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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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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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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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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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 (3)

DUMMY

206화


하지운의 준엄한 꾸짖음을 들은 후 내내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던 선남선녀가 오만상을 찌푸린 채로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 내고서 드디어 주인에게 인정받은 골렘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미친놈은... 아니, 뭘 어떻게 해 달라고 저런 정신 나간 짓을 하는 건지! 저 여인들에게 굳이 저러고 있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소! 제 놈 말대로 그냥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건너다가, 방해하는 게 있으면 제 놈의 잘난 마법으로 제거하면 되는 거 아니오?”

“볼드윈... 사실 저놈이 저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해요. 물론 제 놈의 안위를 위해서 몸을 사리고 있다고 보는 게 가장 타당하기는 하겠지만.”

“응? 셀런, 그게 무슨 말이오?”

“볼드윈, 저 강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나요?”

“음, 사실 지나치게 거슬리기는 하오. 물속에 무슨 거대한 괴물이라도 있는 것이오? 곳곳에서 느껴지는 저 께름칙한 기운들은 다 무엇이란 말이오? 설마... 저 사이렌이라는 것들이 뿜어내는 건... 그럴 리가? 그러기엔 저들이 너무 허접... 아무리 봐도 저럴 수 있는 정도는 아닌데.”

“프흡... 볼드윈, 당신 말이 맞아요. 저 사이렌이라는 종족은 그다지 대단한 족속이 아니에요. 그저 생물체를 홀려서 정기를 빨아먹거나 아니면 아예 통째로 잡아먹어 버리는 그런 흔해 빠진 식인 괴물에 지나지 않아요.”

“음... 그렇구려...”

“문제는 저 강 자체예요. 당신이 느끼고 있는 마력은 괴물이 뿜어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설마...”

“지금 그 추측이 맞아요, 볼드윈. 저 강이 스스로 뿜어내고 있는 거예요. 저 강이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예요. 저 교활한 마귀가 선뜻 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고작 파수꾼 따위를 닦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그 이유 때문일 거예요.”

“그럼 저들에게 동족들을 불러내라고 난리를 친 이유도!”

“맞아요. 이미 코끼리 친구들이 보여 줬었잖아요. 주먹에 마력을 실어서 놈의 마법을 파훼하는 모습을. 아무리 저 마귀라 해도 저런 마력의 막을 뚫고 그 밑에 숨어 있는 생명체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엄청난 마력을 쏟아 부어야겠죠.”

“아! 맞소, 셀런! 놈은 마력을 낭비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오!”

“하아... 인정하긴 정말 싫지만, 저놈은 교활하고 노련한 사냥꾼이니까요. 함부로 마력을 고갈시켰다가, 예기치 못한 위험에 직면하는 그런 어리숙한 놈이 아닌 걸요.”

“그러니까 저들을 저 지경으로 만드는 이유가, 물속에 숨어서 지켜보는, 저들의 동족들을 못 견디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거 아니오? 못 참고 물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서, 한 번에 몰살을 시켜 버리려고.”

“뭐, 그렇겠죠. 저놈이 목적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부류는 아니잖아요.”


아름다운 커플의 분석에 딱히 틀린 점은 없었다.

단지, 신기한 구석이 많은, 사이렌에 대한 하지운의 순수한 호기심도 한몫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단 게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맞을 만해?”

“어흐어억! 아, 아니요! 제발!”

“너희 같은 어중간한 것들이 재생 능력도 갖고 있네. 궁금한 게 있는데, 사람 형상을 한 상체도 재생 가능하냐? 말 안 해 주면, 되는지 안 되는지 한번 때려 볼 거야.”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비늘이 없는 곳은 재생이 안 돼요! 제발 시험 삼아 때려 보지 마세요!”

“근데 너희 동족들 진짜 의리 없다. 원래 이 정도 했으면, 너희를 구해 내겠다고, 막 다 튀어나오고 그랬어야 하는 거 아냐? 와, 어떻게 된 년들이, 물 밖으로 나오는 년이 단 한 년이 없냐? 너희들의 고통에 동요하는 년이 아무도 없어. 너희는 뭐랄까, 그냥 나한테 바쳐진 제물 같은 그런 건가 봐. 원래 태어날 가치도 없는 것들이어서, 언제 한번 날 잡고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던 것들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내 손에 죽으라고, 너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버린 걸 거야. 너희 생각은 어때?”


반은 인간이고 반은 생선인 아름다운 식인 괴물 사이렌들의 낯짝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이미 과도한 재생 능력 사용으로, 머리통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피투성이가 된 그녀들이다.

하지운의 말에 현타라도 온 듯, 표정들이 이루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복잡미묘하게 구겨져 버리고 말았다.


독사 같은 하지운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지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야, 예쁜 애들이 얼굴이 그게 뭐냐? 내가 물 따뜻하게 해서 뿌려 줄 테니까 좀 씻어. 아유, 안쓰러워서 못 보고 있겠다.”


씻으면 씻을수록 얼굴들이 더 엉망이 되어 갔다.

한참을 죽도록 얻어맞다가 갑자기 따뜻한 물이 몸에 닿으니, 서러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와 버린 것이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그녀들을 바라보며 한층 더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하지운이었다.

물론 속으로는 더러워 죽겠다고 진저리를 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억지웃음을 짓고 있던 하지운이, 두 눈에 시퍼런 귀화를 일으키며, 음산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너희 동족들은 너희를 가차 없이 버렸다. 버림받은 가련한 아이들아, 더 이상 고통을 자초하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다 털어놓으려무나. 날 홀려서 잡아먹으려고 했던 게지?”

“네... 맞아요...”

“죄송해요... 너무 맛있어 보였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눈알이 게슴츠레하게 풀린 세 여인이 침을 질질 흘리며 웅얼거렸다.


“미친년들이 저걸 잡아먹겠다고. 처먹다가 배가 터져 뒈질 수도 있다는 건 생각 못한 건가?”

“같잖은 것들이. 시답잖은 사술을 믿고, 이번에 팔자 한번 제대로 고쳐 보겠다고 작정들을 했던 모양이네.”

“야, 저년들을 너무 무시하지 마. 본체처럼 환골탈태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미친 일 호 새끼야, 제발 그런 얘기를 그런 야비한 표정으로 지껄이지 좀 마라. 알고 보면, 우리 중에서 네가 본체를 제일 많이 닮았어.”

“뭐 이 씨발!!”


복제 인간들이 옆에서 지랄을 하든 말든, 자애로운 최면술사는 따사로운 대화를 이어 나가는 데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었다.


“근데 용모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너희가 아까부터 떠들어 대던 시험이란 건 대체 무엇이냐? 그냥 내 기력이나 빨아먹으려고 대충 둘러댔던 것이냐?”

“아... 아니에요... 처음에는 기력을 조금만 빨아먹고... 일을 시키려고 했어요...”

“무슨 일?”

“저희가 직접 하기 싫은... 귀찮고... 위험한 일이요...”

“아! 내 기력은 기력대로 빨아먹고, 너희 뒤치다꺼리는 뒤치다꺼리대로 시키려고 했구나?”

“네...”

“뭔 일을 시키려고 했던 거니?”

“강의 서쪽 끝에 사는... 가재들의 왕을 죽이라고... 그리고... 동쪽 끝에 사는 악어들의 왕도 죽이라고...”

“왜? 걔들이 못되게 굴었어?”

“네... 너무 거슬렸어요... 다 죽여 버리고 싶었어요...”

“저런, 아주 좆같은 새끼들인가 보구나.”

“네... 정말... 짜증 나는...”

“그런데 너희 말대로 하면, 내가 너무 손해 보게 되는 거잖아. 심부름은 심부름대로 하고, 너희한테 잡아먹히기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아?”

“아아... 죄송해요... 그런데... 저희 원래 그런 애들이에요...”

“저런, 어쩌다가 그따위 개쓰레기 같은 년들로 태어났을까. 정말 안타깝다.”

“지는...”

“맞아, 좆같기로는.”


하지운이 살짝 고개를 돌리자마자 금세 복제 인간들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최면술사가 인내심을 가지고 심문을 이어 갔다.


“아무런 보상도 약속하지 않고 일을 시키려고 했어? 그 정도로 너희의 사술에 자신이 있었던 거야?”

“아... 아니... 물론 아니에요... 가재를 잡아 오면 가재의 집게발을 어깨에 달아 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악어를 잡아 오면... 피부를 악어가죽으로 바꿔 주려고...”

“... 다른 건 뭐 없어? 보석이라든가 아니면 황금이라든가.”

“어,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

“강가에서 사금 같은 거라도 본 적 없니?”

“네... 본 적 없어요... 그런데... 가재의 집게발과 악어가죽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순간 하지운은 뭔가 불길한 느낌에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복제 인간들과 언데드들이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격하게 들썩거리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골렘마저 괴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만 웃어라. 단체로 불맛 좀 볼 테냐?”


입술을 꽉 깨문 일행들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힘차게 일어섰다.


“개거지 같은 아이들아, 케런인가 뭔가 하는 뱃사공 새끼는 어떻게 불러내는 것이냐? 그거라도 성의 있게 대답해 보아라.”

“죄... 죄송해요... 저희 케런... 잘 몰라요...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전설로만 들었어요...”

“푸흡!”

“크읍! 크흐흑!”

“너희들 처음부터 날 산 채로 강을 건너게 할 마음이 전혀 없었구나?”

“네...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사이렌들의 거듭되는 진심 어린 사과에, 하지운의 입에서도 솔직한 고백이 튀어나와 버렸다.


“아니야, 나도 처음부터 너희는 물론이고 케런인가 하는 새끼도 죽여 버릴 생각이었어. 그러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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