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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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최근연재일 :
2025.07.1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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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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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

DUMMY

“마지막으로 헤어진 곳도 모르는 거야?”

“...그게 제 생각이지만 마을에는 저만 들어갔던 거 같기도 합니다....아마.”


다시 한 번 절망적인 소식에 감겼던 두 눈이 떠졌다. 밖에는 여전히 깨지고 부서지고 죽어가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희망적인 거면 이 마을에 없는 거고, 절망적인 건 이 마을에 있는 거네.


순간 죽었으면? 이라고 의문이 들었지만 딱히 답하지 않았다.


“그래, 일단 너부터 대피시키고 그 둘을 찾아야겠다. 따라와라.”

“...왜 그렇게 까지 저희를 살피시는 겁니까? 저희가 만난 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고, 깊은 인연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버릇인가?”

“예?”

“아니다, 옮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부담 가지지마. 그냥 우리 맘 편하라고 하는 거니깐.”


강후를 억지로 일으켜 밖을 살폈다. 다행히 거리에는 시체들 밖에 없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밖으로 나와 뗏목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역시나 그 모습은 금방 발각이 됐다. 가장 먼저 옥상에 있던 고블린들이 창을 내던졌다. 윤견이 튕겨내고 강후가 뒤를 돌아 총을 발사했다.


“끼르!”


총에 맞은 고블린이 그대로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


“크르르아!!”


이번에는 두 마리의 에이오스가 앞길을 막았다. 그러나 윤견이 먼저 가장 앞에 있는 에이오스의 다리에 총을 쏴 쓰러트리고 뒤에서 달려오던 놈에게는 흑도를 박았다.


“엎드려요!”


다급히 들린 강후의 목소리에 상황 파악하기도 전에 몸을 낮췄다. 그 순간 뒤통수 위로 살기가 스쳤다. 곧바로 자세를 잡자 자신보다 몇 척이 긴 검을 든 고블린이 서 있었다.


-발소리도 못 느꼈어.


놈을 향해 흑도를 휘두르자 놈도 두 손으로 검을 부여잡고 흑도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몇 합까지 오가며 팽팽한 공방이 오갔지만 갑작스레 강해진 흑도가 줄다리기를 끊어냈다.


검과 함께 고블린을 베자 강후가 총알을 발사해 왼편에서 늑대를 타고 달려오던 고블린을 사살했다.


“별로 안 남았어!”

“네!”


이제 거의 8할이 고블린이 남았는지 길을 막아서는 것들은 대부분 고블린들이었다.


건물 위에서 창과 화살을 퍼붓기도 했고, 방패를 겹겹이 쌓아 벽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 때마다 어찌저찌 피하며 가까스로 마을 외곽까지 도달했다. 이제 저 카페를 넘으면 끝이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저곳에 수많은 고블린들이 모여 있었다. 잠시 건물에 숨어 상황을 보니 카페를 중심으로 있는 저 구역이 에이오스들의 마지막 방어선인 모양이었다.


저것들을 뚫고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길이 저기에만 있는 건 아니니...돌아서 가면 그만이야.


강후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벽을 이루던 고블린들이 천둥과도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저기..!”


강후가 한 곳을 가리키니 도로를 따라 도망치는 에이오스 무리가 보였다.


“...고블린들이 이겼다고?”


강후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헛웃음과 함께 다시 한 번 도망가는 에이오스 무리를 쳐다봤다. 윤견도 숲의 마녀가 진 것을 본 기억이 있어 덜했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확실히 그 때 도로에서 봤을 때에 비해 적은 수였어. 하지만 그럼에도 놈들이 이겼어.


다시 한 번 불쾌하고도 불길한 소식을 뒤로 하고 도망가려 했으나 그대로 다리가 굳었다.


“.....씨발.”


거리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고블린들이 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마치 거센 쓰나미가 마을을 덮친 것과 같았다. 살짝이라도 저 쓰나미에 발을 갖다 대면 그대로 쓸려나갈 것만 같았다.


혹여나 있을 틈을 찾기 위해 사방을 살폈지만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적어도 그 때 도로 위에서 본 고블린 무리 전부가 이곳에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정도다.


“어..어떡하죠?”

“일단 숨어 놈들이 가는 걸 기도하는 수밖에...”

“만약 안 가면 어쩝니까?”

“놈들은 딱히 터를 잡지 않은 생각이야. 만약 있었으면 이렇게 많이 부시지 않았고, 이런 곳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갔겠지.”


깊게 숨을 뱉고는 조심히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 얼마나 꿀맛 같은 휴식이란 말인가. 그러나 밖의 상황을 떠올리면 머리가 아파오니 그것도 잠시 제쳐두기로 했다.


“저...그러면 만약에 놈들이 집집마다 들어와 집을 뒤지면 어떡하죠?”

“그럼...뭐, 그때는 도망가야지.”


그렇게 노을빛 하늘에 어두운 밤이 들어섰다.

강후가 도망가는 와중에도 챙긴 감자 조각으로 배를 채웠다. 놈들도 식사를 시작하는 지 거리 곳곳에 모닥불이 빛을 내고 있었다.


-파이브에게는 내일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으니 내일에는 어떻게든 돌아가야 해. 실패하면 분명 시간을 되돌릴 거야.


“그...형도 전역 하셨습니까?”


한참 고민하던 그 때 아까부터 조용히 있던 강후가 입을 열었다.


“나? 어...헌터가 되고 좀 바로 훈련소에 들어가긴 했지. 근데 이미 헌터 신분이라 훈련소도 간단한 군사 훈련만 받고 퇴소했어.”


헌터라는 직업도 군인과 같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고 하여 헌터들은 자동적으로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간단한 군사 교육 30일을 법적으로 받아야 했다.

만약 군을 먼저 전역했다면 하루만 받으면 됐다.

이런 법을 악용하는 이도 당연히 몇 몇 있었지만 그 때마다 엄중한 벌을 내렸다.


윤견도 헌터이기에 당연히 군사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훈련소로 대체할 수 있어 자연스레 훈련소에 입대한 적이 있었다.


“아니, 헌터 먼저 해서 훈련소만 있었어. 그러니 전역은 안 했지, 퇴소는 했어도.”

“그럼 혹시 훈련소 동기들이랑 친했습니까?”


음..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기대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뭐, 처음에는 잘 못 섞였는데.”

“네? 혀..형이?”


윤견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여유가 없었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으로 동료라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그 때 몸은 힘들었는데 마음은 좀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어.”

“..그렇죠, 그럼 혹시 퇴소하가도 연락을 좀...”


분명 질문이었으나 이미 답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역시나 윤견의 고개가 저었다.


“번호는 주고받았는데...뭐, 나도 헌터 생활하고 걔들도 자대상활하면서 잊혀 졌지. 설마 너는 연락하냐?”

“에이...저도 자대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대신 자대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강후가 자신의 군생활을 떠올렸는지 쓴 미소를 지었다.


“신병 때 얼마나 맞았는지...2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맨날 고민했었습니다.”


군생활의 어두운 면을 떠올렸는지 표정까지 어두워졌다. 그러나 어둠이 지나 빛이 들어서며 점점 밝아졌다.


“그래도 선임이나 동기, 그리고 후임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같이 혼나고 맞고, 맞고 나서 담배 태우면서 욕하고...그 때 저도 전우라는 게 뭔지 느꼈던 거 같습니다.”


강후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쩔그럭 소리를 내며 군번줄을 꺼내들었다.


“그 때 다들 많은 계획을 짜며 약속을 했습니다. 전역하면 꼭 연락하고 만나자, 만나서 여행을 가자...살아남자고.”


그러나 다시 빛을 집어 삼키는 어둠이 강후의 얼굴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 들린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인식표도 주인을 따라 어두운 그늘에 물들었다.


“그런데 씨발...아무도..아무도 약속을 못 지켰어요.”


딱딱하게 쓰던 군대 말투를 쓰던 병장 이강후가 아닌 전역을 한 사회인 이강후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다들...다들...”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계속해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름도 모를 종족을 막기 위해 급히 만들어진 세종시에 세워진 방어 라인.

강후의 부대가 투입되며 하나의 벽을 담당했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방어선을 지키다보니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들었었다.


‘이거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강후 말고도 다른 이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돌아가겠구나, 자대든, 집이든 돌아가겠구나 하고. 그러나 다음 날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잠을 깨우는 닭살 돋는 경고음과 힘껏 힘이 들어간 방송 목소리. 북을 난타하는 듯한 군화소리. 그 중 강후도 있었다.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


각자 배정된 곳으로 가 소통을 들고 전방을 주시하자 어두운 밤을 찢는 붉은 연기들이 꼬리를 펄럭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붉은 빛이 적들을 밝혔다.


"...저게 뭐야?"


그것을 처음 목격한 병사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나 강후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서부여행에 흔히 보이는 회전초처럼 보이기도 했고 뭉친 실타래처럼 보이기도 한 구체가 방어선을 향해 미친 듯이 굴러오고 있었다.


하지만 회전초가 저렇게 자동차만 할 리가 없고 물 위를 달릴 수가 없다.


사격 명령에 사방에서 우뢰와 같은 초성이 빗발쳤다. 총알에 맞은 회전초들이 그대로 터져 사방으로 길다란 무언가를 뱉어냈다.


하지만 다시 동그랗게 뭉쳐지기 시작하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방어선을 향해 돌진했다. 이미 그 순간부터 몇 몇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했다.


가장 최전방에 있던 이가 다가오는 운명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톼가가가!


거친 회전이 휩쓸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병사들이 깔끔하게 회전초에 흡수 되었다. 병사와 각종 무기들을 흡수한 회전초의 덩치는 더욱 커지며 나아갔다.


"끄아아아!!"

"안 돼!!"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


안 된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당시 강후의 본능이 크게 울부짖으며 외쳤다. 슬금슬금 뒤로 빠지는 다리.


풍경 옆에 속하던 강후가 뒤로 빠지며 마치 남 일이 된 것처럼 나눠졌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잠시 감상하던 강후는 이내 발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뒤에서 들리는 동료들의 비명소리도, 약속도, 떨어트린 인식표도 모두 버리고 부정하며.


그 순간 강후는 탈영병이 되었고, 도망자가 되었고, 배신자가 되었다.



이제 강후는 말도 잊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혹여나 밖에 고블린들이 들릴라 입을 막으며 서글프게 울었다.


원래대로 였으면 강후는 그곳에서 전사했어야 했다.


동료들과 함께. 아니, 어쩌면 운 좋게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지금 옆에서 듣고 있는 이 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보다는 죄책감의 고통이 덜 할 것이다.


끝까지 옆을 지키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와, 다 버리고 도망쳐 살아남은 자의 입장은 다른 것이니.


그럼에도 윤견은 동질감을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심찮은 의로도 비난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시체들 위에 울부짖던 자신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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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십오 - 2 25.07.15 2 0 11쪽
391 십오 25.07.13 4 0 11쪽
390 지옥도 25.07.10 6 0 11쪽
389 죄와 죄인 25.07.07 7 0 11쪽
388 과거로 25.07.05 7 0 12쪽
387 마지막 약속 25.07.03 7 0 11쪽
386 마지막 임무 25.07.01 9 0 11쪽
385 전야제 25.06.29 7 0 11쪽
384 쟁탈전 - 3 25.06.26 9 0 11쪽
383 쟁탈전 - 2 25.06.24 9 0 11쪽
382 소문과 결단 25.06.21 10 0 11쪽
381 이전 25.06.19 8 0 11쪽
380 임무 25.06.18 9 0 11쪽
379 쟁탈전 25.06.15 9 0 11쪽
378 기습 - 3 25.06.14 11 0 11쪽
377 기습 - 2 25.06.10 10 0 11쪽
376 기습 25.06.08 11 0 11쪽
375 부산 - 3 25.06.06 10 0 11쪽
374 각색 25.06.03 11 0 11쪽
373 부산 - 2 25.06.01 12 0 11쪽
372 부산 25.05.29 10 0 11쪽
371 여기까지 25.05.27 10 0 11쪽
370 여행 계획 25.05.25 8 0 11쪽
369 엔딩으로 25.05.18 9 0 11쪽
368 목소리 25.05.15 11 0 11쪽
367 무게감 25.05.13 11 0 11쪽
366 사냥 - 3 25.05.11 12 0 11쪽
365 사냥 - 2 25.05.09 11 0 11쪽
364 사냥 25.05.0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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