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도시 - 5

쿠구구구구-!!!
건물 바닥이 파도처럼 일렁이더니 쩌저적 금이 가더니 굵은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땅속에서 시작해 바닥 타일을 뚫고, 천장을 뚫으며 멈출 줄 모르고 솟아났다.
콰아아아앙!!
마침내 옥상까지 뚫고 솟으며 건물이 무너지며 붙어 있던 꽃도 건물과 함께 추락했다. 건물 한 채가 무너지며 거대한 울림과 먼지폭풍을 만들어냈다.
자욱하게 깔린 먼지가 가라앉으며 그 중심에 있던 거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옆 건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 넘어선 거목의 등장에 새는 물론이고 멀리서 지켜보던 윤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무? 그간 식물들과 달라.
“...라호다!”
“네? 야..호요?”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지원에게 설명할 틈도 없이 윤견은 건물 밖으로 나섰다. 다른 형형색색의 꽃들에 비해 많이 겉도는 투박한 거목.
건물에 기생하듯 붙는 것이 아닌 부수며 자라난 거목.
이런 거목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윤견이 아는 사람 중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저런 걸 갑자기 키울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동료의 위치를 알 수 있었음에도 윤견의 얼굴의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굳이 조용히 자신들의 위치를 조용히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분명 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윤견이 알아차릴 시간이 거릴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한 이유가 있다면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급히 윤견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
“젠장!”
바닥에 널브러진 뿌리를 피하느라 엉성한 폼으로 거목을 향해 달려갔다.
“삐-이!”
신경질 적인 호루라기 같은 소리가 바람을 타며 울리자 머리에 싹을 튼 짐승형 이종족들이 등장했다. 놈들은 일제히 거목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역시 놈도 알아챘구나!
놈들은 벽을 타고 줄기를 타며 윤견보다 빠르게 거목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렇게 윤견보다 먼저 도착한 놈들이 이를 드러내며 거목을 살피고는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빨이 부러지고 나무에 박혀 뽑혔음에도 고통을 모르는 아가리는 계속해서 나무를 물어뜯었다.
빠드득! 카드드득!!
마치 땅굴을 파듯이 계속해서 머리를 집어넣고 있는 놈들의 뒤로 흑도가 반짝였다. 흑도는 자비 없이 짐승의 뒷덜미를 베었다.
짐승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거목만 바라보던 눈들이 윤견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에도 흑도는 흔들림 없이 목을 베어갔다. 이미 거목과 부딪치며 갈리거나 무딘 송곳니가 윤견을 노렸다.
한 손으로 놈의 목을 잡아 땅에 처박고 흑도를 휘둘러 두 마리의 입을 찢었다.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죽여도 식물들이 반응하지 않아. 새의 등장부터 뭔가가 많이 변했어. 뿌리도 밟아도 상관없나? 아니, 것보다...얘들은?
이미 거목 근처에 있던 놈들은 전부 죽이고 거목 안을 살폈지만 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당연히 안에 있을 줄 알았는데...”
놈들이 턱을 빠지면서 까지 나무를 파헤치는 모습에 안쪽에 있을 줄 알았던 일행들이 안 보여 당황한 사이에 작은 조약돌 하나가 윤견을 향해 날아왔다. 윤견의 머리에 닿기 전에 고개를 돌려 피했다.
조약돌이 날아온 방향의 끝에는 윤견이 잘 아는 흑, 백의 머릿결이 있었다.
“파이브!”
“이.쪽.으.로.”
다급해 보이는 안색에 비해 뻐끔뻐끔 움직이는 입에 윤견도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파이브 쪽으로 달려갔다.
“뭐야? 무슨 일인데?”
“이쪽으로 빨리, 민혁 오빠가 다쳤어.”
“뭐?!”
파이브를 따라 근처 건물로 들어가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약초들과 라호가 보였다.
“형!”
그리고 그 넘어 옆구리에 붕대처럼 긴 나뭇잎을 둘둘 매고 있는 민혁이 긴 의자에 누워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혀..형님.”
식은 땀 가득한 민혁의 얼굴이 천천히 움직이며 윤견을 보았다.
“무슨 일이야. 그 지하에서 생긴 거야?”
어떻게 알고 있는 지에 대한 건 나중으로 미루며 라호가 피로 범벅이 된 손으로 계속 약초를 지으며 말했다.
“그 지하에 꿈툴거리는 뭔가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터지면서 ‘뭔가’가 나왔어요.”
민혁의 상태 때문인지, 아님 그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인지 라호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뭔가라니...그거 새였어?”
“아냐. 사람이었어. 팔, 다리...얼굴도 모두 사람의 것이었어.”
뒤에 있던 파이브가 아직 정신없는 라호를 대신해 대답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놈을 중심으로 식물 뿌리가 파도처럼 덮쳤고 라호가 막고 오빠가 반격하며 도망치다가...”
파이브의 눈이 민혁의 옆구리로 향하며 말을 멎었다.
-사람? 하지만 내가 본 건 분명 새였어. 아무튼.
민혁의 치료가 끝나고 잠시 라호를 따로 불렀다.
“민혁이의 상태는 어때?”
“이..일단 고비는 넘겼어요. 좀 만 더 늦게 치료했으면...”
오싹한 결과에 라호가 몸서리쳤다.
그런 라호를 달래듯 어깨를 토닥이고는 빈 의자에 앉아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베스트는 언제나 도망치는 것이다.
하지만 차도 버리고 다친 민혁을 업고 도망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차만 있어도 가능은 할 거 같은데. 여차하면 내가 운전하면 되니깐...문제는 내가 본 새나, 얘들이 본 사람 형태의 무언가와 마주치는 건데...
까딱이던 손가락은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한참을 떨던 연두 빛 깃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더니 이내 처음처럼 잔잔하게 흔들린다. 폴짝 뛰어 난간에 올라 거추장스러운 거목을 노려봤다.
자신이 힘들게 가꿔놓은 정원에 갑작스레 솟아난 장애물. 그것이 지금 새의 눈에 비친 거목이었다.
터벅...터벅..터벅.
그런 도중 계단을 밟은 발소리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마침내 신발 하나 없는 두 발이 옥상에 올라 문을 열자 난간에 올라가 있는 새가 보였다.
문을 넘어 천쪼가리를 몸에 두른 남성이 망설임 없이 새를 향해 다가갔다. 새도 그제야 자신에게 오는 남성을 발견하게 난간을 박차 날개를 움직였다.
세차게 날아오른 새는 그대로 남성의 어깨 위로 올랐다. 그리고 남성의 볼에 연신 머리를 비비며 목소리를 냈다. 초점도 감정도 그 어느 것도 담지 않은 남성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하소연 하듯이 움직이는 부리.
“죄송해요. 제가 초기에 잡았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제 탓이에요. 어머니는 저희를 위해 이미 많은 것을 하셨는데...다른 형제들은...아..그렇군요.”
봇물 터지 듯 찌르르 울어대는 새에 남성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포자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여기서 쉬세요."
기특한 남성의 말에 새는 볼을 다시 한 번 비비고는 하늘로 올라섰다.
남성은 다시 무표정으로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갔다. 마침내 모든 계단을 내려가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거목을 향해 걸어갔다.
"어...승주 형?"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지원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자신과 함께 도망쳐 생사를 함께 한 형. 그런 형이 점점 식물의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지원은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가 승주가 뿌리를 밟기 전에 그의 어깨를 잡았다.
"형! 형도 헌터 형이 구해준 거야? 아무튼 여기에 있으면 위험해. 얼른..."
반가움에 버선발로 다가와 승주를 붙잡아 주절주절 떠들었지만 뒤늦게야 그의 눈을 마주친 지원이 말을 멈췄다.
가끔 직감이 먼저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살면서 종종 있다. 지금 지원이 그랬다. 감정 없는 눈, 그에게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분위기.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그의 몸을 붙잡았다.
"...아... 실패했군."
지원과 조우하며 처음으로 입을 연 승주는 짧은 탁식과 함께 손을 움직였다.
"..아...아..아?"
너무 순식간에 움직인 승주의 손은 지원의 복부를 뚫고 솟아났다. 지원의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지며 뜨거운 고통이 몰아쳤다.
"아...으..아."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비통의 탄식만이 흘렀다. 그러나 승주는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지원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고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손을 빼고는 볼 일 끝났다는듯 뒤를 돌아보고 다시 거목으로 향했다.
한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쓰러진 지원은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잊고 있었다.
이런 세계다. 언제든지 이런 꼴이 날 수 있는. 분명 지원도 처음 도망쳤을 때부터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눈이를 만나서 부터인지 잊고 있었다.
"...씨...발..."
지원은 힘겹게 욕을 뱉고는 그대로 눈에서 생기가 빠졌다.
붉은 선혈을 뚝뚝 흘리며 움직이던 손이 거목을 만졌다.
"이거로군...어머니를 괴롭힌 것이.."
콰드드득!!
무표정과 달리 붉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나무를 으깼다. 그리고 바로 두 주먹을 연타했다.
주먹이 거목에 부딪칠 때마다 경쾌한 울림과 함께 거목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 소리와 진동은 근처에 있던 윤견 일행들까지 전해졌다.
"이번엔 또 뭐야?!"
"나무가...나무가 공격받고 있어요!"
“어차피 이제 저 나무는 필요 없지 않아?”
“그..그러긴 한데.”
라호가 머쓱해 하며 파이브를 쳐다봤다. 반면 윤견은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췄다.
“그럼 새든 사람이든 둘 장 하나가 지금 거목에 있다는 거잖아. 다들 움직여, 차로 간다. 민혁이는 나한테 업히고. 얼른 움직여!”
윤견의 재촉에 부랴부랴 움직이며 짐을 챙겼고 윤견은 누워 있던 민혁을 일으켜 등에 업었다. 과정이 불친절해 중간에 민혁의 신음이 들렸다.
“미안..”
“삐!”
삐삐를 선두로 일행들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 윤견이 멀리서 건물 파편을 뿌리에 던져 반응이 없는 것을 미리 확인한 덕에 뿌리에 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
쿠구구구구-!!
한참 흔들리던 거목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미..미친 저걸 쓰러트린 거야?!”
“뭔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놈 인건 확실하네.”
“삐!!”
삐삐의 경고음과 함께 순간 일행들의 위로 하나의 그림자가 일행들을 핥았다. 일행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위로 향했지만 그림자는 이미 일행들 앞을 막아선 후였다.
“...찾았다.”
승주의 몸을 가진 생명체가 천천히 굽혔던 무릎을 피며 마주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