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 3

“그래서, 도와준다 했어?”
어느새 맞이한 아침에 눈 뜬 파이브가 윤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글쎄. 아직 답 안 했어.”
“뭔?! ...뭐! 이제 아침인데!?”
"아직...아직 선택을 못했어."
답지 않게 주눅 든 윤견의 모습에 파이브도 짧게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잠시 자신을 다독이곤 입을 열었다.
"나도 최대한 도울게. 어제도 나 덕분에.."
아직 말을 끝나지 않았음에도 갑작스레 윤견의 손아귀가 파이브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안 돼. 어제 같은 상황은 절대 있어서는 안 돼. 이젠 안 돼..."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던 윤견의 모습에 파이브는 말을 잃었다. 그의 눈은 절박하기도 했고 떨리는 손은 두려워 보이기도 했다.
"알..알았어. 그니깐 손 좀 놔, 아파."
"아..미안. 부산에 가까워서 그런가 좀 욕심이 나서..."
"...언니와 라호 괜찮은 거 맞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직 눈으로 직접 본 건 하나도 없으니.
이미 자연스레 그들의 미래가 그러졌지만 그 때마다 윤견은 이 생각만을 계속 떠올렸다.
하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마치 꾸짖듯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처럼.
"그 얘는?"
"...아직 누워 있어."
"그 얘는 이제 우리 밖에 없는 거잖아. 나는 닥터라도 있으면 그 얘는 없는 거잖아."
"너는...안 무서워? 이젠 우리만의 일이 아니야. 아니, 처음부터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어. 이 선택 하나하나가 모든 걸 다 망칠 수도 있었다고."
이렇게 두려워하는 윤견의 모습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무서운 적을 앞두고도 윤견은 저렇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벽이 무너진 것처럼 표정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나도 무섭지."
그런 물쌀 같은 진심 앞에 파이브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저 얘만 무시하지는 못 하겠어."
"...하아, 그래. 대신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절대 나서지 말라고?"
"그래. 상대는 혼자야, 대충 능력도 파악했고. ...내가 안 돌아오면 알지? 이 시간 때로 돌려."
파이브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발길을 돌려 소녀에게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윤견의 등 뒤에선 비난의 돌멩이들이 날아왔다. 분명 등 뒤였음에도 누가 던지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돌멩이들을 맞으며 소녀 앞에 멈춰섰다. 소녀는 그저 마른 침을 삼키며 윤견의 한참 늦은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도와주마."
“감사..”
“대신.”
차갑게 소녀의 말을 자르며 무릎을 굽혔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제가...제가 어떻게?”
당황스러운 시선이 윤견을 찔렀지만 윤견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젠장..젠장!!”
한편 사냥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도망쳤다는 굴욕감에 울프의 채찍은 분노를 가득 품었다. 그런 채찍은 그대로 자신의 가축들에게 향했다.
“끄윽! 죄송...죄송합니다.”
말을 할 줄 아는 가축이 이유도 모른 채 잘못의 속죄만 뱉을 뿐이었다. 하지만 채찍은 멈추지 않았다.
“두더지!”
한참을 이어지던 채찍을 집어던지고 외치자 피부색에 푸른 반점들이 있는 남성이 절뚝이며 다가왔다.
“씨앗들 준비해.”
“어떤...어떤 것들로...”
“있는 거 전부!”
두더지라고 불린 남성이 허겁지겁 자신이 나왔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형형색색의 꽃가루가 풍기고 있는 꽃들이 가득했다.
방 안 꽃들은 하나 같이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것뿐이었다. 두더지는 꽃가루의 고통 속에서 그저 기침만을 내뱉으며 꽃들을 하나 둘 따서 절구에 넣어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더지가 콩주머니를 만드는 동안 울프는 자신의 총들을 전부 펼쳐놓고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그런 도중 그의 코를 자극 시키는 냄새에 눈빛이 돌변했다.
“이 피 냄새는...”
손에 닿는 총 아무거나 들곤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착지한 울프는 다시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찾았다.
자신의 사냥을 방해하며 굴욕감을 준 배은망덕한 가축이 이 근처에 있다.
아드득.
날카로운 송곳니가 모습을 보이며 반짝였다. 그리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냄새를 쫓았다.
냄새는 어느 횟집 안으로 이어져있었다.
쾅!
문을 발로 박차며 들어서자 피 냄새가 더욱 진득하게 풍겼다. 하지만 토끼의 피 냄새 보다 더 큰 짐승의 피 냄새였다.
“...설마!”
다급히 뒤를 돌아보자 건물에 냄새보다 먼저 하늘로 날아오르는 매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온 몸의 혈관에 분노와 굴욕이 맴돌았다. 갔을 때 보다 더 빠르게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타오르는 자신의 집을 발견했다.
“이제야 너 주제를 알겠어?”
불 타는 집에서 들리는 가축의 목소리. 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 놈이구나...너놈이 단단히 미쳐서..”
“미친 건 너야. 어디서 제주를 배워 온 모양인데 아무리 그대로 감히 사냥감 주제에 인간을 사냥할 생각을 하다니.”
울프의 이가 더욱 갈리기 시작했다.
-사냥감? ...내가?!
땅을 박차고선 창문을 깨고 건물 안에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놈의 면상에 발차기가 날아왔다. 울프도 빠르게 팔을 들어 방어했지만 그대로 차이며 날아갔다.
타다다다-!!
매연 속에서 탄환들이 쏟아졌다. 전에 이미 장전 소리를 들었기에 윤견도 한 발 빠르게 움직이며 탄들을 피했다.
"크윽.."
빠르게 탄을 장전하는 버릇처럼 코를 움직였지만 들어오는 건 눈을 찌푸리게 하는 냄새 뿐이었다.
"네 놈...제법 머리를 굴렸구나."
"사냥의 기본이지. 덫을 놓고 사냥감을 기다리는 것."
"하!"
어처구니 없어 하는 웃음과 함께 천천히 상황을 살폈다. 사냥감, 아니 상대는 방금 저 기둥 뒤로 숨었다.
"휘익~!"
혹시 몰라 휘파람을 불렀지만 역시 달려오는 가축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망할 자식들, 나중에 한 명 한 명 찢어주마. ...그래 지금은 인정하자, 내가 불리해.
상대를 적으로 인정하니 굳이 자존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 여전히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니.
가장 가까운 창문을 확인하곤 다시 총구를 들어 총을 난사했다. 그리고 총알을 방패삼아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바로 뒤에 느껴지는 살기에 뒤를 돌아보니 자신과 함께 뛰어든 윤견이 있었다.
"크윽!"
울프가 다급히 총구를 돌렸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흑도가 휘몰아치며 총을 부셨다.
땅에 가장 먼저 착지한 울프는 그대로 총 파편을 던져두곤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윤견도 레버를 당기며 검을 휘갈겼다.
{온 – 착화(着火)}
푸른 화염이 순식간에 일어나며 윤견의 모습을 가렸다. 그럼에도 울프는 망설임 없이 마지막으로 윤견이 있었던 곳으로 총알을 날렸다.
총알은 화염을 뚫으며 허공을 갈랐다. 적이 사라진 걸 인지하자마자 울프는 망설임 없이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미 윤견은 없었다. 반사적으로 뒤로 발차기를 날리자 검을 휘두르려던 윤견을 맞췄다.
"쯧."
거리가 벌어지기 무섭게 총구가 윤견을 겨누었지만 거목과도 같은 팔이 총구를 붙잡았다.
탕! 탕!!
놈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단단한 이계의 거목을 뚫을 순 없었다.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마자 총을 버리고 콩주머니를 꺼내 윤견의 면상을 향해 집어던졌다.
윤견도 바로 몸을 낮춰 피하자 그대로 짐승의 날선 손톱이 윤견의 복부를 노렸다.
하지만 손톱이 닿기 직전 잡아챘다.
"끄아아악!!"
놈의 팔은 그대로 윤견에 의해 점차 배에서 멀어져갔다.
-평범한 수인 급이야.
방금 몇차례의 전투와 지금 힘 싸움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놈은 로드도 장군 급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수인 중 하나였다.
예전 석궁을 들었던 개체와 비등한 수준이다. 하지만 놈은 말을 하고 인간의 총을 쏘며 다른 종족의 힘을 사용한다.
"조금은...조금은 널 존경한다. 멈추지 않고 강해지는 방법을.."
"닥쳐라!"
수인의 주먹이 윤견의 얼굴을 때렸다. 짐승은 쉬지 않고 주먹질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주먹도 흑도가 자신의 몸을 뚫고서야 멈췄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았어야 했어."
검을 뽑고 주먹을 그대로 머리를 찍었다. 짐승의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박히며 피를 튀겼다.
"닥터!"
그대로 파이브가 숨어 있는 건물로 돌아오자 다행히 무사히 있던 파이브가 호다다 나왔다.
"얼굴에 피."
"내꺼 아냐."
"사람들은?"
"계획대로 했으면 그 꼬맹이와 함께 이 근처 어디에 숨어 있겠지. 가자."
"엥? 아무 말도 없이?"
"할 말도 없다."
그래, 이미 본인의 일은 끝났다. 더 이상 이곳에 위험은 없다. 그것 뿐.
사람을 구했다는 성취감은 없었다. 그저 다행히 파이브는 무사하다는 안도만이 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는?"
"...까먹었다. 어디에 버렸는지 기억하냐?"
숨어 있는 이들에게 알릴 시간도 아깝다. 이미 자신의 일도 끝나겠다, 윤견은 전에 버려둔 자전거를 겨우 찾고선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간 들렸던 남성의 목소리는 다행히 이번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 잠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여기까진 완벽했다.
“파이브! 파이브!!”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파이브를 안기 전까지는.
시간은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떠난 지 2시간 정도 흐른 뒤였다.
“오! 해수욕장이다!”
사박한 모래사장과 그 앞에 넓게 깔려 있는 바다. 꽤 이쁜 풍경이긴 했지만 이미 이들은 계속 바다를 옆에 끼며 달리고 있었다.
“바다는 아까부터 봤으면서 새삼스레..”
“어...저기 모래사장에 사람 아냐?”
“엥?”
사람이란 소리에 윤견도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뭐? 어디??”
파이브가 가리킨 곳에는 모래사장에 위에 대자로 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다친 거 아냐?!”
“이미 시신처럼 보이는데...”
“어? 저기 애들!”
아직 시신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기도 전에 많아봤자 10살로 보이는 애들이 양동이 하나 씩 들곤 우르르 다가갔다. 애들이 다가오자 누워 있던 사람이 슥 몸을 일으키며 애들을 향해 뭐라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시신은 아니네.”
“가자.”
딱히 인사는 할 필요는 없으니 다시 갈 길을 가려던 그 때였다. 모래사장에서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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