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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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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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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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4)

DUMMY

191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곳으로, 이족 보행 전투 로봇을 연상시키는, 세 사나이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곳한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비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고는 있지만, 이들의 움직임에 신중함은 보여도 망설임은 보이질 않았다.


멀쩡한 나무들을 때려 부수지 않고 조신하게 다가가서 발견한 숲속의 한 공터에는,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동족들의 사체가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극도로 흥분한 코뿔소 청년들이 솟구치는 울화를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일단 동료들의 시신을 검사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급선무인지라, 분풀이 따위에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청년이 엎드려서는, 시신의 뿔이나 양손에 침입자 놈의 피나 살점 같은 게 묻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였다.

지금 그들에게 놈의 부상 여부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둘은 초고속으로 분노의 스카이라운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확인해야 할 뿔과 손톱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았던 것이다.

근면 성실한 소시오패스 놈이 살뜰하게 다 뽑아 간 모양이었다.


경계를 위해 홀로 주위를 살피고 있던 코뿔소 청년이, 동료들의 악다구니에 놀라,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길쭉한 꼬챙이 같은 것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기겁을 한 청년이 머리통을 제자리로 되돌리면서 황급히 두 손을 모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뒤였다.


청년은 온 정성을 다해 자신의 양손에 붙잡힌 물체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그의 손에 쥐어진 물체는 바로 동족의 뿔이었던 것이다.

죽은 동료의 뿔에 맞아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깡그리 다 상실해 버린 청년이 고통과 절망감에 그만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비록 그는 그렇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 청년 덕에, 다른 두 코뿔소 청년들은 신속하게 기습에 대응할 수 있었다.


뿔이 날아온 방향으로 순식간에 밀고 들어가는 두 전사들의 낯짝을 향해 수십 발의 암기가 덮쳐들었다.

용맹한 전사들이 크게 개의치 않고 오른손을 들어 면상을 가리고, 혹시나 싶어, 왼손은 사타구니 앞에 둔 채로 암기가 날아온 풀덤불 속으로 몸을 던졌다.


본래 청년들의 몸뚱어리에서 가장 튼튼한 부분이 대가리인데, 고작 손톱만 한 날붙이 몇십 개에 부상을 입는다는 게 가당치도 않은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동료들의 시신을 목격한 후인지라, 행동 하나하나가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아무리 시력이 허접하다고 해도, 눈알이 손상될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눈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신중한 청년들이 신중한 자세로 밀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바닥이 꺼져 버리고 말았다.

꼼꼼한 침입자 놈이 열심히 땅을 파서 함정까지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놀란 청년들이 급하게 중심을 잡으려 하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괴한이 양손을 주저 없이 내뻗어 버렸다.

그렇게 청년들을 이도 저도 아니게 만들어 버린 놈이,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청년들의 등 뒤로 돌아가 한 번 더 양손에 쥐고 있던 꼬챙이를 휘둘러 버리고 말았다.

앞뒤로 만신창이가 된 청년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쳐 댔고, 그 모습을 보며 하가 놈도 몸부림을 쳐 대며 키득거렸다.


그 순간 덤불이 좌우로 갈리면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코뿔소머리 한 마리가 하지운을 향해 돌진해 왔다.

손쓸 겨를도 없이 복부를 찔린 하지운이 낯짝을 일그러뜨린 채, 왼손으로 괴물의 뿔을 틀어잡고는, 오른손 엄지를 놈의 왼쪽 눈구멍에 사정없이 쑤셔 박아 버렸다.

그러고는 괴물의 눈두덩이를 움켜쥔 채로 오른 무릎을 놈의 턱주가리에 꽂아 넣었다.


한쪽 눈알이 터지고 턱관절이 박살 나는 와중에도 놈은 결코 돌진을 멈출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하지운은 억지로 몸을 잡아 뽑고서는 놈의 머리 위로 몸뚱이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좌측 하복부의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져 나갔지만, 그딴 걸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놈의 양손이 하지운의 양 옆구리 지척까지 들이닥쳐 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걸레짝이 된 놈이, 그 꼴이 되고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놈의 장하디장한 활약도 거기까지였다.

어느샌가 다가온 저주받은 수의사가, 중성화 수술로도 부족해서, 대장 내시경까지 시행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세 청년을 빈사 상태로 만들어 버린 하지운이, 근처에 있는, 나무를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가서는 등을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지친 표정이 역력한 하지운이 힘없이 뇌까려 댔다.


“거 씨발... 존나 고독하네.”


이 와중에도 걱정하고 있을 약혼녀를 의식해 성대모사를 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사랑꾼 하지운이었지만, 사실 지금 그의 상태는 절대 허세로 커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숨을 내쉰 하지운이, 환부를 틀어쥐고는, 죽어 가는 코뿔소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놈도 아닌, 하지운의 기습 공격에 생식기와 고환이 일격에 파열되었던 바로 그 놈이다.

그 한 방에 전투 불능이 되었다 판단하고 관심 밖에 두었던 놈인데, 그 지경이 되고서도 제 온 몸을 날렸던 것이었다.


이미 수차례나 뼈저리게 체감했었던 자신의 고질적인 약점을 또다시 마주하게 된 하지운이다.

한 번 얕잡아 본 놈들은 한도 끝도 없이 멸시하는 그 특유의 건방짐이, 기어이 빈틈을 만들어 버렸고, 결국 이 사달에 이르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그동안, 환골탈태를 통해 단숨에 몇 단계를 뛰어넘어 버린 후, 충분히 위협적이었던 놈들이 자신의 고강한 무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관람해 왔던 하지운이다.

알게 모르게 교만이 중추 신경을 지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이번 일은 언젠가는 한번 터져야 할 일이 터진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구보다 자신의 밑바닥을 잘 아는 하지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뱉어 냈다.

자신의 천성을 뜯어고치는 게 과연 가능키나 한 일인지 절망감부터 밀려들었던 것이다.

거기다 숲 너머로 진입하기도 전에 치명상을 입었으니, 솔직한 심정으로 더럽게 쪽팔리기도 했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할매 피가 내 피보다 더 빨리 닳기만을 빌어야 할 판인데... 씨발... 상처 크기를 봐서는 내가... 어? 상처 크기가... 어... 뭐지?”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는 옆구리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가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지나치게 기묘했던 것이다.


정말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급한 마음에 손바닥에 침을 탁 뱉어 버렸다.

그러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피범벅이 된 환부를 벅벅 닦아댔다.


“허얼... 아! 맞다!! 이거 마력이 아니라, 체력을 끌어다 쓰는 거였잖아! 하아... 정말 난 진짜 병...”


너무 오랫동안 안 썼다.

다칠 일이 없다 보니, 일 년을 넘게, 재생 능력을 구경도 못 해 보고 지냈던 것이다.

사실 근 몇 달 동안은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능력은 다 확인해 보는 동안, 재생 능력만 쏙 빼 놓고 지나쳤던 것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이걸 뭔 수로 확인해? 마력도 사용 못하는 마당에. 재생 능력이 사용 가능한지 확인하겠다고, 자해라도 했어야 한다는 건가?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이 새끼들 완전 개코던데. 도망 다니는 주제에, 피비린내를 풀풀 풍기는 건 미친 짓이지!”


금세 자기 합리화를 끝마친 소시오패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 씨발... 어차피 찔릴 거 좀 일찍 찔렸으면 오죽 좋아. 그랬으면, 해 떨어지기 전에 싹 다 죽였을 텐데. 아이씨, 배도 고파 죽겠는데... 존나 안타깝네.”


툴툴거리면서 일어서던 하지운의 눈에 누더기가 다 되어 버린 레몬색 거들이 들어왔다.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약혼녀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 준 기능성 속옷이 말 그대로 천 쪼가리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너덜거리는 천 조각의 끝을 질끈 이어 묶으며, 하지운은 진심을 가득 담은 상소리를 거침없이 토해 냈다.


“이런, 씨발! 꼴이 이게 뭐야!! 염병할, 왜구야? 이 개 긑은 년! 넌 내가 아무리 바빠도, 장례식까지 다 치러 준다! 삼일장이 기본이니까, 예의 있게 삼 일 동안 한숨도 자지 말고 나랑 함께 놀자!”


살기를 줄줄 흘려 가며 굳은 다짐을 한 하지운이, 아직 숨이 다 멎지도 않은, 청년의 주둥이를 짓밟고서는 있는 힘껏 뿔을 잡아당겨 버렸다.

악귀 같은 상판을 한 채로 용을 써 대는 하가 놈이다.

놈을 올려다보는 청년의 하나 남은 눈에서 투명한 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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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도강 (4) 24.06.01 1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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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도강 (1) 24.05.26 15 1 9쪽
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15 1 9쪽
203 즐거운 훈련 (8) 24.05.22 16 1 9쪽
202 즐거운 훈련 (7) 24.05.19 21 1 10쪽
201 즐거운 훈련 (6) 24.05.17 16 1 10쪽
200 즐거운 훈련 (5) 24.05.15 15 1 10쪽
199 즐거운 훈련 (4) 24.05.14 16 1 10쪽
198 즐거운 훈련 (3) 24.05.11 22 1 10쪽
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14 1 9쪽
196 즐거운 훈련 (1) 24.05.08 16 1 10쪽
195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24.05.06 21 1 10쪽
194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6) 24.05.04 18 1 10쪽
193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5) 24.05.02 17 1 10쪽
»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4) 24.04.30 1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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