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후

에이오스(Eios).
필리핀에 처음 등장한 종족으로 바위처럼 단단한 육체와 짐승의 네 다리로 들판을 누비며 짐승의 두 팔로 적을 찢는 종족.
그런 외형에 처음에는 켄타우로스라는 이름이 붙어졌지만 나중에 진짜 켄타우로스가 등장하며 이런 이름으로 붙여졌다.
처음 놈들이 등장했을 때, 군인들이 투입됐으나 놈들의 전술에 대패했던 기록이 있었다.
게다가 놈들은 외형에 비해 지능적이다. 자신들 만의 문화, 언어, 법이 있으며 필요할 때에는 다른 이종족에게 동맹도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런 놈들이 갑자기 저 마을에는 왜 공격해서 점령하는 거지? 여기 보다 더 터가 좋은 곳이 널려 있을 텐데...우리처럼 밀려 온 건가?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마을을 살폈다.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놈들의 거점이니 보초병이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겉보기에는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처럼 보여 그들도 안에 먼저 온 손님이 있을 거라고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일단 가장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더욱 가까이서 살피자 드디어 마을을 순회하는 에이오스 두 마리를 발견했다.
탁.
윤견이 벽을 치자 역시나 놈들이 반응했다. 아직은 자기들도 확실하지 않은지 관심만 보였지만 천천히 카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첫 놈이 먼저 카페에 들어갔고 따라 다음 놈도 카페에 들어갔다.
“크르..”
그러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코가 없어 냄새를 못 맡아서 다행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머그컵을 주워 반대쪽으로 던졌다. 머그컵이 깨지며 소리를 내자 두 시선도 따라갔다. 그런 놈들의 뒤로 어둠에 물든 흑도가 놈의 뒤통수를 관통했다. 옆에 있던 놈도 놀라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흑도가 먼저 목을 베었다.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나..”
검을 튕겨 피를 흩뿌리고 다시 밖을 살폈다. 거리는 다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렇게 발소리를 죽이며 건물들을 살피던 그 때 들려오는 발소리에 또 다시 아무 건물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세 마리...
길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벽을 두드리려던 찰나.
부우우-!!
거대한 나팔소리가 마을 전체에 퍼졌다. 나팔소리에 당황한 윤견과 달리 에이오스 세 마리는 망설임 없이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틈에.
밖으로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나팔 소리에 버금가는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섞여서 들리는 익숙한 울음소리에 사태파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씨발...이걸 좋아해야해?”
복잡한 감정에 머리를 박박 비비고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강후와 승태 남매를 찾았다.
“키에에!”
그러나 그 사이 폭음의 범인인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블린이 강을 넘어 이곳을 공격한 모양이다. 덕분에 에이오스의 경계가 다른 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설마 벌써 마을 안에 고블린들이 나올 줄이야.
고블린을 향해 흑도를 휘둘러 조각내자 출발신호처럼 사방에서 혈투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젠장..젠장!”
윤견이 짜증을 다 뱉기도 전에 한 쪽에는 에이오스가 반대쪽에는 고블린치고는 덩치가 큰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놈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윤견을 향해 돌진했다. 윤견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권총을 꺼내들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역이 에이오스였다. 놈들의 포효를 시작으로 거센 손톱이 휘몰아쳤다. 윤견은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피하며 고블린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덩치 만큼이나 무거운 보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한눈을 판 지 몇초가 됐다고 에이오스의 손톱이 윤견의 어깨를 스쳤고 송곳같은 이빨이 코앞까지 다다랐다.
흑도로 이빨을 막자 그대로 힘에 밀리며 건물 외벽에 부딪쳤다.
"크윽...뒤져!"
총구를 최대한 세워 놈의 목을 향해 총알을 두 발 박아 넣자 그제야 입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인간의 총알로는 고통만 선사할 뿐 죽음까지에는 무리였다. 목을 부여잡고 있는 놈을 향해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려던 차에 뒤쫓아 온 다른 에이오스가 윤견을 밀쳐냈다.
놈의 팔에 치여 바닥을 구른 윤견을 향해 에이오스가 달려왔다. 놈의 앞다리가 번쩍 올라서더니 그대로 윤견을 향해 낙하했다.
윤견도 얼른 몸을 굴려 피하고서 바로 검을 휘둘렀다. 검은 날이 그대로 놈의 왼발을 베었다.
비명과 함께 자세가 무너진 놈을 향해 총을 쏠려 했으나 총을 놓쳤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검을 올렸다.
그러나 검보다 먼저 거대한 뭉둥이가 놈의 머리를 으깼다. 고블린의 다음 표적은 바로 아래에 보기 좋게 엎드려 있는 윤견이었다.
떨어지는 뭉둥이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고 그대로 놈에게 몸을 날렸다.
"꾸르엑!"
그대로 넘어진 놈 위에 올라타 두다리로 놈의 두 팔을 고정시키며 검집으로 목을 졸랐다. 숨 넘어가는 소리가 윤견의 귓가를 때렸다.
바둥거리던 녹색의 팔도 점차 약해지기 시작할 떼 윤견의 뒤통수에 그늘이 지며 솜털이 서는 살기가 들어섰다.
에이오스가 뜯어낸 표지판이 그대로 윤견의 뒤통수를 노렸다. 그러나 제빨리 몸을 던져 표지판은 그대로 고블린의 명치에만 찔렸다.
놈이 표지판을 뽑기도 전에 흑도가 먼저 위로 올라서며 에이오스를 베었다. 그럼에도 놈은 눈을 부릅뜨며 윤견을 향해 마지막 발악으로 표지판을 던졌다.
그러나 표지판은 윤견과 한참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쓰러지는 놈을 무시하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놈들끼리 싸우느라 윤견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얼른 총을 주워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곳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고블린이 벽에 처박히고 에이어스가 바닥에 쓰러졌다.
-미치겠다..진짜.
그 와중에도 이번에는 갑옷을 입은 고블린 무리가 윤견을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신경질 적으로 뱉어낸 청염에 그대로 불탔다.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갑옷을 벗으려 했으나 그것조차 달궈진 갑옷이라 힘들었다. 놈들을 가뿐히 무시하고 다시 거리를 누볐다.
탕-!
그런 도중에 익숙하고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총성!
그대로 총성을 쫓아 달렸다.
"..,...,,."
건물 이층에 숨어 영창을 외치던 등이 굽힌 고블린의 두 눈이 윤견을 담으며 지팡이를 겨누었다.
{고블린 주술 - 라호타}
지팡이 끝에서 발사된 불쾌한 감정들이 뒤섞인 덩어리가 유리창을 깨고 윤견에게 날아갔다,
"뭔?!"
유리 깨지는 소리 덕분에 발견하자마자 흑도를 휘둘렀다. 흑도에 덩어리가 잘리며 양 옆으로 튕겨졌다. 갈라진 덩어리들은 금세 지렁이처럼 움직이더니 그대로 윤견에게 달려들었다.
다리를 움직여 금세 자세를 잡고 검을 휘갈겼다. 검이 획을 그릴 때마다 지렁이들은 부드럽게 썰렸다.
다행히 덩어리는 그 후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윤견도 바로 총구를 깨진 창문에 겨누었지만 이미 놈은 몸을 숨긴 후였다.
“...새끼가.”
계속 창가를 경계하며 총성이 들렸던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수많이 쌓인 시체에 그 위에도 더 쌓이고 있었다. 다행이도 시체들 중에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시체 산 속 머리에 총알이 박힌 고블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식당?
총에 맞은 고블린 근처에 있던 카페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무도 없는 빈 카페였다. 대신해 바닥에 떨어진 탄피가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대신 설명해 주고 있었다.
떨어진 탄피의 방향과 일정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는 책상을 살피자 총을 쓴 사수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이 흔적은 사람 한 명이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흩어진 건가? 아님....
자연스레 드는 불길한 예상. 하지만 그걸 확인하기에 이곳에 온 것이니 윤견은 깊은 한숨과 함께 흔적을 따라 다시 움직였다.
"끼에에!!"
고블린의 울음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유리를 깨며 건물로 들어갔다. 다른 곳에서도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딱히 윤견을 노리고 던진 것은 아니었다.
건물에 들어간 돌멩이에 적힌 문양이 빛나기 시작하며 불길한 기운을 내뿜자 직감의 판단으로 유리창에 몸을 던졌다. 돌멩이는 그대로 터지며 파편들을 사방에 퍼졌다.
윤견의 뒤를 시작으로 여러 건물들에서 폭음과 함께 유리가 깨졌다.
"씨발..이제는 수류탄까지 처 만드네."
"크아아아-!"
"크르르!!"
그와 동시에 파편을 미쳐 피하지 못한 에이오스들이 창밖으로 떨어졌다.
"하아..하아..."
맑았던 하늘에 검은 매연과 붉은 불씨로 더렵혀졌다. 비등비등했던 두 세력이 점차 기울기 모양이다.
윤견의 눈꺼플이 약하게 떨렸으나 손은 더욱 강하게 검을 쥐었다. 자신을 향해 늑대를 탄 고블린들이 오고 있었다. 깊고 진한 숨을 뱉었다.
검은 날이 가릴 정도로 붉은 피가 검에 묻었다. 늑대의 몸에서 검을 거치게 뽑았다. 하지만 쉴 틈도 없이 윤견은 다시 움직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저 멀리 익숙한 체형의 생명체가 급히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강.."
그리고 그를 쫓는 고블린들까지.
곧바로 겨눈 총구가 불빛을 내뿜으며 고블린의 관자놀이를 맞혔다. 쫓던 놈들도 바로 윤견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바닥에서 주운 고블린의 단도가 이마에 정확히 날아가 꽂혔다.
마지막 남은 놈은 잠시 주변을 살피고는 그대로 동료들을 버리고 내뺐다.
"얌마! 이강후!"
총성도 못 들었던 강후가 이질적인 목소리에 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윤견 형..."
소름이 돋고 피가 말리는 이계의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에 강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런 감성을 기다릴 세 없이 고블린 무리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윤견이 바로 강후를 붙잡고 빈 건물에 몸을 숨겼다.
투두두두두두-!
고블린들의 수많은 발들이 땅을 두드리며 지나갔다. 윤견과 강후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새끼, 용캐 버티고 있었네."
"아..아닙니다."
"...승승 남매는?"
가볍게 뱉은 말과 달리 윤견의 눈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강후의 입만 바라봤다. 강후의 입은 부들 떨더니 힘 빠진 목소리를 뱉었다.
"모르..모르겠습니다. 헤어졌습니다."
"어디서? 마을 안에서?"
"그게...그것도 모르겠습니다."
입이 떨어졌으나 별말 하지 않고 다시 한숨만 뱉었다. 두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댔다. 이제 겨우 한 명 찾았는데 그 두 명은 어떻게 찾느냐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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