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총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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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강성혁
작품등록일 :
2023.05.15 19:35
최근연재일 :
2023.12.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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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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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 1 - 검은 심장

DUMMY

검은 심장 – 3




파지직.


파지지직.


나는 몇번이고 손을 쥐었다 펴보았다. 틀림 없이 내 의지에 반응하는 번개. 어떤 기운, 초능력, 또는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무언가. 신비롭고도 기이했고 알 수 없는 힘이다.


어젯밤을 곱씹어보니, 분명히 개가 내 어깨를 물고 나서 깜짝 놀라 나자빠지며 부들거렸던 기억이 난다.


뒤이어 알루미늄 등산스틱을 아가리에 쑤셔 박았고, 심장부터 흐른 번개가 팔을 지나 알루미늄을 타고 괴물을 태워 죽였다.


‘어깨?’


‘개가 어깨를 물었다’ 라는 사실을 상기하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통증이 생각나는 듯했다. 나는 황급히 입은 옷을 들춰 물렸던 어깻죽지를 보았다.


‘응?’


멀쩡하다. 잇자국은 남았지만 이미 다 아물었다.


‘이, 이게 가능한건가?’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이건 상식 밖의 일이다. 반대로 말하면 상식 밖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정도로 세상이 요지경이 되어간다는 소리다.


파지직.


지금도 내 자신의 의지로 명령을 내리면, 날 부를 줄 알았다는 듯 손에 번개가 튀었다. 아프지는 않다. 아프다기보다는 힘의 근원 그 자체를 탐닉하는 느낌이 든다.


말로 풀어서 설명하기 힘든데, 결론 지으면 나는 번개를 부릴 수 있게 됐고, 이것이 괴물을 상대하는데 꽤나 효과적인 초능력이라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초능력자가 된 셈이다.


‘어제 그 돌 때문에?’


괴물에게서 나온 푸른색 돌. 손이 미끄러져 그 돌이 부숴지며 안에 담긴 파란 기운을 흡수했었다. 나도 잘 믿기지 않지만 정황상 가장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근데 그 돌의 기운을 흡수하기 전에도 됐던 것 같은데.’


뭔가 앞뒤가 안 맞지만 지금으로선 모든 것이 미지의 영역이다.


이럴때일수록 침착하고, 정제된 언어로서 나의 생각을 글로 풀어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펜과 공책을 집어들고 책상에 앉았다.



1. 나는 어제 미친 개를 죽였다. 개라기보단 괴물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2. 나는 괴물을 상대하는 동안 원인 모를 초능력을 얻었고, 이 초능력은 번개를 부리는 능력이다.

3. 괴물은 심장 부근에 푸른 빛을 내는 돌이 박혀 있었는데, 나는 이 돌의 능력을 흡수했다.

4. 정황상 빛을 내는 돌에서 흡수한 기운이 내 상처를 치료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이 정도.


내가 본질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원론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만약 괴물의 출현이 한국 전역을 넘어 전세계에 일어날,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침착하게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했다.


일단 휴대폰을 켜서 통신이 잘 가는지 확인해본다. 전화를 걸었다.


[아들?]


“아, 엄마.”


[오늘 온다면서.]


“응, 이제 출발하려고.”


[...그래. 조심히 와.]


통신은 끊기지 않았다. 가족과 연락할 수단은 확보했다. 나는 다음으로 예금 잔액을 확인했다.


생존이 우선시될 시대라고 해도 사회적인 합의가 깃든 돈이라는 물건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금 잔액 : 22,354,600원]


물욕 없고, 술 잘 안 먹고, 취미는 운동.


연애는 딱 한 번 해봤다. 차는 취직하면 받기로 해서 안 샀다. 통신비나 보험료는 얼마 안 된다.


3년 가까이 공무원 시험 준비했고, 그동안 부모님이 용돈 준 것 차곡차곡 모아뒀다. 공장 다니면서 모은 것들도 있었다. 놀면서 날려 먹었다고는 했지만 모은 것도 있었다.


능력 좋은 형들은 그래도 우리 집 막내라고 부모님보다도 많이 줬다. 애초에 내가 돈 잘 안 쓰는 것 알아서 많이 준 것도 있지만.


‘카드만 된다면 충분하겠어.’


우리나라가 생존의 시대를 탈피하고 정상적인 사회를 다시금 일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랐지만, 2천만 원 정도면 나 혼자 쓰기에는 충분하다.


한번 준비에 돌입하니 본격적으로 불이 붙는다.


혹시 몰라 챙겨둔 물건들까지 가방에서 빼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마지막으로 샤워를 했다. 활동성이 좋으면서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버리려던 캐리어도 쓸 곳이 생각나 따로 챙겼다.


지도를 켜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예약하고, 혹시 몰라 지도를 캡처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스님께 퇴실을 말씀드린 뒤 본격적으로 절간을 나섰다.


사찰은 강릉에 있었다. 근데 강릉도 강릉 나름인 것이, 도시화가 진행된 곳이 있는가 하면 산간 지방인 곳도 많다.


사찰은 당연하게도 산간에 위치해 있었고, 택시는 다니지를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강릉 도심의 변두리인 편의점 쪽을 향해 무작정 걸어야만 했다.


우선 강릉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KTX를 탄 뒤,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내 집인 서대문구로 향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오후 1시다. 일부러 여유로운 4시 기차를 잡았으니 그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급해지니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빨라졌고, 아예 템포를 높이려고 이어폰을 끼고 빠른 노래를 들으면서 걸었다. 아, 무선 이어폰도 몰래 가지고 왔다.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어제는 한시간 정도 걸렸던 길인데 오늘은 40분만에 도착했고, 담배 한 갑 산 어제와 다르게 보존성이 좋은 음식들을 집기 시작했다.


삼각김밥이나 김밥 같은 즉석 식품은 보존성이 떨어진다. 우선 컵라면을 몇 개 챙기고, 통조림 햄이나 과일 같은 것도 캐리어에 담았으며 물은 작은 페트병만 쓸어 담았다.


다음으로는 나무젓가락 같은 일회용기와 상비약, 반창고를 구입하고 보조배터리와 충전기도 사두었다. 담배는 무려 다섯 보루 담았다.


편의점 알바는 무슨 이상한 사람 보듯이 날 봤다. 하는 행동거지는 이상한 사람 같긴하네. 난 최선을 다하는거라고.


“38만원이요.”


구매한 모든 물건을 캐리어 안에 차곡차곡 정리한 뒤 길을 나섰다. 택시를 잡고 강릉역으로 향한 뒤, 시간이 좀 남아서 빠르게 햄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보조배터리도 충전하고 마음을 다스릴 겸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켜놓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친구들과 톡을 했다.


[나 오늘 서울간다]


[ㅋㅋㅋㅋ 그럴줄 알았다]


[전국 수험생 공부 시간 1위 백요한 진짜 레전드네]


[서울 오면 전화해 밥이나 먹게]


[서울 오자마자 기어나가면 요한이 부모님이 좋아라하실듯]


[헬스 꾸준히 했으니까 대회라도 나가보자]


[어쩔수없다 요한아 이제 사기 배워서 돈벌자]


아 이 씹새끼들이.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웃기기도 했다. 민망함에 괜히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 혼자 호들갑 떠는건가.’


누구 보는 사람이 있나 잘 살피고 손아귀에 작은 의지를 불어넣었다.


파직.


역시나 번개가 튄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원. 어쨌든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 판단한 것이고 이제 무를 수 없다.


나는 앞으로 괴물들이 더 출현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 이후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으니 일단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괴물이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어디 잡혀가서 생체실험을 당하거나 해부를 당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순간 소름이 돋았다. 괴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번개는 평생 숨기고 살아야겠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인터넷도 보고, 웹툰도 보고, 노래도 듣고 하는데 오늘따라 시간이 잘 안 간다.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되자 나는 기차에 올랐다.


휴가철도 아닌데다 여기가 종점에 가까운 곳이라 탑승객이 많지 않았고, 나는 옷을 담은 가방과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담은 캐리어를 끌고 기차에 올랐다.


객실 복도를 쭉 걸으며 눈으로 한번 살피니 날 제외한 세 사람이 더 있었다. 휴가를 나왔는지 군복을 입은 육군 중사 하나, 커플 한 쌍. 사람이 적으니 조용히 집에 갈 수 있을 듯했다.


캐리어는 보관하는 곳에 잘 세워두고, 가방을 좌석 위로 던진 뒤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는 11호차의 맨 뒷자리다.


이 기차는 14호차까지 있었고, 1은 기관실, 2~4는 특실, 7호차와 8호차는 유아 동반석이다.


‘두 시간이면 집에 도착하겠구나.’


기차가 언제 출발하려나 기다리고 있는데 10호차와 11호차 사이, 그러니까 앞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


강중현.


보수당 4선 국회의원이다. 지도자라기보단 학자에 가까운 정치인이다. 당 중진을 넘어 친강으로 분류되는 본인 계파까지 있을 정도로 경력 있는 인물이다. 저 사람이 여기 왜?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강중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가장 앞에서 승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젊은 여자 둘에 젊은 남자 하나,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두 명에 강중현 본인까지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다.


맨 앞자리부터 끝까지 모든 승객들과 악수를 나누었는데, 내 차례까지 왔다.


정치 잘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정계의 거물이라, 연예인 본 것보다 더 신기했다. 나도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하십니까, 강중현입니다.”


“아, 예. 예. 영광입니다.”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나까지 인사를 마치자 강중현의 수행원들이 객실 중간 정도 되는 자리에 앉았다. 강중현은 자기 자리에 앉지 않고 휴가 나온 군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옆에는 여성 보좌관이 앉아 군인에게 촬영 동의를 얻고 홍보용으로 사용할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녹화하고, 30대 남자 보좌관은 군인이 말하는 것들을 메모한다.


뒤이어 기차가 서울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군인이 비교적 앞자리에 앉아 있었고, 커플이 그 다음, 나는 맨 끝이었다.


군인 다음 커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고 마지막으로 나한테 올 것 같아서 재빠르게 자는 척을 했다.


강중현이 좋다 싫다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우리 아버지뻘 되는 노회한 정치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한 15분쯤 지나자 군인과 대화를 끝내고 어린 커플에게 향했고, 처음보다 더 잦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생기있는 대학생 커플을 보니 흐뭇했던 모양이다. 강중현 뿐만 아니라 그의 비서관들과 보좌관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휴대폰으로 녹화하는 젊은 여자와 수석으로 보이는 비서관도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니 분위기가 좋아보였다.


‘...피곤하네.’


자는척만 하려고 했는데, 졸음이 서서히 쏟아졌다.


괴물을 마주한 강원도를 벗어나 드디어 서울로 향한다는 작금의 상황, 그리고 상황이 내게 가져다주는 심리적 안정감. 또한 1시간 가량 무거운 짐을 이끌고 걸은 탓에 몸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눈꺼풀이 무겁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덕에 몸이 나른해졌다. 나는 곧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커플과 대화를 마친 강중현도 잠에 든 청년을 굳이 깨우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곧 단잠에 빠졌고, 내 단잠을 깨운 것은 강중현이 아니라 객실 안내 방송이었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관실에서 안내드립니다. 만종 – 양평역 간 선로에 장애물이 있어 열차 출발이 잠시 지연될 예정이오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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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Ep 9 - 오월동주(吳越同舟) 23.07.29 66 2 11쪽
81 Ep 9 - 오월동주(吳越同舟) 23.07.28 50 2 12쪽
80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27 57 3 12쪽
79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26 57 3 9쪽
78 Ep 8 - 마정석반출작전 +1 23.07.25 68 4 11쪽
77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24 91 3 12쪽
76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24 69 3 11쪽
75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22 70 3 12쪽
74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21 69 3 12쪽
73 Ep 8 - 마정석반출작전 +1 23.07.20 73 4 11쪽
72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19 81 4 11쪽
71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18 86 4 12쪽
70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17 9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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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15 10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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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13 103 5 12쪽
65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12 110 5 11쪽
64 Ep 8 - 마정석반출작전 +1 23.07.11 111 5 12쪽
63 Ep 8 - 마정석반출작전 23.07.10 126 6 11쪽
62 Ep 8 - 마정석반출작전 +1 23.07.09 13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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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p 7 - 민중의 기사 +1 23.07.05 12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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