 다시 또 그런 경험을 하기 싫었다. 설령... 바벨탑에 들어가더라도 말이다.
‘바벨탑에 들어가도... 내가 골목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물고기 신수들이 가득 찬 이 공간 속에서, 바벨탑을 찾기 위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산처럼 우뚝 솟아나 있는 바벨탑이라면 잘 보일 테니까,
나는 최대한 물고기 신수들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휘릭-
갑자기 어디서 불어닥친 맞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
툭... 툭... 쏴아아-
바람 소리는 곧 비바람을 동반하며, 내 몸을 젖히다가 말리다가를 반복하니,
나는 몸에서 느껴지는 오한에 손으로 몸을 비비적대며, 눈을 떴다.
“신수들이... 없어?”
내 시야를 둘러싸고 있던 물고기 신수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하늘에서는 검은 비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더니 증발해 사라지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는 한 남자가, 저벅저벅 증발해 사라지는 검은 물웅덩이를 밟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오호... 이 꼬맹이, 신수에게 감염된 것 치곤, 정신은 온전하네?”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손에 무언가를 쥔 츄리닝 차림의 한 남자.
그는 내 바로 앞까지 걸어와, 눈썹을 찌푸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결국 신수에게 감염된 건 똑같으니까... 어떡할래? 내가 죽여줄까?”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날이 없는 검의 손잡이 같은 것을 내게 내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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