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단 - 3

평범한 기폭 장치는 아니었다.
저것도 나름 궤나 이들의 총처럼 광석의 힘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숙주의 피와 근육을 연료 삼아 작동한다는 게 큰 단점이지만 그 만큼 파괴력은 장담한다.
아니, 했다.
"호오..."
넝마가 된 자신의 몸을 살핀 악마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사."
반면 추호는 아무런 실망이나 좌절 같은 기세도 보이지 않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 총알에 악마는 다시 밀리며 계단에 부딪쳤다.
-나한테 효과가 없는 걸 알고도 쓴다는 건...역시 지금처럼 밀어내기가 주 목적이군. 그럼 역시 저 벽 넘어.
슬쩍 방어벽을 보자마자 총알이 눈을 파괴했다. 하지만 악마는 거리낌 없이 손바닥을 펼치며 자신의 몸에 추척된 총알들을 날렸다.
{온 - 쌍둥이 검-소용돌이}
악마가 손을 뻗자마자 검을 잡은 추호가 쌍검을 먼저 휘둘렀다.
그들의 앞에 소용돌이가 일렁이며 총알들을 튕겨냈다. 하지만 곧바로 악마가 소용돌이를 찢으며 앞서 나온 추호의 목을 잡았다.
"큭!"
마치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더 즐기고 싶은데, 빨리 데리고 가야 해서 말이야. 안 그럼 혼나거든.”
악마가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손날을 세우곤 추호의 심장을 향해 내질렀다. 그 순간 마스크가 추호의 입꼬리를 따라 올라갔다.
타캉!!
추호의 겉옷에 가려진 방호복에서 산탄이 쏟아져 나왔다.
“오호!”
악마가 짧은 감탄사와 함께 산탄에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추호의 마스크에서도 피가 고이더니 그대로 떨어졌다.
“발...발사.”
어느새 일어나 달려오는 악마를 향해 총알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또 다시 총구가 망가지자 이번에는 2팀이 총을 집어 던지고 달려갔다.
타캉!
이젠 3팀 둘을 포함한 추호, 총 셋 만이 남아 있었다.
“...후우, 이젠 셋 밖에 없네.”
악마도 옷에 먼지를 툭툭 털고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추호의 신호에 3팀도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줄어든 총구에 당연히 위력도 줄어들었다.
밀려나지 않고 조금씩 다가오는 악마를 보며 추호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다. 피로 젖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쌍검을 던졌다.
{온 – 쌍둥이 검-송곳니}
오우거의 심장을 관통하는 공격은 악마의 손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온 – 철산의 검}
{온 – 엽화의 검}
한 때 수많은 이종족들을 도륙하던 검들이었지만 모두 날파리 마냥 나가 떨어졌다. 이젠 마지막 검만이 남은 추호가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잡았다.
3팀도 총을 던져두고 악마의 앞을 막았다. 그리곤 익숙한 소리와 함께 폭발했지만 악마가 다시 손짓 한 방으로 모두 정리됐다.
그 사이 단숨에 접근한 추호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아까부터 밖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윤견은 파이브를 업은 채 남성을 살폈다.
“...아직 2분 남았..”
쿵!!
철문에서 거친 진동과 함께 천장의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남성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주섬주섬 방탄복을 입고는 권총을 들었다.
“상자에 손을 데고 있어. 시간이 되면 알아서 보내 줄 거다.”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거지?”
“미안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아. 부산물이란 것처럼 멀리는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 이곳에서 떨어진 곳일 거야.”
끼기기기..긱.
철문 넘어 뭔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철문의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한참이나 요동치던 철문이 잠시 잠잠해지더니 마치 종잇장처럼 팔랑이더니 두 갈래로 갈라졌다.
“오, 저건 가?”
갈라진 틈 사이로 악마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파이브를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악마의 면상에 총알이 박혔다.
“아..증말, 귀찮..어라?”
얼굴에 총탄이 박힌 채 악마가 입을 움직이자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몇 초 뿐.
“신기한 거 많이 들고 있네.”
-벌써, 풀렸다고? 아직 시간이...
완전히 빠져나온 악마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파이브를 내려둔 채로 윤견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푸른 화염이 그대로 악마를 덮쳤다.
“물러나! 어서!”
혹여나 변수가 생길라 남성이 다급히 윤견을 불렀다. 하지만 벌써 화염 속에서 악마의 손이 빠져나왔지만 윤견도 빠르게 검을 휘저었다.
흑도의 궤적에 따라 악마의 팔도 잘려가며 윤견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남성도 한 쪽 무릎을 굽히곤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윤견, 당장 뒤로 돌아가! 1분...”
악마의 발끝에서 시작된 꼬리가 남성의 몸을 관통했다. 몸 안을 헤집는 고통에 이를 깨물어 버텨봤지만 이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자연스레 고개가 남성 쪽으로 돌아갈 뻔 했지만 1분이란 시간에 금방 파이브와 상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멈춰라.”
등 뒤에서 느껴진 허용할 수 없는 공포에 윤견은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금방 자신의 허벅지에 주먹을 내려찍으며 공포를 떨쳐냈다.
“오호, 신기한 파회 법이지만...어딜.”
어느새 재생된 악마의 손이 늘어나며 윤견을 붙잡으려했다. 윤견도 바로 뒤를 돌며 검을 휘둘렀지만 악마의 손이 두 갈래로 찢어졌다.
“뭔?!”
흑도가 찢어진 팔 사이를 지나갔다. 남성도 바로 총구를 겨누었지만 꼬리가 꿈툴 움직이자 총구가 흔들리며 벽을 맞췄다.
윤견이 왼팔을 움직여 어떻게든 방어하려던 순간. 천장을 뚫고선 식물의 뿌리가 악마의 팔을 붙잡았다.
생각지 못한 것에 악마의 표정에 당혹감이 들어났다. 윤견 역시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라호.”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처럼 양 볼에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한편 악마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뿌리를 가볍게 끊어내곤 다시 윤견을 공격하려했지만 방금보다 더 굵은 뿌리가 내려와 악마를 붙잡았다.
“윤견!!!”
거의 피를 토하듯이 남성이 외쳤다. 자신의 임무를 잊지 말라는 애원에 가까운 포효였다.
이제 몇 초가 남았는지 모른다. 빨리 파이브에게, 상자에게 가야 한다.
라호를 버리고서.
“...”
윤견은 찰나의 시간 동안 고민을 내리고는 판단을 내렸다. 파이브를 업고 상자에 손을 올렸다.
이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형.’
라호의 마지막 모습. 그것도 뿌리 따위의 흔적을 바라보며.
쉬지 않고 몰아치는 식물들의 뿌리에 악마의 표정이 점차 짜증을 보였다. 자신을 상대하기보단 오로지 방해하는 것만이 움직임에서 들어났기 때문이었다.
“귀찮게...”
악마의 팔이 털이 덥수룩한 짐승의 팔로 변하더니 그대로 천장을 가격했다. 윤견의 눈에 보이지 않은 무언가 전달이 된 것이지 요란하게 움직이던 뿌리들이 부르르 떨기만 할 뿐 움직임을 멈췄다.
그 틈에 악마의 눈동자가 윤견을 바라봤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온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왔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 손은 파이브를 잡고 있고 다른 손은 상자를 데고 있으니.
하지만 그런 악마의 발목을 남성이 붙잡았다. 몸이 관통당하고 있음에도.
이번에도 짜증과 함께 남성을 바라보려던 찰나, 아차하는 심정으로 바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귀를 멀게 하는 굉음과 함께 윤견과 파이브가 사라졌다.
“...아...혼나겠네, 이거.”
탓하는 시선이 남성을 향했지만 이미 남성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짧은 콧방귀와 함께 꼬리를 회수한 악마가 이번에는 위를 바라봤다.
“대신 네놈에게 화풀이 좀 해야겠다.”
*
“........”
한순간에 바뀐 풍경과 고요한 정막 속 윤견은 한참이나 서 있었다. 한참을 서 있던 윤견은 조심히 파이브와 검을 내려놓고 다시 한참을 서 있었다. 어두운 하늘도 퀘퀘한 지하의 냄새도 비린 피 냄새도, 피부로 느껴졌던 살기도 모두 한 순간에 사라졌다.
한참 멍 때리던 중 무언가 역한 것이 온 몸을 돌았다.
“웁!!”
결국 바닥에 쓰러져 목구멍 밖으로 쏟아냈다.
“우에에엑!!”
한참이나. 분명 자신이 토하는 소리 밖에 들릴 리가 없을 텐데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그으으으!!"
두 손으로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목소리에 도망치듯이 다급히 검과 파이브를 챙기고는 자리를 떴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귀에서 들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피해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참을 도망가던 윤견의 눈에 어느 폐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윤견은 그 건물로 향했다.
짤그락.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를 밟고선 파이브를 눕힐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적당히 긴 소파를 찾아 조심히 파이브를 눕히곤 그 앞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거친 숨소리가 건물 안을 가득 메웠다.
...또 죽었다. 이지와 다나의 마지막은 보지 못했으나 분명 그 상황에 놓여 있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할 것이다. 그건 라호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아..아아...”
탄식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이 구토 다음으로 나왔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한기가 맡아졌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으면 추위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주변을 살펴 몸을 덮을 만한 것을 찾았다. 찢어진 커튼 구멍 뚫린 코트 등 눈에 보이는 건 전부 가져가 입었다.
확실히 그 노력이 가상하게 점차 몸이 따뜻해지며 몸이 녹는 듯한 나른함이 찾아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파이브를 두고 눈을 감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윤견의 생각과 달리 눈이 절로 감기기 시작했다. 점차 꾸벅꾸벅 졸더니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자기 시작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밝았던 하늘도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쯤, 파이브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더니 올라갔다.
“...엥? 뭐야?”
일어난 파이브는 자신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분명 약을 먹고...나서부터 기억이 없네. 닥터?”
더듬더듬 기억의 파편을 찾던 중 기절해 있는 윤견을 이제야 발견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윤견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단번에 위기를 느끼며 자신의 권총을 뽑으려했지만 자신의 손목에 느껴지는 이질감에 바라보니 웬 끈이 보였다.
끈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웬 주머니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조심히 주머니를 열자 상상한 것과는 다른 것들이 들어있었다.
조금의 식량과 식수 그리고 태호의 낡은 수첩.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들은 모두 일행들의 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뒤늦게 자신이 목적을 깨닫고 총을 꺼냈다.
주변은 개미 하나 없는 듯 고요했지만 이 고요함이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분명 이럴 때에는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다른 언니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하나 안 보이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잠시 윤견을 바라본 파이브는 조심히 자신의 팔찌를 어루만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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