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마법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현글
작품등록일 :
2023.05.11 08:13
최근연재일 :
2023.07.21 15: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9,984
추천수 :
131
글자수 :
189,211

작성
23.05.11 08:46
조회
416
추천
5
글자
10쪽

5화. 각성(1)

DUMMY

어느날 알렌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알렌은 다시 진호가 되었고, 알렌으로 살던 때의 일이 전부 꿈이라고 생각했다.


진호는 다시 자기 아파트에 앉아 있었다. 개발 프롬프트 창에 쉴 새 없이 코드를 적어 내리고 있었다. 까만 바탕화면에 노랗고 파랗고 빨간 코드들이 쉴 새 없이 적혀 내려가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천둥 번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한강이 보이는 진호의 집에서는 한강의 물이 범람하여 주변의 도로까지 잠기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진호는 지금 자신이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기억해 내려고 했다. 하지만 기억나질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은 마치 자신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이윽고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마지막 엔터를 침과 동시에 프롬프트 창에는 시스템 로그가 빠른 속도로 쌓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내 프로그램이 동작하고 화면에 하나의 창이 띄워졌다. 그리고 진호는, 알렌은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깬 알렌은 눈앞에 익숙한 반투명한 남색 프롬프트 그러니까 컴퓨터 명령어 입력창이 눈 앞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꿈에서 만들던 프로그램의 실행창 인것 같았다.


아직 비몽사몽 상태인 알렌은 진호의 습관처럼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입력하려다가 키보드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진호가 아니라 알렌임을 자각했다.


"응? 이게 왜 여기있지??? 이게 뭐야?? 그거 그냥 꿈이 아니었어?"


잠에서 깨자마자 겪은 현상에 크게 당황한 알렌은 놀라서 아침 운동도 빼먹을 뻔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두뇌를 신경 쓰지도 않고 움직이는 몸이 알렌을 야외 체력 단련장으로 옮겨 두었다.


아침 러닝을 하며 알렌은 프롬프트로 이것저것 해보려 시도해 보았다. 창을 끄고 켜는 것과 입력어를 작성하는 것은 의지로 가능했다. 프롬프트 창에 집중하며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원하는 것들이 프롬프트에 새겨지는 감각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몇 번 하고 보니 타이핑하듯 자연스러운 감각이 되었다.


진호의 지식을 이용해 프롬프트에 이것저것 OS를 다룰 수 있는 명령어를 입력해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이 프롬프트로 할 수 있는 것은 메모장뿐이다. 하지만 고작 메모장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무언가가 더 있다. 켄트 가문의 근육 아래 덮여가던 알렌의 호기심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뭔가가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하겠다.


===


로웨나는 켄트 가문에서 가정교사 역할을 한지 이제 갓 1년을 넘기고 있는 마법 학교 아벨리아 출신의 젊은 마법사다. 높은 급여와 자유를 보장해 주지만 마법사들은 켄트 가문의 가정교사 일을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켄트가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육체를 강하게 하는 것 이외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육 바보들은 세상이 구성되는 원리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강력한 의지로 이겨내면 그만인데 왜 그런 고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트가문에는 로웨나 같은 젊은 마법사들이 가정교사로 자주 채용되곤 한다. 제국에서 내려오는 귀족 의무 교육 방침에서 강제하는 과목에 마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귀족이라면 마법에 대해서 몇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교양이 필요하다.


켄트의 직계와 방계 후손에게 기본 소양을 가르치기 위해 고용된 젊은 마법 교사들은 켄트 가문에서 길어야 몇 개월을 버티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돈을 많이 주기는 하지만, 벽에다 대고 말을 하는 것 같은 갑갑함을 수업 시간 내내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지성의 끝을 추구하는 젊은 마법사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로웨나역시 마법실험에 실패해서 건물 한 채를 홀라당 날려 먹은 빛만 아니었어도 켄트 가문에서 1년이나 가정교사를 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켄트 가의 막내 도련님의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다. 올해부터 의무 교양교육을 받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1년여간 켄트 가의 방계혈통을 가르치면서 오우거와 철학을 논의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는데, 직계혈통인 막내 도련님은 또 얼마나 외골수 근육 바보일지 벌써 머리가 아파진다.


===


알렌은 제국에 이런 교육법이 있다는 사실을 수업 전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켄트가문 사람들이 대부분 교양교육을 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아 알렌에게 미리 말을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알렌은 지성의 끝을 추구하는 존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매우 흥분했다. 드디어 '왜'로 시작하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생에 살던 세계에는 없던 마법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았는데, 이제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수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수업 시간보다 30분 일찍 개인 교습실에 도착한 알렌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초면인데 너무 흥분한 상태로 맞이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


개인 교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로웨나는 교습실 바닥에서 플란체 자세를 하는 알렌을 발견했다. 두 손바닥을 바닥에 붙이고 몸을 일자로 반듯이 공중에 띄워 팔로만 전체 몸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개인 교습실의 문을 열었던 로웨나는 금세 역시나 하고 실망하는 표정이 되어 알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알렌? 나는 오늘부터 너와 함께 교양 마법 이론을 공부할 로웨나라고 한단다. 아벨리아 마법 학교를 졸업했고 일 년째 너희 가문의 교양 마법 교사 일을 하고 있단다. 수업은 어떤 자세로 들어도 좋아. 지금 하는 동작이 편하면 그렇게 듣도록 해. 대신, 정규 시간만은 꼭 채우도록 하자."


알렌은 스트레칭에 집중하다 보니 수업 시간이 다 된 줄도 몰랐다. 알렌은 자신을 바라보는 로웨나의 표정을 어디서 많이 보았음을 느꼈다. 알렌 자신이 다른 가족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수련을 더 많이 하면 된다는 응답을 들었을 때의 표정이다. 이번 생에 처음 만나는 지성체와의 첫인상을 이렇게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알렌은 급히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아..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요."


"괜찮아. 괜찮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서로 힘들게 할 필요 없어."


로웨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책을 펴고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자.. 마법의 이해 교과서 15페이지. 마법의 원리란 무엇일까? 무지한 많은 사람이 마법은 그냥 신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법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구현해 내는 지극히 수학적이고 물리적인 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 마치 물을 불 위에 올려놓으면 끓게 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로웨나는 마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개론을 죽 훑어 나갔다. 제국에서 제일가는 기사 가문의 막내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경청하고 있었다.

"... 마나는 파동이기도 하면서 입자이기도 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세상의 구성 요소이다. 자연상태의 마나는 상태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 있다. 시전자가 만들어내는 마나 파동을 인지한 자연계의 마나는 이 파동에 반응하여 입자 형태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이렇게 입자 상태로 바뀐 것을 우리는 마법이라 부른다."


알렌의 수업 태도가 다른 켄트 가문의 사람들과 확연하게 다른 것을 보며 놀란 로웨나가 말했다.


"알렌? 힘들게 그렇게 연기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정말이야."


오래간만에 지식이라 부를만한 것을 잔뜩 음미하던 알렌은 로웨나가 수업을 끊자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스읍.. 하... 너무 좋다. 하아... 네? 무슨 말씀 이세요? 그보다. 그 파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빨리 파동의 구성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어서요..!"


로웨나는 지난번 상단 호송 의뢰에서 마법을 쓰는 트롤을 만났을 때만큼이나 놀랐다. 본인이 이런 수업을 너무 간절히 원했던 나머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학생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은 선생의 의무. 로웨나는 수업을 이어 나갔다.


"파동은 기본적으로 멈춤과 흐름 이라는 상태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를 정과 유의 상태라고 칭한다. 정을 0이라고 두고 유를 1 이라고 둔다면 한 단위의 파동은 0과 1 두가지 상태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동이 한자리 수가 늘어날 때마다, 표현될수 있는 패턴은 2배로 늘어나겠네요? 한단위 파동은 2가지 두단위 파동은 4가지 ... 10단위 파동은 1024 가지 만큼요."

알렌이 가만히 수업을 듣다 보니 마나의 흐름이라는 원리는 컴퓨터가 전기 신호를 이해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지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알렌은 막힘없이 진도를 앞서 나갔다.


로웨나는 순간적으로 마법사 지망생의 과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지, 그래서 이론적으로 무한한 것이고 긴 주문일수록 복잡한 자연계의 현상을 만들 수 있게 되는..... 엄마야! 알렌..? 방금 네가 답한 거니?"


알렌은 컴퓨터와 마법의 유사성을 발견한 것에 흥분하여, 로웨나의 말은 이미 들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저런 0과 1의 패턴을 모두 기억해서 보내기에는 너무 어렵고 직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저 패턴을 대신 출력해 줄 수 있는 특별한 언어를 사용하겠죠? 아...! 마법사들이 쓴다는 룬어라는 게 프로그래밍 언어.. 아 이게 아니지. 룬어가 이 패턴을 대신하는 출력의 매개물이 되겠군요! 맞죠?"


로웨나는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던 켄트가문의 막내아들이 추론만을 가지고 룬의 존재 이유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개발자가 마법을 잘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 입니다. 23.07.24 34 0 -
공지 금주 휴재공지 +1 23.06.28 28 0 -
공지 연재 주기 변경 공지 입니다. 23.06.18 27 0 -
공지 매화 제목이 추가되었습니다. 23.05.28 32 0 -
공지 연재 주기 공지입니다. +1 23.05.13 193 0 -
43 43화. 부팅을 시켜라(8) 23.07.21 60 1 9쪽
42 42화. 부팅을 시켜라(7) 23.07.19 56 2 9쪽
41 41화. 부팅을 시켜라(6) 23.07.17 66 2 9쪽
40 40화. 부팅을 시켜라(5) 23.07.14 86 2 9쪽
39 39화. 부팅을 시켜라(4) 23.07.12 91 2 9쪽
38 38화. 부팅을 시켜라(3) 23.07.10 91 2 10쪽
37 37화. 부팅을 시켜라(2) 23.07.07 100 2 9쪽
36 36화. 부팅을 시켜라(1) 23.07.05 108 2 9쪽
35 35화. 고대문명(3) 23.06.26 120 2 9쪽
34 34화 고대문명(2) 23.06.23 121 2 10쪽
33 33화. 고대 문명(1) 23.06.21 122 2 10쪽
32 32화. 교장실(2) 23.06.16 116 3 10쪽
31 31화. 교장실(1) 23.06.15 120 2 9쪽
30 30화. 인어 교수(2) 23.06.14 125 2 10쪽
29 29화. 인어 교수(1) 23.06.13 136 2 10쪽
28 28화. 전투마법 23.06.12 146 3 12쪽
27 27화. 아침운동 23.06.09 147 2 12쪽
26 26화 마법 훈련장 23.06.08 161 4 13쪽
25 25화. 무릎부터 시작 23.06.07 169 3 13쪽
24 24화. 첫 수업 +2 23.06.06 180 3 13쪽
23 23화. 아벨리아 가는길 23.06.05 194 3 9쪽
22 22화. 새로운 시작 23.06.02 209 2 9쪽
21 21화. 입학시험(5) +4 23.06.01 222 5 9쪽
20 20화. 입합시험(4) 23.05.31 214 4 9쪽
19 19화. 입학시험(3) 23.05.30 217 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