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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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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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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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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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DUMMY

그렇게 조금이나 위로의 밤을 보내며 다시 겨울 새벽처럼 시린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막 해가 고개를 내민 시간.


이미 모두 기상한 일행들은 미리 싼 짐을 챙기고서 그간 묵었던 숙소를 벗어났다.


시청 밖을 나가자 이군을 포함한 기도나 하성 그리고 강식과 지성 등 여러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최대한 힘을 보태겠습니다.”


“덕분에 많은 지원을 받고 갑니다.”


각자 작별인사를 하던 중 파이브가 크게 콧방귀를 뀌고는 죄인 마냥 홀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강식의 앞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지성은 혹여나 다시 공격하지 않을 까 긴장했다. 강식 또한 잔뜩 긴장한 채로 파이브를 바라봤다. 윤견도 뒤늦게 파이브를 발견하고 잡으려던 순간.


딱.


파이브의 발끝이 기창의 정강이에 닿았다. 때렸다라기에는 너무 느렸고 약한 움직임이었다.


‘그 인간들이 증오스럽겠지만 그래도 저 인간은 확실히 반성은 하고 있어. 그냥 알고만 있으라고.’


비를 맞으며 오던 중 빗소리와 함께 윤견이 흘리듯 말했던 목소리. 파이브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일행들에게 향했다.


그들의 인사를 뒤로 한 채 차로 가려하자 이번에는 윤견이 붙잡았다.


"우리도 작별인사는 하고 가야지."


윤견의 말에 일행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그렇게 문하의 앞에 도착했다.


문하가 함께 차를 타는 일도, 위험을 마주하는 일도, 밥을 먹는 일도, 밤을 보내는 일도 이제 마지막이다.


말을 남기는 것도.


"누님, 나중에 예전처럼 중위님이랑 같이 수원에서 만나요."


문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붉은 눈을 감추듯 민혁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저를 오두막 밖으로 꺼내줘서 고마워요. 꼭...다시 만나요."


문하 손길 덕분에 오두막을 나와 세계를 마주한 라호가 눈물을 참느라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한테 맡겨, 수고했어. 편히 쉬어."


문하에게 수도 없이 등을 맡겼던 문하와 같은 헌터인 윤견이 작은 소망을 담아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그리고...고마워."


마지막으로 파이브가 묘비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만약 문하가 이들의 말을 들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제는 그저 각자 상상만으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상상 속의 문하는 하나 같이 밝게 웃어 보였다.


“...가자.”


윤견의 말에 일행들은 문하에게서 멀어지며 차에 올라탔다.


앞자리는 늘 고정이었지만 뒷자리에는 이미 빈자리의 존재감이 벌써부터 나타났다.


“출발합니다~.”


민혁의 말과 함께 자동차가 덜컹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 참. 자, 이거. 화해 기념 선물.”


윤견이 가방 속에서 팔찌가 든 케이스를 꺼내 파이브에게 휙 던졌다. 케이스를 받은 파이브가 열자 바로 팔찌의 정체를 파악했는지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전한 손가락을 쳐다봤다.


“하..그래, 반지보다는 덜 걸리적 걸리겠네.”


팔찌를 창밖으로 던지지 않을까 눈치를 보던 윤견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파이브의 인상이 구겨지자 바로 몸을 돌렸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순간 눈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지금은 괜찮은지 금세 표정은 돌아왔다. 윤견도 자세를 똑바로 하고 지도책을 펼쳤다.


“다음 목적지는 구미시인가..”


원래였으면 다음 목적지는 경북 안동시에 있는 생존자의 무리였다.

구미시도 같은 경상북도라 처음에는 안동시를 들렀다 구미시로 내려갈까 했지만 보따리에게 들은 정보 중 대구에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존자의 무리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미 충주시에게 받은 물품도 많아 아직 지원 받을 필요는 없으니 바로 구미시로 가고 대구로 가 지원을 받자고 부산에 내려가는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만 진행이 된다면 시간도 충분히 절약이 될 것이다.

물론 중간에 무슨 문제가 생겨 지원이 필요하다면 안동시로 가야하지만.


일행들을 태운 자동차는 덜그럭덜그럭 움직이며 충주시 아래로 내려갔다. 온장간이 있던 호암지 생태공원을 지나 ‘유주막로’ 도로로 향했다. 유주막로를 따라 가면 다리가 없어도 충주시를 벗어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저 멀리 거대한 방송국이 보였다.


“어?! 파이브 저기 방송...국.”

“...뭐?”

“아냐..”


예전의 파이브였으면 분명 눈을 반짝이며 방송국을 쳐다봤겠지만 지금의 파이브는 차가운 눈으로 민혁을 쳐다봤다.


일행들은 금방 유주막로에 올라서며 자연스레 충주시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젠장...또 산길이냐고.”


방금까지 둘러쌓던 건물들이 나무들로 바뀌자 윤견이 작게 탄식했다. 산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닭과도 같은 깃을 가진 생물이 나뭇가지 위에 모습을 드러내며 차를 쳐다봤다. 다행히 쳐다보는 것에서 끝났다.


놈들을 시작으로 조용한 산속에 소리 내는 차를 구경하러 오는 듯이 여러 종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저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윽...저건 또 뭐야..”


그 중 거대한 몸을 가진 무언가가 자신보다 작은 나무 기둥 뒤에 숨어 자동차를 보고 있었다.


마치 부끄럼 많은 소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과 맞지 않은 몸 때문에 끔찍한 괴리감이 느꼈다.


그 놈도 차가 멀어지는 순간까지 지켜만 봤다. 그리고 어느 작은 빈 시골마을은 넘어서는 순간 다시 나타났다. 아까와 같은 자세에 같은 눈빛으로.


민혁이 짜증 섞인 비명을 질렀다. 윤견 또한 흑도를 쥐었지만 놈은 여전히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 지나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어느덧 시간이 지나 산이라 그런지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쫌 더 가서, 멈추자. 꽤 큰 마을이 있어.”


윤견의 말대로 곧이어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마을은 다른 마을과 달리 초등학교 하나가 있었다.


“오! 여기서 보내죠.”


윤견도 나쁘지 않고 뒤에 탄 애들도 좋다고 하니 바퀴가 운동장을 밟고 들어섰다.


“아...”


가까이 가니 폐교가 된 학교의 모습을 본 라호가 작게 탄식을 뱉었다.


“크크크, 왜? 귀신 나올 거 같아?”

“아..아니. 무슨..귀신이 있다..고.”


파이브가 히죽 웃으며 말하자 라호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다들 기다리고 있어. 살펴보고 올게.”


윤견이 먼저 흑도를 챙기고 내려 학교로 향했다. 시골에 있는 학교라 그런지 3층이 끝이었다.


저벅..저벅..


썰렁한 복도에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 줄기 빛도 없는 복도에 홀로 서 있는 윤견이 침을 꼴깍 삼켰다.


“...괜한 소리들을 해가지고...”


이상하게끔 윤견의 발끝이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밖을 슬쩍 보고는 한숨과 함께 발을 움직였다. 학교를 둘러보는 도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러나 2층에 가니 이불을 발견했다.


학교에 어울리지 않은 물건에 다가가 보니 이불 위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생존자가 있었나? 그래도 꼴을 보니 이미 떠난 지 꽤 됐네.


2층에는 이불 외에도 국자나 베개 같은 생필품들이 조금씩 보였다. 그것들도 모두 사용한 지는 꽤 지난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 3층으로 향해 교실을 뒤지니 그것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백골이 된 이들은 마지막을 한 곳에서 맞이했는지 나란히 있었다.


“후우...”


주변에 널브러진 천을 하나 주워 백골을 덮었다.


-이층은 못 쓰겠군.


다시 운동장으로 나온 윤견은 일행들에게 대출 둘러대며 1층에만 머물도록 말했다. 민혁과 라호 간단하게 짐을 옮기고 윤견과 파이브가 요리를 시작했다.


“...문하 누님이 그리워지는 메뉴네요.”

“반찬 투정 하지 마. 그간 우리가 너무 풍족하게 먹었어.”

“저..저는 죽 좋아해요.”

“원래는 볶음밥으로 만들 거였지만.”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불침번을 정하고 다들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문하가 빠지는 식사나 불침번이나 불편했다.


다행히 라호는 잠이 별로 없어 상관은 없었지만 윤견은 아니었다.


“아휴...나도 삐삐처럼 귀가 좋았으면 잤을 텐데.”


윤견이 홀로 궁시렁거리며 시간을 보내고는 라호와 교대했다.


“수고해라.”

“넵. 저만 믿으세요.”


휘이이..


“아...”


으스스한 복도에 라호가 작게 감탄사를 뱉었다. 분명 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음에도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며 놀랐다.


“그...그래. 형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어...그런데 2층에는..”


라호의 불안에 떠는 시선이 계단으로 향하자 계단이 아닌 어둠 속 빛나는 두 안광과 마주쳤다.


어둠 속에 있어 잘은 못 봤지만 저 두 눈은 분명 전에도 본 눈이었다. 라호의 머릿속에서 바로 오늘 나무 뒤에서 훔쳐봤던 두 눈을 떠올렸다.


“어!...”


분명 비명이 나올 정도로 놀랐지만 비명조자 나오지 못했다. 손과 발은 마치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어..혀..형..”


두 안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단 난간에 숨어 있던 놈이 완전히 몸을 드러냈다. 수풀처럼 초록 털이 온 몸을 뒤덮여 있는 것이 털 색만 빼면 설인으로만 보였다.


저벅.


놈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앞으로 나아갔다. 오고 있다. 벌써 놈이 두 발짝이나 걸어왔다.


“혀..형!”


곤히 감겨 있던 윤견의 눈이 번쩍 떠지더니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흑도를 챙겨 밖으로 나가자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라호가 보였다.


“뭔데!”


바로 라호가 보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니 그저 빈 복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데? 뭐 있어?”


아무리 살펴도 보이는 건 없었다. 다시 라호는 보니 라호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라호! 진정해!”


윤견이 라호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흔들었다. 라호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 숲에서 본 놈이 있었어요! 그 나무 뒤에 숨었던..그 놈!”

“뭐? 어디에..”


윤견도 놈을 찾기 위해 시선을 다시 계단으로 움직이던 그 사이에 복도 창문에서 자신을 보는 두 눈을 발견했다.


“어...”


온 몸을 누군가가 핥는 듯한 소름과 함께 흑도를 뽑았다. 하지만 털로 뒤덮인 팔이 유리를 깨고 들어서 윤견을 쳐냈다. 윤견은 그대로 긴 복도로 날아갔다.


{시드 플래닛}


놈의 공격에 라호도 바로 나무를 들이밀며 반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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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그의 이야기 25.04.25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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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검은 존재 - 2 25.04.03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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