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안에 괴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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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바딕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4
최근연재일 :
2025.04.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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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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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 31. 방주

DUMMY

“자... 날아갈 시간이다. 작은 새는...”



G.G.E 사령관의 검게 물든 표정은 나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의 어깨에서 돋아난 ‘해바라기와 닮은 꽃’은 새하얀 이빨들을 위아래로 여닫으며 흉터에게 안겨 있던 누나의 귓가에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누나의 창백한 몸에 한가득 피어나는 봄날의 들꽃들... 다정한 냄새를 풍기는 추억의 향기들.


그것들은 화르륵- 누나의 몸과 함께 무너져 내리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니, 나는 그만 넋을 놓아 버렸다.


누나가... 꽃과 함께 사라졌어? 설마... 설마, 죽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왜 갑자기 사라진 거지?


내 머릿속으로 의문들이 가득 차오르기도 전,



“하하하...”



해바라기와 닮은 꽃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몸이 굳어있던 수호에게 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하... 하...”



하얗게 되어버린 내 머릿속에서,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소름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 기분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곧 부서질 것 같은 살얼음판을 맨발로 밟으며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의 흐름은 어색함을 남기며 끊어졌다. 선우민에 관한 이야기도, 그분에 관한 이야기도, 고층이나 골목의 그 누구에 관한 이야기도, 지금 전부 너만을 향해 피어 있지.”



웅얼웅얼, 중얼중얼거리며 최수호에게 뻗어간 해바라기와 닮은 꽃이 나를 향해 새하얀 이빨들을 돌렸다.



“자...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꽃을 향해 묻는 건지, 나를 향해 묻는 건지 알 수 없도록,


그는 다시금 도시의 폐허 속에 돋아나 있던 거대한 꽃을 향해 어두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이런 G.G.E 사령관의 검게 물든 표정을 보자, 손가락 하나가 까닥- 움직여졌다.



----------



사력이란 에너지는 과도할 경우, 이 세계에 에러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리셋’이라고 불리는 ‘묵시록’은 사력이란 에너지가 제어 불가능할 정도로 쌓이기 전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만약 도중 과도하게 에너지가 쌓이거나 흐른다면, 마치 전류가 불안정할 때 차단기가 내려가는 것처럼, ‘리셋’은 앞당겨져 진행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또한 ‘관리자’가 앞으로 발생할 사력이란 에너지가 많겠다고 판단되면, 관리자들끼리 서로 합의하여 ‘리셋’을 의도적으로 앞당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리셋이 이루어지기 전 사력이 과도하게 흐른다면,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여 이세계인들이 우리 세계에 걸어두었던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거였다.



“그러면, 사력이란 에너지가 과도하다는 건 결국 우리 세계에 있는 사력자의 수가 많아진다고 봐도 되는 건가?”



미스터 제이의 부가 설명을 들은 자르빌은 아직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진과 라프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심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사력자의 수가 많아지거나, 아니면 사력자 한 명이 과도하게 사력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모종의 방법으로 인해 사력이 증폭되었거나, 뭐... 굳이 그게 아니라도 사력이 많아질 조짐이 보이면 ‘리셋’은 이루어지고 또...”



미스터 제이는 설명 듣는 것에 한계를 느꼈는지 이리저리 시험관 위를 돌아다니고 있던 라프를 바라봤다.



“... 라프와 자르빌, 너희들이 찾는 ‘선우민’의 오리지날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리셋’은 발동해.”



라프는 미스터 제이가 선우민이라 말하자, 시험관 위에서 귀를 쫑긋 세우며 그를 바라보았고, 자르빌은 그에게 “깊은 골목의 진실 같은 건가?”라고 물었다.



“그래. 그런 거지... 아무튼, 설명은 여기서 끝났으니,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하지.”



미스터 제이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니, 의자는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너희들과 함께 있었던 박윤호. 아마 그가 이번 리셋의 트리거 역할이라고 우리들은 생각하고 있거든. G.G.E 사령관은 이 신탑에서 모은 사력을, 선우민의 사인으로 증폭시켜 윤호에게 전달하여, ‘리셋’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 세계에 에러를 일으킨다. 그것이 ‘G.G.E 사령관’이 모듈로 맞춰 놓은 이야기겠지.”

“윤호 형이 피뢰침 같은 역할이자, 저주를 풀 폭탄 같은 역할이라는 거야?”

“정답이야.”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여기서 해야 할 건, 이 중앙제어실에 보관된 선우민들을 찾아내는 것.


어차피 선우민을 찾으려고 이곳에 온 거니까 그건 당연한 거였지만, 만약 선우민을 찾아도 시험관에서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최악의 경우 이 시험관에 갇혀 있는 사력자들을 전부 죽이거나, 이 중앙제어실를 통째로 파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그것부터 빨리 말하지 않은 거냐? 지금 여기서 네 설명만 10분째 들었다만...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은 많은 거겠지?”

“윤호가 방주에 올랐으니... 아마,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거다.”

“... 뭐?”



진은 미스터 제이라는 남자가 마음에 안 드는 지, 허리춤에 꽂혀 있던 사검의 검집 위로 두 손을 올린 채 눈을 산처럼 오므려 인상을 썼다.



“워~ 진정해. 골목 친구. 이렇게 설명을 안 했으면 어차피 안 믿었을 거잖아. 게다가... 지금 이렇게 싸우고 있을 틈도 없다고.”



미스터 제이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진에게 두 손을 펼쳐 위로 들어 보였다.


진은 미스터 제이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찌푸린 눈썹을 풀면서 주변에 화락- 바람을 몰아쳤다.



“그래. 이 몸의 바람이라면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니, 상관없는 이야기겠지.”

“그래. 그런 거야. 골목 친구. 그런 이유로 자안이 너를 이곳에 데려온 거니까.”

“... 나는 진 유백화다.”



진은 여전히 미심쩍게 미스터 제이와 자안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사검의 검집을 들고서 자기 목을 툭! 강하게 한 번 쳤다.



“갑자기 나타난 네놈들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러나저러나, 이 몸도 얼른 신탑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빠르게 해치우지.”



진의 바람이 시험관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며 순식간에 이 컴컴한 공간을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



“그럼,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고, 네 누나가 까먹고 간 거, 잘 전달해 줘.”

“누나요...?”

“어. 네 누나. 말이야.”



... 누나...?


나한테 누나가 있었나?


나는 새하얀 기억 속에서 누구의 얼굴을 생각해 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학교에 지각할 것 같았기에, “네. 그럴게요.”라고 대답한 뒤 나는 집을 나왔다.


누나... 누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내려갑니다.”



엘리베이터의 소음을 시작으로, 나의 아침은 시작된다.


내려갈 때는 부디 중간에 서질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나 말고 출근하는 어른, 등교하는 중학교 학생들이,


나와 같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덕분에 시간은 더 지체되어 버린다.


덕분에 나는 이날도 조금 서둘렀다.



“어서 오고~”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야, 씨 너 기다린다고 나까지 지각하면 어쩌냐?”

“그러면 뭐, 쌤쌤 아니겠냐?”



나는 이 녀석을 기다린다고 학교에 지각해 벌점을 받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가 핑계를 대줘서 벌점을 받는 걸 모면했었는데...


그때 그 누군가는 학생회장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또, 함께 많이 놀았던 것 같은데...


아침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 누군가.


깜빡이며 이어지는 필름 속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해바라기처럼 생긴 꽃 한 송이.


그걸 생각하면 할수록 밀려오는 현기증에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춰 서고 울렁이는 입을 틀어막았다.



“왜? 어디 아프냐?”

“야... 그런데, 나한테... 누나가 있었냐?”

“뭐?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어디에 머리라도 찧었냐?”

“아니. 씨...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이상한 기분... 뭔가 중요한 것을 흘리고 온 듯한 기분.


나는 왜인지, 슬쩍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당연히도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착각... 이었나봐...”



나는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바라봤다.


하지만... 친구는 온데간데없었고, 나와 똑같이 생긴 한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곳이, 비로소 끝난 이야기이자, 시작된 굴레였다. 너의 이야기이자, 나는 나라는 존재로 인해 소중한 기억을 잊은 채, 또다시 ‘G.G.E의 사령관’이 되어, 어린 나를 마주했지. 그리고 그가 느끼는 절망을 함께 만끽한 채, 나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래... 거기까지가 정해진 운명이지.”



새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간다.


나는, 그날 그렇게 누나를 잃었다.


여기에서 생기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죄책감이 또다시 나를 이끈다.


비록 정해진 이야기란 건 ‘똑같이’ 일어나는 게 아닌 비슷하게 일어나는 거라,


상황, 시기, 경우가 다 다르지만, 양식과 결과는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속일 필요가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시점과 관점을, 이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나의 추억은 다시 ‘방주’로 돌아와 폐허 속에서 돋아난 ‘거대한 꽃’으로부터,


몸이 굳어있던 ‘복제된 나’를 향해 피어났다.


그러자, 이번엔 내 팔이 움직여졌다.



----------



신탑의 중앙관청 지하에 존재하는 ‘중앙제어실’.


그곳에서 진 유백화의 하늘거리는 바람은 사력자가 담긴 시험관들의 빛들을 부드럽게 훑으면서도, 그 사이로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사방으로 뻗어가다가,


마름모처럼 생겨, 공중에 두둥실 떠 있던 어느 건축물 앞으로 선우민을 찾는 그들을 인도했지만.



“반갑네요. 여러분.”



최나 소장,


보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는 오로라 공주는, 이번엔 마름모의 건축물에서 발하는 은은한 보랏빛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선우민을 찾는 그들을 막아섰다.



“미스터 제이씨는 이번 이야기에서 ‘부외자’이니 더는 참견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가 공주님의 분을 사면 새장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요.”



최나 소장의 보랏빛으로 젖힌 신비롭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미스터 제이를 타일렀다.


그러자 진의 바람이 칼날처럼 곤두서, 최나 소장의 옷깃을 조금씩 베어내며 위협했지만,


최나 소장은 별 대수롭지 않게 그들 사이에 끼어 있던 미스터 제이에게 눈웃음만을 지었다.



“... 뭐, 어차피 나는 이미 다 도와줬으니까, 남은 건 이들의 몫이긴 한데...”



미스터 제이는 보랏빛을 등지고 눈웃음을 짓는 최나 소장에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슬며시 옆으로 걸어오는 백랑을 향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나는 말이야, 이미 허락을 이미 받고 온 거야.”



미스터 제이는 내쉬었던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무언가 각오를 다진 뒤,


“공주님한테.”라고 말하며, 슬쩍 두 팔을 들어 올려 자세 잡고는, 백랑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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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4 - 36. 들판 위에서 (완결) 25.04.07 8 0 13쪽
199 4 - 35. 들판 위에서 25.04.03 7 0 12쪽
198 4 - 34. 저주받은 곳 25.04.01 8 0 12쪽
197 4 - 33. 저주받은 곳 25.03.28 8 0 12쪽
196 4 - 32. 저주받은 곳 25.03.25 8 0 12쪽
» 4 - 31. 방주 25.03.21 9 0 12쪽
194 4 - 30. 방주 25.03.17 9 0 12쪽
193 4 - 29. 수정된 장 25.03.14 9 0 12쪽
192 4 - 28. 수정된 장 25.03.11 8 0 12쪽
191 4 - 27. 수정된 장 25.03.08 8 0 12쪽
190 4 - 26. 최초의 왕 25.03.05 9 0 12쪽
189 4 - 25. 최초의 왕 25.03.04 9 0 12쪽
188 4 - 24. 바라는 자들 25.03.01 8 0 13쪽
187 4 - 23. 바라는 자들 25.02.26 9 0 12쪽
186 4 - 22. 바라는 자들 25.02.23 11 0 12쪽
185 4 - 21. 피어난 장 25.02.20 9 0 12쪽
184 4 - 20. 피어난 장 25.02.18 9 0 12쪽
183 4 - 19. 피어난 장 25.02.16 8 0 12쪽
182 4 - 18. 지금까지 25.02.13 9 0 12쪽
181 4 - 17. 지금까지 25.02.10 10 0 12쪽
180 4 - 16. 지금까지 25.02.09 11 0 12쪽
179 4 - 15. 각오한 장 25.02.06 9 0 12쪽
178 4 - 14. 각오한 장 25.02.05 9 0 12쪽
177 4 - 13. 각오한 장 25.02.02 9 0 11쪽
176 4 - 12. 퇴장과 입장 25.01.30 9 0 12쪽
175 4 - 11. 퇴장과 입장 25.01.28 10 0 13쪽
174 4 - 10. 집결 25.01.25 10 0 12쪽
173 4 - 9. 집결 25.01.22 10 0 12쪽
172 4 - 8. 집결 25.01.20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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