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각리: 울음이 새겨진 마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완결

구하진
작품등록일 :
2023.06.18 18:52
최근연재일 :
2024.06.30 00:23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758
추천수 :
3
글자수 :
287,832

작성
23.12.03 23:01
조회
9
추천
0
글자
16쪽

33화. 변화, 또는 와해#3

DUMMY

좌견가 스라소니가 떠난 후, 이누가 나타났다.

낌새가 이상했던 이누는 뒤늦게 따라오는 바람에 이전 상황을 전부 놓쳤다.


“좌견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나귀와 마주쳤다. 좌견이 어디 있는지부터 물었다.


“갔어. 일하러.”

“무슨 일?”

“귀찮으니까 이따 모이면 한꺼번에 말할게. 그것보다는, 너 이명재 사촌 동생 본 적 있지. 어떠냐?”


세은에 관해 물었다.


“걔는 그냥 형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거야. 내 눈에는 약간 버릇없어 보이기는 했어.”

“그 여자애 부모 죽고 나서 들은 소식은 없고?”

“응. 형이 얘기 안 했어. 아마 앞으로도 쭉 피하려는 것 같아.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만 했어.”

“그래.”

“좌견은 괜찮은 거지?”

“또 처 묻냐. 이따 말한다니까. 애들한테 가자.”


이누는 나귀와 같이 일행에게 돌아가다가 멈췄다. 동선을 바꿔 나귀 뒤로 지나쳤다.

많은 화살이 수풀에 거칠게 박혔다. 화살대의 굵기와 길이로 보아 사람의 흔적은 아니었다. 나귀가 유력했다.

산 것을 명중한 화살촉은 보이지 않았고, 한곳에서 좌견과 스라소니의 핏자국을 발견했다. 이누는 나귀를 노려봤다.


“이거 눈깔 봐라. 대가리 이상하게 굴리네. 뭘 쳐다봐.”

“좌견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네가 요새 나 없다고 많이 설치는데, 그냥 생각 자체를 하지 마. 넌 아직 그럴 수준이 아니야. 네가 할 건 주제 파악밖에 없어.”

“나도 해 봐야 늘지 않아? 왜 다 하지 말라고 해?”


이누가 반항했다.

나귀의 미간이 구겨졌다. 좌견의 일로 앞으로의 일을 계산 중인데, 이누가 방해한다고 느껴 신경질이 올랐다.

욕지거리하며 쫓아낼지, 잠시 후 모두에게 할 설명을 굳이 이누에게 따로 한 번 더 할지, 아니면 어물쩍 넘길지, 고민했다.


“혼자 해.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한 발 물렀다. 그래도 어른이니까, 이누를 달래서 일행과 합류한 뒤 설명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이누가 사춘기 나이인 만큼 강압적인 방법은 더 귀찮은 방향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나귀는 문득 이누가 더는 자신의 조원이 아니라는 게 떠올랐다. 업무상으로도 과한 통제를 할 구실도 없었다.


“마음대로 구는 게 누구인데, 피해를 운운해.”


이누는 일행에게 가며 나귀 옆을 스쳤고, 스치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를 악물고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였다.

나귀가 이성을 완전히 놓았다. 강압이니 사춘기이니, 폭발했다.


“애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하는데, 이 개 같은 새끼는 염병할 싸가지만 무럭무럭 자라네.”


무차별적인 폭행이 시작됐다.

나귀는 칼과 창은 내려놓았지만, 이누의 배를 걷어차고 뺨을 내리쳤다. 나무에 집어 던지고, 웅크린 이누를 계속해서 밟았다.

일부러 급소를 피해 살이 많은 부분만 때렸다.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구타를 하려고 했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


이런 꼴을 당하면서도 이누는 인간 모습을 유지했다. 중간중간 짐승 소리를 내거나 부분적으로 변했지만, 꿋꿋이 견뎠다.


“난 너 같은 금수 새끼가 아니니까.”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귀를 도발했다.

인간의 몸으로 견디기에는 벅찬 폭력이었다. 정신력 또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너만 아니었어도 난 형이랑 사람으로 살 수 있었어. 형은 내 모습을 알고도 이해해 줬을 거고, 날 도와줬을 거야. 근데 너희 때문에 내가 그 기회를 다 뺏겼어.”


나귀는 그 착하디착한 네 형도 수인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당장 자신을 가장 화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누의 모가지를 잡고 들어 올렸다. 일말의 이성으로 손아귀의 힘을 조절했다.


“변해. 병신 만든다.”


이누는 끝까지 버텼다.

그사이 우견과 흑웅, 천우가 도착했다. 이누까지 오래 자리를 비우자 잠깐 찾기 위해 온 것이었다.


“무슨 일야?”


우견이 물었다.

귀찮은 일이 더 생길 게 분명했다. 나귀는 한숨을 쉬며 이누를 놓았다. 설명이고 뭐고 자리를 뜰까 고민했다.


주저앉은 이누가 나귀에게 험담을 퍼부었다. 서슬 퍼런 얼굴로 이제껏 쌓아온 불만을 터뜨렸다.

막 도착한 이들은 어리둥절했다. 한눈에 봐도 살의를 누르는 나귀와, 이런 나귀에게 폭언하는 이누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리고 우견이 피 냄새를 맡았다. 눈앞에 좌견도 없었다. 피를 찾아 킁킁거리며 좌견의 냄새도 맡았다. 안색이 확 바뀌었고, 피와 가장 연관이 많은 나귀를 노려봤다.


“아, 제발. 귀찮게 하지 좀 마. 썅. ”


이누도 입을 닫았다. 우견과 같은 예상을 하며 좌견과 나귀의 싸움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나귀는 곧 닥칠 쓸데없는 전개를 직감했다.


“좌견은 조사 차원에서 스라소니를 따라갔어. 그냥 출장 갔다고 생각하면 돼. 됐지? 피는 미친 나비탕 한 마리가 날 덮치는 걸 좌견이 막다가 생긴 거고, 무기를 쓴 건 내가 걔네 데리고 놀다가 그런 거야. 그리고 스라소니들은 너희한테는 호의적이야. 나한테만 지랄하는 거니까 좌견이 같이 있다고 해서 육갑 안 떨어도 돼. 너희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이누는 나귀의 모든 행동이 아니꼬운지, 여전히 씩씩거리며 노려봤다.

우견은 설명이 깔끔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걱정이 앞서 안절부절못했다.


“좌견이 알아서 홍매랑 연락하겠지. 얌전히 있어.”


진절머리가 난 나귀는 자리를 떴다. 눈앞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었다.

우견은 의지하는 홍매 이야기를 하자 그나마 진정하는 듯했다.



“오면서 계속 말씀 나눠봤는데, 과묵하시네요. 저희와 일하기 좋은 성격이신 것 같습니다.”


스라소니 하나가 운전하며 말했다. 좌견을 데리고 일하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 근처는 일반적인 주택가였다. 명각리처럼 산골짜기 사이이거나, 이은처럼 폐건물에 있지 않았다.

좌견은 사무실 가까이에 가자 흥신소라고 적힌 간판을 보았다.


“예.”

“손 다친 건 괜찮으신가요. 괜히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예.”


좌견은 과묵하다 못해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웠다. 오는 내내 스라소니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좌견은 예, 라는 대답만 했다.


이들은 나귀를 끔찍하게 혐오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인을 좋아했다.

인간 사회에 녹아들어도 수인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했으며, 자긍심도 가졌다. 또한, 이전에 범 집단과 소통이 있었던 만큼 유사한 가치관을 가지기도 했다.


좌견은 사무실 안에 숙식할 방으로 안내받았다. 자신의 돌발행동으로 홍매와 주한, 신철이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스라소니 집단은 확실히 야만적인 성향은 없어 보였다. 생면부지인 수인 사이에서 고립되어도 별 탈 없이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라소니는 다음 날부터 업무에 관해 알려준다고 했다. 좌견을 혼자 남기고 방을 나갔다.


좌견은 방에 어떤 감시 장치가 있다는 가정을 했다. 없다고 한들,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했다. 태연히 잠자리에 들까 했지만, 복도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방금 그 스라소니가 상급자로 보이는 상대와 통화하는 소리였다.

문 가까운 위치에서 방을 구경하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숨을 참으며 청력에 집중했다.


“다른 수인들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좌견은 명각리 수인 중 가장 이성적인 수인으로 보입니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방어적이네요. 우선 간단한 치안 업무부터 하면서 친해져 보겠습니다. 저희도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니 충돌은 없을 겁니다. 여기를 쳐들어온다면 나귀 그 악마 새끼밖에 없는데, 다행히 당장 공격할 조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명재를 확보할 방법과, 명각리 수인을 흡수할 방향을 찾아보겠습니다.”


스라소니는 비장한 다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좌견의 방문을 조용히 봤다. 아까 나귀가 좌견과 여느 동료처럼 대화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나귀를 마주한 건 악몽의 재현이었다. 그 기골을 마주하고 날카롭게 서로를 도발했고, 부질없었지만 자신은 칼도 휘둘렀다.

옛날이었다면 자연스레 죽음으로 이어졌을 것이었고, 지금 버젓이 살아 돌아왔다.


당시 위우창은 성급하게 판단했다. 나귀와 악인, 홍매를 동시에 자극하며 참혹한 결말을 맞았다.

스라소니들은 절대 그러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인간의 생활을 배웠다.

위우창의 선례가 있으니, 수인의 존재를 과하게 노출하면 어디에서 창이 날아올지 몰랐다. 조직을 부풀린 뒤 명각리를 감시하고, 납치단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이명재를 발견했다. 이후에 이은을 사주하며 명각리를 향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헀다.


“수재 형!”


어려 보이는 후배 스라소니 한 마리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회상하던 수재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배는 어깨에 여자아이를 메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박세은?”


수재는 머리를 급회전하며 갖가지 경우의 수를 나열했다.

이 여자아이라면 이명재과 강한 접점을 만들 수 있었다. 상황을 보아 후배가 뜬금없이 납치해 왔을 리는 없으니, 세은이 어떤 이상행동을 했을 것이다. 부모의 죽음으로 망가진 심신이 이유일 것이다.


“나침반의 침이 자력을 읽었으니, 길라잡이가 필요할 테지.”


결단을 내렸다. 세은의 방도 하나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아파!”


불쾌한 소음이 울렸다.


“사실 안 아파.”


기력을 회복한 악인이 꼬장부리고 있었다.


“진짜 안 파아. 왜 안 되는데.”


제아무리 괴물 같은 회복력이라고 해도, 아직은 아물지 않은 치명상이 남았다. 그런데도 악인은 나가겠다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태주와 가영이 고생했다.

악인은 좌견의 가출에 가까운 출장에 관해서는 별말 없었다. 신뢰가 두터웠고, 무엇보다 홍매가 잠잠했기 때문이었다. 이은 조직에만 관심을 보이며 태주와 가영에게 떼를 썼다.


“홍매 씨, 안녕하세요. 별일 없으신가요? 일은 그래도 꾸준히 들어오네요. 수고가 많으세요.”

“고마워.”


가영이 홍매에게 안부를 물었다.

이은이 난리치든, 나귀가 멋대로 쏘다니든, 수인의 출현은 멈추지 않았다.

각 인원이 꾸준히 일했지만 좌견이 빠졌고, 흑웅도 사실상 업무할 상태가 아니었다. 결원이 생긴 탓에 홍매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도 데려온 백호가 꽤 고분고분하네. 이누랑 잘 지내서 다행이야.”


천우는 이누와 명재 아래에서 일을 배웠다.


“악인은 좀 어때?”

“악인 씨는 아직 움직이기에는 무리···”

“완전 멀쩡하지!”


가영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악인이 벌떡 일어나며 지껄였다.

가영은 서류철의 모서리로 악인의 상처 부위를 때렸다. 악인이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쳤다.


“이··· 이게. 머리 좀 컸다고 나를 패? 계집 이름, 혼날래?”

“본부장님이 어떻게든 얌전히 만들라고 했습니다!”


가영도 나름대로 기세가 생겼다.

주한은 일부러 악인의 병실을 자신의 사무실과 이어진 방에 마련했다. 홍매도 주한을 보러 가는 길에 악인의 안부를 물은 것이었다.

악인의 상태는 차도를 보였지만 아직 좋지 못했다. 치명상을 입은 채로 과격한 싸움을 한동안 더 했고, 이후 치료까지 상당히 방치되었다.

홍매는 간단하게 파악한 후 주한의 사무실로 갔다.


“홍매. 고생이 많아.”


주한이 물었다.


“어떡할 거야?”

“날개는 어떤가. 많이 다쳤던데.”

“진작 아물었어.”

“나귀랑은 연락하고 있나?”


나귀는 악인과 홍매랑은 종종 연락했다.

악인과는 장난만 쳤고, 홍매와도 깊은 이야기보다는 좌견에 대한 상황 공유 정도였다.


좌견은 스라소니 조직에서 민간 수사 같은 흥신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수월하게 인간 생활을 배우고 있으며, 후에 명각리도 이런 방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면 좋을 것 같았다.


“좌견 얘기는 주한 너한테도 주기적으로 보고하지 않나? 나한테 특별히 물어볼 게 있어서 부른 건가.”


홍매도 요새는 매우 날카로워졌다. 주한도 느꼈는지, 조금은 서운한 반응이었다.


“이누와 명재가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이전에 나귀와 악인처럼 말이야. 천우는 본성은 순한 것 같아서 두 웅들 같고, 홍매 너는 항상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니 걱정이 없다. 신철은 언제나 내 손과 발이 되어주고, 태주와 가영이도 초식 수인들과 아주 잘 지나고 있어.”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나귀스러운 반응이었다. 주한의 넋두리는 빈도가 심한 게 맞았지만, 홍매는 확실히 예민한 것 같았다.


“미안. 요즘 내가 좀 예민하네.”

“좌견은 절대 현웅처럼 될 일 없을 거네.”


주한이 어림짐작으로 위로했다. 홍매는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본론을 말하자면, 내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움직였으면 좋겠나?”


자조적인 말투였다. 홍매도 이걸 갱년기 우울증 정도로 여기지는 않았다.


“난 모르지. 네가 본부장인데 내가 지시할 수는 없잖아. 생각해 본 적 없어.”

“별건 아닌데, 내가 요양하는 노인네 같기도 해서. 물러설 때가 온 것 같기도 해. 신철한테 상의했는데 들은 체도 안 하네.”


신철은 주한에게 많이 의지했다. 주한에 대한 신뢰와 충성은 중요한 정신적 지주였다.


“중심축은 건재해도, 지난 일로 우리 명각리 인원이 대폭 줄었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질 사람이 줄어든 거야. 나귀도 이런 걸 느꼈는지 더 혼자 떨어진 것 같아. 매정한 놈. 좌견이 스라소니와 건설적인 관계의 물꼬를 트면, 너희도 가서 동업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앞으로 사회에 융화된 수인으로 살 수도 있잖아. 신철이랑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해도 좋고, 제 갈 길 찾아도 좋고. 나는 점점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네.”


신세 한탄을 줄지어 늘어놓는 탓에 홍매는 괜스레 싱숭생숭해졌다.

단순히 감상에 젖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결단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였다.


“굳이 그런 말은 하지 말아. 나중에 스라소니랑 교섭할 때 얼굴마담 해주면 되겠네. 노익장 연륜으로 밀어붙여.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


홍매가 장난으로 분위기를 풀어봤다. 편한 분위기에서 주한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항상 이랬다. 잠잠하다 싶으면 이상한 전조가 시작되고, 야속한 예감은 매번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 좌견과 나귀를 잘 도와줘. 적어도 스라소니 일에 한해서는 그 둘이 가장 좋은 지지대 역할을 해주니.”

“알겠어. 본부장 위치 자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것 같아. 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어도 돼. 강주한 네가 있냐 없냐가 중요하니까. 그래도 빠지고 싶으면 얘기해. 난 도와줄게.”

“고맙네. 전화해도 될 일인데 여기까지 불러서 미안. 바쁠 텐데 가서 일 봐.”


홍매는 순순히 사무실을 나갔다. 주한에게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았다.


아까 홍매가 사무실로 들어온 직후 악인의 병실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악인이 문에 귀를 대고 도청하고 있었다. 뒤로는 태주와 가영이 머리까지 통째로 이불에 칭칭 감겨있었다.


“뭐래, 뭐래. 하나도 안 들렸어.”

“별거 아니야. 강주한이 이제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어. 악인 넌 괜찮아?”


홍매는 대답하며 태주와 가영을 풀어줬다.


“원한다면 말릴 수는 없지. 우리끼리 지내도 나귀가 스라소니를 쓸어 담을 결정만 하지 않으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걸. 재미는 없겠지만.”


악인은 스라소니 등장 이후, 어느 정도 금기시되던 화두를 가볍게 꺼냈다.


“악인. 나귀한테 그럴 기미가 보여?”

“아니. 전혀. 나귀는 아예 관심 없던데. 애들도 그러잖아, 오히려 가끔 2세 납치를 도와주고 간다고.”

“그럼 다행이네.”

“그렇지. 또 창이랑 활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난리 치면, 주한이랑 신철이 화병 나서 죽을걸.”


악인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스라소니가 나귀를 싫어해도 먼저 건드리지는 않잖아. 자기들끼리 잘 살던데. 왜 일부러 나귀랑 엮이려고 하겠어.”


스라소니가 이명재를 노린다는 건 아직 좌견과 나귀만 아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명각리에서는 스라소니에 대한 파악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부류이고, 같은 처지이기에 언젠가는 교류해도 좋은 옆 반 친구 정도로 여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명각리: 울음이 새겨진 마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0 49화. 출항, 악천후#3 24.06.30 7 0 9쪽
49 48화. 출항, 악천후#2 24.06.26 8 0 12쪽
48 47화. 출항, 악천후#1 24.06.25 7 0 13쪽
47 46화. 예견된 복병#2 24.06.22 11 0 16쪽
46 45화. 예견된 복병#1 24.06.21 10 0 12쪽
45 44화. 다시 되풀이#8 24.06.20 11 0 11쪽
44 43화. 다시 되풀이#7 23.12.28 14 0 12쪽
43 42화. 다시 되풀이#6 23.12.20 9 0 12쪽
42 41화. 다시 되풀이#5 23.12.18 10 0 14쪽
41 40화. 다시 되풀이#4 23.12.10 10 0 12쪽
40 39화. 다시 되풀이#3 23.12.07 11 0 13쪽
39 38화. 다시 되풀이#2 23.12.07 10 0 13쪽
38 37화. 다시 되풀이#1 23.12.07 7 0 13쪽
37 36화. 변화, 또는 와해#6 23.12.07 6 0 14쪽
36 35화. 변화, 또는 와해#5 23.12.05 9 0 17쪽
35 34화. 변화, 또는 와해#4 23.12.04 7 0 12쪽
» 33화. 변화, 또는 와해#3 23.12.03 10 0 16쪽
33 32화. 변화, 또는 와해#2 23.12.02 7 0 17쪽
32 31화. 변화, 또는 와해#1 23.12.01 7 0 15쪽
31 30화. 되풀이#8 23.11.30 11 0 13쪽
30 29화. 되풀이#7 23.11.29 10 0 14쪽
29 28화. 되풀이#6 23.11.27 9 0 15쪽
28 27화. 되풀이#5 23.11.26 8 0 15쪽
27 26화. 되풀이#4 23.07.18 13 0 12쪽
26 25화. 되풀이#3 23.07.15 12 0 12쪽
25 24화. 되풀이#2 23.07.09 14 0 12쪽
24 23화. 되풀이#1 23.07.08 16 0 12쪽
23 22화. 각자의 허물#10 23.07.07 15 0 14쪽
22 21화. 각자의 허물#9 23.07.05 14 0 12쪽
21 20화. 각자의 허물#8 23.07.04 17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