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 3

“...뭐? 피아노?”
그 날 변상 청구서가 우리 길드에 도착했다. 당연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날 덕분에 내겐 조금이라도 숨 쉴 구멍이 생겼다.
“오~. 진짜 잘하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자주는 못하지만 가끔 피아노를 치는 작은 취미가 생겼다. 도중 길드에서 강사까지 붙여줘서 배우고 싶었던 곡들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 후 그 작은 취미조차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게이트로 인한 피해가 급증...]
[작년 보다 사망자 수가 20% 증가.]
“앞으론 교대를 3교대로 하자고.”
갑작스레 늘어난 게이트에 헌터들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게다가 헌터들도 사망자가 많아지니 그 부담은 더 했다.
나도 마찬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피아노 치러 갈 기력도 없어 그저 냉장고에서 맥주를 가지고 그 소파에 눕는 일이 많았다.
[좋아~ 우리 모두 함께!]
어린이 만화를 보면서 맥주를 홀짝인다.
“게이트 뛰고, 장례식 가고, 인터뷰 하고, 씨벌...뭔 맨날 이 지랄이냐.”
요즘 슬슬 혼잣말이 많아졌다.
원래부터 없던 긍지지만 이 지경까지 왔을 때에는 정말 헌터를 때려치고 싶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 건지 괴물들에게 향하던 분노가 슬슬 헌터들에게 향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아무리 나라도, 사람들 앞에선 가면을 낀 나라도 참기 힘들었다.
돈 때문에 헌터한 내가 말이다. 그래, 이젠 나도 내 연기에 나도 속았던 것이었다. 정말 형의 의지를 이어가려는 사람으로, 영웅의 동생으로.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학교 체육 창고에서 게이트가 발생했다.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어느 반도 체육수업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말로 할 수 없는 큰 참변이 벌어졌다.
한순간에 자신의 아이들을 잃은 학부모들의 분노와 애통함은 그대로 헌터들에게 쏟아졌다.
“너희가 책임져! 책임지라고!!”
“우리 애 살려내!!”
“....”
속에서 뭔가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그것들을 입 밖으로 발사하고 싶었다.
“...씨발! 그런데 왜 나한테 지랄들이야! 우리 헌터도 죽었어! 죽었다고!!”
가슴 속 분노와 함께 핸드폰을 집어던졌지만 유족들이 아닌 소파에 날아갔다.
“하아...하아...젠장.”
손에 든 맥주를 흘리듯 마시곤 빈 캔도 벽에 집어던졌다. 등 뒤에선 철없는 만화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쉼 없이 떠는 손으로 리모컨을 잡고 티비를 끄며 어둠 속에 숨었다.
“언제까지...이래야 하는 거지? 형도 이런 걸 원할까? 아니, 애초에 돈도 이젠 충분히 모았...난 왜 헌터가 되었지? 어째서...”
늘 그렇듯 이 어둠은 내게 답을 주지 못한다. 그저 하루가 끝나가니 얼른 잠이나 자라고 하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언제였는가. 그 날짜가 언제인지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충격은 잊지 못한다.
한 국가가 이계로 온 존재들에게 패배한 모습이 전세계로 송출된 것을 두 눈으로 봤을 때에 그 충격은 어느 누가 봐도 충격일 것이다.
게다가 7황도 아닌 종족이었다.
당연히 다른 국가들은 큰 비상이 걸렸다. 물론 우리나라도.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7황들의 게이트가 등장했다.
아마 내 기억으론 가장 먼저 뱀파이어들이 아프리카에 등장했다. 그들의 등장만으로 주변 국가는 말 그래도 초토화가 되었다.
바로 다른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다음 7황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거대한 발자국 거인.
대서양의 해적 블랙 호크.
악의 염소의 신 악마.
화산구의 불길 드래곤.
살아있는 구름 클라우디스.
남극 왕국의 왕 제로
모든 것을 먹는 생명채 탐식.
솔직히 마지막 세 순서는 헷갈리지만 뭐, 그런 건 이젠 상관도 없다.
귀를 찢는 싸이렌 소리와 하늘을 분주히 날아가는 전투기들. 분명 아직 대낮임에도 하늘은 노을이 지는 것마냥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이미 이곳엔 많은 군인들과 다른 길드의 헌터들이 도착해 방어선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한 땀 한 땀 쌓아올린 방어선이지만 거인의 발길질에 금방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나도.
"...죽겠지. 아마."
당연히 죽기 싫다. 하지만 이상하게 두렵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래, 마치 가족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오! 윤견 헌터님 아니십니까!"
몇몇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설마 이 인간들 내가 있다고 해서 희망을 본 건가 싶었다.
순산 조소가 터질 뻔했지만 자연스레 멋들어진 미소로 바꾸며 나도 뭐라 지껄였다.
"요, 견이."
한참 방어선을 둘러보고 있던 그 때. 부길드장인 혜인이 찾아왔다.
비록 부길드장이지만 아마 이곳에 있는 다른 헌터들 중 그녀보다 강한 헌터는 없을 것이다.
"회의는 다 끝났습니까?"
"그래, 비행기는 아마 새벽 쯤 올 거라 하더라. 거인들 빨라도 내일 쯤이고."
"다행이네요. 유서 쓸 시간은 있겠네요."
시간이 시간인지라 길드사람들과는 격 없이 친해졌지만 이상하게 부길드장이랑 더 격이 없는 느낌이었다.
뭔가 친 누나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 까 싶다. 그래서 이런 류의 농담도 어렵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아하하하! 짜식이 벌써 죽을 생각부터 하냐!"
상황이 이래도 변하지 않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내 등을 때렸다.
"부(길드)장님은 안 무서워요?"
"다 죽이면 돼. 겁나는 게 있다면...시간을 못 버는 것뿐이야."
그럴 듯한 말이지만 오랜 시간 옆에서 봤기에 저 말이 진심이란 건 알 수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정말 헌터로써 긍지가 있는 사람.
나와 달리 말이다.
"안녕하세요."
한참 걷던 중 피난민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꾸벅 인사했다. 내가 잠시 가면을 쓰는 사이 혜인은 벌써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안녕, 꼬마 아가씨? 이쁜 곰 인형이네?"
혜인은 능숙하게 아이와 웃으며 얘기를 하고는 아이의 부모에게 데려다줬다.
아이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자 혜인의 표정에 걱정이 들어섰다.
"아무래도 나도...미련이 있는 모양이다."
처음 본 그녀의 쓸쓸한 표정에 나도 그간 받았던 것처럼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그 날이 찾아왔다.
쿵쿠우쿵-쿵쿵쿵!!
거대한 울림과 함께.
그에 대항하듯 땅에서 전차들이 포를 발사했다. 하늘에선 전투기들이 공격을 쏟았다. 하지만 파리를 쫓듯 휘두른 팔에 전투기들은 나가떨어졌고, 장난삼아 움직인 발길질에 땅이 무너졌다.
이제 막 도착한 탈출기 한 대에 피난민들은 몸을 집어넣었다.
"다른 비행기들은 왜 안 오는 거야!"
"모르겠습니다..응답이 없어요!"
"우리들 차례로군."
인간의 기술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자 헌터들이 각자의 온을 든 채로 전선에 섰다.
그제야 조금은 나도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거...진짜 죽겠는데?
아마 나만 죽음을 예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혜인도 손이 미세하게나마 떨고 있었다. 하지만 혜인은 자신의 온을 꺼내며 외쳤다.
“우린 헌터다! 헌터의 임무는 괴물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것! 다들 두려운 거 알아, 하지만 싸워야 해! 우리 밖에 없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야!”
혜인이 악을 쓰며 우리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했다.
해야만 한다. 이 말에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은 모두 각오를 하며 인지했다. 이게 헌터들의 말로라는 것임을.
우리도 그간 지나간 이들처럼 이제야 죽을 뿐이라는 것을.
혜인을 따라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거인들 시야에는 그저 개미 때처럼 작아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오며 만난 다른 국가의 헌터들과의 전투로 방심은 하지 않았다.
진심을 다해 인간들을 짓뭉갰다.
비겁한 승부다. 인간들이 아무리 필사의 혼을 다해 공격을 해도 절대 거인을 한 번에 죽일 수는 없다. 반면 거인은 한 번의 공격에 여러 명을 죽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사자와 모기처럼.
나 역시 거인의 종아리에 붙어 있다 천천히 올라 목을 베고 청염을 쑤셔 넣었다. 하지만 거인이 쓰러지는 것도 우리에겐 큰 피해였다.
“비행기다! 비행기가 탈출한다!”
누가 외쳤는지 목청 한 번 컸다. 덕분에 나도 들을 수 있었다.
"으아아아!!"
땀과 피가 섞인 끈적한 포효와 함께 내지름 검에 거인의 손가락들이 베어졌다.
고작 비행이 한 대가 날아간 것 뿐이고 아마 아직 공항에 피난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렸다는 소식은 작은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고작 비행기 한 대에 말이다.
즉, 절망을 주는 것도 고작 비행기 한 대로만 가능하단 소리다.
건물 옥상이 마치 원반처럼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헌터들이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무서운 속도로 지나치고 난 후였다. 의도치 않게 모두의 시선을 받은 건물은 그대로 비행기에 직격하며 산산히 조각냈다.
"...."
날아오른 희망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광경에 수많은 헌터들의 시선을 빼앗겼다. 바로 뒤에 거인이 있음에도. 무너져 내린 희망에 사실상 포기한 자들이 생긴 것이다.
으적, 으드득.
나 역시 거인의 시체 위에서 하염없이 피어오르는 불길에 눈을 빼앗겼었다. 그런 내가 아직 거대한 주먹에 뭉개지지 않은 건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우측! 우측 뚫렸어!"
다급한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리로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목소리에 가까워질 수록 진득한 피냄새와 처참한 건물들이 보였다.
"죽어라! 인간!"
도중 천둥과도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주먹이 낙하했다.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피하곤 두꺼운 팔목에 검을 휘둘렀다.
파도처럼 피가 뿜어져 나와 온 몸을 적셨다. 거인이 비명을 지르자 그 틈에 팔을 타고 달려 놈의 쇄골에 도착했다.
{온 - 발화}
푸른 화염과 함께 거인의 목에 쉬지 않고 휘갈겼다. 거인이 흔들리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하아..하아.."
거인의 몸에 검을 박아 넣고 떨어지지 않게 버텼지만 마지막에 튕겨져나갔다. 거인의 피와 내 피가 섞인 채 절뚝 절뚝 다가가 검을 뽑았다.
온 몸에선 비명을 계속 질렀지만 이상하게 뇌에선 시원한 도파민이 도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계속 절뚝이는 다리로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이미 뚫렸으면 늦지 않나? 어차피 도망갈 비행기도 이젠 없잖아?
내 의문에 납득을 한 건가, 점차 달리는 속도가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하나 둘 놓아주니 결국 다리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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