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안에 괴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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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바딕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4
최근연재일 :
2025.04.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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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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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45. 일상

DUMMY

“아... 아니요... 죽기 싫은데요.”



그게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아니면 놀리려고?


차림새도 어디 동네 백수처럼 입어서... 아니, 백수가 아니라 거지에 더 가깝나?


냄새도 이상한 데, 입고 있던 츄리닝복은 때가 타서 검게 변한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뜯어지고, 엉망이었으니까.


나는 이런 거지꼴의 사람을, 바벨탑 주위에서 본 적 있었다.


그들은 재산을 바벨탑에서 탕진하고, 갈 곳을 잃어 바벨탑 주위 하수도나 사람이 없는 무인가에 노숙 생활을 하는 이들이었다.



“그럼... 뭐, 이 몸이 특별하게 살려주지.”

“그거... 고맙네요...”



다만, 나는 이 남자가 차림새만 노숙자였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을 옥죄는 듯한 기분... 바람에 날리는 듯한 오묘한 소름이 자꾸만 나의 피부를 날카롭게 도려내는 것 같은 이 기분이, 그가 말할 때마다 느껴졌으니.


솔직히 내가 신수에게 감염된 상태만 아니라면 진작에 도망쳤을 것 같았다.



“... 아니, 그 녀석은 죽어. 진 유백화.”



나는 느닷없이 끼어든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진 유백화... 그래~ 골목대장이 이런 고층까지 오다니. 뭐, 나야 실적도 올리고 좋지.”



용사들이 입는다는 흰색 롱코트를 걸치고, 입에는 이쑤시개 같은 걸 항상 물고 다닌다는,


내가 티비에서 보았던 용사들의 2번 대장 ‘유대길’.



“너는... 수 유백화? 너, 언제 G.G.E의 끄나풀로 들어갔냐?”



하지만 거지 차림의 남자는 그를 ‘수 유백화’라 부르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수 유백화...?’



나는 그를 ‘수 유백화’가 아닌 ‘유대길’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거지꼴을 한 남자, ‘진 유백화’와 비슷한 분위기로,


그의 흰색 롱코트는 항상 주름져 있었고, 머리칼도 빗지 않아 멋대로 헝클어져 있어, 매사 어딘가 지저분해 보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용사들의 리더인만큼 인망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를 죽이겠다고?


나는 그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와~ 스승님을 이름으로 부른 것도 모자라, 너라니... 많이 컸네~ 진.”

“... 스승? 하하하...”



진 유백화는 수 유백화의 말에 실성한 듯 웃다가,



“제자들을 전부 죽인 이유가 G.G.E의 끄나풀이나 되려고 그런 거였어...?”



팔에 핏발이 설 정도로 날 없는 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거머쥐면서 ‘수 유백화’에게 내밀었다.



“어허... 점점 생각 없이 말하고 있네. 진 유백화... 너는 그 잘난 자존심 때문에 내가 준 이름도 못 버리고 있지? 사력자 사이에서 유백화의 제자라고 하면, 알아주니까 말이야.”



수 유백화의 입술 사이에 껴 있던 뾰족한 무언가가 츳! 혀를 차면서 진 유백화를 노려보았다.



“나도 참 운이 없단 말이야. 그 우수한 제자들 사이에서 하필 가장 밑바닥인 네 녀석이 살아남다니... 유백화의 이름이 아깝단 말이지.”

“... 닥쳐...”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진... 아니, 꼬맹아. 그러니까, 어서 뒤에 있는 그 소년을 내게 넘겨.”



오금이 저리다.


단순히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갔을 뿐인데,


거대한 압착기 같은 게 둘 사이에 부딪혀,


꽉- 나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 이 몸은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할 거라서 말이지.”



진 유백화는 매고 있던 가방을 풀어, 내게 내밀었다.



“살고 싶으면 이걸 메고 있어.”



허름한 가방... 가방 치곤 중간 덮개가 있고 크기도 큰 편이었으니까, 배낭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나는 ‘진 유백화’에게서 이런 배낭을 반강제로 건네받곤,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 이제와서 뭘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널 저 녀석이 마음대로 하게는 놔두지 않을 거라서 말이야.”



그래... 진의 말대로였다.


나는 살기 위해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와서 뭐를 무서워한다는 말인가?


나는 진이 건넨 배낭을 등에 멨다.


이게 내게 어떤 도움을 주겠냐 만은, 일단 그가 그리 말했으니까...



“진 유백화, 네가 무슨 수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나를 이기지 못해.”

“그래... 나는 아직, 수련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어.”

“순순히 인정한다고? 하하하! 이제, 네 유일한 장점인 쓸데없는 자존심마저 버린 건가? 정말인지 밑바닥을 기는구먼!”

“... 나는 오늘 느꼈어. 지금의 나로선, 그 어떤 사람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그러니까, 지금은 너 같은 쓰레기라도 이기지 못할 테니... 전력으로 도망쳐야지.”



진이 쥐고 있던 날 없는 검의 손잡이를 바닥으로 가도록 거머쥐었다.



“아직도 분수를 모르는군. 네가 과연 도망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다니.”



수 유백화의 중심으로 안개와도 같은 연기가 자욱하게 번지다, 잔잔히 바닥에 가라앉았다.



“너와 그 소년을 죽여주지.”



수 유백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진 유백화 주변에 깔린 연기가 무수한 가시로 변해 우리를 덮쳤다.


나는 너무나도 순식간에 닥쳐온 가시들로 눈 깜박이는 것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지만,


내 앞에 서 있던 진만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시들을 자르고 있었다.



‘뭐... 뭐야?’



검도하는 선수들이나, 펜싱하는 선수들이 서로 일격을 맞부딪힐 때 이루어지는, 일반인이 보지도 못할 빠른 연격.


나는 ‘진 유백화’가 그것을 쉴 새 없이 일으키는 것도 놀랍긴 했지만, 그는 분명 날 없는 검의 손잡이만 열심히 휘두르고 있는데 깔끔하게 양단되어 다시 연기로 돌아가는 가시들을 보니, 과연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자... 그렇게 가시를 막는 데 급급하면, 소년은 누가 지킬까나?”



나는 바로 옆에서, 스르륵- 연기와 함께 올라오는 수 유백화를 바라봤다.



“바람을 검 손잡이에 집중하면, 네 바람의 장점인 ‘다채로움’을 전부 버리는 꼴. 자~ 그러면 교훈의 값으로...”



수 유백화는 바닥에 깔린 연기에서 기다란 장창을 뽑아 들고, 내게 뻗었다.


나는 뻗어오는 장창에, 몸을 움츠리면서 손으로 가로막았다.



“흠?”

“거... 이런 애 하나 죽이겠다고 난리가 났네.”



나는 내가 메고 있던 배낭에서 튀어나온 기다란 것에, 손을 치우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신... 신수?”



입... 그것도 사람의 입.


그것이 뱀처럼 기다란 몸 끝에 달려, ‘수 유백화’의 장창을 이로 문 채 어눌한 발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너는... 선우민과 함께 있던 그 신수로군.”



수 유백화는 신수의 입을 잠시 바라보다가, 장창을 뒤로 빼내는 동시에 연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멘 배낭에서 ‘그림자의 손’ 같은 것이 뻗어 나와 날아오는 장창의 연격을, 빠짐없이 쳐냈다.



“오호...”



수 유백화는 자신의 장창을 그림자로 쳐내는 사람의 입을 보며 감탄을 뱉어내다가,


그림자가 받아 치고 있던 그의 장창이 연기가 되어 바닥으로 흩어지자,


그는 빙판에 미끄러지듯이 뒤로 물러나니, 진에게 돋아나고 있던 무수한 가시들도 멎었다.



“꼬맹이가 재밌는 장난감을 주워 왔네.”



수 유백화는 어느 틈에 또 다른 장창을 손에 들고, 숨을 헐떡이던 진 유백화를 향해 말했다.



“뭐? 누굴 보고 장난감이래. 내가 진심을 내면, 너 따위는 쉽게 죽일 수 있다고.”



그러자, 내가 멘 배낭에서 튀어나온 이 기다린 ‘입’ 신수가, 마치 사람처럼 화를 내면서 입을 놀렸다?


나는 마음 같아서 이 배낭을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 배낭은 나를 구해준 신수...


신수인데... 신수가 인간처럼 감정을 품을 수 있나?



“그럼, 진심을 내봐. 오랜만에~ 내 흥이 살아나서 말이야. 이대로 보내 주기에는 아쉽다고.”



바닥에 깔린 연기가 동그랗게 뭉치기 시작해 총 3개의 구체가 되어, 수 유백화 주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 흥이 살아난다고? 하! 나는 오히려 흥이 죽어버렸다고~”



내가 멘 배낭이 꿈틀거리더니, 안에서 그림자처럼 생긴 손이 하나, 둘, 셋...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뻗어 나왔다.


나는, 나를 사이에 두고 영화에서나 볼법한 판타지 같은 광경이 일어나자, 이게 진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기다려... 싸우면 안 돼. 저건 쓰레기지만, 깊은 골목의 신수를 죽인 전적이 있다고...”

“하! 고작 깊은 골목 신수를 죽인 거 가지고...”

“게다가, 여긴 고층이니까 곧 G.G.E와 정부 측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진 유백화의 말에, 입은 주위를 ‘입으로’ 훑었다.



“아... 그래. 여긴 고층이었지... 오렌만이네~”



그림자 형상의 손들이, 스르륵- 도로 내가 매고 있던 배낭으로 들어갔다.



“... 나를 앞에 두고도 작전을 서슴없이 말하다니... 안일한 건가? 아니면 멍청한 건가? 안 되겠어. ‘유백화’란 이름이 너무 아까워.”



수 유백화 주위에 붕- 떠 있던 사람 정도 크기의 커다란 구체 3개가, 나와 진을 에워쌌다.



“내가 아무리 못났어도,,, 사형들은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 줬어.”

“그래, 녀석들은 내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남 챙기는 건 잘했지. 그 덕에 다 죽은 거고. 자... 그러면, 슬슬 너도 네 사형들 곁으로 보내 주지.”

“... 있지. 나는 말이야. 사형들이 아무리 우수했어도, 전부 혀를 내둘렀거든.”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한 따스한 바람이 가볍게 살랑거리면서, 내 주위에서 춤을 추었다.



“도망치는 건 하나 기가 막힌다고... 그럼, 또 만나자. 쓰레기 새끼야.”



우리를 에워싼 3개의 동그란 구체들로부터 얇은 가시들이 돋아나며 순식간에 우리를 뒤덮었지만,


그보다도 빠르게 나와 진은 무슨 로켓이라도 탄 것처럼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벨탑에서 멀어져, 바벨탑과 차를 타고 약 10분 정도 떨어진 ‘민간 거주 구역’까지 도달하여, 사뿐하게 착지했다.


나는 이 모든 일이 단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야, 어떠한 감흥 없이 그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



“... 진짜, 도망치는 건 빠르네~”



수 유백화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아... 박사님. 말씀하신 대로, 바벨탑에서 그분의 동료들이 고층으로 올라왔군요. 그런데... 왜인지, 골목대장인 '진 유백화'와 고층의 한 소년이 그 사이에 껴 있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수 유백화 주변에 붕- 떠 있던 3개의 구체는 여전히 그의 주변을 맴돌면서,


날아다니거나,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전부 얇은 가시로 찔러 죽였다.



“... 알겠습니다. 이로써, 바벨탑 건은 해결된 것 같으니까, 인질이 된 사람들과 목격자들은 빠짐없이 처리하겠습니다.”



수 유백화는 상가 옥상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하얀 롱코트를 입은 용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분의 동료들에게 감시를 붙일까요? 배낭 속 그 괴물이 있는 이상 버겁긴 할텐데...”



수 유백화는 진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봤다.



“네. 감시는 붙이지 않겠습니다. 그럼...”



스마트폰을 손에 거머쥔 그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가, 바벨탑을 향해 걸어갔다.



----------



나는 내 앞에 멈춰 선 한 대의 차량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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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4 - 36. 들판 위에서 (완결) 25.04.07 6 0 13쪽
199 4 - 35. 들판 위에서 25.04.03 6 0 12쪽
198 4 - 34. 저주받은 곳 25.04.01 6 0 12쪽
197 4 - 33. 저주받은 곳 25.03.28 7 0 12쪽
196 4 - 32. 저주받은 곳 25.03.25 7 0 12쪽
195 4 - 31. 방주 25.03.21 7 0 12쪽
194 4 - 30. 방주 25.03.17 8 0 12쪽
193 4 - 29. 수정된 장 25.03.14 7 0 12쪽
192 4 - 28. 수정된 장 25.03.11 7 0 12쪽
191 4 - 27. 수정된 장 25.03.08 7 0 12쪽
190 4 - 26. 최초의 왕 25.03.05 8 0 12쪽
189 4 - 25. 최초의 왕 25.03.04 8 0 12쪽
188 4 - 24. 바라는 자들 25.03.01 7 0 13쪽
187 4 - 23. 바라는 자들 25.02.26 8 0 12쪽
186 4 - 22. 바라는 자들 25.02.23 8 0 12쪽
185 4 - 21. 피어난 장 25.02.20 8 0 12쪽
184 4 - 20. 피어난 장 25.02.18 8 0 12쪽
183 4 - 19. 피어난 장 25.02.16 7 0 12쪽
182 4 - 18. 지금까지 25.02.13 7 0 12쪽
181 4 - 17. 지금까지 25.02.10 9 0 12쪽
180 4 - 16. 지금까지 25.02.09 10 0 12쪽
179 4 - 15. 각오한 장 25.02.06 8 0 12쪽
178 4 - 14. 각오한 장 25.02.05 8 0 12쪽
177 4 - 13. 각오한 장 25.02.02 8 0 11쪽
176 4 - 12. 퇴장과 입장 25.01.30 8 0 12쪽
175 4 - 11. 퇴장과 입장 25.01.28 9 0 13쪽
174 4 - 10. 집결 25.01.25 8 0 12쪽
173 4 - 9. 집결 25.01.22 9 0 12쪽
172 4 - 8. 집결 25.01.20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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