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 8

암전된 정신 속에 시끄러운 소리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끄아악-!”
쾅, 쾅...콰직-!
“이...이 괴물 새끼야!!”
눈꺼풀이 반응하듯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정신을 깨웠다. 그 다음으로 귀와 코가 깨어나며 피 냄새와 비명소리가 들린다.
“끄..으으.”
아직 준비되지 않은 몸에 채찍질을 하며 억지로 움직이니 저절로 신음이 나왔다. 몸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들린다. 그럼에도 윤견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윤견은 천천히 숨을 가다듬으며 조금이나마 안정을 취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래쪽에서는 비명이 멈추지 않았다.
“흐~읍...후~.”
호흡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은 윤견은 바로 계단 아래를 향해 달려가려 했으나 급히 발을 세웠다.
그렇게 잠시 동안 서 있던 윤견은 발걸음을 돌려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놈이 서 있던 방으로 걸었지만 금세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가 잠시 서 있던 시간 동안 그는 모든 생각을 마쳤다.
분명 저 끝 쪽 계단은 막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놈이 쉽게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4층에 있던 자신을 잡기 위해 저 끝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바닥을 부수면서 내려 온 점도 이 가설을 뒷받침 해준다.
만약 이 가설이 맞고 그대로 파이브를 구해도 문제다. 분명 용진은 올라올 테고 도망치려던 우리와 마주칠 것이다. 지금 자신의 기력으로는 파이브를 지키긴커녕 자신의 안위도 확신하기 어렵다.
결국 윤견의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답이 도출됐다.
-결국 놈을 죽여야 해.
그렇다고 무작정 내려가면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그렇게 냉철하게 생각을 마친 윤견은 계단 아래쪽에서 시선을 떼고 위로 올라가 기습을 하기로 했다.
자신이 지금 가장 강하게 할 수 있는 기습을.
용진도 윤견을 보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다리에 온 힘을 가해 바닥에 금을 만들며 윤견에게 돌진했다.
그럼에도 윤견은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용진의 주먹이 날아왔을 때 역시.
용진의 주먹이 윤견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온 – 도깨비식 발도}
그 순간 용진의 정권이 전진하는 것보다 빠르게 뽑아 올린 흑도가 주먹을 뻗은 팔을 시작으로 몸을 올라가 턱을 타고 입술과 볼까지 베었다.
용진의 철웅성 같던 용진의 육체에서 검붉은 피가 나왔다.
-씨발...죽일 생각이었는데, 팔이 고작인 가?!
용진의 일그러져 있던 표정을 더욱 일그러트리며 남아 있는 한 손으로 윤견을 집어 던졌다. 윤견은 그대로 벽과 바닥에 찍으며 던져졌다.
“크오아아아!!”
용진이 짐승과도 울음을 토하며 돌진했다. 윤견도 밀려오는 고통을 뒤로하고 반격에 나섰다. 분명 상대는 한 쪽 눈과 한 팔을 잃었음에도 공격은 매서웠다.
하지만 그래도 한 쪽 팔이 없기에 자세는 중간중간 무너지는 틈이 있었다.
평소의 윤견이었으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견도 상태가 상태인 만큼 한 손의 투박한 공격을 받아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온 몸을 쥐어짜는 공방이 오갔다. 그 모습은 마치 양초의 불이 서로 부딪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한 쪽이 금방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양초들이 서로의 불을 노린다.
윤견은 감각이 붕 뜨는 기분을 느꼈다. 호흡을 인지 못 하는 건 당연지사, 발이 바닥을 밟을 때마다 전해져 오는 것은 없고 검을 잡고 있는 두 손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다. 피 냄새도, 상대의 고함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좆까. 쉴 생각 하지 마. 포기할 생각 하지 마. 더 이상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코앞이다. 이 딴 쓰레기의 넘어 파이브가 있다.
움직여라 윤견. 움직여라 윤견. 조금 만. 조금 만 더.
“으아아아!!!!”
윤견의 포효가 복도에 울렸다.
촥악-!
용진의 몸에 작지만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용진도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점점 늘어만 가자 결국 그의 다리가 처음으로 뒤로 밀렸다.
-내가 밀린다고? 내가 송곳니의 길드장인 이 내가, 고작 도깨비 애송이한테 밀린단 말이냐!?
그 한 걸음이.
잠시 뒤로 밀린 고작 그 한 걸음이 그의 자존심을 건들다 못해 내려쳤다. 거기에 자신의 자존심이 깨진 이유가 도깨비의 소속 헌터라는 것에 자존심은 불타올랐다.
계속 문 앞에서 침입자만 상대하던 그가 굳이 직접 윤견에게 다가갔던 이유. 단지 그가 도깨비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어느 영화의 명대사다.
당시. 재판소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방청객들 중 용진은 그 대사를 떠올렸다. 그가 재판을 받는 게 아니다. 그의 소속 길드원이 재판대에 서 있었다.
이유는 상해죄.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상대하던 중 그의 온이 의도치 않게 시민들을 다치게 한 것에 대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피고인인 헌터는 끝임 없이 외쳤다.
“사고였다고요!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공격하니 당연히 막기 위해 온을 쓴 겁니다. 절대로 저들을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다고요.”
그 외에도 그와 그의 동료들은 끝임 없이 무죄를 주장했지만 결과는 유죄였다.
“....”
객석에서 앉아 있던 용진은 좌절하는 자산의 부하와 다른 쪽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입에 담배를 물고는 구석진 곳에 주저앉아 조용히 담배를 빨았다.
-...이번이 몇 번째지? 그저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조용히 분노를 침식하던 그의 귀에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딱히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 귀에 박혔다.
“이야...진짜 양아치 길드네.”
“그러게 말이야. 에휴~ 쯧쯧. 차라리 ‘사냥개’길드면 뭐 원래부터 쓰레기들이니 이해라도 하겠는데...쯧 됐다~.”
“에휴~. 도깨비 때문에 헌터라는 직업이 너무 고평가 됐어. 그냥 인생 망한 새끼들이 모 아니면 도로 각성자 수술 받고 하는 거잖아.”
“그냥 도깨비 길드 흉내만 내도 평타는 치는데.”
그 뒤로도, 그 날 이후로도 수많은 말들이 용진의 귀에 들어와 가슴 속에 박혔다. 하지만 참고 참았다. 언젠가는 오해를 푸는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하지만 끝내. 이 나라가 끝나는 순간까지, 끝나고 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너희가 잘 만 막았어도 이 나라는 멸망악!!!”
“미..미친 거냐?! 용진!”
“헌터가 사람을 죽인 거냐?”
“..내가 잘 못 생각했어. 증거니 심적 증거니 그런 건 필요가 없었어. 그저 우리가 을이라 죄에 대한 벌을 받은 거였어. 하지만 이제 시대는 격변했다. 갑과 을이 바뀌었다고. 이 개새끼들아...”
용진의 온인 거대한 몽둥이가 수 십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천안시청에서 나갔다. 그의 무자비한 공격은 온이 부서지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로 인해 천안의 무리들은 시청을 나가 아파트를 새로운 거처로 삼았었다.
반면 용진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아무도 거역하지 못 하는 힘으로 점점 세력을 늘려만 갔다. 그런 그가, 그랬던 그가 지금 한 손과 눈을 잃은 채 울부짖었다.
“크아아!! 도깨비 생각해라, 설마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냐?!
너와 나 그리고 그 꼬맹이가 있다면 우린 지금 모든 지 할 수 있어. 모든 지!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사는 거다! 헌터를 그저 장작 따위로 생각하는 놈들을 지키는 시대로 돌아가고 싶으냐 말이다!”
용진은 윤견의 멱살을 잡고 벽이 밀쳤다.
콰직-!
벽에 금이 가며 윤견의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윤견은 이 사이로 피가 흐르는 사이에도 검을 움직이려 했으나 다시 용진이 윤견을 당겼다 벽에 박았다.
“도깨비! 솔직히 생각해!
너도 나처럼 정의감에 헌터가 되었겠지 하지만 끝임 없이 열리는 게이트 묻어져만 가는 동료들, 그들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더러운 정치가나 조롱하는 대중들까지 그런 놈들이 갑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냐고!!”
그의 외침은 이제 절규로 변했다. 제발 하지 말아달라는. 제발 자신을 다시 그 시대에 보내지 말라 달라는 절규로.
그런 절규에 윤견은 조소를 날렸다. 그의 조소에 용진의 표정이 변했다. 지금 자신이 뭘 들은 건지 귀를 의심하는 것처럼.
“서두부터가 틀려먹었어. 너는 그러겠지만 나는 아니야.”
용진은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윤견을 조였다. 윤견은 그런 압박을 견디며 말을 더듬더듬 이어나갔다.
“나를...너무 과대평가 한 거 아냐? 정의감은 지..랄. 그리고 주절주절 뭐라 하던데, 결국 너는..그저 니 좆대로 하고 싶어서 때 쓰는 쓰레기에 불가해..”
윤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용진이 윤견을 들어 바닥에 찍어버리려던 순간 그의 무릎이 접히며 자세가 무너졌다. 윤견은 그 틈에 손아귀를 풀고 뒤로 물러나며 용진의 옆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용진의 무릎을 개머리판으로 때린 기랑이 서 있었다. 기랑은 윤견을 구하는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바로 떨어지며 윤견의 옆에 다가갔다.
“...살아 계서서 다행입니다.”
차마 기랑의 눈을 보고 ‘건강하다’라고 표현하기에는 힘들어 이리 표현했다.
“하핫, 피차일반입니다. 윤견씨.”
“혹시나 물어 보는 건데, 총알은...”
“다 썼습니다. 참고로 민혁이와 문하씨도 살아있습니다.”
기랑은 밖에서 아직도 두정의 발을 붙잡고 있는 문하를 보고 도울 생각이었지만 문하는 거절하며 아까부터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이던 본관 5층에 있을 윤견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상대에 저의 총검술이 통할까요?”
“아까처럼 무릎 같은 곳이면 통할지도 모르겠네요.”
용진은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비록 하나 뿐인 주먹이지만 용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앞에 있던 윤견과 기랑도 만신창이지만 똑같이 마주섰다.
그들 모두 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제 최종전에 도달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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