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운동장

라호는 금방 알맞은 약초를 가지고 와 강후를 치료했다. 가지고 온 약초를 잘게 빻고는 강후의 입에 밀어 넣었다.
역시 라호가 알고 있는 독이 맞는 지 독은 금방 해독됐다. 덕분에 강호의 상태는 나아졌지만 라호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뒤따라 온 민혁과 파이브도 상황을 인지하고는 밤을 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그럼 창을 던진 사람이 가을 뿌리였을 지도 모른다는 거네?”
파이브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침낭을 들었다.
“던진 사람은 모르지만 독은 가을뿌리의 독이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하더라.”
큰 냄비에 그릇을 담고 가뿐히 든 윤견이 말했다.
“만약 가을뿌리면 적이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냐?”
“...그것도 확신하긴 힘들지. 같은 사람들 까지 죽이는 상황인데”
파이브와 수다는 떠는 사이 보건실에 도착하자 곤히 잠든 강후가 보였다.
“라호는?”
강후 옆을 지키고 있는 민혁에게 묻자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상태 괜찮아졌다며 밖으로 나갔어요. 씨앗 심으로 간다고는 했는데 마음이 싱숭생숭 한가 봐요.”
라호에겐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로 하고 남은 일행들끼리 간단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요리가 끝날 때 쯤에서야 라호가 돌아왔다.
라호가 화들짝 놀라 사과했지만 일행들은 개의치 않고 넘어갔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졌는지 라호는 평소와 같았다. 일행들도 굳이 물어보지 않고 음식만 목구멍에 넣었다.
“으...”
음식 냄새 때문인지 강후의 앓는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밥 먹을 때는 귀신 같이 일어나네.”
“어..여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킨 강후가 주변을 둘러봤다. 라호가 그릇을 내려놓고 강후의 상태를 확인하며 기절하는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다.
“아...또..또 도움을 받.”
“우리도 도움을 받았으니깐 신경 쓰지 마.”
윤견이 따로 그릇에 담고는 강후에게 건넸다. 그 모습에 파이브와 민혁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뭔가 형님 많이 친절해 진 거 같아.”
“닥터도 사람이니깐 변하는 거지.”
“시끄러.”
어느덧 다가온 밤.
“삐이!!!”
“다들 일어나!! 얼른!”
삐삐와 파이브의 소리에 기상한 일행들.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보건실 창문 넘어 보이는 괴물들.
“스..스켈레톤!”
뼈로만 이루어진 괴물.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선호해 동굴이나 밤에 게이트가 열리는 놈들이다.
“강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강후도 빠르게 판단해 침대에서 일어나 일행들에게 향했다.
와장창-!
벌써 스켈레톤 한 마리가 유리창을 깨며 들어섰다. 그러나 윤견이 던진 가위에 그대로 두개골이 깨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놈들이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안거지? 우리가 처음 왔을 때도 그렇고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주변에 수상한 건 없었어.
한참 몰려오는 스켈레톤을 막던 도중 커튼 틈으로 보인 새하얀 풍경에 사고가 잠시 멍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윤견이 조심히 입술을 뗐다.
“...민혁아 차는?”
“차는 뒤에 있어요.”
“달려!”
와자장차창-!!
무수한 유리조각들이 사방으로 튀며 스켈레톤이 학교 안으로 몸을 던졌다.
민혁이 문을 박차고서 선두로 나섰다.
그 뒤를 파이브와 라호, 강후가 따라갔고 윤견의 후미에서 몰려오는 스켈레톤을 막았다. 궤적을 그릴 때마다 새하얀 뼈들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쨍그랑!
타다다-!
앞 쪽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렸다. 복도를 달리던 일행들은 앞을 막아선 스켈레톤에 의해 발이 멈추며 총알을 퍼부었다.
총구를 벗어난 총알은 뼈들 산산 조각 내며 길을 열었다.
“으악!!”
복도 창문을 쳐다본 파이브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창문이 깨지며 옆에서 스켈레톤들이 물결처럼 덮쳤다.
“모두 숙여!”
{시드 플래닛}
라호가 나무를 휘두르며 힘을 부여하자 길어진 나무가 복도 창가를 쓸었다. 한 번의 스윙으로 창틀과 함께 스켈레톤이 부서졌다.
“계속 가!”
윤견의 외침에 다시 발걸음을 뗐지만 또 다시 물려오는 스켈레톤에 의해 멈춰 섰다.
“형님! 생각보다 너무 많아요!”
뒤를 막던 윤견도 점차 늘어만 가는 스켈레톤을 보며 점차 이대로 탈출은 힘들다고 판단했다.
“위로 올라가! 2층으로!”
중앙 복도까지 뚫고 계단으로 위로 올라가자 그들의 뒤로 스켈레톤들이 서로의 몸을 짓밟으며 뒤따라왔다.
{온 – 청염일식(靑炎一煶)}
뒤따라오는 스켈레톤들을 향해 화염의 참격을 날렸다. 참격에 수 십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부서지며 타올랐지만 불길로는 다른 스켈레톤들의 진격을 막을 순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 빈 복도를 질주하는 민혁의 시야에 다른 쪽 계단으로 올라온 스켈레톤들이 보였다.
“형님! 놈들이 올라왔습니다!”
민혁의 말에 고개를 빼 앞을 살피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까까지만 보였던 새햐안 풍경은 사라지고 갈색 운동장만이 보였다.
“창문으로 내려가자! 라호!”
“넵!”
{시드 플래닛}
길어진 나무가 창문을 깨부수며 운동장 바닥에 박혔다. 민혁이 먼저 아무런 의심 없이 나무 위로 올라섰다. 민혁의 뒤로 일행들도 서둘러 나무를 밟아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뒤로 스켈레톤들이 몸을 던지며 나무 위에 올라타거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민혁을 시작으로 가장 후미에 있던 윤견까지 운동장에 내려가자마자 라호가 나무를 잡고 원래의 길이로 되돌렸다.
발판을 잃은 수많은 스켈레톤들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며 부서졌다.
“저기에요! 저기!”
다시 선두에 선 민혁이 저 멀리 주차된 자동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행히 자동차 근처에는 뼈 조각 하나도 없이 고요했다. 반면 일행들 등 뒤에서는 운동장을 밟는 소리와 함께 뼈들이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마침내 민혁이 먼저 차에 도착해 차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강후도 뒤따라 뒷문을 열고 몸을 던졌다.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 빨리!”
파이브의 재촉에 라호도 서둘러 몸을 집어넣었다.
“출발해!”
몸을 반 쯤 차에 넣자마자 윤견이 소리를 질렀다. 민혁도 바로 엑셀을 밟아 차를 출발했다.
바퀴가 운동장을 긁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나아갔다. 당연히 스켈레톤이 붙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자동차가 정문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의자에 앉아 문을 닫으려던 윤견의 눈에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차는 금방 지나가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무언가가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자동차는 정신없이 달리니 어느새 낙동강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민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가장 큰 건물로 향했다.
그렇게 ‘낙동강역사 이야기관’이란 건물 주차장 앞에 멈췄다.
“...아휴~.”
차가 멈추자 민혁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녹였다. 뒤에 있던 다른 이들도 한숨을 쉬었다.
“..방금 뭔가를 본 거 같아.”
윤견도 한숨과 함께 몸에 긴장이 빠지며 의자에 기댄 채 말했다.
“‘네크로맨서’였을 가요?”
강후가 흥건하게 묻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네크로맨서.
강후도 알 정도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존재 중 하나다. 특유의 마법으로 시체들을 조종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그들은 구울을 소환할 때도 있고 지금처럼 스켈레톤을 소환해 조종할 때도 있다.
윤견도 헌터 시절 네크로맨서와 조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직접 쓰러트리지는 않았지만 다른 헌터에 의해 죽은 시체를 본 적은 있었다.
인간의 형태였지만 인간과는 많이 다른 특징들을 가진 존재였다.
“그럼 그 놈을 죽여야 하는 거 아냐?”
스켈레톤은 죽지 않는다. 부서져도 네크로맨서가 다시 만들면 그만이니 파이브 말대로 네트로맨서를 죽이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이제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 그리고 놈이 조종하는 스켈레톤 수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나의 게이트에서 나올 수 없는 수였다.
“거의 두 개 이상의 게이트에서 나올 만한 수였어. 그리고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나도 몰라.”
윤견의 의문에 당시 보초였던 파이브가 입을 열었다.
“분명 운동장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복도 쪽에 잠시 쳐다봤을 때, 운동장 쪽에서 끈적한 바람이 느껴졌어.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렸더니.”
“놈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백미러 넘어 파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윤견도 스켈레톤이 소환되는 건 본적이 없었다. 부서졌던 놈들이 다시 재생되는 건 본 적이 있어도.
“아흐..피곤해. 이틀 째 제대로 못 잤네.”
민혁이 눈을 비비며 길게 하품했다. 반면 라호는 아직 괜찮은지 멀쩡한 눈으로 버리고 온 씨앗을 아쉬워했다.
“일단 차에서 눈 좀 붙이자. 내가 먼저 불침번 할 테니깐.”
“아..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강후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그렇고 생존자 무리에 있을 때도 많이 해서 괜찮습니다. 아! 못 믿으시겠다면 아까처럼 손발을 묶어도 괜찮습니다.”
“흠...그럼 부탁할 게.”
“아..넵!”
“라호야.”
윤견의 신호에 라호가 전에 만든 줄기를 꺼내 강후의 손목을 묶었다.
“그럼 수고해, 이강후 병장.”
민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간만에 듣는 칭호에 강후의 눈썹이 꿈툴 움직였다.
강후를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기절하다시피 잠에 들었다. 누구는 코까지 골며 피곤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강후 병장.’
‘이 뱅!’
강후는 묶인 손을 힘겹게 움직여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군번줄을 꺼내들었다. 주인만큼이나 많은 풍파를 겪은 군번줄은 많은 상처로 더렵혀져 있었다.
강후의 시선이 쓸쓸하게 남아 있는 하나의 인식표를 만졌다.
“하아..괜히 꺼냈어.”
“그건 뭐예요?”
“아! 나... 때문에 깼니?”
“아니에요. 원래...잠이 없어요. 것보다 그건 뭐예요?”
라호의 순수한 질문에 강후도 방금까지 보였던 표정을 거두고 최대한 밝게 지었다.
“군인에게 있어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어.”
“하하하, 저 줄 같은 게요? 에이..놀리시는 거죠? 그럼 저 줄이 없으면 죽기라도 해요?”
“어...음...비슷한 꼴이긴 하지.”
강후의 눈을 보니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다.
“어..진짜요?”
라호의 반응에 강후가 웃음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직 모를 나이이긴 하지.
만약 나라가 이런 꼴이 아니었으면 너도 몇 년 후에는 알게 됐을 텐데. 형 아는 친구는 이걸 잃어 버려서 음...감옥 같은데 간적도 있거든.”
떠오른 과거의 추억에 쓴 웃음 짓는 강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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