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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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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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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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 (9)

DUMMY

212화


평균 강폭 삼 킬로미터, 평균 수심 팔십 미터의 애커론 강에서 스물일곱 개의 해저 화산 호소물이 폭발했다.

물론 해저 화산을 함부로 갖다 붙이기에는 적잖이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아담하기는 하였지만, 하지운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는 차고 넘칠 정도였다.


대략 칠팔 분 전, 하지운을 중심으로 좌우 이 킬로 밖으로 이동한, 복제 인간들이 강기슭의 갈대숲으로 숨어들어 가서는 일제히 마력을 일으켰다.

각자 불덩어리 한 개씩을 만들어서, 이십 미터 깊이의, 수중에 내려보내고는 물의 거인을 향해 천천히 이동을 시킨 것이다.

불덩어리들을, 거인을 중심으로 오백 미터 위치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복제 인간들이 본격적으로 마력을 때려 넣기 시작했다.


수중에서, 불덩어리 수십 개가 벌겋게 타오르는, 상식 밖의 이적을 행하려면 술사의 의지력과 마력 또한 상식 밖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유사 이래 최초로 등장했지만 굳이 등장해서 좋은 점은 전혀 없는 태대마법사 하지운이기에 가능했던 묘기이다.


물론 강물 표면에 마력이 그대로 깔려 있는 상태였다면, 애초에 불덩어리를 강물 속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쓸데없이 거대한 괴물을 만들겠답시고 마력을 싹 다 끌어간 게, 하지운의 입장에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미련한 물의 거인이, 하지운이 날려 대는 시답잖은 마법 공격 따위는 개무시하고, 복제 인간들부터 없애 버렸다면 결과가 이 정도로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신 하지운의 진짜 의도대로, 애저녁에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고, 날름 강을 건너 버리는 결과가 나왔겠지만 말이다.

지나칠 정도로 재빠른 복제 인간들이, 이 킬로가 넘는 거리에서 날려 대는, 마법 따위에 쉽게 뒈져 줄 리가 없다.

결국엔 짜증이 치밀어 오른 물의 거인이, 하지운을 내팽개치고, 스물일곱 개체나 되는 복제 인간들을 먼저 죽이겠다고 설쳐 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마력의 막이 싹 걷혀서 평범한 강이 되어 버린 마당에, 방해꾼인 사이렌조차 몰살을 당한 상황이다.

물의 거인조차 한눈을 팔아 버리면, 약삭빠른 하지운이 흙 마법으로 강에 징검다리를 놓아 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당황한 거인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미 강 건너편에서 조롱을 시작한 하지운을 보게 됐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당연하게도 진짜 미끼는 역시 복제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끝까지 하지운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물의 거인이었다.

거인이, 주의를 돌리는 척하면서도, 줄곧 곁눈질로 감시 중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는 하지운이었고 말이다.

사실 하지운이 마력 소모가 심한 주작까지 쏴 갈겨 버렸던 이유도, 좀처럼 속아 주지 않는, 거인에 대한 억하심정을 주체하기가 힘겨웠기 때문이었다.

덩치에 비해 지나치게 신중한 거인 덕에 무려 스물일곱 군데에서 동시에 수증기 폭발이 일어났고, 결국 지금의 끔찍한 참화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호수에서 기어 나온 하지운이 시원하게 피 한 사발을 토해 버렸다.

그러고는 허리가 접혀 있는 골렘을 소환 해제한 후 달리기 시작했다.


폭발 때문에 강폭 자체가 넓어진 것도 있지만, 동시에 대량의 강물이 양쪽 기슭으로 쓰나미처럼 범람을 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강이, 강이 아니라, 바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아... 씨발, 이놈의 흙길을 몇 킬로를 내야 하는 거야? 물 빠지길 기다릴 수도 없고, 마력도 후달리는 마당에 진짜 돌아 버리겠네.’


흙길을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그 길을 달리는 것도 만만찮은 문제였다.

사방이 물바다가 된 상황에 어디서 마른 흙을 구해 올 수도 없고, 마력도 간당간당한 마당에 젖은 흙을 말리겠다고 쓸데없이 마법을 남발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라 평상시 속도의 절반도 내기 힘든 상황에, 진창 위를 달리려니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은 하지운이었다.

그래도 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서, 한층 더 상대에 대한 패드립의 깊이가 심오해지는 하가 놈이다.


“빌어먹을, 내가 먼저 들이댄 게 아니야! 네 엄마가 먼저 번호 달라고 했어! 정말이야! 그리고 정말 손만 잡고 잠만 잤다고! 진짜야!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어! 믿어 줘, 이 좆도 없는 물 병신아! 나는 못 믿어도, 네 엄마는 믿어야 할 거 아니야! 이 불효막심한 새끼야! 너 이렇게까지 이 새아빠한테 못되게 굴어야만, 네 속이 후련하겠냐!”


상대방의, 존재해 본 적도 없는, 엄마를 중상모략해 버린 인간 말종이 눈앞에 보이는 구릉 위로 거칠게 몸을 날렸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말종 놈이 있던 자리에 수십 개의 물기둥이 내리꽂혀 버리고 말았다.


그새 다시 찾아온 물의 거인이, 도저히 울분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또다시 삼백 미터짜리 삼지창을 그것도 무려 열 개나 만들어서 허공에 띄우고는 양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삼지창 열 개를 싹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속이 후련해지려는 그 순간, 극대노한 물의 거인이 갑자기 멈칫하더니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규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분을 못 이기는 듯 강 위에서 지랄 발광을 해 버렸다.


탭 댄스를 추는 듯한 거인의 오두방정에, 기껏 제자리로 밀려 내려가던, 강물이 도로 강 주변을 쓸어 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그냥 갈 수는 없다는 듯, 거대한 몸체를 구부려, 하지운 앞으로 면상을 들이민 거인이 연신 입을 씰룩거려 대는 것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 병신 새끼가! 내가 독순술까지 할 줄 알아야 되냐? 좆도 없고 성대도 없는 게 어디서! 아이씨, 물 떨어지잖아! 안 꺼져, 이 만들다 만 븅신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던 거인이 결국에는 물로 되돌아가 버렸다.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하지운이, 자지러지듯 기침을 해 대며, 피가 섞인 물을 게워 냈다.

그러다 겨우 진정이 된 듯 바닥에 드러눕고서는, 기어이 쌍욕을 끝마치고야 마는 것이었다.


“개쌍놈의 새끼! 일부러 이 애비의 몸뚱어리 위에서 마력을 풀어 버리다니! 내가 네 엄마한테 얘기해서, 당장 네 용돈 다 끊어 버릴 거다!”


「하지운 님, 퀴즈 출제자 ‘케런 디 아나운서’를 잠시나마 격퇴하시고, 애커론 강을 그딴 식으로 꾸역꾸역 건너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에 따른 보상은 수료 후 일괄 지급해 드릴 예정임을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 승아야, 너 맞지? 원래 담당자는 어디 가고, 네가 메시지를 보내는 거야? 설마... 너 강등된 거야? 혹시 나 때문이야? 내가 너무 지랄을 해서?’

‘아니야. 걔가 너 모니터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징징거려서, 일주일만 병가 내라고 했어. 땜빵하겠다고 나서는 연놈이 아무도 없어서, 내가 직접 땜빵 중인 거고. 기특한 우리 자기, 난 줄 바로 알아보네.’

‘당연하지. 자기는 특히 빡쳤을 때 자기만의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어. 그런데 방금 걔가 아나운서였어? 뭘 보고 어떤 기준으로 뽑은 거야? 공채로 뽑은 거 맞아?’

‘자기 같은 말 안 듣는 참가자 놈들도 고분고분 퀴즈에 참여하게 하려고, 애 덩치를 좀 키웠거든...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모든 NPC들을, 종에 상관없이, 무조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설정해야겠어.’

‘근데... 걔는 나한테 퀴즈 내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던데?’

‘미친놈아!! 그건 네가 똥싸개를! 아오! 내가 어쩌다 이런 미친놈한테 콩깍지가 씌어서는... 네가 이러니까 신입이 힘들다고 질질 짜지! 걔도 명색이 귀신인데!’

‘미안...’

‘아니다... 애초에 우리가 설정한 것부터가 너무 허술했어. 우리가 전생에 게임 회사에서 근무했던 것도 아니고. 거기다... 자기가 일 기 참가자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하아...’

‘게임 회사 출신이 단 한 명도 없어? 그럴 수가 있나? 거기는 과로가 일상이어서 후보자가 넘칠 텐데.’

‘아니, 몇 명은 있지. 그런데 이 큰 시험장을 걔들 몇 명으로 어떻게 다 커버 치겠냐? 거기다 자기만큼 미친 참가자를 대응하는 매뉴얼은 아직 한참 미흡한 상황이고.’

‘그럴 리가? 네가 게임을 많이 안 해 봐서 그래! 아무 게임이나 채팅 창 한번 열어서 봐 봐. 나 정도 미친놈은 쌔고 쌨어!’

‘... 하아...’

‘미안해... 입 다물고 있을게...’

‘그런데... 사이렌들한테 홀리지 않은 건... 칭찬해 줄게...’

‘푸흡! 크흐흐흑.’

‘웃지 마, 이 자식아! 이번 주는 건너뛰고, 다음 주에 볼 거야?’

‘죄송합니다. 저 그런데... 샤워 좀 먼저 해도 될까요? 너무 찝찝해서요.’

‘그러시든지요.’

‘훔쳐보지 마.’

‘쳇!’


어느 정도 마력이 회복된 하지운이, 따뜻한 물에 몸을 씻어 낸 후, 목욕 가운으로 변형된 마법 옷을 걸치고 손수 식탁을 차렸다.

그러고는 생명의 열매를 한 입 베어 물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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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강 (9) 24.06.10 1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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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도강 (7) 24.06.07 16 1 9쪽
210 도강 (6) 24.06.04 14 1 9쪽
209 도강 (5) 24.06.02 1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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