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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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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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 (5)

DUMMY

208화


허공에 띄워 놓은 상태창을 보며 성질 급한 하지운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아니, 저런 징글징글한 년들이! 이 정도 했으면, 이젠 좀 기어 나와야지! 도대체 얼마나 더 더러운 꼴을 보겠다는 거야? 저것들이 즐기나? 원래부터 더러운 거 좋아하는 변태들이었어?”


하지운의 짜증을 관람하며 헛웃음을 짓고 있던 관객들이, 고개를 돌려, 강기슭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진흙 벌판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핏빛으로 붉게 물든 벌판 한가운데서, 순식간에 레벨을 세 개나 올리고는 반쯤 미쳐 버린, 골렘이 광란의 자축 댄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장식 중이던, 생선 몸통들을 정신없이 뜯어 먹고 있는 여덟 좀비들도 골렘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 중이었고 말이다.


“삼천 마리가 넘게 뒈졌는데, 무슨 깡다구로 더 기어 나오겠냐? 그냥 똥물을 처마시더라도 억지로 버텨야지.”

“그런데 쟤들도 계속 모여들기만 하지, 도망은 안 가네.”

“저승에서 프로그래밍을 해 뒀나 보지. 네가 강을 건너는 것만은 목숨 걸고 막으라는 식으로. 쟤들도 지금 거의 죽을 맛일걸.”

“그러게. 물속에서 호흡을 하려면, 일단 주둥이로 물을 마셔야 하는 거잖아. 배출이야 저 허벅지 위치쯤에 있는 아가미로 한다고 해도.”


핏빛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똥싸개와 버러지들을 둘러보며, 복제 인간들이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이야... 좀 있으면 어마어마한 양이 쏟아질 텐데. 그냥 그 전에 처기어 나오면 안 되나? 언제까지 이런 더러운 전투를 보게 하려는 거야?”

“쟤들이 바보냐? 이런 상황에 미쳤다고 기어 나와? 저년들도 이제는 본체가 얼른, 뗏목 만들어서, 강으로 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물 밖으로 대가리만 내밀어도 뒈지는 마당에, 기다리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아오, 진짜! 더러워 죽겠네! 뭐 다른 아이디어는 없냐? 아직도 만 마리가 넘게 남아 있어! 이런 더러운 방법밖에 없는 거야? 저것들을 끄집어낼 다른 아이디어 있는 놈이 우리 중에 단 한 놈도 없는 거냐고?”


그러자 뒷짐을 진 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던 일 호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동료 복제 인간들을 호되게 꾸짖는 것이었다.


“얼빠진 것들! 인류 수천 년의 전쟁사에서 세균전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고작 이 정도에 우는소리를 해 대다니! 정신 상태가 썩어 빠져 가지고는! 앞으로 본체 놈을 따라다니다 보면, 오만 가지 상황을 다 겪게 될 텐데! 이래 가지고 무슨!”


일 호의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자, 피곤해진 다른 복제 인간들이 급하게 대화의 주제를 바꿔 버렸다.


“본체야, 이번 능력이야말로 반드시 흡수해야 한다. 너무 유용해 보여서 소름이 다 끼칠 지경이다. 제발 흡수해라.”

“그래그래. 꼭 네가 그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미치겠다, 본체야.”


복제 인간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들은 하지운이 다시 상태창을 훑어보았다.


「능력 ‘인어화’를 강탈하셨습니다. 흡수하셔서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상과는 달리 한 가지 능력만 계속 토해 내는 사이렌들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은빛 찬란한 무기를 꺼내 든 하지운이 마력을 주입해 무기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서서히 거대해져 가는 흉기를 지켜보며, 연신 마른침을 삼켜 대는 복제 인간들이었다.


“본체야, 손에 든 그거 말이다. 편곤같이 생긴 그거. 그건 갑자기 왜 꺼낸 거냐? 표정은 또 왜 그렇고?”

“이 개잡놈의 새끼들아, 내가 알아서 흡수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지? 대체 몇 대를 맞아야 정신을 차릴 거냐? 아니... 됐다. 다 필요 없고, 일단 한 줄로 엎드려뻗쳐.”


소스라치게 놀란 복제 인간들이, 바로 꼬리를 내리고는, 싹싹 빌기 시작했다.


“본체님, 왜 그러세요? 웃자고 한 말이에요.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그래요! 말로 하세요! 말로!”

“내가 애초부터 말로 할 생각이 없어서, 너희를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던 거야. 고통도 완벽하게 느끼라고.”

“아니! 정말 너무하시네, 본체 새끼님! 저 개꼰대 같은 일 호 새끼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잠깐 장난 좀 친 것뿐이에요! 때리지 마세요, 좆같은 본체님아! 우리가 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고 개고생하는 것도 좀 생각하세요!”


그러던 그 때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는 곳으로, 배가 스푸트니크 1호만 하게 부풀어 오른, 똥싸개 유피미아 양이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대공... 다 먹었나이다...”

“이 천것들이 너희를 살리는.”


낯가죽에 핏기가 돌아온 복제 인간들이 하지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복어를 연상케 하는, 여덟 좀비들을 빛의 속도로 이동시켰다.

잠시 후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오물 테러가 가해졌고, 결국 애커론 강의 터줏대감인 사이렌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 버리고 말았다.


“저게 본모습이야? 존나 기괴한데.”

“그냥 붕어에다가 팔다리만 붙여 놓은 모습인데. 와, 아가리 봐라. 누가 이 동네 물고기 아니랄까 봐.”

“이빨만 보면 완전 죠슨데.”

“근데 팔다리가... 이것들 암컷 맞아? 삼 대 삼천은 가뿐히 하겠는데.”


순간 하지운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엘프녀에게 진심을 가득 담은 사죄의 뜻을 전하였다.


“미안해, 엘프야. 얘들 본판이 이 정도로 개판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모태 미녀인 너희 종족과 비교한 건 존나 진심으로 미안해. 심지어 메이크업도 안 하는 너희와 이런 변신 괴물들을 비교했다니.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반성할게.”


안타깝게도 엘프녀에겐 대꾸할 정신조차 없었다.

단숨에 강변으로 밀고 올라오는 만 삼천여 마리의 건장한 붕어 괴물들을 보곤 혼비백산하여, 남친 손에 이끌린 채, 정신없이 도주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운과 아름다운 언데드 커플이 일직선으로 달아나는 동안, 복제 인간들은 두 패로 나뉘어 좌우로 간격을 벌렸다.

그렇게 갑작스레 만들어진 널따란 공터에 골렘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붕어 괴물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무려 만 삼천이나 되는 초대규모 병력이 밀려들자, 골렘 하나 따위는 순식간에 휩쓸려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붕어 괴물들은 때깔만 요란한 금속 덩어리 따위는 금세 작살을 내어 한쪽으로 치워 버리고, 진정한 철천지원수 놈을 찢어발기기로 작정을 하고 나왔던 것이다.


붕어 형상을 한 사이렌들의 시야에, 정면에서 실실 쪼개고 있는, 하지운의 면상이 강렬하고 분명하게 들어와 버렸다.

눈이 뒤집힌 붕어 괴물들이 조소의 달인 하지운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던 그 순간 무리의 한가운데서 자지러지는 괴성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치아가 완전히 박살 나 버린 수십 마리의 생선 괴물들이 몸부림을 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는 그들 사이에서 은빛 전사가 서서히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이 강에 도착하기 전부터 골렘과 하지운을 비롯한 개망나니들은 모두, 신장 삼 미터 삼십의, 4.0버전으로 신체 사이즈를 통일시켜 놓은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만만하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근방에 있는 사이렌 성체들이 전부 모여들어 물 밖으로 기어 나와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은 본색을 감추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는 홀가분해진 하가 놈이었다.


삽시간에 본모습으로 돌아온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이 사이렌들을 빙 둘러싸고는, 미소를 띤 채, 그저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실 만 삼천이나 되는 대군을 고작 스물여덟이서 포위한다는 게,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개또라이 같은 수작이기는 했다.

하지만 염동력을 숨 쉬듯이 능숙하게 사용하는 개망나니들이 그 일을 기어이 해내고야 마는 것이었다.


광활한 강변 황무지가 기절초풍한 사이렌들로 꽉 찬 가운데, 그 속에서 미친년 널뛰듯이 설쳐 대는 은빛 전사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사타구니를 물어뜯겨도 0.1초의 머뭇거림조차 보이지 않는 상남자의 강직한 몸가짐에, 신장 삼 미터 오십의 붕어 괴물들이 가눌 수 없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것이었다.


어느새 하지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학습한 골렘이 양팔을 귀두도, 즉 망나니 칼 형태로 변형시키고는 팔방으로 미친 듯이 휘둘러 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듯 양 발끝마저 송곳처럼 뾰족하게 만들어서는 신나게 걷어차기까지 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은빛 전사의 활약을 지켜보며, 염동력의 달인들이 기특하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만면에 지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공황이 올 것 같았던, 언데드 커플이 정신 건강을 위해 조용히 갈대숲 속으로 종적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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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강 (5) 24.06.02 1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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