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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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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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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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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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도시 - 3

DUMMY

고난이 휩쓴 듯이 조용한 도시.

맨 발의 이종족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는 지 이곳저곳을 열심히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쁜 손에 비해 이제야 겨우 녹이 슨 젓가락 한 쪽만 손에 쥐었다.


저놈 또한 허탈한 지 눈꼬리와 어깨가 처졌다. 한숨인지 모를 뭔가가 얼굴 밑에서 나오며 젓가락을 가지고 온 가방에 넣었다.


바스락.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으며 겁먹은 두 눈이 뒤를 돌아봤다. 당장 숨거나 도망쳤어야 했지만 다리는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덜덜덜 떨며 어둠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아...안녕?”


어둠 속에서 여린 목소리와 함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


“여긴...병원?”


놈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4층짜리 높이의 건물이었다. 이곳도 이끼와 식물들로 뒤덮여 어떤 건물인지 인식하기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이는 적십자로 병원임을 알 수 있었다.


놈은 계속해서 윤견을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한숨과 콧방귀를 작게 뀌고는 등쌀에 밀린 듯이 놈을 따라갔다.


이번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는 없었지만 작은 날벌레 같은 것들이 날아다녔다. 벌레들도 딱히 침입자들에게 관심이 없는지 그저 뿌리에 붙거나 허공을 누볐다.

놈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벌레들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윤견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역시나 그 끝에는 식물의 핵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핵 안에도 점막이 처져있었다. 놈은 그대로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리며 자리를 비켰다. 윤견도 이제 자신의 차례임을 알고 흑도를 뽑아 올렸다.


{온 – 착화(着火)}


푸른 도신이 열기를 뿜으며 움직였다. 검푸른 궤적이 생길수록 건물은 요동쳤다. 윤견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더 검을 놀렸다.


우지끈!!


마침내 점막을 감쌌던 뿌리가 갈라지며 불안하게 흔들리는 점막이 노출됐다. 비눗방울처럼 톡 하면 부서질 듯이 연약한 막으로 보였다.


-빨리 끝내야겠다, 건물이 불안해.


슬슬 벽이나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하니 서둘러 흑도를 휘둘러 막을 찢었다. 역시나 막은 두부 썰듯 쉽게 잘려나가며 노란 점액을 뱉어냈다.


생각보다 많은 점액을 품고 있었는지 점액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슬슬 바닥에 점액이 차기 시작할 때쯤에 점액이 아닌 뭔가가 같이 흘러 나왔다.


“수...수인?”


하이에나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를 이어 고블린 두 마리와 어린 소년 한 명을 뱉어냈다. 핵에서 탈출한 넷은 모두 헛구역질을 하며 속에 담긴 점액을 토해냈다.


타다다다.


한참 토하는 소년을 향해 놈이 다급히 다가오더니 걱정스런 눈으로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먼저 나와 토하고 있던 수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고블린들을 베고는 소년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던 흑도가 목을 자르며 상황은 금방 끝났다.


“꼬마야 괜찮니?”


흑도를 슬쩍 뒤로 빼고 아이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소년은 그렇게 한참이나 헛구역질을 하고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을 부축하며 환기가 되는 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혔다. 소년은 헛기침 몇 번 더 하고는 입을 열었다.


“으...어?! 눈눈아!”


소년은 윤견보다 옆에서 한참이나 쳐다보던 놈을 보며 말했다.


“누..눈눈이?”


눈눈이도 그간 참았던 걱정을 해소하듯 소년에게 다가가 연신 무릎을 어루만지며 통조림통을 들이밀었다.


“아하하...괘..괜찮아. 아!”


이제야 윤견을 봤는지 눈이 커지며 놀랐다. 윤견도 최대한 밝게 웃어 보았지만 옆구리에 칼 때문일까, 소년은 검을 먹은 눈치였다.


“...안 잡아먹는다. 저 놈...눈눈이랑 아는 사이냐?”

“네. 이곳에 정착했을 때 만났어요.”

“깡도 좋네, 이종족인데 친해질 생각...잠깐 정착했다고?”

“네? 네.”

“뭐야? 그럼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는 거야?”

“네? 그게 무슨...”


그렇게 서로 몇 마디 대화를 하며 의문만 오가던 중 소년이 지금 밖의 상황을 모른 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견은 소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니 정말로 모르고 있었는지 소년의 눈이 더 커졌다.


“이게...무슨...하루..아니..”


많이 혼란스러운지 횡성수설 하는 소년을 겨우 진정시키며 천천히 대화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물어본 건 어쩌다 핵에 갇히게 된 것인가.


“자고 있던 상황이라 정확히 기억은 못하는데 갑자기 건물 안으로 촉수 같은 게 공격했었어요. 그대로 기절하고...깨어나니..”


아마 밤이라 뿌리를 촉수로 본 모양이다. 그리고 그대로 기절해 있다 지금에서야 깨어난 것이고.


다음 질문으로는 다른 사람이 더 있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소년은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다들!...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딨죠? 승주 형이나 이태 형도.”

“그건 내가 묻고 싶다고. 그 핵에서 나온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혹여나 안쪽도 살폈는데 없었어. 그럼...너가 말한 사람들은 다른 식물에 잡힌 모양이네.”

“눈눈아,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니?”


그러나 눈눈이는 고개를 살짝 꺾을 뿐이었다.


“...저건 모르겠다는 거지?”

“네.”


난처해하는 두 사람 사이로 저녁 노을빛까지 끼어들었다. 결국 일단 여기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서 소년과 함께 건물을 뒤졌다. 하지만 겨우 의료 침대 두 개만 발견했다.


각자의 침대에 올라간 윤견과 소년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눈눈이까지 서로 아무 말 없이 지친 몸을 달랬다. 그러던 중 눈눈이가 캔을 꺼내 먹기 시작하자 소년의 배에서 작게 소리가 울렸다.


“아..아냐, 눈눈아 너 먹어.”

“자.”


아까 받은 통조림을 까고 소년에게 건네자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처음에 거절했으나 계속 보이는 음식의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손을 내밀었다.


윤견은 그나마 깨끗한 그릇에 자신이 먹을 양만 덜어내고는 나머지는 그대로 소년에게 건넸다.


“구해주시기 까지 했는데 이렇게 귀한 걸...감사합니다.”

“어차피 네 친구가 준 거야.”

“하하,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도 못했네요. ‘수지원’이에요. 형은요.”

“...윤견. 그래서 어쩌다가 이종족이랑 친구 먹은 거야?”


손으로 음식을 집어 삼키며 묻자 지원은 눈눈이를 흘긋 보고는 입을 뗐다.


“전에 있던 곳이 습격을 받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었어요. 저희 가족도...”


지원이 힘없이 웃으며 통조림을 흔들었다.


“고작 저 포함해서 다섯 명만이 겨우 도망쳐 이곳까지 왔어요.”

“힘들었겠네.”

“힘들었죠, 슬펐고, 무서웠고...허탈했죠.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눈눈이를 만났어요. 당시에 눈눈이는 저와 다르게 살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어요.”


겨우 목숨만 건진 소년은 그곳에 너무 많은 것을 두고 도망쳤었다. 가족도 희망도 삶도 의도 모두 잃고 두고 왔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만 허비하는 그 때 한 이종족을 발견했다.


-...저건 왜 저렇게 열심히 살지? 그렇게 강한 종족이 아니라 금방 죽을 텐데.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자신보다 작은 몸짓으로 조심조심 돌아다니는 놈을 보는 하나의 유희였다. 마치 티비 쇼처럼 멀리서 놈의 행동을 관찰했다.


한 때는 고블린에게 쫓기는 놈을 보고, 한 때는 식판을 들고 춤추는 놈도 봤다.


‘오! 뭐야...가족이 있었구나.’


그러다 놈들의 가족들도 마주했었다.


‘붕어빵 가족이네...’

‘뭐야, 쇠를 먹는 거였구나...’

‘도망쳐! 뒤에!!’


신기했다.


놈이 좋아하면 나도 모르게 기뻐했고 위험하면 나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렀다. 고작 이름 모를 이종족의 삶에 조금이나마 마음에 치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목숨을 건 도박을 시도했다. 철제 숟가락 한 움큼을 집어 들고서.



“...신기하네. 그렇게 서로 친구가 됐다니.”


이제는 깜깜한 어둠이 도시를 덮었다. 지원의 얘기를 나름 재밌게 들은 윤견이 피식 웃으며 빈 그릇을 바닥에 뒀다.


“그럼 펜던트는 우정의 증표 뭐 그런 거야?”

“네? 펜던트? 설마!”


지원이 옆으로 얼굴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눈이가 펜던트를 꺼내 들고는 지원에게 내밀었다. 지원의 눈망울에 반짝이더니 천천히 펜던트를 받았다.


지원은 그렇게 펜던트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눈눈이를 껴안았다. 의미 모를 행동에 눈눈이도 꽤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두 손은 자연스레 지원의 등 위로 안착하는 것이 윤견의 눈에 보였다.


-...이걸 라호가 봤어야 하는데.


두 종족의 서로의 이익에 의한 동맹이 아닌 그저 마음과 마음이 만난 우정을 처음 목격한 윤견은 마음속에 기묘한 울림이 울렸다. 천천히 가슴에 손을 올려도 알 수 없는 울림이었다.


*


“후우...”


같은 어둠 속 민혁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총을 멘 채로 지도책을 뚫어지라 쳐다봤지만 어떻다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쿵.


그러자 답답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운전대를 내리쳤다.


"..."


주인 속도 모르고 애석하게 올라오는 통증을 외면하며 지도책을 덮었다.


똑똑.


유리 밖에 들린 노크 소리에 얼굴색을 바꿔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다가온 라호가 서 있었다. 차에서 내려 라호를 마주하자 라호가 입을 열었다.


"무리에요. 저도 처음 접해본 식물이에요. 게다가 계속 얘기를 시도해봤는데 듣지도 않고요."


마치 애완동물을 대하는 듯한 투로 라호가 말하자 민혁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파이브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호의 뒤로 삐삐와 함께 파이브가 나타났다.


"다들 따라와 봐, 뭔가 있어."


파이브는 이 둘을 안내하며 옆 건물 지하로 안내했다.


"이게 무슨...."


발 딛기 힘들 정도로 울창한 줄기들을 지나며 목적지에 보인 광경에 민혁은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라호는 놀라다 못해 공포까지 느끼고 있었다.


식물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체가 태동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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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사냥 - 2 25.05.09 7 0 11쪽
364 사냥 25.05.06 7 0 11쪽
363 해방 25.05.03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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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그의 이야기 25.04.25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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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개 같은 희망 25.04.19 7 0 11쪽
356 마지막 수단 - 2 25.04.15 8 0 11쪽
355 검은 사람들 25.04.13 7 0 11쪽
354 마지막 수단 25.04.08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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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검은 존재 - 2 25.04.03 8 0 11쪽
351 검은 존재 25.04.01 9 0 11쪽
350 검은 추억 속에서 25.03.30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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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세상 속 2와 5 25.03.21 8 0 11쪽
346 대장 - 3 25.03.19 8 0 11쪽
345 대장 - 2 25.03.17 8 0 11쪽
344 대장 25.03.14 8 0 11쪽
343 괴물 - 2 25.03.12 8 0 11쪽
342 괴물 25.03.10 8 0 11쪽
341 가시 25.03.07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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