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 3

“그래, 잘났다...이 간첩 새끼야!”
권수가 온을 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기령은 상대하기 귀찮은 권수를 피해 뒤쪽에 있는 이들에게 달려갔다.
곧바로 총구가 일어섰지만 기령의 의족이 먼저 움직였다.
{온 – 파랑새}
칼날에서 참격이 스쳐지나가며 총구와 함께 사람들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뭔...”
그가 기억하고 있는 기령의 실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온도 분명 작은 수리검이지 저 의수가 아니었다.
“도대체...어디까지가 진짜인 거야!!”
분노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기령도 바로 다리를 날려 막자 날이 선 마찰음이 터졌다.
-뭔..힘이..!
권수도 나름 힘에 자부심 있는 편이었기에 이 결과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권수의 얼굴을 보며 기령이 피식 웃고는 품속에서 작은 검을 뽑았다.
권수가 기억하고 있는 온이었다.
권수의 본능이 바로 위기를 느꼈지만 기령이 바로 달려들었다. 그녀가 예전에 보여주던 단검술이었지만 전과 달리 많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의족까지 합세하니 권수가 밀릴 수 밖에 없었다.
"큭..이..이 망할 것이!"
악을 쓰며 검을 휘둘렀지만 기령의 가벼운 미소와 함께 옆구리에 칼이 지나갔다.
피 웅덩이를 뱉어내고 쓰러지려는 권수를 향해 의족이 쉬지 않고 몰아쳤다.
결국 권수는 몇 십 번을 베이고 나서야 땅에 쓰러질 수 있었다. 기령은 그런 그의 옆에서 의족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처럼 골목을 지나가는 기령의 정면으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화살을 마주했다. 방금까지 질주하던 기령은 의족을 땅에 박아 고정하고는 몸을 숙여 화살을 피했다.
-저 화살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양쪽 건물 창문을 깨고선 화살들이 날아왔다.
하지만 기령은 역시 의족에 의지한 채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화살을 피했다.
그 순간 기령의 감각 밖에서 준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그의 온인 수리검이 날아갔다.
기령도 다가오는 수리검을 인지하고 단검을 휘둘렀지만 준의 손가락을 따라 수리검은 인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피했다.
하지만 금방 땅에 박힌 의족을 뽑아 올려치자 수리검은 빙빙 돌며 하늘로 날아갔다.
힘없이 날아가는 단검과 달리 묵직한 그림자가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
{온 - 착화}
검은 그림자가 골목을 가릴 정도의 청염을 토해냈다.
"쯧."
기령도 혀를 차고는 옆 건물 창문에 몸을 던졌다.
거리를 불태운 청염 속에 착지한 윤견도 바로 기령을 쫓았다. 몸이 창가를 넘자마자 의족이 움직였다. 윤견도 바로 몸을 낮추자 그 위로 칼날이 스쳐 지나갔다.
윤견은 기령의 한 쪽 다리를 걸고 넘어트리려했지만 의족을 벽에 박아 몸을 고정했다.
그리곤 의족에 의지해 상체를 기울여 단검을 날렸다. 윤견도 빠르게 몸을 돌렸지만 잠깐 늦은 탓인지 어깨를 베었다.
하지만 지금 윤견의 상태는 그딴 통증 따위 인지하지 않았다. 그대로 일어서며 몸을 날렸다.
쿵!!
벽과 윤견 사이에 낀 기령이 이를 아득 갈며 의족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의족은 윤견의 칼집에 끼인 상태였다.
상대를 제압하고 그대로 주먹을 날리려던 윤견이었지만 복부 앞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쳐다보니 또 다른 단검이 기령의 손에 들려있었다.
찰나의 시간, 밀어붙일 지, 물러날 지 고민하는 그 시간. 기령은 벌써 행동에 들어갔다.
윤견도 뒤따라 왼팔을 내리자 가까스로 단검은 왼팔에 박혔다. 하지만 덕분에 잠시 벌어진 틈으로 빠져나온 기령이 바닥에 손을 짚고는 발차기를 날렸다.
평범한 발차기였으면 한 대 맞고 바로 반박했겠지만 평범한 발차기가 아니었다.
의족에 달린 검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윤견을 노렸다. 하지만 금방 천장에서 화살들이 쏟아졌다.
윤견을 향해 뻗어있던 칼날이 멈추고는 그대로 천장으로 향했다.
{온 - 파랑새}
칼날이 파랗게 물들더니 수십 개의 참격들이 뿜어져나갔다. 참격들은 화살들을 가뿐히 베고는 그대로 천장을 무너트렸다.
“우왓!”
무너진 천장 속에서 수호가 발을 허우적거리며 떨어졌다. 파편 속에 숨어서 접근한 기령의 검이 수호에게 향했지만 수호의 활이 빠르게 쳐냈다.
“에헤이~. 이 자식 근접전은 좁밥이다..라고 생각했지?”
희죽 웃는 수호의 얼굴을 향해 의족을 내세웠지만 역시나 수호의 활이 막아섰다.
“칫..!”
당겨지는 활시위를 보자마자 기령의 허리가 꺾였다. 그녀의 앞으로 화살이 지나갔다. 뒤집힌 시야 속에 자신을 노리는 흑도를 보았다. 기령도 다급히 단검을 움직였지만
이미 본인도 알고 있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벽이 무너지며 오우거의 팔뚝만한 의수가 나타났다.
“아니, 저건 또 뭐야! 견아!”
“뭔?!”
우우웅-파아앙!!
의수의 팔꿈치에서 로켓처럼 연기를 내뿜으며 윤견에게 날아갔다.
“씨발!”
윤견도 다급히 흑도와 왼팔을 교차해 방어 자세는 취했다. 하지만 의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가며 그대로 부딪쳤다.
윤견은 그대로 벽을 부수고 날아갔다.
바닥에 착지한 기령은 곧바로 수호에게 달려들며 거리를 좁혔다.
“앗, 너무 적극적인데!!”
수호도 계속 뒤로 물러서며 기령이 아닌 바닥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온 – 갈색 깃털}
화살촉이 갈색으로 변한 화살들이 수호와 기령 사이에 박혔다. 바닥에 박힌 화살들은 녹아내려 바닥에 흡수됐다. 그 부분을 기량이 밟자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발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황도 잠시 곧장 자신을 노리는 화살을 발견하고 의족을 벽에 날렸다. 의족 발 부분이 와이어에 이어진 채로 벽에 박히자 몸을 끌어 당겨 화살을 피함과 당시에 늪을 빠져나갔다.
“크하하핫!! 수호 아새끼 당황한 게 다 보인다, 야!”
의수를 달고 있던 남성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의수 앞에 나타난 수리검이 가리킨 방향으로 꺾였다.
“철기 아저씨도 간첩이었어? 아저씨가 타준 커피 맛있었는데 말이지. 설마 독이라도 탔던 거야?”
거대한 의수에 몸을 숨겨 활시위를 놓자 의수 양 옆으로 화살들이 날아갔다.
“걱정 마라, 음식 가지고 장난은 안 쳤다.”
의수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붉은 증기가 뿜어져 나갔다. 증기의 힘은 화살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양이 생각보다 많아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수상한 연기에 수호는 숨을 참고 품 속에서 동전 크기의 무언가를 휙 던지고는 연기가 빠져나가고 있는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수호가 몸을 던진 후 동전에서 붉은 빛이 두 번 깜빡이더니 그대로 터지며 방 전체를 날려버렸다.
“아..생포해야 하는데.”
“고작 그걸로 죽겠습니까...”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윤견이 아직 누워 있는 수호에게 터벅터벅 걸어가며 말했다.
“준이는?”
“밖에서 다른 팀 부르고 있어요.”
“아이고...참.”
앓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수호가 목을 이리저리 풀고는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귀찮은 놈들입니다. 솔직히 한 명 전투력으로 따지면 우리나라 A급과 비슷하거나 이상일 정도로.”
“확실히 그 기계 팔, 다리는 좀 힘들어. 다른 팀이 합류하면 바로 움직이자.”
자리에서 일어난 수호는 살포시 윤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 마. 놈들이 이 지경까지 벌린 거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의지가 크다는 거야, 그만큼 아이에게도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거야.”
활을 등에 멘 수호가 아직도 연기가 빠져나오는 건물을 흘긋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다시 움직일 때 까지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있어.”
빨리 파이브를 찾아야 하는 불안감이 당연 있지만 수호가 있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머리는 냉정해지고 가슴은 침착했다.
벽에 기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니 여러 차량들의 바퀴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살쾡이, 오소리 모두 무사합내다.”
“복귀하라 전하라.”
빛줄기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지훈의 장난기 한 줌 찾아 볼 수 없는 눈이 파이브를 향했다. 파이브는 의식이 없는 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다음 약 투약 시간은?”
“두 시간 뒤 입내다. 것보다 남조선 놈들이 길을 다 막아놨습다.”
“그래...계획대로군. 우선 살쾡이, 오소리 복귀하면 거점을 옮겨 때를 노린다.”
어느덧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기를 반복했다.
여전히 이들은 넓은 부산 시내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탈출할 경로들을 모두 막아놨어도 그만큼 인원이 빠지고 수색 범위가 넓어 숨을 곳도 많으니 진전이 없었다.
“제길..”
이번에도 빈 건물에 윤견이 짧게 짜증을 보이고 바로 차량으로 복귀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요즘 습격이 한 번도 없는 거야?”
윤견만큼이나 지쳐 보이는 수호가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대놓고 습격도 하더니 왜 이제 와서 숨어 있는 거지??”
옆자리에서 물을 마시던 윤견도 입을 떼고 말했다.
“뭔가 기다리는 건 같은데...그게 뭔지..”
“증원...아닐 까요?”
준이 마른세수를 하며 힘없이 말했다.
“증원이라...허, 그게 맞다면 다른 지역에도 간첩들이 있다는 소리잖아?”
수호가 헛웃음을 보이며 물병을 잡는 순간이었다. 운전석 쪽에서 다급한 무전소리가 울렸다.
[지금 기지에 부량자들이 급습했습니다!]
[수는?]
이화가 곧바로 답했다.
[전...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인원이..]
[5팀만 기지로 복귀하고 나머지는 계속 움직인다.]
[책임자님 하지만 저희 인원이 지금..]
[...고작 벌레들 따위에 밀린다면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이화가 한 말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윤견의 기억 속에 이화도 계산적이고 늘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차갑게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호도 준도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시 무전기가 소식을 전했다.
[찾았습니다. 수호 헌터가 말한 놈들입니다.]
무전기가 알린 지역은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뻗은 수호의 손이 운전대를 붙잡았다.
“무..무슨 문제라도?”
“저희는 잠깐 기다렸다 갑시다.”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응.”
망설임이 없는, 거의 확신한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깔끔하게 생각하는 게 없는지 수호의 인상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차량 앞에 검은 그림자로 뒤덮인 존재, 인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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