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 2

“견아! 윤견!”
어두운 의식 속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윤견의 눈꺼풀이 꿈툴 거렸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검은 의식을 완전히 깨우지는 못했다.
"윤견!!"
하지만 기억 속 각인 된 호통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뜸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레 일어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빠르게 주변과 상황을 훑었다.
역시나 자신을 깨우다 못해 일으킨 목소리의 주인은 이화였다. 이화는 잠시 윤견이 정신을 차릴 틈을 아주 잠깐 주고는 윤견의 양 어깨를 잡았다.
"윤견, FIVE는? FIVE는 어디에 있어!!"
그게 무슨 소린가 했지만 금방 방금 전 상황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등장한 지훈에게 바로 왼 주먹을 날렸지만 그대로 기절했었다.
이화를 떨쳐내고 마지막으로 파이브를 봤던 방으로 향했지만 파이브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녀석... 그 녀석이 공격했습니다."
사색이 된 얼굴로 어떻게든 이화에게 보고하자 이화도 바로 무전기에 대고 격앙된 목소리로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견의 귀에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롱 섞인 남성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침..씨발, 침착하자. 우선...죽이지는 않았어. 과거로 막는 게 목적이었으면 죽였을 거야. 그럼 왜 데리고 간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깔끔하게 나온 답은 없었다. 그저 검을 챙기고 밖을 사설 뿐이었다.
건물 밖은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는지 혼돈 그 자체였다.
테러에 부상당한 이들과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약탈하려고 들어온 부량자들까지 뒤섞인 상태였다.
"모두 자리를 지켜! 한 명이라도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잠깐 확인한 거지만 아직까지 부량자들은 저들이 만든 방어선을 넘기 못했다.
즉, 이 테러의 범인도 저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려가려던 윤견을 어느새 따라온 이화가 붙잡았다.
"놈은 일부러 너를 살렸어. 분명 얼굴을 봤음에도 말이야. 아마 목적은 그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겠지."
"그러니깐 지금 빨리 따라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어딘지는 알고 가야지."
이화가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A5번 차량이 없습니다!]
무전기 넘어 목소리가 알렸다.
"...좋아, 지금 수비 인원 말고 전 병력은 5번 차량과 현무 길드장을 찾는다. 사살해도 좋다, 대신 흰머리가 있는 소녀는 꼭 살리도록."
지금 공격 받고 있음에도 전 병력을 꺼내는 명령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잠시."
윤견과 방어하는 인원들을 지나 이화가 부량자들 앞으로 나왔다. 이미 흥분한 그들은 이화를 알아보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그들의 앞으로 흰 눈처럼 깨끗한 검이 지나갔다. 깔끔하고 아주 단조로운 움직임이었다.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부량자들은 종이마냥 베였다.
"너희도 두 팀만 남겨두고 따르도록."
수많은 차량들이 줄일 지나 달렸다. 갈라지는 사거리가 있으면 앞 차들이 순서대로 꺾으며 모든 길로 나아갔다.
윤견 역시 이 중 한 차량에 탑승해 있었다.
"..현무 기들장님이 왜..."
옆에 타 있던 준이 긴장할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 중 하나인 콧등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야..."
“네? 선배..뭐라고 하셨어요?”
준이 아닌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윤견이 중얼거렸다.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파이브를 데리고 가는 게 목적이었어. 그런데 어디로? 그리고 의미가 있어?"
[여기는 B3팀! A5번 차량 찾았습니...]
B3팀의 마지막 무전이 끝나자마자 차는 곧바로 핸들을 꺾었다. 차가 요란하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윤견의 혼잣말과 피아노를 치는 듯한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파이브가 능력도 쓰지 않았어. 죽이지는 않았을 테니, 기절시켰을 거야. 하지만 결국에 파이브가 일어나 능력을 쓰면 전부 무의미인 행동이 되잖아?”
“저깄다!”
한참 따닥따닥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추며 튕겨지듯 운전석으로 몸을 뺐다. 그제야 윤견의 눈에도 부리나케 도망치는 자동차가 보였다.
앞 차도 뒤에서 쫓아오는 차를 인지했는지 속도를 더욱 높였다. 한참을 이어지던 축격전의 끝은 무전을 듣고 앞을 가로 막은 다른 차량들로 인해 포위당하면서였다.
차가 멈추기도 전에 차에서 내린 윤견은 바로 차량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작은 착화 소리와 함께 차가 폭발했다.
차량의 잔해가 이리저리 튀었지만 윤견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하하하, 끝났군. 우리 목숨의 결과가 결국...’
“닥쳐. 고작 포위당했다고 자결할 리가 없잖아. 이건...”
“미끼다...라고 말하려는 거지, 견아.”
친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의 선배였던 수호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선배...”
아마 헌터 길드원 중 가장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가움은 뒤로 미루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일부러 시야에 잡혀 위치를 노출해 모두의 시선을 끈 모양입니다.”
“걱정 마. 주변을 보면 알다시피 모두 온 건 아냐. 길드장님 쪽은 혹시 몰라 다른 곳으로 가는 길목에 전부 사람들을 배치해 놨어. 있어 봤자 아직 이곳 안이야.”
이 느낌이었다. 혼자 막막하다 싶으면 항상 선배들이 활로를 알려준 그 때와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예전처럼 아이스크림이나 빨면서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지금은 일 중이니 나중에 하자고.”
시원한 미소를 짓는 수호도 그 때와 같았다.
“좋습니다.”
"좋아, 그럼 간만에 견 주니랑 돌아다녀볼까?"
어느새 따라온 준을 보며 수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호칭도 간만에 들어보네요."
"하하하! 자, 여러분 수색 시작합니다."
수호가 손뼉을 짝 치자 이들은 정해졌던 것처럼 끼리끼리 조를 이루어 수색을 시작했다.
"좋아, 우리 도깨비들도 가볼까?"
윤견을 필두로 그 뒤를 준이 마지막을 수호가 서며, 예전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에 늘 했던 포지션이었다.
[-이상 없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무전기를 통해 여러 팀에서 딱히 반가운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왼쪽. ...거기 사거리에서 직진."
하지만 수호는 아니었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팀들의 위치를 생각해 순찰 범위를 줄이고 있었다.
"흠..."
한참 움직이던 수호가 발을 멈추고는 백화점을 올려다봤다. 앞장 서던 둘도 그런 수호의 모습에 말을 아끼고 기다렸다.
잠시 고민하던 수호는 계속 자신이 바라보던 백화점을 가리켰다.
"너무 거리만 돌아댕기지 말고. 우선 저 건물부터 찾아보자."
딱히 근거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저 많은 건물들 중 왜 저 백화점만 가리킨 건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전부터 수호는 이런 쪽 직감은 날카로웠다. 그러니 둘도 딱히 반대하진 않았다.
아무도 없는 백화점 건물로 들어선 셋은 작은 소리 하나하나 집중하며 움직였다. 도중 수호가 먼저 낯선 소리를 인지했다.
"다섯시 총!"
수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탄환들이 쏟아졌다. 윤견과 준은 근처 기둥 뒤로 숨었다.
먼저 말한 수호에 대한 걱정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둘의 예상처럼 한참 이어지던 총성을 향해 화살 하나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컥!"
목에 화살이 박힌 군인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떨어졌다. 다른 군인 역시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수호의 화살에 당하며 점차 총성이 사라졌다.
"여전한 시력이시네요."
"하하, 고맙습니다!."
수호가 아직 숨통이 붙어 있는 군인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의 헬멧과 마스크를 거칠게 벗기자 꽤 어린 나이의 면상이 드러났다.
-본 적 있는 얼굴이야. 하지만 군인은 아니었을 텐데...
잠시 군인의 얼굴을 살피던 수호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어디에 있지? 현무 길드장은 왜 그 아이를 데리고 간 거야?"
"..크흐흐."
목과 입에서 피를 토해낸 병사가 희죽 조소를 보냈다.
"남...남조선...개새끼들..."
이 말을 끝으로 병사는 혀를 깨물며 자결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그의 발언이 더 큰 충격이었다.
"방금...제가 잘 못 들은 게 아니죠?"
준이 먼저 정막을 깨며 말했다.
"나도...나도 들었어. 뭐야, 빨갱...간첩이야?"
윤견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을 뱉었다. 둘 만큼이나 혼란스러운 건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무전기를 들어 버튼에 손을 올렸다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결국 무전기를 집어 넣었다.
"일단 더 올라가 보자."
수호의 말대로 더 올라갔지만 깨진 창문만이 남아 있었다.
"여기 강수호 헌터입니다. C2구역에서 C1구역으로 도주 예상. ...그리고 북한말을 씁니다."
"만약...정말 만약 저들이 간첩이다...하 참."
말을 쉽게 잊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설마 대한민국 오대길드 중 길드장이 간찹이라니.
하지만 그러면 대강 파이브를 원하는 걸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파이브의 힘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고요."
"..파이...브요? 그게 뭡니까?"
당연히 알겠거니 생각했지만 준은 모르는 눈치였다. 어쩌면 저 반응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호는 아니었다.
"선배는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음? 뭐...믿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 얘를 데리고 간다는 게 소용이 있나?"
"없습니다. 어차피 되돌리면 모든 사람들이 그 때의 위치로 돌아갈 뿐이니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준을 두고 한참 의문만을 주고받던 중에 무전기에서 이화의 목소리가 나왔다.
[모든 탈출구는 막아뒀다. 확실하게 인질을 구출할 수 있도록.]
지훈이 잡히거나 사살되는 건 사실상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이브가 안전한 건 아닐 뿐더러 저들이 다른 계획이 없을 거란 생각은 없었다.
한편.
무전 내용을 듣고 권수를 필두로 한 수색 팀이 33지역 근처를 수색하고 있었다.
"음...여기는 없는.."
이 중사가 총을 내리던 순간 건물 안에서 참격이 날아와 중사의 목을 베었다. 목에서 피가 분수마냥 뿜어져나왔다.
“왼쪽이다!”
한 헌터의 외침에 권수도 자신의 온인 검을 꺼냈다. 거친 기합과 함께 참격을 날렸다. 창가를 베자 누군가 그들의 앞으로 착지했다.
칼날이 달린 의족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건 뭔 의족이냐...기령. 아니, 기령이 본명이긴 하냐?”
같은 헌터로써 꽤 많은 접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령의 한 쪽 다리가 의족인 건 오늘 처음 알았다.
권수의 말에 단발머리의 여성 기령이 살랑 고개를 끄덕였다.
“기령은 맞아. 성은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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