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46. 일상

‘승합차?’
위험하게 인도에 있던 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니, 끼이익- 브레이크 걸며 멈춘 승합차 한 대.
“겨우 벗어났어...”
곧이어 멈춘 승합차의 운전자석에서 한 남자가 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뱉자,
나보다 어려 보이는 두 소년과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소년이 승합차 뒤에서 내렸다.
“결국, 그분이 말했던 그 남자는 못 찾았네...”
눈동자가 금빛인 나보다 어려 보이는 소년이 승합차에서 함께 내렸던 은빛 눈동자의 소년에게 머쓱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은빛 눈동자의 소년은 턱에 손을 얹으면서, 나이에 걸맞지 않도록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래도 우린 ‘신수 연구 개발 부서’에서 ‘깊은 골목’으로 향할 때 용병을 고용한다는 정보를 얻었으니까. 마냥 손해라곤 볼 수 없지.”
무엇을 분석하듯, 금빛 눈동자의 소년에게 대답했다.
나는 이들이, 나와 관계없는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돌리려고 했지만,
진이 내 손목을 잡아끌어 금빛 눈동자 소년 앞으로 데려갔다.
“이 소년은 얼마나 더 생존할 수 있지?”
진 유백화의 기습적인 질문에 금빛 눈동자의 소년은 깜짝 놀라 뒤로 조금 물러나면서 당황했지만,
곧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미 신경계와 근육계가 신수의 육체로 바뀌어져 있어, 솔직히 신수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육체의 주도권을 뺏을 수 있는 상태지만... 배낭에 깃들어 있는 그분의 사력이 신수를 억누르고 있어요.”
... 이 승합차에 나온 사람들은 진 유백화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
그건 그렇고, 나는 사력이 뭔지 몰랐지만, 이 소년의 뉘앙스로 보았을 때, 내 몸은 당장 신수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
나는 이미 진이 ‘이 배낭을 메면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다시 들은 것뿐이었지만,
인제 와서 울컥하는 감정이 내 눈가 밑으로까지 번져와, 나는 옷소매로 눈가 밑을 문질러 찔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내 몸이 신수에 잠식당했다는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적어도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이러한 감정들이 얽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나도 이 소년의 변이를 막고 있다는 말씀~ 그러니까...”
내가 멘 배낭에서 기다란 입이 튀어나와, 나의 귀 앞으로 ‘입’을 가까이 붙였다.
“내게 앞으로 잘해야 할 거야.”
협박인가? 아니면... 장난치는 건가?
무엇이 됐든 나에게 있어 입의 목소리는 그저 잔인한 농담 같은 거로 들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 그나저나, 바벨탑에 버리고 온 그 여자가 우리를 쫓아오면 어쩌냐? 라프...”
한겨울에 옷을 겹겹이 껴입은 사람처럼, 연구원들이나 입는다는 흰색 가운을 단추까지 잠가 동여매고,
목도리에다가, 모자에다가, 장갑까지 낀, 앳된 목소리의 사람이 승합차에서 뒤늦게 내리면서, 말끝에 ‘라프’라는 단어를 붙이며 말했다...
“운이 좋으면 용사들이 류나 누나를 붙잡을 거고, 운이 없어도 이제 누나의 짓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대처할 수 있어. 그러니 누나도 함부로 우리를 공격할 순 없을 거야. 어쨌든, 신체는 평범한 것 같았으니까...”
금빛 눈동자의 소년은 저기 멀리 우뚝 서 있던, 바벨탑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형은 뭐야?”
이번엔 은빛 눈의 소년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소년이었지만,
소년의 날카롭게 빛이 나는 은색 눈동자와 눈매는,
나이를 잊게 만드는 동시에 내게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나는 박윤호라 하는데...”
“박윤호... 윤효형은 앞으로 어쩔 거야? 보아하니 일반인 같은데... 우리에게 그 배낭은 값어치가 높다고.”
은빛 눈동자 소년의 차가운 말투가 나를 나무라듯이 말하자,
금빛 눈동자의 소년이 은빛 눈동자 소년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내 앞으로 걸어 왔다.
“그 배낭이 가까이에 있는 이상, 신수에게 몸이 빼앗기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배낭은 주인이 이미 있어서...”
은빛 눈동자 소년의 차가운 말투와 정반대로, 어딘가 정겨운 친구처럼 느껴지는 금빛 눈동자 소년의 목소리.
그 소년의 목소리는 이리저리 눈을 획획 돌리면서 주변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던, 나와 동갑처럼 보이는 한 소년을 바라보다가,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함께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주변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가족이나 친구...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무사히 G.G.E 요원들에게 구출됐겠지?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여전히 인터넷이나 전화는 먹통인 상태였다.
“... 그럼... 지금 당장 급한 일 없으면 우리 집에 갈래...요?”
나는 아무도 없는 이 바벨탑의 '민간 거주 구역'에서,
우리 집으로 향하는 친숙한 길목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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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입술에 멜빵 바지를 입은 남자는 다가오는 흰색 롱코트를 바라보며 실성하듯이 웃어대다가,
손에 쥔 사각 칼을 투수가 볼을 던질 때의 자세로, 있는 힘껏 던졌다.
“... 죽어!”
수 유백화는 그 어떤 야구볼보다도 빠르게 날아오는 사각 칼을 몸을 옆으로 살짝 돌리는 것으로 가뿐하게 피했다.
“... 상당히 다듬어진 사력이긴 한데... 츳, 이렇게 쉽사리 당해서야, 용사란 이름이 울겠구먼.”
그는 주변에 쓰러져 있던 흰색 롱코트를 입은 용사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저 남자 강한데요... 대장이 처리 해주던가, 초코케이크를 주면 제가 노력해 볼 수 있을 텐데...”
이나영은 먹을 걸 원하는 강아지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수 유백화에게 입맛을 다셨다.
“쓸만한 애들은 전부 맛탱이가 가 있고... 박사님도 고생이 많겠어.”
수 유백화는 인질들이 갇혀 있다던 이곳, 바벨탑의 지하 1층 주차장을 두리번거리다가,
지하 주차장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던 기다란 기둥에 고개를 멈춰 세웠다.
“저기 있군...”
그는 또다시 날아오는 사각칼을 피하면서, 지하 주차장 기둥 뒤에 숨어 있던 김류나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박사님의 ‘전자화 두뇌’의 산물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거 뜻밖의 수확인데?”
“크...”
수 유백화가 김류나의 목이 잡아 들어 올리자 사각 칼을 든 남자의 모습은,
한 줄기의 검은 연기로 변해 공중으로 흩어졌다.
“사력의 제약. 그것을 실현한 첫 번째 부산물. 자,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김류나는 막혀오는 숨으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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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나는 아마, 신수 경보로 인해 인근에 있던 피난 장소로 도망쳤을 것이고,
부모님은 한 달간 직장 일로 파견을 나가계셔 지금 우리 집은 매우 조용했다.
하지만, 내가 이 아무도 없는 집까지 온 이유는,
당연히 당분간... 잘하면 영원히, 집에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옷이나 충전기나 기타 여러 준비가 필요해서였다.
“오. 이 집 생각보다 넓네... 그러면,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 되겠다.”
나는 이 성인 남자... 서관호의 말에 얼른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네? 제 집에서요?”
“부모님은 한 달 정도 파견 나가 계신다며? 그때까지만, 잠시 머무는 거지. 어차피 바벨탑 사건으로 최소 10일 정도는 고층 간의 이동이 금지될 테니까. 괜히 섣부르게 움직이는 것보다야 낫겠지.”
이들이 우리 집에 머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괜스레 걱정되었다.
내 몸속에는 신수가 있는데, 이게 갑자기 나를 조종하여 누나나 주변 사람들을 해친다면 어쩔 텐가?
“네가 신수로 변한다고 해도, 이 몸이 있는 이상 너는 아무도 해치지 못할 테니까. 안심해.”
진 유백화가 자신을 엄지손가락으로 척- 가리키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 그러면, 제가 신수로 변하면 형이 꼭 죽여주세요... 제가 누군가를 해치기 전에 말이죠.”
“그래. 내 바람이, 너를 항상 지켜봐 주마”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튼 뒤 얼굴을 문질렀다.
죽는다... 신수로 변해 죽으면, 아프지 않겠지?
무서웠다. 죽음이, 나를 무섭게 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문질러 닦으면서,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그나저나... 나는 샤워할 때도 이 배낭을 메고 있어야 하는 건가? 그거 참... 불편할 것 같은데...’
볼일 볼 때나, 잘 때도, 이 배낭을 메고 있어야 한다고?
“배낭을 벗은 뒤 샤워해도 돼. 목욕도 말이야. 심지어 잘 때도 배낭을 벗은 뒤에 자도 된다고. 하지만, 절대 이 배낭을 네 시야에 보이는 장소에 둬야 해. 이 배낭에 스며든 ‘사력’이란 것이 네 몸에 기생한 신수를 억누르고 있으니까.”
...!? 나는 내 마음을 읽은 듯하게 말하는, 내가 멘 배낭에서 길게 뻗어 나온 입에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몸을 뺐다.
“... 배낭... 이라고 했죠...?”
나는 집에 오면서, 금빛 눈동자 소년인 선우민에게서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우선, 이 기다란 입의 이름은 배낭. 반만 신수인 특별한 존재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 신수라 하고,
몸에 옷을 껴입은 여자는 라프... 그녀도, 배낭과 같은 반만 신수인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성인 남자는 서관호, 눈동자 색이 은빛인 소년은 자르빌.
마지막으로, 나와 동갑처럼 보이는 소년의 이름은 최수호라 소개받았다.
진 유백화는 뭐... 이미 알만치 알고 있으니까, 따로 인사하지는 않았다.
“그래. 내 이름은 배낭. 내가 멘 배낭처럼 말이야, 나도 네 신수를 억제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내 이름을 부를 땐, 배낭님, ‘님’을 꼭 붙여야 한다고.”
“... 배, 배낭님... 고맙네요...”
“그래그래. 하하하”
나는 이 반신수... 이 입만 산 것 같은 반신수의 모습에, 그래도...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세수를 마저 한 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을 때.
쿵! 쿵!
누군가가 화장실 문을 두들겨, 열어 주었다.
“... 그러니까... 이름이...”
실내에 와서도 여전히 옷을 입고 있는 라프라는 반신수...
“박윤호라 하는데...”
나는 솔직히 반신수인 그녀의 모습이 궁금했기에,
조금 집중해서 그녀의 목도리 사이로 삐져나온 커다란 눈과 희미한 털들을 집중해서 보았지만,
역시... 나는 그녀의 모습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윤호는 이 녀석에게 고층에서의 생활을 알려줘라. 이 녀석은 골목에서만 생활해서 티비도 볼 줄 모른다. 라프...”
라프의 뒤로 나와 동갑처럼 보이는 소년, 최수호가 어딘가 어색하게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 알겠어요...”
골목에서 온 소년...
확실히 꾀죄죄 한데다가 옷도 낡아서, 솔직히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소년.
나는 과연 골목에서 사는 내 또래들은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 나는 이 소년을 곧바로 씻기고 싶었다.
아니... 이 소년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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