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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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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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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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아 - 5

DUMMY

한 생명체의 다리처럼 움직이는 식물들이 거리를 붕붕 휘저으며 사람들의 진격을 막고 있다. 채찍처럼 건물을 때려 위협적인 소리를 내거나 다가오는 사람들은 밀어내며 최대한 마찰을 멀리 했다.


그럼 노력에도 사람들의 날붙이와 불이 식물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애들을 꺼낼 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호가 주머니에서 씨앗 하나를 꺼내들고는 만지작 거리며 주저했다.


'너무 압도적으로 막지마. 괜히 그랬다간 공격을 포기하는 수가 있어.'

'? 그럼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요?'

'공격을 멈춘다고 해서 앞으로도 안 할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우리가 가고 나서 다시 진군이라도 한다면 그것만큼 대참사는 없지.'

'그러면...?'

'최대한 시간만 끌어. 네가 판단해서 이정도면 괜찮겠지~하는 정도까지. 알겠지?'


당시에는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상황을 직접 마주하니 이것만큼이나 애매한 것도 없다.


수많은 라호의 세포들이 이리저리 의견을 냈다. 그 속에서 고뇌하던 라호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 녀석까지만 사용하자."


아직 괜찮겠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


학교 안은 말 그대로 전쟁을 맞이하는 피난길 그 자체다. 수많은 학생들이 복도를 누비며 짐들을 옮기고 있었다. 반면 학교 안 미술실만은 달랐다.


"어디 갈 곳은 있어?"

"그럼요. 여기 넘어오기 전에 지냈던 학교가 있어요."

"...왜 다 학교야?"

"하하, 다들 뭔가 그리워하는 모양이더라고요. 따라오실 건가요? 꽤 거리가 있긴 한대..."


운견이 턱을 괴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 했다. 상대는 이들을 말 한 마디로 조종할 수 있는 놈이다.


비록 한 쪽 다리는 불편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어디로 튈지 모를 청소년들의 대장으로 앉아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이유가 아직까지 알 수가 없어 선뜻 따라가겠다고 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뭔가 따라오길 바라는 듯한 저 눈빛도 매우 수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자니 또 무슨 속셈을 꾸미고 무슨 짓거리를 할 지 누가 알겠는 가.


-하아...뭐 죽으면 파이브가 돌려 주겠지.

"그래, 가자. 죽일 거면 지금 죽여라. 귀찮게 가서 죽이지 말고."

"하하하, 그럴 생각 없어요.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를 못 했네요. 제 이름은 박정주 입니다. 편하게 정주라고 불러주세요."


마치 학교 자기소개 시간에 어울리는 소개였다. 그만큼이나 정주는 이 무리와 많이 어울리지 않았다.


"헤드, 준비 끝났어."


지금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미아도.


"그래, 모두 수고했어."


끙 하는 소리와 함께 휠체어에서 일어선 정주는 미아가 건네는 의족을 차고는 능숙하게 움직였다.


"또 보네."

"후우...그러게요"


윤견이 미아에게 능글맞게 웃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미아는 깊게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반갑지 않은 건 미아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미아 정도면 신사에 속하는 눈빛들이 윤견에게 꽂혔다.


윤견도 애써 무시하며 정주의 뒤를 따랐다.


운동장으로 나가니 고작 수레 두 개만 준비되어 있을 정도로 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깐 너 방에서 물건도 거의 빼오지 않았잖아?"

"침대나 의자 옷은 주변에서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서 정말 필요한 물품만 가방에 넣어서 움직이거든요. 그나마 무거운 거 저렇게 수레를 사용하고요."

"꽤 체계적이네."

"뭐, 많이 떠돌다가 자연스레 배운 거죠."


그 말을 끝으로 정주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고서 수레에 몸을 올렸다.

그리고 모두 밖으로 나오니 출발 신호와 함께 움직였다. 불량아들은 대략 서른 명 쯤으로 보였다.


그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지금도 윤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고.


그런 시선 속에서 미아가 슬며시 윤견에게 다가갔다.


"와줘서 고맙긴 한데. 오면 너도 욕먹을 걸."

"학교 폭력 피해자처럼 보이는 게 마음이 아파서요. 그리고 저한테 뭐라 할 얘들도 아니고."


-쌍둥이라 외모는 닮았지만 성격은 다르네.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움직이는 피난 길 중에 윤견과 미아는 꽤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혹시 미호랑 사이가 안 좋았니?"


그 많은 이야기 속에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름을 말하자 미아의 눈썹이 꿈툴 반응했다.


"...아니요."


자신 또한 일부러 피했던 이름이기에 묻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평범했어요. 방은 각자 썼고 등교나 하교도 각자 친구랑 했지만 그래도 안 좋지는 않았어요."

"그러냐? 쌍둥이면 등하교 같이 할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네. "

“미호는 항상 일찍 일어났어요.

그래서 제가 아침 먹으로 기어가면 미호는 진즉에 씻으러 들어가고, 제가 씻으러 가면 미호는 벌써 교복 입고 있었죠.”


평범한 아침을 상상했을 뿐인데도 미호의 얼굴에 미련이 가득했다.


“그런데 불량...아니 이 집단에 어쩌다가 합류하게 된 거야?”

“음~. 말하면 길긴 한데. 처음에는 저도 생존자 무리에 있었어요. 하지만 갑자기 정체 모를 전염병이 발생해 거의 절반 가까이 돌아갔죠. ...그 때 엄마도 돌아가셨어요.”


담담하게 말한 미아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윤견의 반응도 살피지 않고 바로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다들 함께 이겨내자고, 버텨보자고 희망을 가졌어요.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 식량도 떨어지고 힘들어지니 슬슬 본색을 드러냈어요. ...정말 하루하루가 최악이었죠.”


미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깊은 심연에 빠지듯 눈동자 색이 진해졌다.


“그래서 그 때 미호 소식을 들었을 때 안심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화도 좀 났어요. 같은 쌍둥이인데 어째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만 재수가 없는 걸까? 하고...”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말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금세 심연 속에 고개만 살짝 내밀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식량 이틀 치에 팔려간 곳에서 헤드를 만났어요.”



마치 동물처럼 목줄을 차고서 그저 이끌리는 대로 움직였다.


‘들어가라.’


목줄을 잡아당기며 철창 안으로 집어넣었다. 시린 시멘트 바닥에 처박히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반짝이는 눈들이 나에게 모여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이가 쉬지 않고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차 어둠에 적응이 되니 모두 나와 또래로 보이는 애들이었다. 애들은 나처럼 목줄을 찬 채로 벽에 찰싹 붙어서 나를 응시만 할 뿐이었다.


‘안녕? 새로운 친구구나. 만나서 반가워, 나는 박정주라고 해.’


-...뭐지 이새끼는?


당시 같은 처지임에도 웃으며 다가오는 정주를 본 느낀점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은 사람이 추락하면 어느정도 까지 추락하는 지를 알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치 애완동물 가게처럼 우리들은 놈들이 주는 밥을 주서 먹고 구석에 볼일을 보는 가 하면 가끔씩 철장 넘어로 손님이 오면 팔려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희망도 미래도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갔었다. 하지만 정주는 항상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껄였다.


‘나가면 우리끼리 살자.'

‘포기하지 말자.’

‘자, 내 것도 먹고 힘내.’


자신 처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정주에 화가나 제발 좀 닥치라고 욕을 뱉은 적도 있지만 그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그는 우리를 불러 모으더니 뭔가를 건넸다. 바로 깨진 접시 조각이었다.


그는 깨진 그릇 조각을 들고서 탈출을 가행했다. 우리 모두 데리고서. 우리를 미끼로 하고 혼자 도망갔으면 더욱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모두를 데리고 탈출했다.


그런 도중 다른 곳에도 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된 정주는 그들까지 구해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그 때 나는, 우리는 처음으로 진짜 어른을 마주했다. 어른들에게 버려지고 이용당했던 우리가 만난 키다리 아저씨.


미아의 회상이 머리를 타고 입으로 나왔다. 과거를 들은 윤견은 넌지시 정주를 보았다.


"생긴 거랑 다르게 터프하네. 거기서 다 같이 탈출할 생각도 하고."

"그 후로 저희는 헤드를 따랐어요. 아니, 따를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처지가 비슷한 애들이 있으면 구하면서 점점 인원들이 늘어났죠."


미아의 표정이 전에 비해 그나마 밝아지고는 윤견을 따라 정주를 보았다. 그런 미아를 보던 윤견이 피식 웃었다.


"너희도 완전 재수 없지는 않았나 보다. 저런 귀인을 만난 거 보면."

"...뭐, 그렇긴 한데...왜 아저씨가 의기양양한 거죠?"

"너는 정주를 만났고 미호는 나를 만났다는 게 참 아이러니해서~."


윤견은 어깨를 으쓱 움직이고는 다시 정주와 그를 따라는 이들을 보았다.


-방금 얘기만 들으면 주민들이 얘기했던 거와 느낌이 좀 다른데...


미아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들은 힘든 세상 속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로만 보이고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온갖 범죄 행위는 다 저지르는 비행 청소년으로 보였다.


"흠...그런데 어쩌다가 이쪽 사람들이랑 척을 지게 된 거야?"

"몰라요."

"...모른다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냐.."

"아니, 근데 진짜 모르겠어요.

그냥 저희는 여러 곳을 돌다 이곳이 이종족도 없고 좋아서 정착했는데 무슨 텃세라도 부리는 것처럼 갑자기 저쪽에서 공격했다고요.

저희도 그래서 다른 터전을 찾으러 다녔고요. 그러다 저는 아저씨를 만난 거고."

“하하..참.”


미아를 보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윤견은 이제 인간불신에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믿기는 또 힘들다. 그야 웃으면서 망치를 꺼내던 놈들도 있으니.


-...잠깐 그런데 그 놈은 왜 안 보이지?


순간 뇌리를 스친 이질감에 다급히 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없다. 없다.


“...없어.”

“네?”


놈이 없다.


웃으면서 망치를 들던 놈이 어디에도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총의 수도 뭔가 적다. 물론 지금 이들이 들고 있는 총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그 때 공격한 놈들의 총의 수보다 월등하게 많지는 않았다.


“너 혹시 최근에 차 하나 공격했다는 얘기 못 들었어?”

“네? 음...아뇨.”

“...확실해?”

“저희가 이쪽으로 온 후로는 거의 방어만 하느라 어디 공격할 시간도 없다고요.”


뭔가가 이상하다.

두 집단의 발언에 겹치며 어색한 부분에 골머리를 앓던 윤견의 뇌리에 작은 실마리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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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기습 - 3 25.06.14 4 0 11쪽
377 기습 - 2 25.06.10 5 0 11쪽
376 기습 25.06.08 6 0 11쪽
375 부산 - 3 25.06.06 7 0 11쪽
374 각색 25.06.03 7 0 11쪽
373 부산 - 2 25.06.01 7 0 11쪽
372 부산 25.05.29 8 0 11쪽
371 여기까지 25.05.27 7 0 11쪽
370 여행 계획 25.05.25 6 0 11쪽
369 엔딩으로 25.05.18 7 0 11쪽
368 목소리 25.05.15 8 0 11쪽
367 무게감 25.05.13 8 0 11쪽
366 사냥 - 3 25.05.11 9 0 11쪽
365 사냥 - 2 25.05.09 9 0 11쪽
364 사냥 25.05.06 9 0 11쪽
363 해방 25.05.03 10 0 11쪽
362 그의 이야기 - 3 25.05.01 12 0 11쪽
361 그의 이야기 - 2 25.04.28 10 0 11쪽
360 그의 이야기 25.04.25 10 0 11쪽
359 그들의 이야기 25.04.23 13 0 11쪽
358 마지막 수단 - 3 25.04.21 10 0 11쪽
357 개 같은 희망 25.04.19 9 0 11쪽
356 마지막 수단 - 2 25.04.15 10 0 11쪽
355 검은 사람들 25.04.13 9 0 11쪽
354 마지막 수단 25.04.08 9 0 11쪽
353 검은 존재 - 3 25.04.06 12 0 11쪽
352 검은 존재 - 2 25.04.03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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