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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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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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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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 (2)

DUMMY

205화


“이것들은 죽이면 뭐 나올까?”

“귀척? 구라질? 아니면... 그냥 통칭으로 개수작?”

“다양하게 나오겠지. 불여시네 애들도 생각보다 이것저것 많이 나왔잖아.”

“하긴 궁술만 나올 줄 알았더니. 검술, 동물 친화력에 식물 관련 지식까지 한 일고여덟 개 정도 나왔었지.”

“그럼 이것들은 개수작 부리는 걸로만 열 개 가까이 나오는 거야? 존나 쓸모없네.”

“왜? 이년들 능력 흡수해서, 나중에 지구로 돌아가거든, 보이스 피싱 조직이나 하나 만들든가 하면 되지.”

“음, 듣고 보니 저 새끼랑 어울리긴 하네.”

“뭔 소리야! 본체 새끼 그런 성향 아니야. 저 새끼가 참을성 있게 누굴 속이고 그럴 수 있는 놈이냐?”

“하긴 존나 패서 억지로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타입이지.”

“그렇기도 하네.”


뭔가 열심히 준비해 온 것 같은 세 여인이, 아름다운 면상을 일그러뜨린 채, 입만 뻐끔거리는 중이다.

자신들의 주특기가 전혀 먹히질 않는 기괴한 놈들이, 자신들을 내려다보며, 횟감 고르듯 관찰하고 있는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다.


“용사여, 애커론 강을 건너려면 강 건너편에 사는 뱃사공 케런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밖에 없고요.”

“맞아요. 우리를 적대시하지 말아요. 당신은 그저 우리가 제시하는 시험을 다 치르고, 이 강을 무사히 건너면 되는 거예요.”

“염병하네. 내가 만약, 시험이고 나발이고, 그냥 뗏목 만들어서 건너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

“푸흡... 본체야, 이 병신들 낯짝 좀 봐라. 진짜 눈구녕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야, 본체 새끼 눈깔부터 보고 얘기해라. 이 도다리 같은 년들도 제 목숨 귀한 줄은 알 텐데. 이 정신 나간 새끼가 빤히 쳐다보는 앞에서, 기습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내겠냐?”

“......”

“야, 이 생선 대가리들아. 안 돌아가는 대가리 굴리지 말고, 겁나면 너희 친구들 다 불러 모으라고. 벌써 삼천 마리 넘게 모인 거 같은데. 언제 덤빌 거야? 만 마리 채울 거야?”


하지운의 짜증 가득한 칭얼거림에 세 여인의 낯가죽이 모두 하얗게 질려 버렸다.


“표정 보니까, 우리가 모르고 있는 줄 알았나 보네. 그런데 정말 만 마리가 맞아? 몇 마리 모이면 덤빌 계획인 건지 그냥 미리 말해 주면 안 돼? 존나 답답해.”

“얘기를 해. 언제까지 기다려 줘야 하는 거냐고? 아니, 뭐 이런 병신들이 대표로 나온 거야? 왜 말을 안 해?”

“혹시 대표로 나온 게 아니고, 뒈져도 되는 병신들만 골라서 보낸 건 아닐까? 시간 좀 끌어 보려고.”


순간 깜짝 놀란 하지운이 움찔하더니 의견을 낸 막내 이십칠 호를 향해 쌍따봉을 날렸다.

복제 인간들도 일리가 있다는 듯 다소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여 댔다.


표정이 심각해진 하지운이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며 세 여인을 다그쳐 댔다.


“그런 거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너희가 바로 너희 종족을 대표하는 상병신들이렷다! 언제든지 뒈져도 된다고 했으니, 그럼 지금이라도 지체 없이 죽여 주도록 하마!”

“아, 아니... 그게...”

“제발...”

“저, 저희는 그저... 시, 시험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공포에 질린 세 여인의 안면 거죽이 뻣뻣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 탓에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고작 문장 하나를 뱉어 내는 것조차도 버거워하고 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도망치는 건 초장부터 그녀들의 선택지에서 사라져 버렸었다.

자신들의 주특기를 믿고 겁도 없이 들이댔던 탓에, 하지운의 절대적인 살상 범위 안에 자진해서 안착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들도 아주 바보들은 아니었던지라, 자신들의 사술이 안 먹힌다는 걸 깨닫자마자, 잠시나마 도주를 머릿속에 떠올리긴 했었다.

하지운과 눈을 마주치고선, 바로 포기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유언이 짧고 간결하구나. 말을 병신같이 해서 그렇지, 배려심이 있는 애들이야.”

“아, 아니... 저희는...”

“되었다. 그만 하거라. 유언을 굳이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무에 있겠느냐. 내 이미 다 기억했으니, 공연히 마음 쓸 것 없다.”

“아니... 유언이 아니라...”


지은 죄가 있어 언행에 최대한 유의하고 있던 엘프녀가, 참다 참다 결국에는 못 참고, 고함을 빽 질러 버리고 말았다.


“미친 마귀 놈아, 장난 좀 그만 치고 말이라도 좀 들어 줘라! 뭔 시험인지 들어는 보고, 판단을 해야 할 것 아냐!”

“굳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만류하는 하지운을 무시하고, 청초한 엘프녀가 세 여인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당신들 사이렌이죠? 이자에게 어떤 시험을 치르게 하려는 건가요? 원하는 게 정확하게 무엇이죠?”

“저... 그게...”

“시, 시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면... 그, 그러니까...”


무슨 죽을죄라도 이미 저질러 놓은 것처럼 덜덜 떨어 대는 세 여인이었다.

탁월한 인내심을 자랑하는 엘프녀가, 특유의 선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들을 안심시켜 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엘프녀의 헌신적인 노력 덕에 겨우 진정을 한 세 여인이 힘겹게나마 메시지를 마저 전달할 수 있었다.


“시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시려면, 저희에게 이분의 정기를 조금 넘겨주셔야 해요. 혹시라도 오해하실까 봐 드리는 말씀인데, 이건 저희의 오랜 전통이에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엘프녀가 비장한 표정으로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


“내가 정말 남 얘기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인데, 지금 그 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그냥 털어놓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정말 저 인간의 정기를 빨아먹지 않으면 말해 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정보인가요? 그런 거 아니면 제발 그냥 말해 버리세요. 어쩌면 지금이 당신들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요!”

“아, 안 돼요! 그건 저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깊디깊은 한숨을 내쉰 엘프녀가 힘없이 돌아서 버렸다.

참담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물러서는 그녀를 금 부장이 다가와 다정하게 꼭 안아 주는 것이었다.


“셀런, 당신은 충분히 할 만큼 했소.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그리고 사실... 앞으로 저놈을 따라다니다 보면, 이런 일을 빵 먹듯이 봐야 할 것이오. 그때마다 너무 마음을 쓰면, 정말 견뎌 내기가 힘들 것이오. 그러니... 셀런... 나, 난 정말... 당신이 너무도 걱정되는구려.”

“오오, 내 사랑 볼드윈! 제가 당신을 고통스럽게 했군요! 미안해요... 걱정을 끼쳐서...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내 사랑...”

“개지랄하네. 저기 구석으로 가서 찌그러져 있어.”


아름다운 커플의 아름다운 대화를 지켜보던 복제 인간들이 하지운을 향해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본체야, 저 등신한테 절대 스마트폰 개통해 주지 마라. 하루가 멀다 하고 보이스 피싱에 털릴 것 같다.”

“그러니까. 뭐 하러 저런 개소리를 다 들어 주고 앉았어? 심심한가? 면상이랑 하는 짓 보면 대충 감이 안 와?”

“야! 얘가 지금 낯짝이 이렇다고 너무 함부로 말하는 거 아냐? 오백 살 넘은 할머니가 그럴 수도 있지! 어린년들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깝치는데, 안쓰러워할 수도 있는 거 아냐!”


금 부장이 일 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근데... 저 등신 명의로 스마트폰 개통이 가능하려나? 쟤는 민증도 없잖아.”

“야, 그거야 본체가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따지면 본체는 뭐 있냐? 저 새끼도 이미 말소됐을 텐데.”

“벌써? 이제 이틀.”

“야! 집중 안 해! 이것들은 틈만 나면 얘기가 삼천포로 빠져.”


하지운의 호통에 눈알 육십 개가 순식간에 세 여인의 면상을 향해 고정되었다.

세 여인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오고 말았다.


“건져.”


복제 인간들이 염동력으로 세 여인의 목을 틀어쥐고는 진흙 바닥에 메다꽂아 버렸다.

지느러미를 팔딱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인들 앞에, 이번에는 찬란한 은빛 전사가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본체야, 얘들이 무슨 철천지원수라고 이놈을 불러낸 거냐? 얼마나 아프게 패려고?”

“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얘 레벨 업 좀 시키려고.”

“기어이 이놈을 둘러쓰고 다니려고?”

“응.”

“근데... 멋있기는 하겠다.”

“그건 그래.”

“전고 칠 미터의 찬란한 은빛 기갑 전사...”

“와... 씨발... 상상했더니 쌀 것 같아.”


세 여인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쏟아 내는 와중에도,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의 수다는 끊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골렘아, 죽이면 안 돼. 비늘 있는 곳만 때려야 해.”


신이 난 골렘이 두 팔을 머리 위로 힘차게 들어 올리고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원을 만들어 보였다.


“얘가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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