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이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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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앗호
작품등록일 :
2023.05.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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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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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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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

DUMMY

띵~동~땡~동~.


익숙한 학교 벨소리에 아직 풋풋함이 남아있는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업을 끝낸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 중엔 어린 윤견도 있었다. 지금과 달리 많이 둥근 인상과 밝은 미소.


“야, 윤견. 끝나고 피방?”

“안 돼, 임마. 알바 가야 돼.”

“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나라에서 돈 계속 주잖아?”

“그거 별로 없어. 줘야 하는 사람들이 몇 인데. 우리 학교에만 오십은 넘을 껄? 그냥 입에 풀칠할 정도야.”

"아...이러면 또 4인큐잖아."

"꼬우면 니들이 돈 주든가."


솔직히 저들의 인생을 부러워한 적이 없던 건 아니다. 물론 처음에는 하교하면 친구들끼리 즐길 수 있는 저 여유 그리고 가끔 씩 교복마이 안에 입고 오는 후두티까지 부러웠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겐 그럴 시간도 없어졌다.

물론 한 때 PC방에 빠졌던 적이 있었지만 형의 주먹에 금방 정신을 차렸다.


물론 그 주먹이 아팠지만 그것보다 형의 몸에 늘어만가는 상처를 보며 일찍이 철이 들었다.


'뭐? 됐어, 임마. 헛소리 말고 공부나 해.'


당시 알바를 시작하려 하자 형은 반대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결국 허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형 본인도 지갑 사정이 말라비틀어 지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끼고 있었거든.


"오늘은 어디냐? 편의점?"

"아니, 역 앞 피방."

"와~, 거기 알바 누나 개 이쁘던데."

"형이야 병신아."


평소처럼 서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 받던 중 선생님 한 분이 다급히 복도를 뛰며 어느 교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복도는 물론이고 교실에도 신나게 떠들던 애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선생님이 들어온 교실은 그 분위기가 더 진했다.


제발 나는 아니여라. 제발 나는 지나쳐 가라.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선생님은 어느 학생 앞에 멈췄다. 선생님은 입도 열지 않았지만 이미 그 학생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재환이 아니야?"

"하아...들어가자."


모두 남 일로 보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아니구나 싶었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그리고 그 날이 내게 다시 찾아왔다.


확실히 어릴 때와는 달랐다. 뭘 모르던 시절과는 못 느꼈던 충격과 비통함 그리고 막막함.


형의 차가운 시신 앞에서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나의 유일한 가족이자 버팀목이 하루 아침에, 남들처럼 사라졌다.


가슴 속 무언가가 쥐어 뜯기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무언가가.


한참을 울고나니 머리가 한 없이 차가워졌다.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 장례부터 해야 하나? 근데 그건 어떻게 하는데?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 없었다. 겨우 뒤늦게 오신 담임선생님이 차례를 알려주셔 덕분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이 온 조문객들을 받으며 차가워진 머리로 내 미래를 생각했다.


-형의 보험금, 국가 위로금.


천천히 들어올 돈을 계산하며 손가락을 접었지만 그리 많이 접히진 않았다.


"너의 형은 영웅이란다."


어느새 찾아온 헌터관리부 쪽 사람이 찾아와 대뜸 내게 한 말이었다. 당시 내가 듣기엔 어려운 말들이 많아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대강 형이 현충원으로 간다는 건 알았다.


그 덕분에 이번엔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형의 장례식을 한 번 더 치를 수 있었다.


솔직히 이게 뭔가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국민이 보고 있으니.


생전 처음보는 형의 길드 길드장이 와서 뭐라 지껄였지만 카메라 서텨소리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형의 장례식이 끝나고선 소름이 돋도록 관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근데 딱히 싫진 않았다. 그냥 좀, 조용히 있고 싶었기에.


학교에 와서도 친구들의 위로가 한동안 쏟아졌지만 역시나 금방 나를 대체할 친구들이 쉬지 않고 나타났다. 덕분에 금방 나에 대한 관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영웅의 동생임에도.


뭐, 그만큼 세계는 쉬지 않고 흘러갔다. 그것도 내가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아무리 그래도 수업시간에 부업을 하면 어떡하니?"

"죄송합니다."


말로는 사과했지만 솔직히 속으로 짜증이 좀 났었다.


국가에서 준 닭장 같은 집에서 겨우 입에 풀칠하려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결국 나도 선생님도 그저 형식적인 말들만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딱 하나 존재했으니. 바로 음악시간이었다.


물론 노래를 부르거나 고상한 음악을 들으며 감격하는 건 아니다. 그 때만이 유일하게 피아노를 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신나게 건반을 두드렸다. 이때 만큼은 아무런 걱정거리도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점 실력이 올라왔는지 음악선생님이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하늘을 날랐지만 금방 바닥으로, 현실로 추락했다. 지금 내 꼴을 보라.


이젠 부업만으로도 생활에 무리가 있다. 그런 내 손에 자연스레 선전물이 손에 들어왔다. 그 종이를 낡은 침대에 앉아 얼마나 고민을 했던가.


각성자 시술에 실패하면 죽음, 어쩌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헌터가 되면 다 끝인가. 내가 과연 괴물들 앞에 설 수 있는가.


“..아니야, 역시 이건 미친 짓이야.”


선전물을 구겨 대충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하지만 이런 내 삶에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음악에 집중할 형편도 아니잖아.


쓰레기통에 있는 종이를 꺼내 조심히 펼쳤다. 선전물에 방긋 웃고 있는 이름 모를 헌터의 얼굴에 순간 형의 모습이 투영됐다.


"못 해...나는 못 한다고."


맞짱 한 번 뜬 적도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결국 알바 갯수만 더 늘리기도 결정할 뿐.


물론 덕분에 나의 일상은 많이 망가졌다. 학교에선 계속 뒤쳐지고 잠자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나는 하나 둘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 꿈, 작은 취미. 이 모든 걸 자퇴서란 얇은 종이에 담아 선생님에게 건넸다.


"무슨..계획이라도 있는 거냐?"


계획? 이미 내 인생은 처음부터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뭐...있긴 해요."


없는 건 아니니.


처음 각성자 시술엔 나이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차 그 나이가 줄어들더니 이젠 고2만 넘어도 가능은 할 수 있었다.


물론 하는 놈들이 별로 없겠지만. 지금도 지원서를 받는 접수원의 표정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제 법적으로 문제는 없으니 결국 지원서는 통과가 되었다.


소문이 난건지 쏟아지는 시선에 숨듯 후두티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곤 대기를 하자 나와 같은 이들이 하나 둘 줄을 만들었다.


슬쩍 이들을 살폈다. 꽤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나보다 어려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있다면 심각한 노안일 것이다.


아무튼 이들 중 각성자가 될 수 있는 건 몇 퍼센트 뿐.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다.


간단한 신체검사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과는 다르게 바로 시술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알바를 하며 기다리던 중 우편물이 도착했다.


우편물에는 마치 통보처럼 시술 날짜가 정해져있었다. 그날부터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이 찾아왔다.


어려운 글자들로 빼곡한 서류에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사인을 하자 수술실 의사 보단 실험실 과학자들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 한 명씩 등장해 몇 마디 주고 받았다.


-그냥 한꺼번에 하면 안 되나?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때요?"


어느 순간부터 딴 생각을 하던 중 어느 의사가 대뜸 내게 말했다. 그간 지나갔던 의사들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저한테는 이것 밖에 없어요."


당시엔 이제와서 뭔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제법 나이를 먹으니 알 수 있었다. 그 때가 내 마지막 탈출구였다는 것을.


그 후 다른 의사들을 지나 싸구려침대가 아닌 병원 침실에 누워 몸에 들어오는 마취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내 운명이 남의 손에 넘어간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우선 살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그리고 나서 피가 도는 것처럼 온 몸에 감각들이 하나 둘 씩 깨어났다.


-이게 내 몸이라고?


신기했다. 피로가 누적이 된 내 몸이 흔한 표현으로 깃털처럼 가벼웠다.


"아직 일어나지 마."


가벼워진 내 몸을 실험하고파 침대에 내려오려했지만 어느새 나타난 의사가 말렸다.


"아직 근육이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려. 잠자코 있으라고."

"수술은 잘 끝난 거죠?"

"지금 머리에 하얀 천 안 덮여 있잖아, 그럼 성공이지. 축하해, 우리나라 최연소 각성자가 된 걸."


차가운 의사의 말투 때문이었을까, 방금까지 흥분으로 가득했던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담담해졌다.


다음 날 각성자가 된 사람들은 따로 체력 테스트 비스무리한 것을 실행했다. 그 수를 세어보니 일곱 명 밖에 없었다.


괜스레 운이 좋았다는 걸 느꼈다.


"음...다들 평범하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각성자 수술에 따라 힘도 제각각인 모양이었지만 우리 일곱 명은 딱 평균인 모양이다.


"저...저희 온은 어디서 받나요?"


일곱 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저씨가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헌터 등록 하시면서 하는 겁니다."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던 의사들은 귀찮과 짜증이 섞인 말투로 답했다.


"온..."


당연히 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헌터의 등급의 8할은 거의 온의 능력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이 어느새 찾아왔다.


"이게 무슨..."


병실에 있을 때 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몸에 달린 채 온의 재료가 될 광석을 찾았다. 수많이 쌓인 광석 중 나와 싱크로할 광성을 찾는 건 생각보다 빨리 결정 됐다.


"안 돼!!!"


옆에선 절규하는 사람 때문에 괜스레 걱정됐지만.


"오! 축하해! 이 녀석의 주인이 될 줄이야."


내 눈엔 그저 검은 돌덩이지만 이들의 눈에는 아닌 모양이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다행이다. 밥값은 하겠네.


그 후 온장간에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온을 만들었다. 여러 무기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검이 가장 무난할 거라 생각해서 검으로 만들었다. 그게 흑도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정부 소속 헌터가 광석의 힘을 쓰는 법을 알려줬다. 나름 신기해서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배우는게 늦었다.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나였다.


“A등급, 축하한다.”


특출난 온의 능력과 나름 센스 있는 전투능력으로 단번에 A급을 판정 받았다.


“...예?”


아, 생각해 보니 웃지는 않았다. 훈련하면서 나름 재능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A급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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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십오 25.07.13 3 0 11쪽
390 지옥도 25.07.10 5 0 11쪽
389 죄와 죄인 25.07.07 6 0 11쪽
388 과거로 25.07.05 7 0 12쪽
387 마지막 약속 25.07.03 7 0 11쪽
386 마지막 임무 25.07.01 8 0 11쪽
385 전야제 25.06.29 7 0 11쪽
384 쟁탈전 - 3 25.06.26 9 0 11쪽
383 쟁탈전 - 2 25.06.24 9 0 11쪽
382 소문과 결단 25.06.21 9 0 11쪽
381 이전 25.06.19 8 0 11쪽
380 임무 25.06.18 9 0 11쪽
379 쟁탈전 25.06.15 9 0 11쪽
378 기습 - 3 25.06.14 11 0 11쪽
377 기습 - 2 25.06.10 10 0 11쪽
376 기습 25.06.08 11 0 11쪽
375 부산 - 3 25.06.06 10 0 11쪽
374 각색 25.06.03 10 0 11쪽
373 부산 - 2 25.06.01 12 0 11쪽
372 부산 25.05.29 10 0 11쪽
371 여기까지 25.05.27 10 0 11쪽
370 여행 계획 25.05.25 8 0 11쪽
369 엔딩으로 25.05.18 9 0 11쪽
368 목소리 25.05.15 11 0 11쪽
367 무게감 25.05.13 11 0 11쪽
366 사냥 - 3 25.05.11 12 0 11쪽
365 사냥 - 2 25.05.09 11 0 11쪽
364 사냥 25.05.06 11 0 11쪽
363 해방 25.05.03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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