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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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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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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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위하여

DUMMY

탁!


라호의 힘에 밀려난 의자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갑작스런 행동에 윤견과 민혁이 놀라 쳐다봤지만 라호는 이들보다 더 놀라고 있었다. 라호는 다급히 파이브를 살폈지만 다행히 파이브는 인상을 한번 구길 뿐이었다.


“죄..죄송합니다.”


조용히 사과와 함께 의자를 일으켜 다시 앉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무라지는 않았다. 라호의 심정도 백 번 이해 가니.


“...누님이 떠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가 싶었지?”


윤견이 웃으며 말했지만 눈은 전혀 아니었다. 라호는 다급히 고개와 손을 저으며 반박했다. 하지만 완전한 진심은 아닌 듯 했다.


윤견이 작게 한숨을 쉬고 민혁을 보자 민혁 역시 납득은 하지만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애써 밝게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팀원은 어떻게 구하시게요? 상부에 부탁해서?”

“아니, 내가 전에 말한 적 있듯이 차에는 타의가 아닌 자의로 올라타야 해.”

“그러면...?”

“내일 내가 일일이 찾아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하지만 그 전에...”



휘이이잉-.


비가 그친 다음날 해는 아직 구름에 가려 낮임에도 어두운 날씨에 파이브가 문하의 묘를 바라보고 있다. 파이브가 조심히 묘비 앞에 작은 꽃 한 송이를 놓자 윤견을 옆으로 다가갔다.


“닥터.”

“왜?”

“...나 슬프거든? 진짜로 슬픈데...그런데...눈물이 안 나와. 분명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그런 사람이 죽어서 다시는 못 본다는 거에 슬픈데 눈물이 안 나와...”


윤견의 눈에도 파이브의 안구를 건조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슬픔이 젖혀 있었다. 윤견은 파이브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는 살포시 두드렸다.


"그정도도 충분해, 파이브."


그 후 라호와 민혁에게 파이브를 맡기고는 홀로 시청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만나는 헌터마다 권유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죄..죄송합니다."

"아...그...안 될 거 같은데요."


"후우..."


난간에 걸터앉아 진한 한숨을 뱉었다.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전부 단칼에 거절할 줄은 윤견도 쉽사리 예상하지 못했다. 적어도 생각은 해본다는 희망 섞인 멘트 정도는 나올 줄 알았건만.


"이러면 부상병들한테도 물어봐야 하나..."


마침 저 멀리 부상당한 헌터 둘이 목발을 짚으며 지나갔다. 하지만 차마 그들을 붙잡고 물어볼 염치가 들지 않았다.


"...하아..."


결국 또 다시 한숨이 나왔다.


"하하, 땅 꺼지겠습니다."


거대한 그림자가 윤견을 덮으며 기도가 다가왔다.


싸움이 끝나고서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온장간에서는 그저 의족만 보였지만 지금처럼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붕대를 풀었음에도 얼굴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흉터들이 남았고 새끼손가락은 겁먹은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괘...괜찮으신 거죠?"

"그럼요! 윽.."


기도가 위풍당당하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지만 그에 맞지 않게 입가에 붉은 피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더 누워계시지..."

"하하, 저 정도면 괜찮은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워낙 튼튼해서..."


-그런 사람이 피를 뱉을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닌가...?


저런 상태이니 당연히 제안하려던 마음은 감촉같이 살라졌다. 기도는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평소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살폈다.


"...사람이 많이 줄었네요. 예전에는 지금 쯤 많이들 나와 있었을 텐데."


윤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주먹만 접었다 피며 기도처럼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비교해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지금 자신이 뭘하고 있는 지도.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기도 헌터님."


기도가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보내자 윤견의 입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잊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힘없이 저었다.


-역시 안 되겠다.


분명 기도 성격이라면 아무리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도 윤견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윤견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많은 것을 희생했으니.


그리고 그녀도.


역시나 그녀는 옥상에 있었다. 그간 보이지 않아 설마하는 심정이긴 했지만.


"무슨 일이시죠?"


하성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흘러왔다. 하지만 이미 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게...말이죠.."


역시나 이번에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성은 반박에 윤견의 목적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윤견의 입장까지도.


힘없이 올라간 입꼬리에 하성이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해는 보이지 않은 탁한 천공이다.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구하고 계시죠?"

"...네."


마치 죄지은 사람 마냥 기어가는 목소리.


"제가 첫 번째 인가요?"

"...아뇨 마지막입니다."

"솔직하시네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왔다는 건..."


윤견이 쓸쓸히 웃었다.


"다들 힘들 거예요."

"그 '다들'에 하성 헌터님도 포함이겠죠?"


체념한 듯한 윤견의 모습에 하성이 가식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떠한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미소.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미소에 윤견은 내심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금세 미소는 사그라들며 평소 차가운 하성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네. 빈자리를 채워야 할 곳에 선약이 있어서요. ...저의 전장은 여기입니다.”


덤덤하게 내뱉는 저 말에 체념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예전 서울역에서 처음으로 지원을 받았을 당시 윤견은 협력에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이 아이만 부산까지 옮기면 모든 것이 해결 될 텐데.


물론 이 말도 안 되는 도박에 목숨을 걸라고 앞장서서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실마리 같은 미래에 겨우 가꾼 현실을 갖다 바칠 수는 없으니. 윤견 역시 황금 같은 결과에 과정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고 그 중에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고, 동료가 되고, 싸우고, 잃으며 그 모든 것이 결코 그저 넘길 수 없는 과정들이었다.


그렇기에 파이브의 집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고. 모든 이들의 입장과 대답을 존중했다.


하성과 이별한 윤견은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가 이 모든 것들을 말했다.


“모두한테 거절당했어.”


아주 간단하게 축약해서.


“전부요?”

“닥터 인상 꾸기면서 말했지?”

“어..어쩔 수 없죠, 그럼.”

“뭐, 라호처럼 가다가 새로운 만남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깐. 모두 걱정하지도 섭섭하지도 말고, 슬슬 준비하자.”

“언제 출발하실 생각이에요?”


윤견은 잠시 손가락을 딱딱 움직이며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내일.”


윤견의 말에 일행들은 미리미리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민혁은 다시 한 번 차의 상태와 필요한 것들을 점검했다. 라호도 씨앗 종류를 살피고는 혹여나 더 필요한 것들을 확인했다.


윤견은 상부에 올라가 내일 떠나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파이브는 삐삐를 품 안에 넣은 채로 다시 한 번 문하의 묘비로 향했다.


역시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원망하듯 파이브의 눈썹이 구겨졌다.


'파이브 이리 와봐. 머리 이쁘게 묶어 줄게. 응? 알려줘? 그래, 자 거울 봐봐..'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추억.


확실히 기억 속에 그녀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음 윤견을 봤을 때처럼 처음 민혁과 라호를 봤을 때처럼 지금의 파이브는 아직 그녀가 낯설었다.


그렇기에 더욱 감정이 복잡하며 혼란스러웠다.


"삐이..."


미세한 감정이 손을 타고 전해졌는지 삐삐가 유독 올망한 눈동자로 파이브를 쳐다봤다. 결국 파이브는 다시 찝찝한 마음만 가진 채로 돌아섰다.


그리고 이날 저녁 충주시에서 일행들을 위한 소박한 송별회가 열었다.


크기와 높이가 다른 테이블들이 줄을 이었고 그 위에는 보잘 것 없는 식재로 거의 혼을 깎아 만든 듯한 음식들이 올라가 있었다.


나름 사람이 모이다보니 조금씩 이야기 꽃이 피었지만 일행들의 이별이 슬퍼서인지 무거운 분위기였다.

...물론 아니겠지만. 아직 이들도 마음 속에 누군가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 이군이 먼저 잔을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래를 위해 따나갈 이들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떠나간 이들을 위하여."

"..."


갑작스런 이군의 선창에 누구도 선뜻 따라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그 때 윤견이 잔을 들며 복창하자 다른 이들도 잔을 들어올리며 복창했다.


이 자리는 일행들만의 송별회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군이 마침 윤견의 일행들이 떠나니 이참에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쓸쓸한 미소를 짓는 이도 있었고 미쳐 흘리지 못한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파이브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우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이군 덕분에 조금이나마 풀린 분위기 속 윤견을 향해 하성과 기도가 다가왔다.


이들은 말없이 잔을 부딪치고는 동시에 입에 갖다 댔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이쪽도 떠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윤견의 질문에 기도와 하성이 힘없이 끄덕였다.


"이제 사람이 적다 보니 이런 큰 건물은 오히려 방어하기 힘드니깐요."

"그럼 어디로 가시나요?"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일단 여기서 그렇게 멀리는 가지 않을 겁니다."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와야하니."


하성이 쓰게 웃으며 잔을 다시 들이켰다.


-...분명 술은 아닐 텐데.


이상하게 하성도 그렇고 잔에 든 내용물도 그렇고 술 냄새가 났다.


한편 잔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한 눈동자가 있었다. 눈동자는 부모와 아이를 한 번 담았고, 남매로 보이는 이들을 담았다. 그리고 홀로 눈물을 흘리는 어린 아이에게로 향했다.


“어...어디 아프세요?”


홀로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파이브를 향해 라호가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편하게 말해. 그래야 나도 저 인간들에게 편하게 말할 변명이 되지.”

“아하하, 그..그럴게.”


둘의 대화는 금세 메마르며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기류를 느낀 라호가 부정하고자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런 라호의 애쓰는 모습에 파이브도 피식 웃고는 같이 수다를 떨었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격 없이 대화하는 것에 신나 주절주절 떠드는 라호를 보며 다른 이가 겹쳐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도 이렇게 내 옆에서 종일 떠들었지.


‘와~. 누나도 특기생으로 온 거야? 나 돈데. 내 특기는 T라고만 적혀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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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악몽 24.06.03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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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탈영병 24.05.30 14 0 11쪽
220 비 오는 밤 24.05.28 12 0 11쪽
219 궁상 24.05.26 11 0 9쪽
218 처형자 - 2 24.05.25 15 0 11쪽
217 처형자 24.05.23 13 0 11쪽
216 파이브의 각오 24.05.21 15 0 11쪽
215 어른 없는 밤 24.05.19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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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녹색 도시 - 6 24.05.16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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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녹색 도시 - 5 24.05.12 16 0 11쪽
210 녹색 도시 - 4 24.05.10 19 0 11쪽
209 녹색 도시 - 3 24.05.08 14 0 10쪽
208 녹색 도시 - 2 24.05.06 21 1 11쪽
207 녹색 도시 24.05.05 18 1 11쪽
206 좋은 사람 24.05.03 22 1 10쪽
205 문제아 - 2 24.05.01 21 1 11쪽
204 불량아 - 7 24.04.29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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