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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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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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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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2)

DUMMY

189화


“할머니, 쟤들이랑 도대체 어떤 식으로 가족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뭐 건방진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진심으로 충고 하나만 할게. 할머니가 걔들이랑 진짜 가족이 되려고 하는 순간, 할머니는 죽어. 예를 들어 장 파열 같은 걸로.”

“... 무슨?”

“원근법을 감안 안 하고 봐도, 쟤들이 할머니보다 키만 해도 두 배는 돼 보여. 쟤들 가랑이 사이에 있는 거 보이지? 할머니 눈깔엔 모자이크 기능 같은 건 없을 거 아냐? 와... 할머니 머리통... 아니, 머리통이 뭐야. 다리통만 해.”

“......”

“여자애들 중에도 허세가 심한 애들이 은근히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물론 크면 클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정도껏 해야지. 아니, 자기 머리통보다 큰 걸... 할머니 나이에 그런 허세는 좀 아니지 않아? 솔직히 좀 추해.”


청순가련한 엘프녀의 낯짝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깔을 독사처럼 희번덕거리는 걸 보니, 아마도 살심이 정수리까지 치밀어 오른 모양이었다.


“무슨 오해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과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헛소리는 하지 말거라.”

“아니야? 정말 할머니는 아니야?”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이 잘 안 되기는 하지만, 뭐가 되었든 무조건 아니다.”

“그럼 뭐야? 쟤들이 네 친동생이라는 거야? 아니면, 사촌 동생이라는 건가?”

“... 뭐?”

“가족이라면서?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기적을 행한, 출산의 달인이 네 엄마야? 네 할머니야?”

“......”


패드립 따위가 없는 청정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오백오십 살 먹은, 청순 미녀가 정신이 멍해져 말을 잇지를 못하였다.


“... 내가 네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 그런 식으로 자꾸 주둥이를 놀리다가, 혀가 뽑힐 수도 있느니라. 말을 좀 더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미안. 이제부터는 그만할게. 방금 다 셌어. 근데 이 동원 알바 브로커 같은 년아, 아침부터 뭘 이렇게 많이 끌고 나온 거냐? 백이십 마리가 다 뭐야? 징그럽기도 하다. 자는 애들까지 다 깨워서 데리고 나온 거냐?”

“... 그걸 다 셌다고? 세 번째 포위선은 일 킬로 밖에 만들어 놨는데...”

“어, 근 몇 달 동안 그런 쪽으로 훈련할 일이 좀 많았거든. 뭐, 그거 다 세느라고 시간을 좀 끌어야 해서. 그래서 농담 좀 한 거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 그런데 남 식사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에, 삼중으로 포위망을 쳐 두고 있었다는 거네? 너 아주 근본적으로 예의라고는 없는 개양아치 년이구나. 내가 누군지 확인도 안 해 보고, 일단 이방인이라고 포위부터 하고 본 거냐?”

“당연한 거 아니냐? 우리 일족의 종파가 있는 계곡 쪽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괴이한 놈이 기어 나왔는데, 무슨 확인이 필요하겠느냐? 내가 네놈을 우리 종족의 새로운 가족으로 착각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것이냐?”

“나는 널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너는 나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고... 쓰읍... 쉽지 않겠는데... 뭐 어쨌든, 이제 슬슬 시작하자.”


하지운의 양손으로 마력이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가는 순간, 엘프녀의 면상 일곱 구멍에서 동시에 피가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피를 좔좔 게워 내면서도, 피투성이 미녀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하고 싶었던 말을 기어이 다 토해 내고 말았다.


“흐흐흑... 드디어 성공했다... 이 끔찍한 괴물아... 우웁... 우리 일족의... 자랑스러운 비술... ‘저주’다... 비록 내 생명력을 다 바쳐야 했지만... 동족의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어디... 내가 먼저 죽나, 네가 먼저 죽나... 한번 두고 보자꾸나! 커헉...”

“이런, 개 씨부랄 쌍년이!! 분명히 네년의 마력이 내 머릿속으로 침투하는 걸 막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씨발!! 그딴 거 알 게 뭐야! 네년을 죽여 버리면 되는 거 아냐! 넌 절대 과다 출혈로 못 죽어! 그전에 너는 씨발!! 내 손에 존나 험하게 죽을 줄 알아!!”


살기를 있는 대로 뿜어 대며 악다구니를 쳐 대고는 있지만, 현재 하지운은 엘프녀 곁으로 다가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평균 신장 사 미터 오십의 중장갑 생체 병기 ‘라이노서러스’ 열두 마리에게 포위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 중,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둘은 신장이 사 미터 팔십을 넘는 족장 놈들이었던 것이다.


서서히 간격을 좁혀 오는 열두 마리의 코뿔소머리 괴물들을 바라보며 하지운은 정신없이 자신의 현재 몸 상태를 점검했다.


‘아니, 씨발! 저 미친년이 뭔 짓을 했길래,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거지? 아니... 하다못해 수납장까지 안 열리는 건 에바 아냐? 뭘 들고 싸우라는 거야? 마력이 아예 안 움직이는 것도 문젠데, 거기에 신체 능력까지 조금 떨어진 모양인데... 완전 좆 됐는데... 씨발... 살다 살다 진짜... 저주에 다 걸려 보네.’


하지운이 가진 모든 권능들이 모조리 다 먹통이 된 상태였다.

정확하게는 체내의 마력이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산 넘어 산이라고, 마력의 흐름이 막히다 보니 마법 옷까지 원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 순간 하지운은 자신의 약혼녀에게 진심을 다해서 감사한 마음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환골탈태 이후 승아는, 쓰잘데기 없을 정도로 진화해 버린 하지운의 그곳을 고정시켜 주기 위해, 신축성이 엄청스레 좋은 거들과 비슷한 형태의 기능성 속옷을 직접 만들어서 선물해 주었었다.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덜렁거리며 동작을 방해해 대는 남친의 그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저승에서도 고작 속옷 쪼가리 몇 벌에 쪼잔하게 굴 수가 없어서 못 본 척해 주었다.

그 때문에 허리에 착용 중이던 벨트 형태의 마법 옷은, 목 부위로 자리를 옮겨, 초커 형태로 바뀐 지 오래였다.

승아의 내조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 순간 하지운은 알몸에 벨트만 착용한 처참한 꼴이 될 뻔했던 것이다.


마력이 틀어 막혔다고 감지 능력까지 먹통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 새끼들한테 붙잡혀 있으면 안 돼!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어! 돌파한 후, 포위망 밖에서 질질 끌고 다녀야 해!’


이곳으로 넘어온 지 고작 일 년 반의 시간 동안에 온갖 일을 다 겪어 본 하지운이다.

이미 백전노장이 다 된 그가 아무리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패닉 상태로 주저앉아 있을 리가 없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던 하지운이 나무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피투성이가 된 엘프 할멈을 보호하기 위해 민트색 족장 둘만 남고, 나머지 회색빛 코뿔소머리 열 놈이 부리나케 뒤를 쫓았다.

가슴 위에 코뿔소의 대가리를 달고 있어서 그런지, 아름드리나무들을 피하기보다는 들이받아 부수면서 쫓아오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렇게 난리 법석을 떨면서 쫓아오는 덕에 포위망이 한층 더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생긴 것부터 무식해 보이는 놈들이 의도적으로 노리고 한 짓은 아니었겠지만, 숲이 떠나가도록 온갖 굉음을 일으켜 대는 바람에, 귓구멍이 멀쩡한 놈들은 빠짐없이 다 몰려들고 있던 것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아주 개지랄을 하는구나.”


대충 봐도 몸뚱어리가 엄청나게 딴딴해 보이는 놈들이다.

하지운이 소년 만화의 주인공도 아닌데, 이런 놈들을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죽빵을 날리는 미련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는 미련한 병신이 아니다! 내가 네놈들에게 인간이 급해지면 어디까지 추잡해질 수 있는지 한번 보여 주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잘 도망 중이던 하지운이 급하게 오른편으로 방향을 꺾었다.

정신없이 하지운을 쫓던 코뿔소머리들도 거대한 몸뚱이를 허우적거리며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야 했다.

그 순간 잠시 중심을 잃은 코뿔소머리들을 향해 하지운이, 등을 보이고 있던 그 상태 그대로, 백 스텝을 밟으며 단숨에 거리를 좁혀 왔다.


코뿔소머리들 중 가장 오른편에 있던 놈이 자세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하지운의 뒤통수를 향해 레프트 훅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하지운이 몸을 숙이며 오른팔을 바깥으로 거칠게 휘둘러 버렸다.


‘빌어먹을, 변신까지 다 풀려 버리고 지랄이야! 이런 식으로 싸울 거면 차라리 조막만 한 상태가 훨씬 나았을 텐데!’


속으로 불평을 쏟아 내는 하지운의 손에는, 쭈글쭈글한 살 껍질에 둘러싸인, 거대한 알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결벽증 환자이길 포기해 버린 소시오패스가 진정한 개짓거리의 진수를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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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베타테스터 (4) 24.06.18 11 1 10쪽
216 베타테스터 (3) 24.06.16 14 1 9쪽
215 베타테스터 (2) 24.06.14 13 1 9쪽
214 베타테스터 (1) 24.06.12 13 1 9쪽
213 도강 (9) 24.06.10 13 1 10쪽
212 도강 (8) 24.06.09 11 1 10쪽
211 도강 (7) 24.06.07 12 1 9쪽
210 도강 (6) 24.06.04 12 1 9쪽
209 도강 (5) 24.06.02 13 1 9쪽
208 도강 (4) 24.06.01 14 1 10쪽
207 도강 (3) 24.05.29 15 1 10쪽
206 도강 (2) 24.05.27 13 1 9쪽
205 도강 (1) 24.05.26 16 1 9쪽
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15 1 9쪽
203 즐거운 훈련 (8) 24.05.22 17 1 9쪽
202 즐거운 훈련 (7) 24.05.19 21 1 10쪽
201 즐거운 훈련 (6) 24.05.17 17 1 10쪽
200 즐거운 훈련 (5) 24.05.15 16 1 10쪽
199 즐거운 훈련 (4) 24.05.14 17 1 10쪽
198 즐거운 훈련 (3) 24.05.11 22 1 10쪽
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14 1 9쪽
196 즐거운 훈련 (1) 24.05.08 17 1 10쪽
195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24.05.06 21 1 10쪽
194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6) 24.05.04 18 1 10쪽
193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5) 24.05.02 1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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