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각리: 울음이 새겨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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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구하진
작품등록일 :
2023.06.1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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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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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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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변화, 또는 와해#5

DUMMY

좌견은 방에서 나귀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일상적인 업무 이야기였다.

순간, 복도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넣고 귀를 세웠다. 수재의 목소리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확실했다.


요란한 소리가 나지는 않기에 어떤 위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복도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기척이 사라졌다. 상대는 좌견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반응했다.

좌견은 자신이 표적이 됐다고 생각했고, 문을 잠깐 닫는 척하다가 박차고 뛰쳐나갔다.


복도에 있는 괴한들은 기다렸다는 듯 엽총을 난사했다.

좌견은 정신을 잃기 전 필사적으로 주변을 파악했다.


괴한들은 진정제로 좌견을 제압한 후 총구를 내린 뒤 안심했다. 더 이상의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등에 멘 다른 총에 눈이 갔다. 저건 살상을 염두에 두고 챙긴 것일 테다.


괴한들 뒤에서 나타난 세은이 좌견에게 진정제를 더 발사했다. 그 탓에 시야가 완전히 정전되며 정신을 잃었다.


세은은 방금 같은 방식으로 쓰러진 수재를 촬영했다. 좌견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다.

둘 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무수한 진정제를 맞고 쓰러진 모습은 꽤 처참했다.

이걸 명각리에 보낸다면 즉시 이곳을 초토화하러 올 것이다.


명각리와 스라소니가 만나기 전에 이런 도발을 하는 건 서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수재는 공격당하며 자신이 간과한 점을 되짚었다.

만약 괴한들이 조직의 일원이고, 수재를 배신한 뒤 세은을 이용해 좌견을 인질로 잡는 거라면 명각리와 무력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공멸만을 끝에 둔 전쟁이 시작되리라.


수재는 나귀에게 칼을 휘두른 날을 떠올렸다. 좌견의 제지가 없었어도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했을 것이다.

나귀의 시야각에서는 수재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상태에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마무리했다. 단순한 신체 능력과 함께 능숙한 심리전과 자신감이었다.


수재가 칼로 찌르거나 목이 아닌 부위를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차분히 생각하면 급소인 목을 막으면서 반대 손으로 반격한다는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간발의 차이로 목이 베일 수도 있는 순간, 목숨을 걸고 가장 합리적은 예측을 했던 것이다.


나귀는 자신의 목숨까지 경시하는 지경까지 간 것인가. 세상 모든 것을 가소롭게 보기에 목숨이 걸려도 오만한 건가.

수재는 이십 년에 걸쳐 자신의 조직이 사회성과 도덕, 상식과 규범을 익히는 동안, 나귀는 여전히 인간성을 칼자루에 맡긴 채 세월을 베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정제의 약효 때문인지, 수재는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명가리에게서 고향의 향수를 느꼈다.

비뚤어진 원망으로 날뛰는 세은이든, 숙원의 폭발로 명각리를 몰락시키려는 내부자이든, 결국 궤변에 지배당한 선비와 눈먼 백정의 싸움이었다.

선비의 무지한 붓질이 백정의 눈에 닿고, 칠흑만 보는 백정은 그 붓 주인을 토막 내기 위해 자신의 팔다리가 잘리는 것도 모른 채 식칼을 휘두를 것이다.

명각리는 다만 이 사이에서 안녕을 좇을 뿐이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다행히 아는 얼굴은 없네.”


면회실에서 두 사람이 대면했다.

신철이 화가 잔뜩 났는데, 주한은 실없는 농담만 던졌다.


“내가 잡아넣었던 놈들을 만나기라도 해 봐. 그럼 관짝에 들어가서 더 확실히 안전해지려나.”

“지금 흑웅의 상태가 유난히 안 좋습니다. 솔직히 이제 조직이니 본부니, 다 흩어지고 제멋대로인 마당에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납치단 일이야 워낙 오래 했으니 간간이 알아서들 하고, 본부는 사실상 태주랑 가영이가 초식 수인들과 사는 곳입니다. 다른 인원은 가끔 제가 불러야 보이거나, 대부분 홀로 다니네요.”


주한은 십분 이해한다는 듯 끄덕거렸다. 안 봐도 눈에 훤했다.


“좌견의 행동은 놀랍긴 했어. 총명한 건 알았는데, 거의 베테랑 형사 정도로 활동하잖아. 물론 뒤는 나귀가 봐주고 있겠지.”

“안 그래도 그게 이상합니다. 나귀가 너무 얌전해요. 스라소니를 건드릴 줄 알았는데 어떤 동향도 없습니다. 당장 그쪽이랑 회의를 앞두고 있으니 더 불안하네요. 회의 때 맞춰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신철은 스라소니와의 회의를 준비할 때마다 나귀가 생각났다. 차라리 미리 난장판을 쳐줬으면 했다.


“아닐 거야. 이누가 자기 형을 따라가면서 갑자기 흩어졌잖아. 나귀도 어딘가 어색했을 거야. 나귀가 납치단에서 협조적이었던 것도 이누 때문이었을 텐데. 이누가 없으니 좌견이랑 다니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이누가 스라소니 집단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지금 자기가 먼저 조사해 두는 거지. 비교적 신중하게 행동할 거야.”


신철은 주한의 조언을 듣자 안심되었다.


“좀 더··· 충고해주실 건 없습니까.”


느닷없는 질문이라는 건 자기도 느꼈다. 머뭇머뭇 묻자 주한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가 알아서 해. 아무리 나귀 놈이 나를 보호한다고 해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면 내 안전보다는 일을 하라고 했을 거야. 보니까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여. 오히려 노인네가 방해되니까 짐짝처럼 어디 처넣어 둔 느낌이네.”

“싸가지 없는 새끼.”

“나무라진 말아. 나도 나귀의 행동이 신기해서 보고 있어. 창 몇 자루 들고 스라소니 조직에 가서 말 들을래, 죽을래. 이런 방식을 고수할 줄 알았지. 난 그걸 홍매나 이누가 말려줬으면 했던 건데, 지금 나귀가 스스로 좌견과 협동하면서 정보를 캐내고 있잖아? 신기할 따름이야. 살아서는 못 볼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철은 나귀를 말릴 대상으로 홍매와 이누, 그리고 한 사람 더 있다고 생각했다.


“악인은 나귀를 안 말릴까요?”


물으며 주한이 이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악인을 조심하라고 했다.


“나도 확신은 없어. 들려줄 수 있는 건 이십 년 전의 이야기야. 그때 나귀가 이은이랑 천우와 싸울 때, 홍매가 도우러 가면서 악인이 혼자 남았어. 홀로 범을 상대하던 거지. 범들은 나귀에게 당해서 전부 죽기 직전이었으니 위험하지는 않았어. 나귀와 홍매가 돌아갔을 때, 악인이 범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고 해. 범에게 치료받은 흔적도 보였으니, 비교적 멀쩡한 범이 동료를 구하며 회복헀다고 생각했지. 근데 어느날 악인이 나한테 말해주더라고. 자기가 범을 치료해줬대.”


전투에서 압살한 후, 숨이 붙어있기에 구조했다. 신철은 선뜻 이해가지 않았다.

모든 싸움이 끝난 뒤라면 모를까. 완벽하게 승리하며 살아남은 적의 목숨만은 살려두는 건 앞뒤가 맞았다. 하지만, 아직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당장 자신을 죽이려고 덤빌 수 있는 상대를 치료한 건 기괴했다.


“왜 그랬답니까?”


즉시 반문했다.


“불쌍했대. 다 같은 수인인데 나귀한테 당해서 그런 꼴이 난 게 안타깝다고 했어. 근데 내 생각에는 이게 깊은 동정에서 나온 건 아니야. 악인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재밌게 봤던 개그 프로그램을 회상하듯 말했어. 범을 양껏 비웃으면서.”


신철은 이제 반문 대신 고개를 한껏 갸웃거렸다.


“기준··· 같은 게 없는 것 같아. 이상하지는 않지. 단순한 백수처럼 만날 티브이만 보면서 밥만 축내는 사람도 있잖아. 그때그때 눈앞의 유흥이나 호기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처럼, 악인도 그럴 수 있어.”

“본부장님 말씀이 조금은 이해됩니다. 다만, 보통 거기에는 조건이 있지 않나요? 사회생활을 안 하며 부모님이나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무기력과 게으름의 총 집합인데, 악인이 그런 건가요?”


주한은 고개를 약간 저으며 바로 답했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악인은 무리 속에서 다른 애들과 유독 잘 지내. 업무할 때도 과한 장난은 자제하면서 규정을 따르고. 평화로운 환경은 아니기에 다른 애들처럼 조금 비뚤어질 수는 있어도, 뚜렷한 가치관 같은 게 점점 생겨야 정상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주한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이걸로 문제 삼을 생각은 전혀 없어. 장난기가 많아도 동료를 소중히 여기고, 일에 잘 집중하니까. 불안한 건 다른 애들이 크게 흔들렸을 때야. 악인은 감당 못 해. 감당은 항상 나 또는 홍매의 몫이었거든. 악인은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 현실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곡해할 수 있어.”


신철은 묵묵히 들었다. 당장 이해할 수는 없어도 후에 떠올려야 할 내용 같았다.


면담이 끝나고 쓸쓸히 나왔다. 주한은 마지막까지 출근하는 가장의 얼굴을 했지만, 신철은 알게 모르게 죄책감이 느껴졌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켰다.


‘좌견이 공격당했습니다. 홍매랑 우견은 이미 출발했고요.’


명재의 문자였다.

주한은 조금 전 말한 애들이 ‘크게 흔들릴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시작은 세은의 연락이었다. 명재에게 어떤 사진과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내용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저 명재를 데려오라는 말뿐이었다. 문제라면 사진이었고, 수재와 좌견이 진정제 범벅이 된 채 쓰러진 모습이었다.

내일 있을 회의에 데려오라는 의미라면 이런 사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만 수재의 흥신소 사무실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마침 전원이 본부에 모여 내일의 회의에 관해 말하던 중이었다.

사진을 보고 길길이 날뛰는 우견을 진정시키던 중, 문자가 한 통 더 왔다.

쓰러진 좌견 옆으로 세은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명재는 넋을 놓고 사촌 여동생을 한참 바라봤다. 믿기지 않았다. 여유만만한 모습은 절대 좌견과 함께 공격받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좌견을 전리품으로 기념한 느낌이었다.


이 짓은 스라소니의 내부 분열로 추측하고 있었다. 나귀의 짓이라는 말도 나오던 중, 보기 좋게 세은이 등장했다.


습관대로, 하던 대로, 명각리는 분주해졌다.

태주와 가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자에 적힌 주소로 갈 채비를 했다.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들 살상 장비를 챙겼고, 천우도 자연스럽게 이누 옆에 붙어 다녔다. 이제 명각리에 대한 소속감이 생긴 것 같았다.


근래 명각리는 여러 차례 공격당하며 대응하는 일이 빈번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철칙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파악이고 뭐고 상응하는 규모로 반격부터 하는 게 당연시됐다.


홍매는 이런 움직임에서 나귀의 모습이 스쳤다.

쓰러진 좌견의 잔상을 견디며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눈앞에서 발작하는 우견을 보며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가영 씨. 흑웅은 어떡하나요. 계속 저렇게 둘까요?”


태주는 원래 가영에게 반말을 썼지만, 이은 사건 이후로도 그러다가 신철에게 뒤통수를 미친 듯이 맞은 뒤 존댓말로 고쳤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을 건넬지 전혀 안 떠올라요. 아니면 가만히 두는 게 좋을까요. 흑웅 씨도 말을 걸면 듣는 것 같기는 한데.”


현웅이 죽은 후, 흑웅은 겉보기에는 일상적으로 생활했다. 업무에서는 빠졌지만 덤덤히 먹고 자고, 불안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딱 먹고 자기만 할 뿐이라는 게 싸늘했다. 특별히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지도 않았다.

식사 후 남은 시간에는 초식 수인의 생활관에 놀러 가고, 그들을 구경했다. 조금 지나자 창고에서 공구를 꺼내 생활관을 보수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현웅의 유품을 만지작거렸다.


이 정도 이상행동은 다른 이들에게 감지덕지였다.

문제는 누가 말을 걸어도 흑웅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흑웅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벙어리나 귀신처럼 돌아다녔다.

가영과 태주가 종종 마주쳤는데, 눈인사는 하는 걸로 보아 주변을 인식하는 것 같았다. 그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신철의 갑질이 효과가 좋았는지, 태주는 후배인 가영보다 먼저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넌 뭐냐. 애들 다 출발했냐?”


나귀는 시작부터 불친절한 투로 말했다.


“예. 방금 나갔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가는지는 모르겠는데, 나귀 씨도 얘기 들었나요? 좌견 씨가···”

“알아. 악인이 알려줬어. 명재 동생 그 미친년이 좌견을 조졌다며? 개 같은 년. 뒈진 애미 애비가 하루빨리 보고 싶나 봐. 이명재는 어때. 입 다물고 따라 가?”


태주는 폭언이 불편해 눈살을 찌푸렸다. 수화기를 잠시 귀에서 뗐다.


“대답 안 하냐.”

“죄송합니다. 뭘요?”

“이명재 반응이 어땠냐고. 다른 애들은 또 지랄발광하고 있을 거 아니야. 홍매도 슬슬 정신 놓을 텐데. 짜증 나네. 지금까지 들었을 때는 그 수재라는 스라소니가 얌전해서 마음 놓고 있었더니, 염병할 또라이 계집이 사고를 쳐. 그래서 어떤 것 같냐고. 뭐, 막 아무거나 집고 사람 때려죽이려고 해?”


태주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망설였지만, 일단 되는 대로 대답했다.


“명재 씨가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명재 씨가 해야 할 게 있나요?”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전체적으로 느낌이 어땠냐고.”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나도 모르니까 너한테 묻는 거겠지, 멍청아? 질문을 왜 네가 해.”

“죄송합니다. 저야 잘 모르는데··· 가영아, 전화 좀 받아 볼래? 나귀 씨야.”


태주는 나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가영을 불렀다.


“야, 신가영 말고 흑웅 바꿔. 너희 싹 다 송장 될 수도 있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


가영이 옆으로 왔다. 태주는 나귀의 말에서 송연함을 느껴 멍해졌고, 전화를 바꾸지 않고 물었다. 이건 일상적인 나귀의 폭언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뜻이죠?”

“개기냐? 네 형 꼴 나고 싶어? 흑웅 바꾸라고.”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태주는 가족 얘기가 나오자 발끈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하고 나귀의 성격은 익히 아는지라, 이내 가라앉히고 가영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예. 나귀 씨. 신가영입니다. 명재 씨가 어땠냐고요?”

“그래. 너한테도 물어보자. 이상해 보이는 게 있었어?”

“제가 보기에는 특별한 건 없었어요. 당장 사건이 터졌으니 다들 평소랑은 달랐고, 명재 씨도 놀라시긴 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준비하고 출발하셨어요. 아직은 다 같이 있을 텐데, 홍매 씨랑 연락이 잘 안되시나요? 나귀 씨가 바쁘시면 제가 명재 씨에 관해 물어보고 알려드릴게요.”

“아니, 됐어. 이명재가 따로 챙긴 건 있어? 쇠붙이 같은 거. 쌈박질할 수도 있잖아.”

“호신용을 챙겼을 수는 있지만, 저랑 태주 씨는 못 봤습니다. 사촌 여동생 사진을 보고 꽤 멍하긴 했어요.”

“멀뚱멀뚱 있다가 따라간 거야?”


가영은 나귀가 알고 싶은 게 뭔지 도통 감이 안 왔다. 그래도 최대한 아는 선에서 대답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랬습니다. 불안하고 긴장되고, 한편으로는 무서웠을 수도 있죠.”

“야, 잠깐. 악인도 갔어? 그 몸뚱이로?”

“못 말렸습니다. 고집부리면서 꾸역꾸역 갔습니다. 말씀 안 하시던가요.”


가영이 꾸역꾸역, 이라며 대놓고 비꼰 걸 보면, 악인은 떼를 어지간히 썼을 것이다.


“난 문자로 상황만 들었어. 일단 알겠어. 이명재가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해지거나, 극도로 불안해하거나, 이런 건 없었다는 거지?”


애초에 명재는 저런 상태와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예. 맞습니다. 분위기는 그럴 법했지만, 보기에는 그렇다고 말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어요.”

“알겠어. 나 이제 바쁘니까 할말 있으면 문자 남겨. 볼지는 모르겠지만.”

“네. 몸 조심하세요.”


태주가 가영에게 입 모양으로 흑웅, 흑웅이라며 말했다.


“나귀 씨, 잠시만요. 흑웅 씨를 바꿔 드릴까요?”

“아니야, 이제 꺼져. 내가 알아서 해.”


나귀는 귀찮다는 듯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뒤, 나귀는 몇 가지 가능성을 고려했다.

명재가 자신이 수인이라는 걸 알고 있을 가능성, 그리고 이걸 세은도 아는 경우.

그리고 명재가 세은의 자극으로 폭발하여 수인으로 변할 가능성.

에전 같으면 명재와 붙어있던 이누를 잡아서 꼬치꼬치 물었을 텐데, 지금 그런다면 이누는 바로 명재에게 달려갈 게 뻔했다.


“이누 새끼··· 다 키워놨더니···”


나귀는 전국 팔도를 뒤지며 아종을 조사헀다.

이은의 폐건물에도 다시 가고, 인간의 모습으로 사는 수인을 찾으며 정보를 긁어모았다.

홍매와 자신을 제외한 아종의 자료가 필요했다.


당장 세은이 부른 곳으로 가서 명재를 자극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득실거려 조심스러웠다.

과연 세은이 명재를 죽이려고까지 할까, 또 그런다면 명재는 어떻게 반응할까. 나귀는 천천히 고민했다.


“썅. 요상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네. 요새 내 뒤를 밟던 놈도 통 안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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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화. 예견된 복병#1 24.06.21 10 0 12쪽
45 44화. 다시 되풀이#8 24.06.20 11 0 11쪽
44 43화. 다시 되풀이#7 23.12.28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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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1화. 다시 되풀이#5 23.12.18 10 0 14쪽
41 40화. 다시 되풀이#4 23.12.10 10 0 12쪽
40 39화. 다시 되풀이#3 23.12.07 11 0 13쪽
39 38화. 다시 되풀이#2 23.12.07 10 0 13쪽
38 37화. 다시 되풀이#1 23.12.07 7 0 13쪽
37 36화. 변화, 또는 와해#6 23.12.07 6 0 14쪽
» 35화. 변화, 또는 와해#5 23.12.05 9 0 17쪽
35 34화. 변화, 또는 와해#4 23.12.04 7 0 12쪽
34 33화. 변화, 또는 와해#3 23.12.03 9 0 16쪽
33 32화. 변화, 또는 와해#2 23.12.02 7 0 17쪽
32 31화. 변화, 또는 와해#1 23.12.01 7 0 15쪽
31 30화. 되풀이#8 23.11.30 11 0 13쪽
30 29화. 되풀이#7 23.11.29 1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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