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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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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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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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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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의 각오

DUMMY

"...그래도 목숨을 소중히 해줘. 목숨은 소중한 거니깐."


조금이나마 괜찮게 들리는 말을 뱉으며 겨우 말을 끝냈다.


-와...나 진짜 말 못하는 구나..


자신이 뱉은 말에 자신이 경악한 사이 파이브의 고개가 밤하늘을 훑었다. 반대로 윤견의 시선은 아래로 향했다.


“닥터는?”

“어?”


깜짝 놀란 윤견이 파이브를 쳐다봤다.


“닥터의 목숨은 안 소중해? 다른 사람들은? 문하 언니 같은 나를 지켜줬던 사람들은? 어차피 내가 되돌리면 살아남는 사람들이니깐?”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히 윤견도 저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니. 아니, 어쩌면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움직였던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체스말처럼.


수도 많이 일어나는 체크를 피해 말을 하나 둘씩 버리고 거대한 체스판을 돌아다니며 한 번의 체크메이트를 노리는 여행.


“...나 부산까지 절대로 능력 쓰지 않을 거야. 그간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내게 있어서 목숨은 다 똑같아.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안 살리지 않을 거라고.”


파이브가 처음으로 자신의 각오를 보였다. 수줍게 내민 파이브의 각오를 윤견은 똑바로 마주했다.


“민혁 오빠도, 라호도 그리고 닥터가 죽어도 안 돌아갈 거야.”


차갑다면 차갑고 뜨겁다면 뜨거운 파이브의 목소리가 지나가고 찬바람이 지나갔다.


“그러니깐...나도 싸울 거야. 나 때문에 죽지 마. 끝까지 나를 지켜줘. 나도 닥터를 지켜줄 거니깐.”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파이브의 눈이 어느새 윤견의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눈에서 예전의 파이브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죽어도 다 같이 죽는 거야.”


정말 찾을 수가 없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쉬자 용의 연기처럼 입김이 길게 뻗어갔다.


“나~참. 말이나 못하면...그래서 너는 어떻게 싸울 건데? 그 팔꿈치로?”

“처음 치고는 괜찮지 않았어? 닥터를 바로 쓰러트릴 정도였는데.”


파이브가 자신의 팔꿈치를 장난스래 휘둘렀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윤견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엘보 든, 뭐든 앞으로 잘 부탁할 게."

"히히, 나도 무리는 안 할 거니깐 걱정마셔."

"그럼 보초 잘하고, 난 잔다. 누구 덕분에 잠이 깼지만."


운견도 농담이 섞인 말을 남기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누워 눈을 붙이고 다시 떴을 때에는 파이브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일어나 있었다.


라호는 윤견이 일어나자 간단하게 진찰을 하고는 작은 씨앗 하나를 건냈다.


"이것도 씹지 말고 삼키세요."

"물이랑 같이 먹으면 안 돼? 물 없이 먹으려니 좀 힘들던데."

"아..안 돼요! 그러다 식도에 뿌리가 내릴 수 있어요."

"오...오우."


라호의 경고 덕분에 잠시 망설였지만 안 먹을 수도 없으니 삼켰다.


한편 옆구리에 매고 있던 식물 붕대를 푼 민혁이 자신의 상처를 살폈다. 확실히 전에 비해 많이 아문 것이 눈에 보였다.


"괜찮냐?"

"네,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일상생활은 가능할 듯해요."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오늘까지 내가 운전할게."

"아...아뇨, 그게 더 몸에 무리가..."


민혁의 말에 윤견은 웃었지만 이상하게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나..나중에 저랑 같이 운전연수 하시죠."


이제 충분히 윤견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민혁이 말하자 윤견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나 말고 먼저 파이브부터 가르쳐야겠다."

"네? 파이브 운전해요?"

"아니."


윤견이 흘긋 민혁의 옆에 있는 총에 눈빛을 보냈다. 윤견의 눈빛에 민혁이 흠칫 놀라 총을 잡아 올렸다.


"그냥 적당한 거 알려줘, 장전이나 견착, 조준 정도?"

"...그 정도면 알려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민혁은 말을 쉽게 잊지 못하고 주저했다. 당시 처음 살인을 했을 때, 기랑을 지키기 위해 처음 살인을 했던 그 감정을 저 아이가 느껴야 한다니.


민혁이 윤견의 눈빛을 읽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윤견이 민혁의 눈을 읽었다.


"그냥 자기 몸 지키는 정도면 충분해. 누굴 죽이는 게 아니라."

"음...일단 알겠어요. 군대 조교 스타일로 확실히 알려 줄게요."

"그럼 나야 고맙고, 아! 엘보 조심하고."


뜬금없이 웬 엘보냐는 민혁의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 파이브를 깨웠다. 흔들며 깨우자 앓는 소리와 함께 파이브의 눈이 슬며시 올라갔다.


"밥 먹고 차에서 자, 차에서."


좀비처럼 일어난 파이브는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밥은?"

"이제 해야지."


당당하게 말하는 윤견의 입에 순간 엘보를 날리려던 파이브였다. 윤견과 라호가 간단하게 요리를 끝내고 일행들 앞에 음식을 내왔다.


각자 접시에 음식을 비우며 하나 둘 떠날 채비를 끝냈다. 일행들이 밖을 나가자 아침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조용했으면 좋겠네요."


아침 해를 보며 라호가 웃으며 말했다. 라호가 이 말은 한 지 정확히 4시간 34분 후 일행들이 타고 있는 차를 향해 두꺼운 뿔을 가진 소가 달려들었다.


“크윽!!”


이를 악 문 민혁이 핸들을 돌려 피했지만 그대로 나무를 들이박았다. 거친 충격에 다들 곧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윤견은 반사적으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차를 습격한 괴물을 살폈다.


코끼리에 버금가는 덩치, 가죽을 뚫고 보이는 단단한 근육, 그리고 머리에 우람하게 있는 뿔까지.


-...평범한 소는 아니군.


“므마아아!!


생전 처음 듣는 울음소리와 함께 무지막지하게 돌진했다.

윤견은 마치 투우하듯 부드럽게 옆으로 피하고는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놈의 속도와 근육 때문에 검은 박히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썩을!”

-아작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


놈의 앞다리가 땅을 디디며 윤견 쪽으로 뿔을 휘둘렀다. 윤견은 뒤로 몸을 날려 피하고는 다시 앞으로 몸을 던져 뿔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놈의 얼굴에 흑도를 휘둘렀다.


촤악-!


흑도가 지나가며 초록 피를 흩뿌렸다.


-얇아!


“므아아!!!”


고통에 놈이 몸부림쳤을 뿐인데도 땅이 울렸다. 놈의 앞다리가 올라가더니 그대로 윤견을 향해 낙화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


윤견은 가뿐히 피하자 놈은 앞다리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그대로 윤견을 향해 돌진했다.


{온 – 착화(着火)}


그에 맞서듯 레버가 거칠게 올라서며 푸른 화염이 타올랐다. 흡 하는 소리와 함께 윤견의 흑도가 아래로 움직였다. 그와 반대로 놈의 뿔은 위로 솟아났다.


파아앙-!


거친 파열음과 함께 놈의 뿔이 산산 조각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반대로 윤견은 놈의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갔다.


바닥을 한참이나 구른 윤견이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부서진 뿔 조각을 짓밟으며 놈의 두꺼운 다리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타앙-!


그러나 갑작스런 총성과 함께 날아온 총알 한 발이 놈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졌다. 덕분에 놈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 쪽으로 향했다.


“엑?”


언제 챙겼는지 권총을 손에 쥔 파이브가 한껏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바보가!!”


놈의 방향이 파이브로 바뀌고는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윤견도 바로 뒤따라갔지만 이미 벌어진 거리와 놈의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크윽!”


민혁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차에서 내려 총을 겨누었지만 그보다 먼저 그의 어깨에서 삐삐가 차의 지붕으로 날아가고는 파이브의 앞에 뛰어들었다.


작은 족제비로 보이는 생물에 개입에 놀랍게도 놈의 발이 멈췄다.


그 어색한 광경에 윤견은 낯설지 않았다.


-뭐지? 삐삐를 보고 멈춘 건가?...왜?


아직 의문이 풀리진 않았지만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가만히 있는 놈이 흥분해 뭔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놈이 언제 움직일지도 몰라 마냥 천천히 갈 수도 없는 노릇.


그런 윤견의 걱정을 덜어주듯 자동차 넘어 익숙한 막대기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시드 플래닛}


놈의 발이 멈춘 사이 양 옆에서 솟아난 줄기들이 놈의 몸을 감았다.


“므오오!!”


역시나 놈도 몸부림을 치며 줄기들을 힘으로 끊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줄기들은 제 역할을 완료했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윤견이 검 끝을 아래로 돌리며 그대로 놈의 목에 찔렀다.


흑도가 그대로 목을 관통하자 끔찍한 비명과 함께 거대한 몸뚱어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놈의 생기 잃은 눈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뱉은 윤견이 검을 뽑자 초록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리고 검도 집어넣지 않은 채로 파이브에게 경보로 다가가 꿀밤을 날렸다.


“아야!”

“멍청아! 생각 좀 하고 쏴!”

“아씨! 당연히 총 맞으면 죽을 줄 알았지!”


투덜대는 파이브를 뒤로 하고 라호에게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손짓에 등 뒤에서는 더욱 날카로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때? 괜찮아?”

“아..네, 잠깐 충격 때문에 놀랐나 봐요.”


민혁이 자신의 옆구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차 상태 물어본 건데.

“다행이네. 차는?”

“차도 문제없어요. 그렇게 심각하게 박은 건 아니라.”


윤견의 발걸음은 마지막으로 삐삐에게 향했다.


“삐?”


그래도 파이브를 지켜준 것과 다름이 없으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윤견의 손길에 길고양이처럼 그릉 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은 정말 의문만 더욱 키울 뿐이었다.


-놈은 왜 멈춘 걸지? 이렇게 귀여운데...어?


순간 흐릿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소가 아닌 사슴이었다는 점 뿐.


두 상황 모두 삐삐가 놈들의 앞에 있었고 둘 모두 발을 멈췄다.


“형님 갑시다~.”


나무에서 차를 떼어낸 민혁이 부르자 윤견은 작게 숨을 뱉고는 삐삐를 잡고 차로 향했다.

다시 움직인 차는 그렇게 한참을 달리며 중간에 멈춰 식사시간도 가지고 다시 달리며 해가 지고서야 멈췄다.


그저 밤이라서가 아닌 무언가가 차의 앞을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개처럼 흔들리는 망태기를 둘러쌓고 있는 듯한 육체와 뜨겁게 타오르는 두 눈. 그리고 심장에 위치하는 횃불.


눈 내리던 날 차를 막았다 사라진, 파이브의 이름을 입에 담았던 그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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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그의 이야기 25.04.25 2 0 11쪽
359 그들의 이야기 25.04.23 7 0 11쪽
358 마지막 수단 - 3 25.04.21 6 0 11쪽
357 개 같은 희망 25.04.19 6 0 11쪽
356 마지막 수단 - 2 25.04.15 7 0 11쪽
355 검은 사람들 25.04.13 6 0 11쪽
354 마지막 수단 25.04.08 7 0 11쪽
353 검은 존재 - 3 25.04.06 9 0 11쪽
352 검은 존재 - 2 25.04.03 7 0 11쪽
351 검은 존재 25.04.01 8 0 11쪽
350 검은 추억 속에서 25.03.30 8 0 11쪽
349 검은 비 - 2 25.03.26 6 0 11쪽
348 검은 비 25.03.24 6 0 11쪽
347 세상 속 2와 5 25.03.21 7 0 11쪽
346 대장 - 3 25.03.19 7 0 11쪽
345 대장 - 2 25.03.17 7 0 11쪽
344 대장 25.03.14 7 0 11쪽
343 괴물 - 2 25.03.12 7 0 11쪽
342 괴물 25.03.10 7 0 11쪽
341 가시 25.03.07 9 0 11쪽
340 검은 연기 - 2 25.03.05 11 0 11쪽
339 검은 연기 25.03.03 9 0 11쪽
338 천국과 천사 - 6 25.02.28 7 0 11쪽
337 천국과 천사 - 5 25.02.25 12 0 11쪽
336 천국과 천사 - 4 25.02.23 9 0 11쪽
335 천국과 천사 - 3 25.02.21 11 0 11쪽
334 천국과 천사 - 2 25.02.18 10 0 11쪽
333 천국과 천사 25.02.16 10 0 11쪽
332 천국 25.02.13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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