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아 - 2

방금까지 무해해 보이던 소년이 망치를 꺼내 유리를 가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차는 외관처럼 유리도 보통 유리가 아니었다.
고작 흠집만 날 뿐 깨지지도 금이 가지도 않았다.
"야! 씨발, 들켰어!"
소년의 말에 숨어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검이나 창 그리고 소총을 들며 무장한 상태였다.
"어?"
주변을 둘러보던 파이브가 의문을 품자마자 윤견이 민혁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
총알이 괜히 바퀴에 맞으면 낭패이기에.
민혁도 바로 엑셀을 강하게 밟으며 현장에서 재빨리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뒤로 무수한 총성과 함께 차를 두드렸다.
라호와 파이브는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을 낮췄다. 총성이 멎어지고 차를 두드리는 소리가 줄어들면서 이내 조용해지자 차는 인적이 드문 골목에 잠시 멈췄다.
민혁이 바로 차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재빨리 복귀했다.
“후~! 다행히 문제는 없네요. 하긴 용접을 몇 시간을 했는데.”
“아..참, 요즘 애들 무섭네. 그런 얼굴에 망치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파이브 왜?”
홀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파이브에게 말을 걸자 생각의 늪에서 나온 파이브가 입을 열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확실하지는 않는데...전부 좀 어려...보이던데?”
“잉? 뭔 소리야?”
“그니깐 그 망치든 놈 말고도 주변에서 갑자기 나타난 놈들이 모두 어려 보였다고.”
파이브의 말에 윤견도 손가락을 까딱 움직이며 기억을 뒤졌지만 너무 순식간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중 총을 든 놈들은 확실히 어려 보였던 것 같았다.
“아! 아까 그 아저씨가 조심히 가라고 했던 게...”
라호가 아까 남성의 말을 다시 뱉었다.
“그런 모양이다. 가...응?”
뚝.
앞 유리에 뭔가가 무정하게 툭하니 떨어졌다. 소리의 주인은 금세 사라졌지만 보라색 흔적을 남겼다.
“..뭐..”
쏴아아아-!
그리고 입을 떼기 무섭게 비가 쏟아졌다. 보라색 비가.
“...저번에는 녹색이더니 이번에는 보라색이냐...”
“잠깐만! 이거 차가 맞아도 되는 거야?”
이미 비가 보라색인 것에 보통 비는 절대 아니었다. 민혁은 바로 핸들을 돌려 무너진 담벼락을 넘어 어느 빈 건물에 차를 밀어 넣어 비를 피했다.
“아이..참.”
차에서 내린 윤견이 보라색 하늘을 보며 혀를 찼다. 다른 쪽에서 보라색 비를 보던 파이브는 삐삐의 고개짓에 고개를 돌리니 비를 맞으며 괴로워하는 쥐가 보였다.
쥐는 빗속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더니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연신 찍고는 그대로 죽었다.
방금까지 물감을 푼 것처럼 나름 아름다웠던 빗줄기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똑같이 비를 보던 라호는 그저 멍하니 구름만 쳐다봤다.
-제는 뭔 생각을 하는 걸까..?
-저 빗물 나중에 챙겨서 씨앗들에게 실험 좀 해봐야겠다. 음?
“저기 누가 와요!”
라호의 말에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마치 평범한 비를 맞이하는 듯이 유유히 우산을 쓴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민혁과 윤견이 각자 무기를 챙기고 다가오는 존재를 경계했다.
윤견이 검을 챙겼을 때에는 잠잠했던 우산이 민혁의 총을 보자 움찔 빗방울을 튕겨냈다.
“쏘...쏘지 마세요!”
목소리로만 들어도 연식 있어 보이는 여성의 목소리다. 여성은 혹여나 총을 쏠라 우다다 말을 이었다.
“그..그냥 지나가는 길입니다...식량을 줄 테니 제발 목숨만은...”
잠시 일행들의 눈빛을 살피고 윤견이 코로 긴장감을 뱉고는 대답했다.
“딱히 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잠시만 이 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제발!! 목숨만은!”
“안 죽여요! 그냥 물어볼게 있어서..”
그 이유도 있지만 비가 그치지 전까지 붙잡아 두기 위함도 있었다. 만약 방금 놈들의 동료라면 분명 자신들의 위치를 말할 테니.
여성은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며 다가왔다. 윤견도 최대한 친절하게 웃으며 여성을 한 쪽 자리로 안내했지만 여성의 눈은 마치 다가오는 죽음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라호가 차 한 잔만 드려라.”
그래도 어린 아이면 그나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더욱 사색이 된 얼굴로 라호를 경계했다.
“저희는 충주시에서 온 생존자들입니다. 저기 저 자동차를 타고 오다가 이상한 비 때문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 뿐입니다.”
저 모습, 아까 그들과도 같은 반응이었다.
윤견은 바로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다. 여성은 아직까지 경계심을 풀지 못했지만 차를 들고서 안절부절 못하는 라호를 보자 조금은 풀었는지 찻잔을 받았다.
“차도 의심이 들면 제가 먼저 마시죠.”
“아..아닙니다. 믿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성은 차의 향을 연신 맡고는 겨우 한 모금 마셨다.
“이 마을에도 뭔가가 있나 보네요.”
따뜻한 차가 몸의 생기를 돋자 여성이 기분 좋은 숨을 뱉었고는 말했다.
“네. ‘불량아’들이 있어요.”
“...네?”
“불량아? 그 불량아요? 일..진 뭐 그런 거요?”
“네.”
윤견도 민혁도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었나 했지만 여성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사실임을 못 박았다.
이들의 반응에 여성은 이들이 정말로 충주시에 넘어 왔다는 것을 믿었다. 그야 이쪽에 사는 이들이 모를 이름이 아니었다.
“뭡니까? 그 불량아는?”
“...흔히 말하는 거와 같아요. 십대 많으면 이십대 초반 애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에요.”
“그런 집단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건..”
“많아요. 행실이 나쁘다는 수준이 아니에요. 거의 백정과 다를 게 없어요.”
-설마...
윤견은 방금 있었던 일을 여성에게 말하자 여성의 동공이 커지며 말하기도 전에 답을 알 수 있었다.
-하여간...요즘 애들은... 아니, 요즘이기에 그런 건가?
윤견이 슬쩍 파이브를 쳐다보자 시선을 느낀 파이브가 ‘...뭐?’라고 입모양을 보였다.
“약탈은 기본이고 그저 재미로 살인까지...이제는 약까지 손에 댄다고 하더라고요.”
“으아...확실히 좀 그렀네요.”
“그런데 왜 애들만 있는 겁니까? 어른은 한 명도 없어요?”
“네, 없었어요. 왜 자기들끼리 모였는지는 저도 잘...”
고개를 끄덕이던 윤견의 옆으로 다가온 파이브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윤견이 물음표를 띠며 파이브를 쳐다봤다.
“미아 언니.”
그제야 이곳에서 헤어졌던 미아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의 가설도 꼬리를 물며 같이 떠올랐다.
“...어쩌면 미아도 그 쪽...불량아 인원이었을 지도..”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것처럼 중얼거리듯 말하자 파이브의 인상이 자동적으로 구겨졌다. 미아를 떠올리면 마치 미아를 변호하듯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미호 때문이었다.
윤견도 미호를 잘 알았지만 그 보다 몇 배로 이 세계를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죽을 수 있고 죽일 수 있는 세계를.
“저...”
한편 이들을 보면 여성이 조심히 손을 들며 말했다.
“? 더 하실 말이 있으세요?”
“아뇨..이제 가도 되나 해서..요.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요.”
라호는 당연히 수락할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윤견을 봤지만 윤견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도 여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
다행히 타이밍 좋게 궁금한 것이 하나 더 떠올랐다.
“이 보라색 비에 대해 아시는 거 있으세요? 아까 보니깐 자연스레 우산 쓰시며 오시던데.”
“어? 밖에서는 보신 적 없으세요? 피부에만 안 닿기만 하면 되요. 닿으면 뭐...”
“종종 내리시나 봐요.”
“아휴~ 그럼요. 그래도 덕분에 이종족들이 많이 죽어갔고 덕분에 놈들이 터를 잡았지.”
“떠..떠나실 시도는 안 해보셨나요?”
라호가 조심히 묻자 여성이 한숨을 크게 뱉고는 고개를 저었다.
“떠나봤자 어디로 가겠니...다들 나처럼 하나 같이 그저 아줌마 아저씨들 인데.”
“그러고 보니 일행이 있으시다...혹시..”
민혁이 화살을 날렸던 이들을 말하자 여성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맞아요! 정우 아빠 만나셨구나.”
찰팍.
“삣?!”
삐삐의 귀가 번뜩이며 움직이자 윤견이 바로 반응했다. 잠시 빗소리만을 제외한 모든 소리가 멎었다.
“다들 엎드려!!”
정적을 깬 것은 파이브였다. 그 순간 삐삐의 고개 방향에서 무수한 총성이 울렸다.
“라호야!”
“네!”
{시드 플래닛}
라호가 나무를 뻗자 굵은 가지들이 자라나더니 순식간에 단단한 벽을 만들었다.
"노..놈들이다! 놈들이야!"
"일단 모두 차에 타! 어차피 우비는 차에 있어서 맨 몸으로는 밖으로 못 나가!"
나뭇가지의 보호 아래 이들은 몸을 낮추며 신속하게 차에 몸을 던졌다.
마지막 까지 뒤를 지켰던 라호를 마지막으로 차에 올라타자 민혁이 문도 닫기 전에 엑셀을 밟았다. 도망가는 차의 꽁무니에 총알들이 두드렸지만 차를 멈춰 세우지 못했다.
"아...참, 무슨 할렘가도 아니고.."
민혁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여성도 이제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안도의 한숨을 뱉었으나 차 안에 탔다는 것에 다시금 불안감이 피어났다.
"...내려드릴 테니깐 걱정 마세요."
곧바로 눈빛을 읽은 윤견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여성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던 차는 어느 빌라 앞에 멈춰섰다.
빌라 입구에는 자동차들로 만들어진 방어벽과 우비를 뒤집어 쓴 보초 다섯이 지키고 있었다. 보초들은 다시는 보지 못 할 줄 알았던 자동차의 등장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차에서 여성이 내리자 경계심이 풀렸는지 무기를 내리고 여성에게 달려갔다.
"선이 엄마!"
"이게 무슨 일인 거야??"
"불량아 놈들에게 공격 당하는 걸 젊음이들이 구해줬어."
선이 엄마의 말에 이들은 그제야 완전하게 경계심을 풀고는 당장 궁금하던 자동차를 살폈다.
"요즘 외제차는 다 이런 가?"
"어디서 오는 길이여??"
"충주에서 왔대."
방금까지 산엄한 분위기였던 입구는 금세 시장터 안에 있는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우비를 쓰고 뒤따라 내린 윤견은 그 속에서 그저 입을 열 타이밍만을 보고 있었다.
"뭔 일인데 이리 시끄러워!"
동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아파트 안쪽에서 호통과 함께 우악스러운 분위기의 중년의 남성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남성이 손을 붕붕 저으며 수다를 끊어냈다.
"아무튼! 이들이 자네를 구했다는 얘기지?!"
"으이~."
"흠! 흠! 동 주민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하지!"
그의 인상만큼이나 투박한 손이 우비를 쓴 윤견 앞으로 나섰다.
"아..예."
윤견도 정신없던 와중에도 정신줄을 붙잡고 남성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
마치 명령투로 들리는 딱딱한 어조. 윤견은 손사래 쳤지만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결국 일행들과 의논해 제안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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