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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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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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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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 2

DUMMY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가족들 끼리 어딘지 기억나지 않은 곳에 놀러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가장 옛된 기억은 장례식장 이었다.


수많은 곡소리들이 들리는 장례식장에 나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흐느껴 울고 있었다.

뜨거운 나와 달리 형은 뭔가 차가운 느낌이었다. 나와 달리 조용히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던 형은 금세 눈물을 그치고 내 옆으로와 불끈 쥔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떼며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했었다.




‘견아.’

‘윤견~.’

‘견아...’

“윤견.”


고작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목소리.

윤견에게 부모이자 든든한 기둥이자 모든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의 집합체인 목소리에 윤견은 그제야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님을 인지했다.


천천히 돌아간 고개에 그리운 얼굴이 보였다.


“....형.”


윤견의 형, 윤환이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지만 이럴 수가 없었다. 이미 그는 죽어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전자파나 기계음 하나 섞이지 않은 목소리. 윤환의 동생인 윤견 만이 보증할 수 있다. 윤환의 목소리다.


몇 년간 듣지 못한 생생한 진짜 목소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목소리와 다르게 이 상황은 거짓이다.


윤견의 형 윤환은 죽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누구나 알고 있고 겪었기에 잘 알 고 있다. 하지만 지금 윤견 앞에 웃고 있는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이야...그 사이에 많이 컸구나."


그간 악몽에서도 보이지 못한 형의 얼굴에 윤견은 정신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머리와 달리 편안한 가슴에 기분 좋은 고동이 울렸다.


"잘 자랐네."


까드득.


처음 당황했을 때를 제외한 이번에도 입을 여는 대신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 혼란과 의심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윤환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윤환은 당시 윤견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10살이나 나서 그런지 아직 윤견이 윤환의 나이를 넘을 순 없었다.



"이야~. 이제는 내 키 보다 크네."


하지만 키 만큼은 그 때의 윤환을 뛰어 넘었다.

늘 거대했고 윤견보다 눈높이가 위에 있던 윤환을 보며 윤견은 늘 윤환의 키가 큰 편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윤환의 키가 평범한 편이라는 걸 체감이 됐다.


윤환은 힘없이 웃으며 손으로 윤견과 벌어진 키 차이를 재더니 말없이 윤견을 쳐다봤다. 두 형제가 서로를 바라봤다.


이 시간이 계속됐으면 했지만 빨리 끝났으면 하는 이질적인 심정이 윤견을 맴돌았다.


"견아."


고작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흠칫 놀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윤견의 이름을 불렀으나 이렇게 소름이 돋고 가슴이 먹먹한 적은 처음이다.


"수고했어, 많이 힘들지?"


모든 것을 간파한듯한 말을 듣는 순간 감정이 파도처럼 올라섰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두 주먹은 부서질 듯이 쥐어졌다.


"..그...그.."


입을 열었으나 목 밖으로 감정이 나와 다시 다물었다. 눈을 지끈 감고 천천히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겨우 이성을 유지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환..환각이지?"

"견아, 너는 정말 훌륭한 일들을 했.."

"대답해!! 환각이잖아! 이게 말이 되냐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죽은 사람이 나타나는 게!!"


겨우 유지하던 이성의 끈이 놓이며 윤견은 포효하듯 참았던 말들을 쏟아내며 흑도를 뽑아 올렸다. 흑도가 허공을 베며 도신이 울 듯이 흔들렸다.


"나와! 사람새끼든 괴물새끼든 나오라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 흑도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흑도의 날이 더욱 서글프게 울었다. 귀에서 들리는 윤환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검을 휘저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어느 것도 없었다.


형의 목소리도 자신의 심정도 서늘한 공기도 모두 그대로였다.


결국 제풀에 지친 윤견이 검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의 등 위로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가슴이 몽글 움직이며 이마에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포효와 함께 몸을 돌려 검을 움직였다. 하지만 흑도는 그대로 윤환의 목 옆에 멈춰 섰다.

흔들리는 검과 달리 굳게 굳은 윤견의 눈이 윤환을 노려봤다. 반면 자신의 목 바로 옆에 검이 있음에도 윤환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건 가짜야. 가짜라고.


천천히 감정을 억누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건...꿈이라기 보단 환상, 환영에 가까워. 환영을 보이는 하는 이종족이나 보스는 몇 있었으니 이상한 것도 아니야.


윤견도 헌터시절에 수많은 환영들을 겪었다.


그 때마다 깨는 방법은 다양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은 다른 동료들이 잠을 깨우듯 깨워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동료도 없고 타인에게 기대하기 힘든 경우 환영의 핵을 찾아 부수면 저절로 깨어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엄청난 고통을 주면 깨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을 얼마나 줘야 하는 지도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았고 깨어난 자들의 말에 의하면 거의 자결에 가까운 고통을 동반해야 가능하며 기적적으로 환영에 깨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방법에 깨어난다고 해도 고통을 착각한 뇌가 현실에서 까지 그 고통을 가지고 온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다는 건...다른 일행들도 같은 상황인 건가? 그럼...그 때 그 종족들의 피리 쇼가 원인이겠군. 그럼 내가 빨리 핵을 찾아야 해.


생각을 마친 윤견은 깊은 한숨을 뱉고는 천천히 흑도를 치워 검집에 집어넣었다.


환상의 핵을 찾는 건 아주 간단하기도 하고 아주 어렵기도 했다. 핵을 보고 저게 환상의 핵이다! 라고 판단이 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핵이라는 건 그저 표현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정해진 게 없으니. 그저 돌아다니며 핵으로 의심이 드는 걸 부술 뿐이다.


그 과정이나 핵의 모양이 특이하면 쉽게 끝나는 것이고 그 반대면 빠져나가기 힘들다.


싱긋 웃는 윤환을 뒤로 하고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의심스러운 건 없었다.


-젠장...멀리 있는 건가?


그렇게 눈을 지끈 감아 짜증을 분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 움직이던 윤견의 발이 멈추며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윤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윤견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래, 차라리 거기에 있어라."


윤환을 내버려둔 채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의심스러운 건 모든 지 베었다. 도로 한 복판에 있는 가로등이나 차 위에 올라가 있는 곰인형. 그럼에도 깨어나지 않자 이번에는 사방팔방 검을 휘둘렀다.


흑도가 모든 것을 집어 삼켰음에도 환상은 그대로였다.


"..."


좀 더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아야 할 윤견이 불 길 속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미 그는 핵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을 만났고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외면하며 무시하며 애꿎은 것들에게만 화를 분출했다.


결국 외면했던 진실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였다. 핵은 여전히 수풀 속에 있는 자동차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윤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천천히 미소 지으며 윤견을 바라봤다.


“..참 나.”


입에서는 힘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반대로 주먹에는 힘이 들어섰다. 빨리 이 환각에서 나가야 한다.

지금 밖의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 동료들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에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윤견은 천천히 윤환에게 다가갔다.


“...형.”

“음? 왜 그래, 견아.”


처음으로 윤환과 대화를 한 순간이었다. 몇 년 만에 이루어진 형제의 대화를 좀 더 만끽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짧은 시간조차 윤견에게 있어서 이기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니 빨리, 진짜가 아닌 환상 속 형에게 말을 전해야 했다. 천천히 윤견의 입술이 떨어졌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나도...살아야 했었어.”

“...형이 미안해..”


윤환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지며 윤견이 가장 듣기 싫어했던, 피하고 싶었던 대답에 윤견의 표정도 형 따라 무너지며 천천히 검을 들었다.


“그만 좀...그만 미안해 하라고.”


한숨 한 번 쉬고는 윤환을 향해 흑도를 휘둘렀다.


흑도가 윤환의 몸을 두동강 내자 몸체가 연기가 되며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윤견이 밟고 있는 땅은 물론이고 넓은 하늘까지, 윤견을 제외한 모든 것이 흔들리다 못해 접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계와 함께 윤견이 정신을 잃으며 시야가 어두워졌지만 곧바로 눈을 떴다.


“...어?”


방금까지 환각이든 현실이든 야외에 있었을 텐데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벽이었다.


창문이나 촛불이 없어 어두웠지만 적어도 건물 안에 있는 방이라는 것과 자신 밖에 없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약에 취해있다 일어난 것처럼 잠시 정신이 몽롱해 깨닫는 게 늦었지만 손목과 발목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뭔가 엉성한 결박에 이빨로 물어뜯으니 쉽게 두 손은 자유를 찾았다. 더듬더듬 벽을 짚고 일어서자 잠시 머리가 울렸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이마에 손을 짚으며 잠시 상황을 정리했다. 차에서 소인의 이종족을 만나고 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환각에 빠진 자신을 이곳에 가뒀다.


게다가 이렇게 가둔 것에 성공한 것을 보면 아마 다른 일행들도 윤견과 같은 처지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봤던 문으로 향해 귀를 기울었다. 딱히 들리는 소리가 없어 조심히 문고리를 잡으니 다행히 밖에서 막지는 않은 모양이다.


소리 죽여 문을 열고 눈을 내밀었다.


보이는 건 건물 복도와 한 쪽 벽에 붙은 문들이 보였다.


-뭔가 군 생활관 같기도 한데...잠깐 그러고 보니 다리 위에 있던 텐트에 있던 개 아니구나! 그럼 환각은 다른 놈들이...!


갑작스레 들린 소리에 황급히 문을 닫고 모든 신경을 귀에 모았다.


들려오는 소리를 발소리로 이족보행을 한 다는 것과 하나의 소리, 그리고 보폭으로 따졌을 때 소인들의 것이라고는 힘들었다.

적어도 인간 크기의 것의 보폭으로 들렸다.


-뭐야!? 진짜 소인 놈들이 아니야? 그럼 그 피리 쇼는 뭔데? 그럼 누구지? 사람? 백정?


머릿속으로는 한참 추리를 이어나가던 중 발소리 외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 귀로 신경을 모았다.

문은 금세 닫혔다.


그리고 다시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며 안쪽을 살피는 모양이다. 발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가 바로 코앞까지 오자 윤견은 서둘러 처음 자리로 가 누운 다음 끊어 놓은 줄로 손목과 발목에 대충 올려만 두고 눈을 감았다.


평온한 외면과 달리 초조한 마음에 심장이 빨리 뛰었다. 드디어 발소리가 윤견 앞에 멈추며 닫혔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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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추위를 피해 24.07.10 10 0 11쪽
240 낙동강 건너기 - 3 24.07.08 15 0 12쪽
239 낙동강 건너기 - 2 24.07.06 12 0 11쪽
238 살아남은 자들 24.07.03 11 0 11쪽
237 이강후 24.07.01 11 0 11쪽
236 낙동강 건너기 24.06.29 13 0 11쪽
235 전역식 24.06.27 11 0 11쪽
234 전역날 24.06.25 10 0 11쪽
233 바퀴벌레 24.06.22 15 0 11쪽
232 생존확률 24.06.21 12 0 11쪽
231 흑백 도시 - 4 24.06.19 14 0 11쪽
230 흑백 도시 - 3 24.06.17 13 0 11쪽
229 흑백 도시 - 2 24.06.15 22 0 11쪽
228 흑백 도시 24.06.12 14 0 11쪽
227 검은 상자 - 3 24.06.10 14 0 11쪽
226 검은 상자 - 2 24.06.09 23 0 11쪽
225 검은 상자 24.06.07 18 0 11쪽
» 악몽 - 2 24.06.05 12 0 11쪽
223 악몽 24.06.03 14 0 11쪽
222 새하얀 운동장 24.06.01 16 0 11쪽
221 탈영병 24.05.30 15 0 11쪽
220 비 오는 밤 24.05.28 14 0 11쪽
219 궁상 24.05.26 12 0 9쪽
218 처형자 - 2 24.05.25 19 0 11쪽
217 처형자 24.05.23 19 0 11쪽
216 파이브의 각오 24.05.21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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