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도시 - 7

“파이브와 라호는 여기에 있어.”
“에?? 아니, 형 혼자 어떻게 하게요. 저도 갈게요. 누나는 차에서...”
안다.
잘 인자하고 있다. 지금 자신의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많은 이들이 희생을 했는지.
내가 죽으면 그간 희생한 생명들에게 침을 뱉는 거와 같은 행위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간 계속 숨어 왔고 보호 받았었다. 하지만 이제의 나는, 아니 나는 예전부터 그런 답답한 건 딱 질색이었다.
늦게 온 사춘기라 그런가 아무것도 못하는 애 취급하는 건 질색이라고.
*
“크윽!”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나무에 파이브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가스탄을 쳐다봤다.
-...게임처럼 하면 되겠지?
예전에 종종 보육원 친구들이 했었던 게임을 구경했을 때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안전핀을 만졌다.
-분명 이걸 내부에 터트려서 그 놈에게 타격을 줄 생각이겠지.
“삐!”
파이브를 깨우듯 파이브 품에 있던 삐삐가 짖었다. 삐삐의 소리에 윤견도 그제야 파이브가 어떤 상황인지 확인했다.
“뭐..뭐야?! 제가 왜 여깄어??”
혼란스러운 윤견을 뒤로 정신을 차린 파이브의 눈앞에 윤견이 만든 틈이 보였다. 타오르는 불길에 인상을 찌푸리며 안전핀에 손가락을 넣었다.
그러나 놈이 눈치를 챈 건지 파이브를 향해 꽃들이 다가왔다.
“파이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윤견은 자신의 발판을 밟고 뛰어 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파이브에게 향하는 꽃들을 베며 파이브가 있는 나무 위에 안착했다.
“오...나이스.”
“나이스 같은 소리 하네, 멍청아! 왜 여기에 있어?!”
나무에 올라서자마자 윤견은 바로 파이브를 나무랐다. 바로 옆에 적이 있음에도.
“빨리 내려가! 아니, 라호야, 내려..”
“시끄러! 아야!”
윤견의 머리를 향해 파이브가 주먹을 날아왔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는 건 파이브였다. 반면 윤견은 얼빠진 얼굴로 아파하는 파이브를 바라봤다.
-...나 방금 맞은 거야? 제한테??
그러면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굳이 애 쓸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방금 파이브한테 꿀밤을 맞은 거다.
“...일단...일단 내려가자. 내려가서 가서..”
겨우 이성을 유지한 윤견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새의 입이 벌어지며 꽃과 잎들이 쏟아졌다.
“크윽!”
라호가 바로 나무를 기울이며 윤견과 파이브를 이동시켜 피했다. 윤견은 흔들리는 와중에 검을 꽂고 파이브를 잡았다.
“닥터!”
이동하는 와중에 파이브가 자신의 손에 있는 가스탄을 보였다. 가스탄을 보자마자 파이브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결국 파이브의 고집을 꺾지 못한 윤견이 한 발 물러섰다.
“하아..하아..좀 듣고 가지, 성격 참 급해...”
한편 가쁜 숨을 몰아쉬며 뭔가를 조립하던 민혁이 천천히 정류장 표지판을 붙잡고 일어섰다. 충주시를 떠나기 전 받은 것 중 하나인 신무기.
그것이 지금 민혁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사용..법은 분명..
필기까지 하며 배운 사용법에 따라 버튼을 누르자 기기가 일어나며 삑 소리를 냈다.
‘그 다음은 총 쏘는 거와 비슷해요. 대신...’
척.
어깨에 견착하고 천천히 새를 향해 겨누었다. 방아쇠도 있고 개머리판도 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각형 판이 기계음을 내며 총의 형태로 변했다.
“...후우.”
숨을 들이마시고 방아쇠를 당겼다.
파아앙-!!
소리처럼 거대한 반동이 민혁을 박차고 탄환을 밀었다. 위에 있던 윤견과 파이브의 귀에게 까지 들려 고개를 돌리자 이미 탄은 그들을 지나 새를 명중했다.
새의 피부를 뚫고 들어선 탄환 내부의 타이머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타이머는 점차 끝을 향해 달렸고 마침내 끝에 도달하자 작게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거대한 폭음이 새의 내부를 헤집으며 밖으로 터져 나왔다. 만약 저게 생명의 신체였다면 지금 터져 나온 건 오장육부였을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야! 파이브!!”
윤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전핀이 허공을 날았고 파이브의 팔이 앞으로 뻗어졌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가스탄을 할퀴며 가스탄이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가스탄이 녹색 몸뚱어리 내부를 부딪치며 들어갔다. 이제 파이브와 윤견의 눈에도 보이지 않은 깊이까지 들어간 가스탄이 머금었던 가스를 내뿜었다.
거대한 초록 몸뚱어리의 틈에서 연보라색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라호야!"
이제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니 버럭 소리를 지르자 라호가 곧바로 나무를 줄였다. 한편 틈에서 계속 가시를 뱉던 새의 형태가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거대한 날개가 버둥버둥 움직였다.
"효..효과가 있어!"
윤견의 곁에서 나무를 붙잡고 있던 파이브가 환호의 비명을 질렀다.
"그래...놈도 콧구멍은 있을 테니깐."
한참을 내려가자 드디어 반가운 육지에 발을 올린 윤견과 파이브는 민혁과 라호를 챙기고 얼른 차를 향해 달려갔다.
도망치는 일행들 뒤로 새가 몸부림을 치며 사방에 줄기를 채찍처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콰앙-!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유리가 깨지고 도로가 갈라졌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
"닥터가 가장 뒤 거든!"
겨우 차가 있는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민혁을 제외한 세명은 차를 덮은 식물을 잡아 뜯고는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섰다.
부상당한 민혁은 뒤에 태우고 이번에는 파이브가 조수석에 그리고 윤견이 운전석에 앉았다.
"닥터 운전할 줄 알지?"
"면허 있어."
"한 적은 있어?"
"....."
더듬더듬 떠오른 기억과 그간 민혁의 어깨넘어로 봤던 것들을 조합해 차에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았다.
평소와 달리 불안하게 흔들리던 차가 벽을 향해 전진했다.
"닥터! 후진!"
"아..알고 있어!"
급하게 밟은 브레이크에 라호와 민혁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기어를 바꾸고 후진하는 차에 두 몸은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았다.
건물에서 빠져나온 차는 바퀴를 돌리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고 차는 멈췄다.
"...형?"
"...사람이 있었어."
"어디에!"
그간 잊고 있던 지원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파이브가 물었다. 윤견도 바로 지원과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건물의 위치를 떠올리며 핸들을 돌렸다.
"민혁아 아직 괜찮지??"
"무..물론입죠!"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난리치고 있는 새의 방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동이 점차 커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도중 천공을 뒤흔들 비명소리가 울렸다. 비명소리가 하늘을 덮은 후 새의 형태가 가라앉는 것이 백미러를 통해 보였다.
"죽...죽은 거야?"
파이브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마도?"
라호가 확신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윤견 역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 여유와 시간을 얻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보단 덜 덜컹거리는 자동차는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너는 여기에 가만히 있어.'
"어."
윤견만 홀로 내려 건물에 들어갔지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윤견 홀로 건물 밖을 나갔다.
"없어?"
"...어. 잠만 여깄어봐."
다급한 모습이 영역한 윤견은 그대로 건물 주변을 살피다 멀지 않은 곳에 지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곱게 누워있는 지원의 뒤로 보인 핏자국.
왜 이렇게 됐는 지 알 수 있는 명치에 있는 흔적. 그와 반대로 살포기 감은 눈이나 소중히 포개어진 두 손 그리고...
"...닥터 탓이 아니야."
어느새 뒤따라온 파이브가 조심히 말했다.
"그러냐."
"...어? 근데 저거..숟가락 아냐?"
파이브가 지원의 포개진 손 아래에 깔려 있는 숟가락을 가리켰다. 윤견은 쓸쓸히 숟가락에 왜곡된 자신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먼저 온 조문객이 주고 갔나봐."
“삐...”
연보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있는 중심 초록 식물들의 잔해가 건물이며 도로를 더럽혔다. 식물 더미 위로 새 한 마리가 고통스러운지 홀로 애처롭게 몸을 브르르 떨고 있다.
찬란했던 깃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고 분노와 통탄의 눈빛도 서글픔이 묻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내 두 얼굴이 떠오르며 다시 분노로 불타올랐다.
분노라는 연료가 타오르며 새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려하자 어디선가 날아온 무언가가 새의 날개를 관통했다.
또 다시 가녀린 비명이 목 밖으로 나오자 그 비명을 짓밟듯 한 발소리가 새를 향해 다가갔다. 전보다 심하게 떨리는 시선으로 발소리의 주인을 훑었다.
반달의 인형이 새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스 때문인지 아님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 때문인지 한 발짝 떼는 것에도 휘청거렸다.
그것의 손에는 포크 하나가 들려 있었지만 정작 새의 눈에는 얼굴에 절반가량 차지하는 눈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삐..”
종을 초월한 소통. 언어도 외모도 식습관도 모두 다른 두 이계의 종의 소통.
분노와 슬픔.
새도 반달의 인형이 왜 여기에 있고 자신을 공격했는지 이해했다. 새는 몸을 비틀며 지금 낼 수 있는 힘을 끌어내려 했지만 입에 피만 토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척.
그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반달의 인형이 포크를 들어올렸다. 새는 몸부림을 쳤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고 울부짖었지만 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포크의 끝이 그대로 떨어지며 새의 목을 찔렀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포크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후우...”
볼에 묻은 흙을 닦아내며 파이브가 기지개를 폈다. 그녀의 양 옆으로 라호와 윤견도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도와줘서 고마워. 너무 시간을 썼어, 차에 들어가. 라호도 기도 끝났으면 들어가.”
급히 만들어진 지원의 묘 앞에서 파이브와 라호가 차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윤견도 묘비 앞에 놓인 숟가락을 괜스레 만지고는 묵념하고 일행들을 따랐다.
“..닥터 안전 운전해.”
“그러다 다 죽어. 빨리 벗어나야지.”
“아니, 그러다 교통사고로 엑!”
또 다시 힘차게 밟은 엑셀에 차가 급히 나아갔다.
“어? 벽이 사라졌어.”
조금 익숙해진 파이브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파이브도 이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따라 주변을 살폈다.
덕분에 자동차는 빠르게 녹색 도시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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