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3)

190화
손에 쥐고 있던, 피와 체액으로 범벅이 된, 알을 구라 친 피노키오 같은 놈들 중 가장 우측에 있는 놈의 눈에다 다짜고짜 집어 던져 버렸다.
움찔하고 놀란 놈이 황급히 오른손을 휘둘러 동료의 소중한 보물을 터뜨려 버리고 말았다.
동료애라고는 불알 한쪽만큼도 없는 잔인무도한 놈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운은 불알과 눈알 중 어느 알이 더 튼튼한지 궁금해서 집어 던져 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투척물의 최후는 확인조차 하지 않고, 동료애가 부족한 놈의 가랑이 사이로 부리나케 몸을 던져 버리고 만 것이다.
또다시 하가 놈의 손에 어디선가 잡아 뜯어 온 알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가랑이 사이를 빠져나온 하지운을 향해 여덟 마리의 개빡친 괴수들이 너도나도 태클을 시도해 왔다.
“나 잡아 봐라! 꺄르르르륵!”
몸과 마음이 모두 미꾸라지 그 자체인 하가 놈이, 요망한 웃음을 질질 흘리며, 그들을 조롱해 댔다.
눈알이 뒤집힐 대로 뒤집힌 코뿔소머리들이, 살기를 있는 대로 뿜어 대며, 서로 하지운을 찢어 죽이겠다고 각축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서 요리조리 빨빨거리던 하지운이, 공손한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두 청년 사이로 몸을 날려 버렸다.
마지막 하나 남은 보옥까지 흘러 나가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찢어진 껍질을 온 정성을 다해서 소중히 감싸 쥐고 있던 가련한 두 청년이었다.
그런데 누가 인간 말종 아니랄까 봐, 굳이 그 사이로 제 몸뚱어리를 집어넣는 독사 같은 하가 놈이었다.
그 와중에 그림 같은 공중 옆 돌기를 하며, 두 청년 사이를 지나친 하지운이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멀어져 가는 하가 놈의 등 뒤로, 경박한 웃음이 끊일 줄을 모르고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미쳐 버린 여덟 마리의 전사들이, 이성을 떨쳐 버리고서, 야비한 하가 놈의 뒤를 쫓아 거칠게 몸을 날렸다.
그 과정 중에 안타깝게도, 앞을 가로막고 있던, 두 불쌍한 청년은 동족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사정없이 옆으로 내팽개쳐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근자근 밟히기까지 하였다.
무려 평균 체중이 사 톤이 넘는 전우들에게 말이다.
온 육신이 아작이 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결코 두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도 결국 수컷이었던 것이다.
하늘도 고개를 떨구고, 땅도 눈을 질끈 감아 버릴 처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 차 포위선을 돌파한 하지운의 시야에, 미친 듯이 돌진해 오는, 수십 마리의 코뿔소머리 전사들이 들어왔다.
이를 악문 하지운이 한층 더 속도를 높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포위망을 좁혀 오는 놈들의 간격이 들쭉날쭉하다는 것이었다.
놈들을 지휘해야 할 족장 놈들이, 저주에 목숨 건, 할망구를 지키느라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족장 두 놈 중 한 놈이라도 추격에 가세했으면 됐을 일이기는 하나, 사실 놈들이 추격을 이끌었다 해도 별다를 건 없었을 것이다.
놈들의 지능이 형편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실전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놈들의 신장과 거죽의 튼튼함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기는 하지만, 이 숲속에서 놈들을 잡아먹을 천적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이놈들은 이런 대규모 포위전 같은 걸 살아생전, 경험은커녕, 구경도 못해 봤던 것이다.
그 바람에 하지운을 추격 중인 코뿔소머리들 사이에 현장 지휘관이라고 할 만한 놈이 딱히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놈들 모두 자신이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지조차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대열이고 나발이고, 그저 소음이 발생하는 곳을 향해 미친놈들처럼 돌진하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것이다.
하지운은 일부러 방향을 조금씩 틀어 가면서 비교적 간격이 좁은 두 놈을 향해 전력을 다해서 달려들었다.
두 놈은 코뿔소머리 괴물이라는 정체성에 충실하게 고개를 숙여 뿔을 들이민 채로 박치기를 시도해 왔다.
괴물 두 놈과 인간 말종 하나가 충돌하려는 순간, 말종이 번개 같은 속도로 자세를 낮추며 몸을 앞으로 던져 버렸다.
두 괴물 사이를 스칠 듯이 지나쳐 간 하지운이 전방 회전 낙법을 구사하며 바닥을 굴렀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두 괴물이 다급하게 몸뚱어리를 비트는 순간, 그들의 소중한 곳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왔다.
바닥을 한 번 구른 하지운이 일어서며 용수철 튕기듯 뒤로 몸을 날리고서는, 온몸을 비틀어 회전하면서, 힘차게 양팔을 뻗었던 것이었다.
양손에 한 알씩을 움켜쥔 하지운이 미련 없이 뒤 구르기를 해 버렸다.
손에 힘을 전혀 풀지 않고서 말이다.
뒤 구르기 후 신속하게 몸을 일으키며 그 속도 그대로 백 플립까지 하였다.
그러고는 멈추지 않고 공중 옆 돌기까지 해서 몸의 방향까지 바꾼 후, 착지와 동시에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다.
그러면서 알 두 개를 뒤로 날려 쫓아오던 코뿔소머리들을 정신 사납게 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 하지운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던 두 수컷은 이내 동료들에게 치여 바닥에 처박혀 버리고 말았다.
몇 초가 흐른 뒤, 만신창이가 된, 둘은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다 죽어 가는 신음만 겨우 토해 낼 뿐이었다.
이미 여우의 숲에서 똑같은 짓을 질리도록 해 봤던 하지운이다.
하지운 같은 놈에게서, 개폼 잡기 딱 좋은, 권능이라는 것을 앗아가면 남는 건 비열함뿐이었던 것이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왕 노릇 하는데 최적화된 피를 가진 드레이시 가문 사람과, 싸움에 있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로저 위드링튼이 만나서 만들어진 게 현 드레이시 가문이다.
그리고 그 드레이시 가문 사람들 중 가장 언행에 거침이 없었던 놈이 바로 로저 드레이시였다.
그런 놈과, 모든 면에서, 찰떡궁합으로 인증받은 놈이 바로 하지운이고 말이다.
엘프 할머니 입장에서는 기가 차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운을 정말로 손쉽게 죽여 버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마력 억제’보다는 ‘양심 증폭’ 같은 주문을 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또 다른 코뿔소 청년 하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어 버린 하가 놈이 기어이 종적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서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있는 중이다.
놈들이 만약 하지운이라는 인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었다면, 엘프 할매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방어진을 구축해 놓고는 사주 경계에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수색을 한답시고, 두세 놈씩 짝을 지어, 반경 수 킬로의 숲을 뒤지고 다니는 자살행위를 할 게 아니고 말이다.
하지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현재 할매와 코뿔소머리들은 침착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저주를 성공시킨 할매다.
설마 백이십 마리나 되는 이 무지막지한 괴물들이, 고작 인간 하나를 못 죽여서, 이 난리를 칠 줄은 상상조차 안 해 봤던 것이다.
길어야 삼십 분 내로 끝장을 내 버리고선, 한 며칠 요양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려던 게 그녀의 깔끔한 계획이었다.
할매는 자신을 찢어 죽일 것처럼 지랄 발광을 하던 놈이, 반나절을 넘게 도망만 다니면서, 자신이 뒈지는 것만 오매불망 기다릴 줄은 미처 몰랐다.
그녀는 결국 양아치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스스로 깨우쳐 버리고 만 것이다.
해가 완전히 다 떨어지고 숲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기고 난 후에야, 드디어 두 탁월한 코뿔소머리 전사들이 비열한 침입자 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각에 비해 후각이 월등히 뛰어난 코뿔소머리들이, 아름드리나무 밑동에, 하지운이 싸질러 놓은 오줌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런 둘의 코에 뭔가 자극적인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강건한 전사들이 지체 없이 몸을 날려 단숨에 냄새의 근원으로 돌진했다.
나무들을 때려 부수며 달려간 곳에는 시체가 한 구 놓여 있었다.
그건 먹음직스럽게 생긴, 죽은 지 얼마 안 된, 암사슴이었다.
음식을 보고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려 버린 전사들에게 흉측한 대가가 날아들었다.
덤불 속에서 튀어나온 하지운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코뿔소 청년의 가랑이 사이에 앞 차기를 날려 버리고 만 것이었다.
물론 뒤에서 말이다.
한 청년의 미래가 남김없이 으깨지는 동안, 그의 동료가 정신을 차리고는 양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린 채 고개 숙여 하지운을 향해 돌진했다.
그걸 본 하지운이 번개같이 몸을 숙이더니, 양손으로 땅을 짚고는 몸을 회전시키면서, 바닥을 쓸 듯이 오른발을 휘둘러 버렸다.
달려드는 와중에 디딤 발을 밀려 버린 코뿔소 청년이 우측 바닥으로 순식간에 내리꽂혀 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중에도 사타구니를 가린 두 손을 끝까지 치우지 않는 눈물겨운 청년이었다.
그 꼴을 보고 극도로 분노한 하지운이 청년의 등 뒤로 몸을 날리며 힘차게 왼 주먹을 뻗었다.
하지운의 왼팔 상완근의 반 정도까지 쑥 들어가 버렸다.
사정없이 팔을 뽑아낸 하지운이 울먹이며 미친 듯이 숲속을 내달렸다.
미리 찾아 둔 시내가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 쳐 죽일 년아! 내가 너 때문에 살려고 별짓을 다 한다! 내가!! 반드시 내일 아침 해 뜨기 전에 너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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