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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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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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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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DUMMY

194화


“야, 금 부장.”

“왜?”

“너 언데드 되고 나서 한창 우울증 심할 때 말야.”

“그때 뭐?”

“육체적인 역량이 지금에 비해 많이 떨어졌었냐?”

“글쎄... 그런 건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근데 왜?”

“쟤 너무 우울해 보여서.”

“... 이거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삼 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이고, 잠도 안 재우고 쉴 새 없이 괴롭힌 놈이. 그러고는 대뜸 죽이고 나서, 언데드로 만들어 놓고는 우울해 보인다고? 그럼 쟤가 웃으면서 물구나무라도 설 줄 알았냐?”

“아니, 우울해할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했지. 그냥 그 우울해하는 시기 동안 쟤를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지가 궁금해서 그러지.”

“나라고 알겠냐? 일단 쟤랑 나랑 주특기부터가 다른데. 몸 쓰는 나하고 머리 쓰는 쟤가 같겠냐?”

“흐음... 그러네.”


오백오십 살 먹은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나누는 문답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듣기 거북한 대화였다.

하지운이나 볼드윈 경이나 본래부터 예의범절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종자들이 아닌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오늘의 그들이 유별날 정도로 버르장머리가 없어 보이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그들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곱게 늙은 이 엘프 할머니는, 꼴랑 ‘마력 억제’ 하나뿐이긴 하나, 그래도 저주씩이나 날려 댈 수 있는 특급 능력자이다.

그런 그녀를 그냥 폐기 처분한다는 건, 탐욕의 화신 하지운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면 능력으로 필요한 정보를 있는 대로 다 뽑아낸 다음, 바로 언데드로 만들어 버렸다.

엘프 할머니는 볼드윈 경처럼 곁에 두고 중용할 인물이지, 버러지들처럼 두고두고 못 살게 굴 장난감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제작 과정에서, 볼드윈 경 못지않게, 공을 많이 들였던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는 바람에 오백오십 살 먹은 할머니가 하루아침에 애새끼가 돼 버리고 만 것이었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것도 이 미터 오십에 달하는 신장 덕을 봐서 그 정도인 것이었다.

미친 사령술사가 제 본성대로 어둠의 마력을 정말 미친 듯이 때려 박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면상을 보고 예의 있게 지껄이는 놈이 단 한 놈도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사실 하지운의 입장에서 ‘저주’라는 능력은, 상대방이 사용하는 건 더럽게 거슬리지만, 막상 자신이 직접 사용하고픈 욕구는 그다지 생기지 않는 딱 그런 능력이다.

한 마디로 계륵이라는 얘기다.


벌써 강탈해서 사용 중인 능력이 열두 개다.

이제 빈자리가 고작 여덟 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스무 개나 흡수할 수 있다고 해서 자리가 모자랄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렇지도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결국 심사숙고 끝에, 저주만 전문으로 날리는, 졸개를 하나 추가하는 걸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괴물 놈들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넘겨주는 능력은 점점 더 쓰레기가 되는 거냐? 존나 짜증 나네.”


옆에서 듣고 있던 복제 인간 일 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 끼어들었다.


“너한테나 쓰레기지. 다른 참가자 놈들이 들으면 뭐라고 하겠냐?”

“몰라, 내가 알 게 뭐야? 근데 진짜 ‘지구력 강화’, ‘근력 강화’, ‘피부 경화’... 이딴 것들을 얻다가 써먹어? 차라리 ‘번식력’ 쪽이 훨씬 더 나아 보인다. 잠깐 피부 경화 이거 일종의 질환 아냐?”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사서에 기록된 짐승의 머리를 한 괴물이 이제 겨우 두 종류밖에 안 남았는데, 그놈들은 뭘 줄지 걱정이다.”

“근데 뭣보다 사람을 팔천 명 넘게 죽였는데도, 쓸 만한 능력 하나 흡수하지 못했다는 게 진짜 기적 중의 기적이네.”

“그러게, 그건 진짜 대박이긴 하다.”

“왜... 쓸 만한 게 몇 개 있어. 지금 당장 흡수할 만한 게 아니라서, 키핑 중이긴 하지만.”

“프흡... 그 떡 기술이랑 멘트 치는 거? 야, 네 여친이 엄청 기특해하겠다. 아주 대단한 사랑꾼 납셨어.”

“......”


조롱을 하고 싶어 눈깔이 벌게져 가는 복제 인간들을 보고, 위험을 감지한 하지운이 서둘러 대화의 주제를 바꿔 버렸다.


“쟤 아직도 우냐? 가서 확인 좀 해 봐. 다 울었으면, 살살 달래서 대화 좀 간단하게 나누고는 슬슬 출발해야지.”


막내인 복제 인간 이십칠 호가 어슬렁거리며 다가가 그녀의 낯짝을 대충 훑어보았다.


“우는 건 그쳤는데, 눈깔이 꼭 도다리 같아. 난 모르겠다. 본체 네가 알아서 해라.”

“야, 엘프야. 이리 좀 와 봐.”

“......”

“쟤가 지금 뭔가 거창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엘프가 고속으로 흙바닥을 가로질렀다.

발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염동력 능력자가 환영의 인사말도 잊지 않고 건넸다.


“테이저.”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한 귀곡성을 쏟아 내며 엘프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이, 이 악마 같은 놈아!!”

“멀쩡하네. 여기 앉아서 나랑 차분하게 대화 좀 해.”

“닥쳐라! 이 저주받을 마물아!”

“테이저. 아주 저주가 입에 붙었네.”

“끼야아아악!”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네 친구냐? 너 여기 나랑 놀러 왔어? 먼저 덤볐다가 쥐어 터지고 포로가 된 년이! 누가 너더러 남 밥 먹는 데 와서 깽판 치래? 너희 종족도 마찬가지야! 내가 언제, 어디 미친 병신들처럼, 너희 마을을 가로질러서 지나간다고 했냐? 그냥 숲을 지나가겠다고! 이 큰 숲이 다 너희 거야? 머릿수도 한 줌밖에 안 되는 것들이 땅 욕심은 더럽게 많아 가지고! 아니, 오만 것들이 다 가족이라고! 진짜 병신 같은 것들이! 옷이나 똑바로 입으라고 해! 불알이 다 삐져나와 가지고! 아오, 씨발! 진짜 꼴 보기 싫어 죽겠어!”

“뭐, 뭐가 어쩌고!”

“닥쳐! 너도 앞으로 내가 주는 옷 입어! 좀비 주제에 더울 리도 없고, 말 안 들으면 매달아 놓고 불로 지져 버릴 줄 알아! 좀비한테 불 고문이 어떤 건지 아직 모르지? 네가 방금 맞은 번개 마법은 그냥 애교야, 애교. 나이가 오백 살이 넘은 게 끈 팬티 같은 것만 걸치고. 아오, 숭해.”

“이 악마 놈아! 우리 종족을 모욕하.”

“됐어! 닥치고 마저 들어. 넌 앞으로 네가 좋아하는 연구나 계속하면 돼. 한 이천 년 정도만. 그러다 중간중간 내가 부르면, 바로 튀어나와서, 개그지 같이 생긴 것들한테 네가 잘하는 저주나 한 번씩 때려 주고 가면 되는 거고. 그게 끝이야. 다른 건 뭐 없어.”

“뭐?”

“뭐가 뭐야? 어, 얘 표정이... 뭐 이래? 내가 널 뭐 하러 언데드로 만든 줄 알았냐? 너 설마... 너한테 내 잠자리 시중이라도 들게 할 줄 알았어? 이것도 일종의 자의식 과잉 같은 건가? 넌 내 취향 아냐! 난 이미 실질적인 유부남이고, 무엇보다 불륜은 개극혐이라고!”

“... 그, 그런데... 난 우리 종족의 전통을.”

“닥쳐! 차도르까지 뒤집어쓰고 싶어?”

“그, 그게 뭐냐?”

“됐어. 닥치고 주는 대로 입어. 반항하면, 대장장이 영감한테 판금 갑옷을 한 벌 만들게 하는 수도 있어.”

“네 수납장 속에도 여러 개 있잖아. 그것도 보석 박아 놓은 걸로. 장식용으로 세워 둔 거 싹 다 뺏어 왔잖아, 신혼집 인테리어에 쓰겠다고.”

“그게 남성용이지, 여성용이냐? 아오, 이 밥통아. 쟤가 앞뒤가 똑같아 보여? 아무리 좀비라도, 최소한의 배려는 해 줘야 할 거 아냐! 좀비는 암수도 없냐!”

“아아...”

“늙은 엘프야, 내 말 잘 들어. 최초의 엘프 출신 언데드가 되어서, 기분이 말도 못하게 좆같다는 건 나도 충분히 공감해. 정말 미안해. 죽인 걸로도 모자라서, 언데드로까지 만들어서. 그런데 네 능력이 너무 아까워서 도저히 그냥 못 보내겠더라고. 저기 혼자 낯짝이 다른 놈 보이지? 인사해. 금 부장이라고, 너랑 처지가 비슷한 놈이야. 적의 졸개였던 놈인데, 재주가 아까워서 언데드로 만들었거든.”

“근 브좡?”

“발음 좋네. 어쨌든, 쟤랑 너랑 딱 둘 뿐이야. 언데드들 중에 나한테 대접받고 지낼 것들이. 나머지는 ‘버러지들’과 ‘똥싸개’라는 병신들인데, 보면 너도 조금 놀라게 될 거야. 아,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병신들이랑 간단하게 인사나 나눠 볼래?”

“어...”


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엘프 할머니조차도, 버러지들의 꼬락서니 앞에서는, 혓바닥을 놀릴 엄두조차 내질 못했던 것이다.


“쟤들이 버러지들이고 얘가 똥싸개인데, 저 버러지들 중에 가운데 있는 놈이 험프리라고 왕인가 뭔가 하던 놈이거든. 저놈이 제 몸뚱어리가 뭔 신의 축복을 받았다느니, 성유를 발랐다느니 하면서 개지랄을 떨더라니까. 아, 그래서 그나마 사지가 멀쩡한 저 똥싸개한테 저 병신의 몸에다가 똥칠을 해서 그 축복받았다는 몸을 더럽히라고 했지. 안 싸면 돼지머리 우리에다 산 채로 던져 버리겠다고 했더니, 오만 명이 보는 앞인데도 잘만 싸데. 한번 그랬더니, 저 병신이 두 번 다시 성유가 어쩌고 하는 개소리를 지껄이지 않더라고. 꼭 험한 꼴을 봐야지 고분고분해진다니까.”


간만에 이승에 나온 유피미아 클릭스튼 양이, 수치심을 못 견디고, 바닥에 드러누워 오열을 하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엘프 할머니의 낯짝이 새하얗게 질려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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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즐거운 훈련 (5) 24.05.15 14 1 10쪽
199 즐거운 훈련 (4) 24.05.14 14 1 10쪽
198 즐거운 훈련 (3) 24.05.11 20 1 10쪽
197 즐거운 훈련 (2) 24.05.09 14 1 9쪽
196 즐거운 훈련 (1) 24.05.08 15 1 10쪽
»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7) 24.05.06 18 1 10쪽
194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6) 24.05.04 18 1 10쪽
193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5) 24.05.02 16 1 10쪽
192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4) 24.04.30 16 1 10쪽
191 보복에 임하는 그의 자세 (3) 24.04.28 2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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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0) 24.04.19 2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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