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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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최근연재일 :
2025.07.1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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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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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피해

DUMMY

“으아...그걸 다행이라 할지.”


소식을 들은 라호가 흙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아마 씨앗을 회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도 하니깐.”


이런 세계에서 웬만한 소식은 대부분 안 좋은 쪽이었으니. 라호 말고도 걱정하는 눈이 한 짝 더 있었다. 윤견의 손이 흑백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내려갔다.


하나 둘 차에 몸을 올리며 다시 떠날 준비를 끝내 이제 엑셀만 밟으면 됐다. 하지만 민혁은 밟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견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 자동차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에 말을 멈췄다.


"...강후?"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윤견의 눈초리가 민혁에게로 향했다. 민혁은 휘파람을 불며 모른척 넘어갔다. 뒤에서 까지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어디 가는 지는 알고 있지 않나?"

"네, 거기까지 같이 동행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가족들이 피난 갈 수도 있다는 곳이 같은 방향이다 보니..."


무사히 건너오고 나서 강후는 마을의 생존자들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생존자들은 강후를 처음 보는 듯했지만 그의 할머니와는 교류가 있었는지 금세 경계심을 풀고 이런저런 정보를 나눴다.


그 중 그의 가족을 포함한 다른 생존자 무리가 어디로 피난을 갔는 지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자리도 한 자리 남지 않습니까..."


휘파람만 불며 눈치보던 민혁이 슬쩍 말했다. 윤견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백미러로 뒤를 쳐다봤다.


파이브는 딱히 찬성도 반대도 아는 모양이었고, 라호는 찬성 쪽이었다. 윤견이 뒤로 손짓하자 강후가 고개를 숙였다.


"시키는 건 모든 하겠습니다!"

"시끄럽고, 빨리 타라."

"다시, 신병이 된 걸 환영한다."

"너도 시끄럽고 출발이나해."


멈췄던 바퀴가 다시 돌아갔다. 뒷자리에 탄 강후가 뒤를 돌아보며 생존자들에게 꾸벅 인사를 전했다.



강후가 일행에 합류한 지 하루가 지났다.

강후는 이미 일행들과 동행한 적이 있어 일행에 섞이는 것에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생각지 못한 변수가 일행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으...."


강후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몸을 웅크렸다. 그의 옆에 있는 파이브도 온 몸을 담요로 휘감고 있었지만 강후처럼 이를 쉴 틈 없이 부딪치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미..민혁오..빠, 히...히터 온도 더 높게는..."

"이미 이게 최대야으아.."


민혁이 이처럼 달달 떠는 손가락으로 버튼을 딱딱 두르렸다.


똑똑.


창밖의 노크소리에 일행들의 시선이 쏠렸다. 비니에 목도리 그리고 패딩과 그 위로도 덮은 모포를 입은 윤견이 나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일단 불 피웠어, 따라와."


윤견을 따라 차 문을 열자 살을 찢을 듯한 칼바람이 불어왔다.


"멀지 않으니깐 쫌 만 참아."


먼저 나와 있던 윤견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바람을 뚫으며 어느 가정집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이나 창문은 처음 왔을 때에 깨지거나 부서져 있었으나 라호가 메웠다.


현관문을 열자 방 중앙에서 피어 오른 푸른 불이 이들을 반겼다. 일행들은 서둘러 집 안으로 몸을 집어넣고 문을 굳게 닫았다.


"으...추워..."


불이 앞에 있어도 아직 추위를 떨치기에는 힘들었다. 그래도 전에 비해 그나마 따뜻해진 건 사실이었다.


푸른 모닥불 위에 올라가 있던 주전자를 잡은 윤견이 컵 하나하나에 조심이 담자 그 위로 라호가 꽃잎을 뿌렸다.


이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효능이 있을 지 알 법했다.

역시나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따뜻한 온기가 몸에 은은하게 퍼져왔다.


그럼에도...


"졸라 춥네."


이 무지막지한 한기는 그대로였다.


"뭐...뭐지? 눈도 안 오는데 왜 이리 추운 거야!"


파이브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달달 떨며 말했다.


"지금껏 겪은 겨울 중 가..가가장 추운 거 같아."


코를 훌쩍이며 민혁이 뜨거운 컵을 볼에 비볐다. 확실히 민혁의 말대로 윤견도 이정도의 추위는 그동안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보일러나 난방 같은 것들이 없다지만 아니, 그것들이 있어도 아마 지금의 추위는 세계가 망하기 전에도 없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주인이 바꿔서 그런지 기상도 바뀐 모양인가...”

“오! 그럴듯한데요? 지구의 주인이 저희였을 때에는 지구온난화가 있어..”

“그런데 고작 1, 2년 바뀐 게 이정도로 차이가 있을 까요?”


다른 일행들 보다 유독 추위를 덜 타고 있는 라호가 주전자에 물을 채우며 말했다.


“녹색 비도 내리는 마당에 못 할 건 없지.”

“이제 우리가 알던 지구도 아닌 거 같다.”


윤견이 쓸쓸히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지구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현실을 깨우듯 찬바람이 방 안을 맴돌았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것보다 잘 수 있을지 모르겠네...아니다, 자다가 얼어 뒤지지 않을 까 걱정이다.”

“불을 더 피우면 안 돼?”

“그건 안 돼. 저 풀 보이지?”


땔감 마냥 모닥불 아래에 깔려 있는 넓은 잎사귀들을 가리켰다.


“라호가 만들어준 식물인데 저게 매연을 흡수 할 수 있어.”

“그러면 더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이 추위에 자란 게 이것들 뿐 이야. 괜히 여러 개 피워서 일찍 끝낼 바에는 하나만 피워서 길게 유지하는 게 더 좋아.”

“이야...라호가 재주가 좋네.”


강후의 힘없는 칭찬에 라호가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었다. 어제 이후로 강후도 라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 라호가 시원하게 고글을 벗을 수 있었다.


“불침번은 서야겠지?”

“당연하지, 누구 의식 잃어가는 사람 없는 것 까지도 살펴야 하니깐.”

“그런데 이 정도 추위면 다른 이종족들은 얼어 죽겠는데요?”


민혁이 육포 조각을 뜯어 물었다. 확실히 민혁의 말대로 지금 이 한기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다.


“뭔가 빙하기로 돌아간 건만 같아요.”

“그러면 어느 종족은 멸종 당할 수도 있겠네.”


라호의 말에 파이브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윤견도 피식 웃으며 컵을 흔들었다. 어쩌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어느 종족은 얼어 줄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고블린 놈들도 전멸 당했을 수도 있겠네.


잔을 비운 윤견이 일어섰다.


“잠깐 주변 좀 뒤져서 덮을 만한 것들 좀 찾아올게.”

“아, 저도 같이 갈게요.”


라호도 서둘러 일어섰다. 딱히 말리지 않고 같이 밖으로 나갔다. 왠지 쓸쓸히 홀로 나가면 더 추울 것 같았다.


“네가 추위를 덜 타는 것도 가을뿌리의 피 덕분인가?”

“그런가 봐요. 아버지는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으셨거든요. 형은 괜찮으세요?”


윤견은 굳이 거짓말고 그렇다고 사실도 답하지 않고 힘없이 웃었다. 확실히 시골이라 그런지 주위에는 얼어붙은 논밭과 고작 몇 채의 집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런 집들에서 이불과 모피코트 등 다양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모피코트를 라호에게 입히며 머릿속에서 지도를 떠올렸다.


-분명 여기서 오른 쪽으로 가면 꽤 큰 마을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가야 하나? 아님, 이정도면 충분한가?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보던 중 라호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윤견이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년이 가리킨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싸늘하게 얼은 시신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옷을 보아하니 패딩을 두 겹 정도 입고 버텨보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결말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 처음 이 주변을 살폈을 때에는 없었어..죽은 지 얼마 안 됐다는 건가.


비록 장갑을 끼고 만진 거지만 그럼에도 느껴지는 걸로 따지면 적어도 사람의 몸이 아닌 마네킹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윤견과 라호가 눈을 감고 짧은 묵념을 가졌다. 그 후 윤견이 시신을 넘어가려던 순간 온 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한기가 덮쳤다.


"허억!"


기도가 얼어붙은 건가 싶을 정도로 호흡이 힘들어지며 근육들도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순간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에서 윤견은 도망조차 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형!"


라호가 다급히 윤견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 손 역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한기의 바늘에 박혔다.


"끄으으으!!!"


자신의 손에 느낀 것으로 대강 상황을 파악한 라호가 고통 섞인 기합과 함께 윤견을 뒤로 당겼다. 시신의 다리에 걸려 그대로 뒤로 넘어진 윤견은 그제야 묵힌 숨을 뱉으며 이를 딱딱 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형! 형! 괜찮아요."

"추...추..추워."


말 보다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많았지만 라호는 곧바로 집에서 가져온 이불을 펼쳐 덮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윤견의 떨림은 멈출 수 없었다.


"물..물러서."


힘겹게 말을 내 뱉고 품 속에서 작은 라이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이 덮고 있는 이불에다 불을 질렀다.


그러나 라이터에서 나온 불씨가 추위에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윤견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불씨를 일으켰다. 힘겹게 일어서던 불이 잠시 작아지더니 그대로 이불을 태우기 시작했다.


"끄으으..아!"


몸을 찌르던 한기 대신 열기가 느껴지자 이불을 집어 던졌다. 불에 탄 이불이 펄럭이며 시신 뒤로 날아가자 불이 흔들리더니 이내 완전하게 소화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윤견이 라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달라."

"네?"

"저기...시체 뒤랑 앞인 여기랑 온도가 차원이 달라."

"그게 무슨..."


얼토당토 없는 발언이었지만 아직도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본 라호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그럼 어느 지역을 넘어가면 기후가 급격히 낮아진다는 거야?"


겨우 라호의 도움을 받으며 일행들에게 돌아와 남아 있는 한기를 모닥불 앞에서 쫓아내고 있던 윤견을 향해 파이브가 물었다. 윤견에게 따뜻한 차를 건넨 라호가 대신 대답했다.


“응, 확실했어. 이것 봐, 고작 넘어갔을 뿐인데.”


라호는 자신의 빨갛게 물든 손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면 그..중심에 이 추위의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걸 중심으로 거리마다 추위가 달라지는 거고.”


강후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확실히 이 추위부터가 자연적이지 않았다.


“확..실히,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야. 아이스 트롤들도 기본적으로 냉기를 내뿜고 있으니깐..”


민혁이 뺨을 긁으며 살짝 벽 쪽에 등을 기댄 순간 화들짝 놀라며 몸을 앞으로 뺐다. 미세했지만 한기가 등을 찌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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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십오 - 2 25.07.15 2 0 11쪽
391 십오 25.07.13 4 0 11쪽
390 지옥도 25.07.10 6 0 11쪽
389 죄와 죄인 25.07.07 7 0 11쪽
388 과거로 25.07.05 7 0 12쪽
387 마지막 약속 25.07.03 7 0 11쪽
386 마지막 임무 25.07.01 8 0 11쪽
385 전야제 25.06.29 7 0 11쪽
384 쟁탈전 - 3 25.06.26 9 0 11쪽
383 쟁탈전 - 2 25.06.24 9 0 11쪽
382 소문과 결단 25.06.21 10 0 11쪽
381 이전 25.06.19 8 0 11쪽
380 임무 25.06.18 9 0 11쪽
379 쟁탈전 25.06.15 9 0 11쪽
378 기습 - 3 25.06.14 11 0 11쪽
377 기습 - 2 25.06.10 10 0 11쪽
376 기습 25.06.08 11 0 11쪽
375 부산 - 3 25.06.06 10 0 11쪽
374 각색 25.06.03 11 0 11쪽
373 부산 - 2 25.06.01 12 0 11쪽
372 부산 25.05.29 10 0 11쪽
371 여기까지 25.05.27 10 0 11쪽
370 여행 계획 25.05.25 8 0 11쪽
369 엔딩으로 25.05.18 9 0 11쪽
368 목소리 25.05.15 11 0 11쪽
367 무게감 25.05.13 11 0 11쪽
366 사냥 - 3 25.05.11 12 0 11쪽
365 사냥 - 2 25.05.09 11 0 11쪽
364 사냥 25.05.0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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