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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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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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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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상

DUMMY

윤견의 말에 민혁과 라호도 파이브의 머리로 시선을 보냈다. 두 사람은 긴가민가한지 서로의 눈치를 살폈지만 윤견은 아니었다. 확신하듯 파이브의 흰색 머리를 만졌다.


"능력을 쓴 거지?"


윤견의 물음에 파이브의 눈줄기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파이브의 눈물 때문인지 아니면 능력을 썼다는 사실 때문인지 윤견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왜...아니, 어쩌다가 쓴 거야 응? 언제 돌아간 거야 응? 저 소리와 관련이 있는 거지?"


하지만 파이브의 귀에는 윤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윤견보다 몇 십배는 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닥..닥터가. 닥터가...."


파이브가 겨우 입을 뗐지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고작 몇 마디만 뱉었다. 하지만 모든 일행들은 단번에 이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윤견에게 시선이 모였다.


"후우..."


윤견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눈을 감고는 천천히 떴다. 소녀가 당당히 말했던 각오가 한순간에 무너트린 광경이 얼마나 참담할지 윤견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파이브 일단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울고 있는 파이브를 토닥이고는 민햑과 라호에게 떠날 채비를 부탁했다. 민혁과 라호도 아무 말 없이 서둘러 짐을 챙겨 차로 향했다.

파이브도 어느덧 진정됐는지 눈물이 그쳤다.


-묻고 싶은게 많지만...지금은 무리겠지.


한 밤 중에 차에 오른 일행들은 최대한 소리에서 멀어졌다.


바퀴가 계속 움직이는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일행은 결국 몇 십 분을 더 달리고서 가까운 폐가에 멈춰 부족한 잠을 채웠다.


그러나 죽음을 피한 윤견과 죽음을 목격한 파이브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죽음.


분명 지겹도록 보고 느낀 것이지만 이상토록 오늘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 이런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고 각오했다.


아니, 오히려 여기까지 오는 대에 한 번 밖에 안 쓴 것에 윤견은 기적이라 생각했다.


-왔었어야 할 일이었어...각오도 했었잖아.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죽음을 피했음에도 안도되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파이브가 능력을 쓴 것에 고맙지도 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 지금 윤견을 붙잡고 있다.


겨우 잠에 든 윤견의 눈앞에 수많은 그림자가 들어선다. 어떤 그림자는 팔 한 쪽이 없고, 어떤 그림자는 몸에 구멍이 나있었다.


몰려오는 공포에 윤견은 공포를 숨기듯 검을 거칠게 뽑았다.


[다가오지 마!]


엄중하게 말하려 했지만 입이 막힌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윤견의 앞에 한 그림자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도깨비 길드의 부 길드장 혜인이 윤견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시작으로 그와 함께 거인을 막으려했던 동료들, 여기까지 오면서 떠나보낸 모든 이들이 그림자를 벗어 던졌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호흡 역시 심장을 따라 빨라졌다.


잘 못을 들킨 아이처럼 시선은 흔들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변명하듯 입이 뻐끔뻐끔 움직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비겁해.”


혜인이 예전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가슴에 대못이 박힌 기분이었다.


“비겁해.”


이번에는 그의 선배들이 다음으로 다른 길드의 헌터들이, 군인들이, 시민들이. 본 모습으로 돌아온 오산시의 하성 헌터도, 주리도 지원도 그리고.


“비겁하다, 견아.”


문하도 깨끗한 미소를 지은 채로 평소의 목소리 톤으로 말했다.


[...뭐가. 뭔 소리야.]


“모르는 척 하지 마.”


뒤에서 들려오는 귀를 의심케 하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윤견이 서 있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왜 이런 소리를 듣고 있는 지.”


누구는 영광스럽게, 누군가는 비통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이 모여 입을 모아 말했다.


여러 목소리가 섞인 말뚝이 윤견의 심장에 처박혔다. 윤견은 피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징벌을 받는 죄수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형...형!"


인상을 팍 쓰며 끙끙거리는 윤견을 보고 라호가 다급히 윤견을 깨웠다. 라호의 외침에 죄수도 드디어 형벌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웁!"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아무런 것도 식도를 타고 올라오진 않았다.


"형?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걱정스러운 라호의 물음에 윤견은 겨우 손을 뗐지만 고개만 저었다. 분명 잠을 잤지만 더욱 퀭한 윤견의 눈이 주변을 살폈다.


"다..다른 애들은?"

"민혁이 형은 지금 밥 준비하고 있고 누나는...차 안에 있어요."


윤견은 마른 손으로 땀을 닦아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호의 걱정 어린 시선도 따라왔지만 윤견이 억지로 웃으며 라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가방으로 향해 물통을 꺼내 목을 축였다. 단숨에 절반가량 사라진 토해낸 물통을 가방에 박아 넣고 가까운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한숨소리에 반응하는 개처럼 라호의 시선이 다시 따라오자 아까처럼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 형님 일어나셨어요?"


다른 방에서 요리를 하던 민혁이 큰 냄비에 함께 나타났다. 냄비 뚜껑을 열자 매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슬슬 밥 먹죠. 파이브 불러 올 게요."

"아냐, 요리도 너 혼자 했는데, 내가 갈 게."


밖으로 나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차로 향하자 뒷좌석에 앉아 팔찌를 만지작 거리는 파이브가 있었다.


똑 똑.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자 파이브 옆에 있던 삐삐만 고개를 돌렸다. 결국 아무런 반응도 받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혼자 청승맞게 뭐해?"

"...그냥 있어.."


엉덩이로 삐삐를 밀며 자연스레 파이브 옆에 앉았다.


“어제...그 때 어떤 상황이었어?”


오직 이 세계에서 파이브만 기지고 있는 기억을 조심히 물었다. 파이브는 자신을 다리를 올려 껴안고는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잠시 조그마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덕분에 그 상황을 대략 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때의 파이브는 윤견에 의해 민혁과 라호를 데리고 왔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반 토막이 난 윤견의 시체였다. 그리고 놈은 곧바로 일행들을 향해 달려들었을 때 파이브가 능력을 쓴 것이었다.


만약 파이브가 조금이라도 판단이 늦었으면...이 여행은 그대로 끝났을 것이다.


“...내가 뭘 한 걸까?”

“날 살렸지.”

“...맞아. 닥터를 살렸어...다른 사람들은 그저 넘어 갔었는데.”


윤견은 짧게 콧방귀를 뀌고는 파이브의 뒤통수를 손날로 툭툭 때렸다.


“건방 떨지 마.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어. 네가 부산까지 도착해 시간을 돌린다 해도 못 살리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야.”


한 때 윤견도 이와 비슷한 상태였던 적이 있었다. 사람을 구할 힘이 있음에도 구하지 못한 이들을 보며 홀로 늪에 빠졌었다. 그 때마다 길드의 동료들이...


‘비겁해.’


힘없이 움직이던 윤견의 손날이 멈췄다. 파이브도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윤견을 쳐다봤다.


“...닥터?”

“어? 아..그..암튼 너무 의미부여 하지 말라고. 다른 건 신경 쓰지 마, 넌 그저 날 구한 것뿐이야. 내가 널 구했던 것처럼. 머리 예쁘게 염색 잘 됐다, 야.”


윤견이 파이브의 머리를 헝클이고는 차에서 나왔다.


“그만 궁상 떨고 밥 먹게 나와.”

“아이..씨.”


파이브는 손으로 머리를 대충 손질하고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윤견은 피식 웃고는 먼저 건물로 향했다. 하지만 파이브는 순간 윤견이 지었던 표정을 봤었다.


“...지도 궁상 떨고 있으면서.”


작게 중얼거리고는 양 손으로 자신의 뺨을 치고서 윤견의 뒤를 따라갔다. 앞장서며 걸어가던 윤견의 표정은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


숙소로 돌아온 둘은 아무 말 없이 식사하고는 바로 떠날 채비를 끝냈다. 민혁이 일부러 목소리 톤을 올리며 활기차게 출발을 알리고 차를 몰았다.

윤견은 눈을 감고 아직도 생생한 꿈을 떠올렸다.


비겁하다.


비수로 박힌 말들을 천천히 뽑아 살폈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잉? 갑자기 왜 웃어요?”


옆자리에 있던 민혁이 물었다.


“아~. 그냥 꿈이 좀 생생해서.”


윤견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고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주물렀다. 주무르던 손은 뒤에서 느껴진 발차기에 금방 풀렸다.


“? 왜?”


고개를 돌리자 어딘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 파이브가 고개를 휙 돌렸다.


“잘 못 찬 거야.”


누가 봐도 빈 말이었지만 윤견은 딱히 더 매달리지 않고 넘어갔다. 다행히 파이브는 평소보다는 좀 조용했지만 나아진 모습으로 요리를 도왔다.


조금이나마 안도하며 근처 의자에 걸터앉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보이는 건 꿈의 잔해였다. 잔해에서 도망치듯 눈을 부릅뜨고는 엉덩이를 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 있어?”


감자를 으깨고 있는 파이브가 넌지시 묻자 고개만 대충 저으며 넘어갔다. 순간 보인 파이브의 눈은 방금까지 윤견이 가졌던 눈과 비슷했다.


그러나 파이브 말고도 민혁이나 라호도 같은 눈으로 윤견을 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분량 조절 실패로 글이 좀 적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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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공존 하는 마을 24.07.15 8 0 11쪽
242 추위를 피해 - 2 24.07.13 9 0 11쪽
241 추위를 피해 24.07.10 10 0 11쪽
240 낙동강 건너기 - 3 24.07.08 15 0 12쪽
239 낙동강 건너기 - 2 24.07.06 12 0 11쪽
238 살아남은 자들 24.07.03 11 0 11쪽
237 이강후 24.07.01 11 0 11쪽
236 낙동강 건너기 24.06.29 13 0 11쪽
235 전역식 24.06.27 11 0 11쪽
234 전역날 24.06.25 10 0 11쪽
233 바퀴벌레 24.06.22 15 0 11쪽
232 생존확률 24.06.21 12 0 11쪽
231 흑백 도시 - 4 24.06.19 14 0 11쪽
230 흑백 도시 - 3 24.06.17 13 0 11쪽
229 흑백 도시 - 2 24.06.15 22 0 11쪽
228 흑백 도시 24.06.12 14 0 11쪽
227 검은 상자 - 3 24.06.10 14 0 11쪽
226 검은 상자 - 2 24.06.09 23 0 11쪽
225 검은 상자 24.06.07 18 0 11쪽
224 악몽 - 2 24.06.05 12 0 11쪽
223 악몽 24.06.03 14 0 11쪽
222 새하얀 운동장 24.06.01 16 0 11쪽
221 탈영병 24.05.30 15 0 11쪽
220 비 오는 밤 24.05.28 14 0 11쪽
» 궁상 24.05.26 13 0 9쪽
218 처형자 - 2 24.05.25 19 0 11쪽
217 처형자 24.05.23 19 0 11쪽
216 파이브의 각오 24.05.21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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