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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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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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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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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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상자

DUMMY

-제발..!


끼익...


급해 결박을 대충 흉내낸 것이 마음에 걸려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은 고작 몇 초 정도였지만 1초 2초가 윤견에게는 피를 말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실눈을 뜨며 놈을 쳐다봤다.


쿵!


심장이 철렁 가라앉으며 순간 입에서 소리가 나올 뻔 했다. 마치 설인처럼 털로 뒤덮인 육체, 잊기 힘든 저 면상.


경마 공원과 수원화성에서 봤던 최면사로 불렸던 광신도였다.


문이 닫히자마자 눈을 부릅 뜨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날뛰는 심정과 함께 인상을 힘껏 구겼다.


사태가 더욱 최악으로 변했다. 소인 놈들이면 적어도 피리만 조심하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최면사라니.


“그럼 환각이 아니라 최면에 빠졌던 건가? 하지만 채찍에 맞기는커녕 놈과 마주치지도 않았잖아.”


최면사들의 무기인 채찍에 맞으면 그대로 놈들이 부리는 장기말로 전락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채찍도 최면사들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전에 봤듯이 최면에 걸리면 이렇게 누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씨발, 이젠 어디부터가 진짜인지도 헷갈리네.”


짜증과 함께 한숨을 쉬고는 벽에 머리를 기댔다. 어떻게 여기까지 잡혀 온 것일까? 다른 일행들은 어디에 있을 까?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 것일까?


그 외에도 많은 의문들이 떠올랐지만 어떠한 의문에도 해답이 시원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왜 이런 방에 가둔 것인가에 대해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경마공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건물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이렇게 많은 방들이 있었고 방마다 최면에 걸린 이종족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층에는 마치 교배장처럼 보이는 방들과 끔찍한 유아들의 시체가 있었다.


-설마...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일단 탈출이 우선이니 생각을 거두고 조심히 문을 열었다. 다행히 처음 봤을 때처럼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나가면 다시 숨기에는 힘들어 최대한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긴 복도에 홀로 서 있는 윤견은 가장 가까운 문으로 향했다.


이 문도 그렇고 다른 문들도 문을 열기 전까지 안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최면사들의 발소리가 일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처럼 붙잡힌 종족들이 갇혀 있다고 판단해 문을 조심히 열었다.


방 크기도 비슷하고 안에 한 명만 있는 것도 똑같았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 손, 발이 묶인 채 누워 있었다.


윤견도 처음 보는 종족이지만 아마 똑같이 환각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 놈도 최면 보다는 환각에 빠진 거 같은데...깨울까?


저번처럼 최면에 빠진 놈들을 깨워 난장판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아직 일행들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니 섣부르게 일을 키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온도 없고. 망할, 설마 버리진 않았겠지? 지금 이 상태로 최면사 만나면 한 명 정도는 겨우 이길 수 있으련지...


주먹을 쥐었다 피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둘러 문들을 열며 안을 살폈지만 일행은커녕 사람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침내 계단까지 도달했다.


위로 가는 것과 아래로 가는 계단 사이서 고민하던 윤견은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도망치듯 위로 올라갔다.


위층도 역시 아래층과 비슷한 구조였다. 하지만 따라오는 발소리에 근처 방에 숨어 들었다.


먼저 자리 잡고 있는 어인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벽에 찰싹 달라붙어 소리가 사라지길 기도했다. 다행히 발소리는 윤견이 있는 층 보다 더 위로 올라갔다.


-도대체 몇 층까지 있는 거야?


발소리도 사라졌겠다, 다시 방문을 뒤진 윤견의 눈에 드디어 이종족 외에 다른 것이 발견했다. 방의 절반을 메울 정도로 많은 무기들이 윤견 눈앞에 쌓여있었다.


본능적으로 검에 손을 올리자 철끼리 부딪쳤는지 소리가 울려 다급히 손을 뗐다.


“...휴.”


다행히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심히 무기들을 치우며 그리운 흑도를 찾아 나섰다. 찾는 도중에 어인들의 작살과 고블린들의 단검, 그리고 권총 한 자루도 있었다.


“...없잖아.”


모든 무기들을 살폈음에도 흑도도, 라호의 나무도, 민혁의 총도 찾을 수 없었다.


-여기 말고 다른 층에 있으려나?


여기 있는 무기 중 그나마 쓸모 있어 보이는 권총과 검 한 자루 씩 챙기고서 밖으로 나갔다.

조심히 계단 쪽으로 복귀해 이번에도 위로 향했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가장 높은 층인지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없었다.


-내려가는 소리는 없었으니, 그럼 발소리의 주인은 이 쪽 층에 있다는 거네.


윤견의 불안한 시선이 문들을 훑었다. 이 많은 방들 중 어딘가에 놈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방 안을 살피는 것과 달리 뭔가 하는 지 꽤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덕분에 이 층에는 다른 게 있다는 게 예상이 갔다.


방문은 10개. 10분의 1 확률을 믿으며 조심히 가장 가까운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최면에 걸린 종족도 말이다.


말 그대로 빈 방이었지만 방 벽을 가득 채운 불길한 그림이 가득했다. 알 수 없는 문양과 무릎 꿇고 있는 사람?들, 수원에서 본 것 같은 검은 상자와 불상들 그리고 천장을 채운 거대한 눈까지.


이 방 안에만 있어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벽화를 보며 조금이나마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놈들의 목적도 수원과 비슷하다는 걸.


하지만 푸른 팔이나 상자에서 나온 그 놈을 연상케 하는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들렸다. 다급히 문 쪽 벽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발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검을 쥐고 몸을 낮추자 광신도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발소리로 이미 수를 파악해 놈 밖에 없다는 것을 안 윤견이 바로 문 뒤에서 나와 광신도 목에 검을 찔렀다.


“끄엑?!”


목을 찔렸음에도 광신도의 숨이 붙어있자 주먹으로 검을 때려 목을 관통시켰다. 그제야 숨이 끊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방 안에 없는 윤견이나 쓰러진 이 시체나 들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착잡한 심정으로 검을 뽑자 와중에도 주먹을 쳐서 부서졌는지 반 토막이 돼서 나왔다.


“...미치겠네. 제일 튼튼한 놈으로 가져온 건데.”


시체와 함께 부서진 검을 한 구석에 치워두고 허리춤에 숨겼던 권총을 꺼냈다. 그 순간 또 다시 들려오는 소리.

옆쪽에서 문이 열리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복도를 누볐다.


서서히 끓어오는 살기를 억누르며 권총을 들었다. 총구가 문 중앙을 겨누었지만 발소리는 유유히 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하아~.”


살기와 함께 긴장감이 사라지며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문을 열고 놈의 발걸음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쯤에서 들렸는데.


그렇게 도착한 문을 조심히 열었다. 문을 열자 이 방만 온풍기를 틀어 놓은 것만 같은 끈적한 열기가 윤견을 덮쳤다.


-윽! 무슨 사우나도 아니고..


벌써부터 맺힌 땀을 닦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새하얀 벽지와 정 중앙에 자리 잡은 불상.


수원에 봤던 것과 모양이 다르지만 그래도 기괴하다는 점은 같았다. 그리고 불상 아래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윤견의 눈에 피로 만든 카펫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열기는 불상이 내뿜는 건가? 지금은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여튼 이 층은 감옥 보다는 놈들의...사무실? 같은 층인가?


지금은 딱히 불상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위치만 알아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방 밖을 나갔다. 그리고 바로 아무 의식 없이 문을 열었다.


“끼이?”

“에?”


방 안에서 기도를 하던 광신도도 방문을 예의 없게 윤견도 서로 멍하니 바라봤다. 윤견이 먼저 정신을 차리며 총을 들자 뒤따라 정신을 잡은 최면사도 검을 들었다.


“뭔!”


채찍과 같은 재질로 만든 듯한 검이 한 발 빠르게 권총을 쳐냈다.


하지만 이미 권총은 진작에 포기한 윤견이 그대로 광신도에게 달려들어 넘어트렸다.

그리고 발로는 검을 잡고 있는 팔을, 두 손은 목을 잡았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수차례 내려찍었다.


-분명 이 아래에는 늑대 수인이 잠들어 있어. 그래도 빨리..빨리!


계속해서 광신도의 머리를 바닥에 들이박았다. 서서히 놈의 눈이 풀리는 것이 보이자 한 손으로 놈의 머리를 올림과 동시에 주먹을 쥐어 놈의 면상에 내려쳤다.


광신도는 그대로 눈이 뒤집히며 의식을 잃었다.


“하아...하아...하아...”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고 그제야 방 안을 살필 수 있었다.


“...뭐야, 이건?”


옷걸이처럼 긴 봉에 부위 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러 종족의 팔과 다리. 그리고 아까 광신도에게 달려들 때 윤견에게 치이며 날아간 점토로 만든 듯한 몸뚱어리.


마치 마네킹을 만드는 공방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걸려 있는 팔들 사이에 인간의 팔이 보여 다급히 일어나 팔을 살폈다. 다행히 팔은 절단 된지 꽤 시간이 지난 것처럼 보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팔을 놓아주고는 벽에 눈 사이를 문질렀다.


-저번에는 동상에 푸른 팔이 나왔고 그 팔에서는 모든지 변했던 그 놈이 나왔어. 즉, 최면에 빠진 놈들을 거름 삼아 푸른 팔을 키우는 게 목표였던 거 같아.

이번에도 동상이나 잡혀온 생명들로 봐 비슷한 목표인 거 같은데...방식이 많이 달라.


“..일단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애들을 찾아야 해.”


다시 밖으로 나가 이번에는 옆 문에 귀를 대고 아무 소리도 없자 조심히 열었다. 그러자 생각지 못한 얼굴이 방 안에 있었다.


“삐삐야!”


바닥에 누워 쇠사슬에 묶여 잠들어 있는 삐삐를 향해 다가가 흔들었다. 그럼에도 미동이 없자 꼬집자 삐삐의 얼굴이 세차게 흔들리더니 눈이 뻔쩍 떠졌다. 하지만 윤견이 알고 있는 삐삐의 눈과 많이 달랐다.


눈동자 색도 달랐고 날카로운 눈매도 달랐다.


-...삐삐가 아냐! 같은 종인 다른 놈이야.


조심히 손을 떼고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은 공격 의사가 없음을 보였다. 놈도 그런 윤견의 모습을 빤히 지켜만 봤다.


눈을 피하지 않고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물러서려 했지만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놈의 이빨이 서서히 드러나더니 몸을 떠는지 쇠사슬들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착하지?"


어색한 미소처럼 뱉은 말에 놈이 자리에 일어서 체인을 끊었다. 놈을 옳아맸던 구속구가 바닥에 후두두 떨어지며 자유의 몸이 된 놈의 눈과 발톱이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 졌다.


윤견도 이제는 권총을 쥐며 놈의 노려봤다. 윤견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듯 놈의 뿔도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저거 빛도나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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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공존 하는 마을 24.07.15 8 0 11쪽
242 추위를 피해 - 2 24.07.13 9 0 11쪽
241 추위를 피해 24.07.10 10 0 11쪽
240 낙동강 건너기 - 3 24.07.08 15 0 12쪽
239 낙동강 건너기 - 2 24.07.06 12 0 11쪽
238 살아남은 자들 24.07.03 11 0 11쪽
237 이강후 24.07.01 11 0 11쪽
236 낙동강 건너기 24.06.29 13 0 11쪽
235 전역식 24.06.27 11 0 11쪽
234 전역날 24.06.25 10 0 11쪽
233 바퀴벌레 24.06.22 15 0 11쪽
232 생존확률 24.06.21 12 0 11쪽
231 흑백 도시 - 4 24.06.19 14 0 11쪽
230 흑백 도시 - 3 24.06.17 13 0 11쪽
229 흑백 도시 - 2 24.06.15 22 0 11쪽
228 흑백 도시 24.06.12 15 0 11쪽
227 검은 상자 - 3 24.06.10 14 0 11쪽
226 검은 상자 - 2 24.06.09 23 0 11쪽
» 검은 상자 24.06.07 19 0 11쪽
224 악몽 - 2 24.06.05 12 0 11쪽
223 악몽 24.06.03 14 0 11쪽
222 새하얀 운동장 24.06.01 16 0 11쪽
221 탈영병 24.05.30 15 0 11쪽
220 비 오는 밤 24.05.28 14 0 11쪽
219 궁상 24.05.26 13 0 9쪽
218 처형자 - 2 24.05.25 19 0 11쪽
217 처형자 24.05.23 19 0 11쪽
216 파이브의 각오 24.05.21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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