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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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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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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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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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밤

DUMMY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에 ‘상촌성당’ 밖으로 나간 윤견이 계단을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근처 작은 조약돌 하나를 주웠다.


투박한 윤견의 손에서 떠난 조약돌이 위로 올라갔다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탁.


투박한 손은 조약돌을 받고는 다시 위로 던졌다.


“형님.”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굳이 돌아보지 않고 떨어지는 조약돌을 붙잡았다. 민혁은 윤견 보다 한 칸 위 계단에 앉고는 컵 한 잔을 내밀었다.


“땡큐. 근데 뭐냐?”

“몸에 독소 빼는 차래요. 해독 주스라고 생각하세요.”


잔을 건네받은 향을 맡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해독 주사가 다 그렇죠, 뭐.”

“애들은?”

“둘이서 식사 한 번 해보겠다내요. 다 컸다, 다 컸어.”


민혁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잔을 기울였다.


“...욱!”

“뱉으면 안 돼요. 몸에 좋은 거니깐 삼키세요.”


한참 해독 주스와 씨름하던 윤견은 겨우 삼키고 헛구역질을 보였다. 민혁이 키득키득 웃고는 등을 기대며 자연스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도 어디 아픈 곳 있죠?”

“우...어?”


갑작스런 말에 윤견이 헛구역질 하다 멈추고 민혁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빈 잔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무래도 라호도 민혁처럼 뭔가를 본 게 있는 모양이었다.


“이것들이...괜찮아. 무슨 뒷방 늙은이도 아니고.”

“아니, 근데 평소와 표정이 좀 어둡잖아!”

“어둡긴, 뭐가 어두워! 평소와 같거든!”


거칠게 잔을 휘둘러 남아 있는 주스를 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어? 정~말 괜찮거든!?”

“아냐...형님 뭔가 힘들어 보여.”


익살스럽게 말하던 윤견을 향해 민혁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스레 넘기려던 윤견도 순간 진지하게 자신을 살폈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성당으로 돌아가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이것들이 지켜보고 있었구만.


“누..누나 여기 감..옥수수.”


특히 라호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어색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윤견은 작게 한숨 쉬고 모른 척 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살폈다.


이미 몇 번이나 꾼 악몽이다. 처음 접한 악몽도 아니고 유치원생도 아니다. 고작 악몽 때문에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남은 건 하나다.


죽음을 피했다는.


“밥 먹어~.”


생각을 깨는 파이브의 목소리에 스르르 눈을 뜨자 자신에게 오는 파이브가 보였다.


파이브는 콧방귀와 함께 그릇을 건넸다. 윤견도 그릇을 잡으려던 순간 창 밖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우왁!”


놀란 파이브가 그릇을 놓쳤지만 가까스로 윤견이 잡았다. 천둥소리 다음으로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성당을 덮쳤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평범한 비처럼 보였다.


“뭐...눈 보다는 낫지.”


무섭도록 쏟아지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식사를 시작했다. 한참을 어색한 공기 속에서 음식들을 꾸역꾸역 넘기자 금방 취침할 시간까지 흘러갔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구만~."


아직도 쏟아지는 비를 보며 민혁이 고개를 저었다. 방금 막 순서를 정하고 온 라호도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우비를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어디가냐는 민혁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씨앗을 흔들었다.


"..저 놈도 은근 변태끼가 있어."


밖으로 나선 라호를 보며 윤견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민혁과 파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비를 치는 빗줄기를 뚫고 손으로 부드러운 흙을 파내고 해바라기 씨 크기의 씨앗들을 묻었다. 손에 묻은 흙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저 멀리 무언가가 비를 맞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나오려던 비명을 붙잡고 나무로 겨누었다. 거센 비보라에 제대로 식별이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자신보다 조금 더 큰 크기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차팍.


그것의 윤곽이 흔들리더니 발소리를 냈다. 라호도 즉시 나무를 움직이려던 찰나 그것이 부드럽게 자리에 쓰러졌다.


"어? 어...라?"


갑작스런 상황에 라호도 눈이 흔들렸다.


-어..어쩌지?


발을 잠시 동동 구르더니 그대로 성당에 들어가 상황을 알리며 윤견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가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어...군용 우비?"


청록색 우비를 뒤집어 쓴 남성이었다. 윤견과 라호는 서로의 눈을 보고는 남성을 업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일행들도 갑작스레 등장한 남성에 몰려들었다.


여러 입이 움직이며 남성의 정체를 추리했다.


30대로 보인다. 착하게 생긴 걸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다. 이곳에 있던 생존자다. 아니다, 다른 곳에서 도망치다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등등.


여러 가설들이 만들어졌다. 한편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가설을 한 라호가 의자에 누워 있는 남성의 상태를 확인했다.


"음...딱히 상처나 불편해 보이는 것도 없고...그냥 못 먹어서 쓰러진 거 같아요.“

“...일단 감자 하나만 손질 해놔.”

“먹이게?”

“기절한 상태에서 괜히 밀어 넣어서 기도 막을 수 있으니깐. 일어날 때 까지 기다려. 그리고 밧줄 차에 있나?”

“묶어 놓으려고요?”


윤견의 차가운 눈이 천천히 남성을 훑었다.


“뭐, 일단 뭐하는 놈인지 모르니깐.”


민혁이 차에서 밧줄을 가져오자 조심스레 남성의 손과 발을 묶었다. 조심히 결박하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남성은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아 순간 죽은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남성의 결박이 끝나자 일행들은 불침번인 파이브를 제외하고는 하나 둘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뭔 일 있으면 소리 질러.”

“내가 먼저 설까?”

“총 난사 하지 마.”


시어미니들의 잔소리에 파이브가 지겹다는 듯이 손을 훠이 저었다.


시어머니들이 하나 둘 잠들자 홀로 남은 파이브는 권총을 꽉 쥐고는 밖 한 번, 그리고 남성 한 번씩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으...”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을 깨기 위해 괜히 밖에도 나가보고 권총을 뽑으며 민혁이 알려준 자세를 복습하는 등 노력을 선보이던 중 자연스레 어둠 속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이 남성의 눈이라는 건 금방 깨달았지만 이미 입에서는 비명이 나오고 있었다.


비명 소리에 화들짝 일어난 일행들. 남성도 못지않게 놀랐는지 움직이려다 결박된 몸 때문에 바닥에 떨어졌다.


남성의 입은 막지 않았음에도 남성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일행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결국 윤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쓰러져 있던 걸 이 아이가 발견했습니다."


고글을 뒤늦게 쓰고 온 라호가 쭈뼛 고개를 숙이자 남성도 따라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아니, 끄덕이지 말고 말을 하라고..


"당신은 누구고 어디로 가던 길이었죠?"


민혁이 간지러운 구석을 시원하게 긁었다. 그러나 입을 우물쭈물하며 주저하자 윤견이 슬쩍 앞으로 가 검을 보였다.


"저..저는 그저 집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드디어 한 마디 내뱉는 남성의 말에 윤견과 민혁은 동시에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역시...우비도 어딘가 익숙하더라니...군인이시군요."


남성은 흠칫 놀라더니 덜덜 떠는 시선으로 일행들을 살폈다. 그 모습에 윤견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검을 잡고 있는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누가봐도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윤견이 서서히 뾰족한 살기를 뽐내자 남성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빨리 얘기 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윤견의 목소리가 흐르자 남성이 묶인 와중에도 몸을 움직여 상체를 세우며 입을 열었다.


"그게...저..군인 맞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좀...뭐랄까 들켰다 라는 듯한 반응이던데요?"


민혁이 남성 옆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제 빨리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실은 도..도망을..탈영을 했습니다."


힘겹게 말하는 남성과 달리 민혁은 긴장한 것이 민망함에 한숨을 쉬었다.


"이미 나라가 이런 꼴인데 탈영해봤자 뭔 큰 죄라고..."


민혁의 말에 파이브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로 드는 무기만 다를 뿐 같이 뭔가를 지켰던 자로서 윤견은 남성의 심정을 알 법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죄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에 남성의 성격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라호가 사람 보는 눈은 있네. 뭐,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믿기에는 힘들지만.


윤견이 천천히 흑도를 뽑자 남성의 얼굴에 핏빛이 사라지며 입을 열려던 순간 그보다 빠르게 흑도가 남성의 결박을 베었다.


그리고 손짓을 보내자 라호가 남성에게 간단하게 구운 감자를 건넸다.


남성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곧바로 감자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는 허겁지겁 감자를 베어물었다,


"천천히 드세요. 목 막혀요."


라호가 언제 준비했는지 김이 모락모락 하는 컵 한 잔도 남성에게 건넸다.


"고..고맙습니다."


아직 감자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잔을 기울이며 감자와 함께 넘겼다.


그렇게 감자와 차는 금세 사라졌다. 고작 감자 한 개와 차 한 잔이었음에도 남성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움이 제대로 나타나 있었다.


이 감자와 한 잔의 차가 그에게 있어 어느정도의 식사였는지 엿 볼 수 있었다. 배를 채워서 그런지 남성의 경계심이 풀렸다.


"제 이름은 '이강후'입니다. 계급은...병장입니다."

"아까 집으로 가는 중이라 하셨죠?"


다시 감자를 구워서 온 라호가 물었다.


“네.”

“댁이 어디신데?”

“‘경북 구미기 도개면’입니다.”


민혁이 지도책을 건네자 강후는 능숙하게 ‘도개 중학교’ 근처에 손가락을 짚었다. 지금 일행들이 있는 상촌성당에서 나름 멀지 않은 거리였다.


게다가 목적시인 구미시 광평까지 가는 길이기도 했지만 도개면은 낙동강 건너편에 있었다.


“거기까지 걸어갈 생각입니까?”


윤견이 혹여나 하는 심정으로 묻자 강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후의 태도 때문인지 아님 자다 일어나서 인지 모를 피곤함이 몰려왔다.


“일단 눈 좀 붙이자. 강후 씨는 미안한데 다시 결박 좀 해야겠어요.”


다행히 강후도 납득하며 순순히 손과 발을 내놨다.


“저...염치 없지만 혹시 아침에도 감자를 좀...”


순수한 협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이번에는 라호가 불침번을 서고는 강후와 함께 피곤한 몸을 잠에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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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상처와 치료 24.07.19 7 0 11쪽
244 무게 24.07.17 10 0 11쪽
243 공존 하는 마을 24.07.15 10 0 11쪽
242 추위를 피해 - 2 24.07.13 11 0 11쪽
241 추위를 피해 24.07.10 11 0 11쪽
240 낙동강 건너기 - 3 24.07.08 15 0 12쪽
239 낙동강 건너기 - 2 24.07.06 12 0 11쪽
238 살아남은 자들 24.07.03 11 0 11쪽
237 이강후 24.07.01 11 0 11쪽
236 낙동강 건너기 24.06.29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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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전역날 24.06.25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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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생존확률 24.06.21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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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흑백 도시 - 3 24.06.17 13 0 11쪽
229 흑백 도시 - 2 24.06.15 22 0 11쪽
228 흑백 도시 24.06.12 15 0 11쪽
227 검은 상자 - 3 24.06.10 15 0 11쪽
226 검은 상자 - 2 24.06.09 23 0 11쪽
225 검은 상자 24.06.07 19 0 11쪽
224 악몽 - 2 24.06.05 12 0 11쪽
223 악몽 24.06.03 14 0 11쪽
222 새하얀 운동장 24.06.01 16 0 11쪽
221 탈영병 24.05.30 15 0 11쪽
» 비 오는 밤 24.05.28 15 0 11쪽
219 궁상 24.05.26 13 0 9쪽
218 처형자 - 2 24.05.25 19 0 11쪽
217 처형자 24.05.23 1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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