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하는 마을

다행히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덕분에 처음 예상한 경로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민혁에게 위치를 알려주니 단번에 새로운 경로를 빠르게 정리한 민혁이 출발을 알렸다.
버릴 건 버려 짐이 가벼워진 차가 경쾌하게 바닥을 긁으며 나아갔다. 그렇게 일행들은 접성산 매봉산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에 도달했다.
“..이런.”
그러나 이미 이 마을은 다른 이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수인?”
“미노타우로스?”
그간 본 육식 동물들의 머리를 가진 수인과 달리 소의 머리와 덩치를 가진 수인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젠장, 차 돌려야 쓰것다.”
“미노도 위험한 종족 인가요?”
자신 만의 방식으로 미노타우로스를 부른 라호가 가족으로 보이는 무리를 보며 말했다.
“딱히 호전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자기들의 영역을 지키려면 모든 하겠지. 그리고 저 구역이 빈 구역이 아니고 빼앗던 것일 수도 있고.”
보는 거와 같이 머리가 소라서 그런지 놈들의 주식도 채소나 과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굳이 다른 이종족을 잡아먹지 않아 사냥할 필요가 없어 마찰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화주의자들은 아니다.
저 근육들은 인간의 총탄을 가뿐히 튕겨낼 수 있고 저 발굽은 마치 과자 부수듯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
만약 수인들끼리 맨 몸으로 순위를 정한 다면 분명 상위권은 가뿐히 자리 잡을 놈들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위험한 놈들이니 돌아가려던 찰나 아까부터 미노타우로스들을 관찰하던 라호의 눈에 다른 것들이 잡혔다.
라호는 단번에 일행들을 부르며 자신이 본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행들도 손끝을 따라 라호가 봤던 것을 확인했다.
“사..사람들이잖아!”
민혁이 놀라며 외쳤다. 다섯 명의 사람들이 미노타우로스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헌터인가 했지만 윤견의 눈에 저들은 그저 일반인들로 보였다. 상상치 못한 사람들의 등장과 행동에 미노타우로스들이 더욱 상상하지 못한 행동을 보였다.
“방금...받지 않았어?”
윤견은 자신이 방금 봤던 것을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같이 보고 있던 민혁이 대답했다.
“네, 분명 사람들이 박스를 줬고, 미노들이 받았어요.”
다들 같은 것을 봤으니 부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황을 금치 못한 눈들 중에서도 유독 빛을 내는 눈이 있었다. 그 눈의 주인이 기대감 가득 담긴 목소리를 냈다.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순간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라호의 눈이 갈 곳을 잃었다.
“왜...왜요?”
“아니...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상황을 보면 있을 수도 있는 추리였다.
하지만 라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동시에 놈들이 사람들을 부려 먹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다시 보니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져 있는 게 보였다.
-저 미소가 거짓일 수도 있지...
하지만 한 편으로는 라호의 말대로 공생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끼리 돕는 건 봤어도 다른 이종과의 공생은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가을뿌리 같은 처음부터 손을 잡은 종족도 아니고.
“어떡하죠, 형님? 돌아가나요?”
돌아가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만큼 시간도 걸린다. 그것도 그거지만 라호처럼 윤견도 작은 호기심이 생겼다.
“일단 대기해봐, 내가 가서 말해보고 올게.”
차에서 내린 윤견이 검을 챙기며 마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윤견이 모습을 드러내자 먼저 미노타우로스가 발견하고는 울음소리를 토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지레 겁먹고 놈들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윤견을 발견하고는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미노타우로스들에게 뭔가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윤견도 자리에 서서 양 팔을 들며 의사를 보였다.
저 사람의 중재가 성공했는지 미노타우로스들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그가 천천히 윤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에는 앞쪽에 있던 사람들 밖에 살피지 못해 몰랐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꺼운 패딩에 어울리지 않은 밀짚모자를 쓴 여성이 윤견의 앞에 도달했다.
“무슨 일이시죠?”
“이 길을 지나가고 싶습니다. 그저 그거 하나면 됩니다.”
“혼자신 가요?”
여성이 눈이 빠르게 윤견의 흑도를 훑었다.
“아뇨, 다른 일행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눈에는 윤견 외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여성의 눈이 일행들을 찾자 실쩍 옆으로 비키며 일행들에게 손을 까딱 움직였다.
윤견의 신호에 민혁이 살짝 발을 눌러 차를 내밀었다. 차를 보자 여성의 눈이 커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해되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겠습니다.”
차에서 눈을 떼지 못한 여성의 머릿속이 움직이는지 그녀의 눈동자도 꿈툴꿈툴 움직였다.
“싫으시다면 그냥 물러서겠습니...”
“좋아요, 그런데 혹시 차 안에 의사가 있으신가요?”
윤견이 살짝 뒤를 돌아보며 라호를 떠올렸다.
“...의사라 불리기 애매하지만 한...명 있긴 합니다.”
“그럼 저희가 부탁드리겠습니다. 환자가 있습니다, 도와만 주시면 길은 물론이고 식량도 드리겠습니다.”
“...일단 일행들과 얘기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그냥 간단하게 치료만 할 수 있는...의원이라는 것만 미리 말하죠.”
“괜찮습니다. 한 번 진찰이라도 해주는 거에도 만족 할게요.”
윤견은 그대로 차에 손짓하고는 자신 또한 앞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차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다.
창을 두드리자 창문이 내려갔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방금 나눴던 대화를 말했다. 역시나 시선이 라호에게 쏠렸다.
“제가..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당연하지. 그냥 진찰만 하고 할 수 있다, 없다만 말해줘도 돼.”
한참 고민하던 라호가 자신의 씨앗 주머니를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이랑 라호 둘이서만 가나요?”
“흠...”
전부 가기에는 함정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남기고 가기에는 그 만큼 전력이 분산이 된다. 한참 고민하던 중 파이브가 먼저 답을 내놨다.
“다 같이 가지 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파이브를 보며 윤견은 그녀의 팔찌를 흘긋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거지 뭐.”
흘겨 듣기 힘든 말이 덧붙였지만 애서 무시하고 여성에게 향했다.
“좋습니다. 대신, 저들이 멀리 떨어졌으면 합니다만...”
“알겠어요, 말 뿐이지만 절대 함정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니 믿어주세요.”
여성은 그대로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가 손짓발짓하자 어느새 꽤 많이 모여 있던 미노타우로스들이 슬금슬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여성이 팔을 동그랗게 말아 신호를 보냈다. 윤견도 차에 그대로 전달하고 먼저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듬성듬성 보이는 거대한 벽 말고는 딱히 특이한 것은 없었다.
여성의 속도로 뒤따라가니 어느 요양원 앞에 도착했다. 이름 앞 글자들이 떨어져 봄이라는 이름 밖에 남지 않았다.
“의사 분은 어느 분이시죠?”
여성이 묻자 뒤 자석에서 라호가 쭈뼛 내렸다. 역시나 여성의 얼굴이 구겨지며 윤견을 쳐다봤다.
“이 친구가 저희 의사, 의원입니다.”
“이...꼬마가요?”
“저희 목숨을 몇 번이나 구했어요.”
민혁도 엄지를 올리며 보증했다. 하지만 여성의 의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연한 반응이다. 입장이 반대가 됐어도 똑같이 의심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여기서는 남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하..한 번 믿어주세요.”
본인이 직접 나서야 했다.
윤견의 뒤에 있던 라호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여인이 라호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작게 숨을 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이 아이만 따라오나요?”
“괜찮으시다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윤견이 라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일종의 보호자 역할인 샘이었다. 여성은 흔쾌히 허락하며 남은 일행들은 입구 로비에 둔 채로 여성을 따라갔다.
여성은 어느 방 앞으로 안내하더니 문을 벌컥 열었다. 방 안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과 세 마리의 미노타우로스가 누워 있었다. 이들 모두 어딘가 불편한지 호흡이 가빴다.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감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잠깐, 그럼 정체 모를 전염병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저희도 의심하고 바로 격리를 했지만 전염되는 건 없었습니다. 보시는 거와 같이 마스크를 안 써도 상관없고 고작 이 정도만 증상을 보였습니다.”
“그...언제부터 이런 건지...?”
“2주 전부터 그랬던 거 같아.”
-2주라...확실히 전염병이었으면 진즉에 마스크를 썼거나 고작 일곱 명으로 끝나지는 않았겠지.
라호가 작게 숨을 뱉고는 두 손으로 나무를 쥐었다.
“그럼 진찰을 시작하겠습니다.”
라호가 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근처에 있던 사람에게 다가갔다. 윤견은 슬쩍 뒤로 빠지며 여성에게 작게 속삭였다.
“놀라지 마세요, 진찰 중인 거니.”
“네? 그게 무슨..”
여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뭇가지가 자라나며 환자에게 뻗어갔다. 여성이 놀라 앞으로 가려하자 윤견이 팔을 뻗어 길을 막았다.
“...”
보통보다 더 시간이 걸린 진찰에 윤견이 입을 열려던 찰나 가지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때? 치료할 수 있겠어?”
“...네.”
“뭐? 저..정말?”
여성은 못 믿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나 라호의 대답은 같았다.
“대신 시간을 좀 주세요.”
일단 믿고 들여보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여성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소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소년이 나무를 움직였고, 치료도 가능하다고 말하니 선 듯 믿지 못하겠는지 윤견을 쳐다봤다.
윤견은 그저 믿으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결국 여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게 있으면 말하렴, 최대한 준비해 두마.”
“음...질 좋은 흙이 있으면 좋겠어요.”
“...어?”
다시 밖으로 나와 라호가 흙을 파며 씨앗들을 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여성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저 아이...헌터인가요?”
“음...비슷해요.”
여성은 라호의 정체가 많이 궁금한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계속 대답하던 도중 윤견이 말을 끊었다.
“저도 궁금한게 많거든요. 특히, 이 마을은 뭔데 이종족과 같이 지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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