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2056년 11월 2일 (100층) - 암살자의 일기
데미안과 헤네시아, 발락과 메루시아르.
넷의 합은 굉장히 좋았다.
데미안이 함께한다는 것 만으로 나머지 셋의 화력이 더욱 올라갔다.
헤네시아의 저격과 정령을 이용한 서포트, 발락의 탱킹, 메루시아르의 속박과 보조, 그리고 데미안의 강력한 무력은 바란을 당황케 하였다.
데미안은 검게 물든 까마귀의 깃털을 몸에 두르고 분신을 만들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오묘한 힘은 메이다츠에게서 느낀 것과 사뭇 달랐다.
헤네시아가 소환한 커다란 정령은 강력한 바람을 일으켜 공간을 왜곡 시켰고, 바란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어 중력을 조종했다.
그리고 발락은 갈라진 대지를 끌어 모아 올린 뒤 알 수 없는 힘으로 돌의 성분을 철로 바꾸었다.
바뀐 돌은 헤네시아가 만든 공간에 달라붙었고, 발락은 입으로 큰 불을 뱉어냈다.
그렇게 가열된 공간은 바란을 붙잡아두었다.
"신의 아포칼립스."
메루시아르는 두 손을 꼭 쥐고는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신성력은 하늘에서 신비롭게 내려와 바란이 갇힌 공간을 덮었다.
"저건 도대체 뭐지...?"
내 옆에 있던 페르기우스가 이야기했다.
메루시아르가 생성한 신성한 빛은 바란이 갇힌 공간을 덮고 난 뒤 사방으로 빛이 튀었다.
마치 고치가 형성 되듯 땅과 하늘에 빛이 닿아 고정됐다.
공중에 떠 있던, 바란의 앞에 자리하고 있는 데미안이 마력을 집중했다.
"스콜피오(Scorpio). 전갈의 낚시바늘."
데미안은 손에 쥔 검을 하늘을 향하게 올렸다.
그러자 하늘엔 커다란 구멍이 형성되었고, 거기서 커다란 전갈의 꼬리와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 수는 점점 늘어 바란의 공간 위를 수놓았다.
"전개..."
데미안은 눈을 감고 마력을 집중하며 검을 거두었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갈고리는 바란이 갇힌 공간을 낚아 올리려는 듯 하다 둘 꽂히기 시작했다.
진귀한 광경이었다.
마치 대재앙을 봉인하려는 의식과도 같아 보였다.
바란이 들어있는 헤네시아의 바람 공간은 발락의 마법에 의해 단단히 굳어졌다.
그 후 메루시아르의 신성력으로 고치와도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고, 데미안의 신비로운 마법에 의해 많은 갈고리에 걸려 하늘에 매달려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거야... 이 틈에 마지막 공격을 준비해야 해.>
헤네시아가 이야기했다.
'쿠웅...'
"....?"
'쿠웅...쿵...쿵...'
그때였다.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란에 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주변을 살폈다.
"설마..."
"저...저기...!"
순간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프테로와 와이번이 가득했던 하늘에서 유독 눈에 띄는 비행체 하나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크아아아!!"
"막아!!!"
날아오는 비행체는 우리를 향해 무언가를 날렸고, 드워프들은 한데 모여 커다란 실드를 펼쳤다.
조금 밀려나는 감이 있었지만 무사히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행체는 커다란 벽에 안착했다.
커다란 몸체, 빛을 내는 비늘로 가득한 몸,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띄고 있는 몸은 황금색으로 된 갑옷과 같은 것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드래곤이다.
자연을 수호하는 선한 드래곤 아논자르, 어둠을 관장하는 악의 페리아트, 거느리기를 좋아했던 물의 수호신 피노쿠잔,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가장 강력했던 드래곤 불의 레기누스...
그렇다는 건...
D의 드래곤 도감의 마지막 드래곤인 빛의 바하트릭이다.
"바하트릭....?"
메이다츠의 모습을 한 데미안이 놀란 눈으로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크으으..."
빛의 드래곤, 바하트릭은 눈을 빛내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저 녀석... 우리가 알던 바하트릭이 아닌데?"
발락이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저들이 고대의 드래곤들을 모두 상대했고, 드래곤 도감의 D는 데미안의 D가 확실한 것 같다.
"이봐!! 바하트릭!! 우리 못 알아보겠어요?"
메루시아르가 바하트릭을 향해 소리쳤다.
"쿠워어어어어!!!"
돌아오는 것은 커다란 용의 외침 뿐이었다.
"조금 위험한데...?"
발락이 진땀을 빼며 이야기했다.
바하트릭은 바란이 갇힌 공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막아!!"
데미안과 그의 파티는 바하트릭을 막기 위해 공격을 준비했다.
우리도 뒤쳐지지 않고 움직였다.
"쿠워어어어!!!"
바하트릭은 다시 한 번 울부짖었고, 그 파동은 크게 퍼져 공략대는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정예들은 쉽게 밀려나지 않았고, 바하트릭을 막아 섰다.
"어둠의 마력을 쓰는 자가 필요해..."
데미안이 속삭였다.
그의 말을 들은 카타리아는 소리쳤다.
"어둠 속성의 마력이 있는 자는 당장 튀어 나와!!!"
마법에 의해 퍼진 카타리아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닿았다.
하지만 애초에 공략대에 어둠 속성을 가진 자는 현저히 적다.
정예 중에서도 어둠 속성을 주로 다루는 이가 따로 없다.
"젠장... 나인가..."
바하트릭에 의해 밀려났던 헤라크가 앞으로 나왔다.
비록 어둠이 주는 아니지만 그는 '하데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나도 어둠 속성을 사용하긴 하는데...'
내가 어둠 속성 마법을 쓰게 된다면 내 정체가 탄로 날 것이다.
더 이상 내 정체를 숨기는 게 의미가 있을까...
헤라크를 비롯해 몇 없는 어둠 속성의 마법사가 모였다.
현재 바하트릭은 발락과 헤네시아, 비르보르와 고르가 막아 서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어둠 속성의 마법사들은 바하트릭을 향해 강력한 마법을 시전했고, 헤라크도 하데스의 마법을 사용하여 바하트릭을 붙잡았다.
"크어어어!!!"
바하트릭은 바란이 갇혀있는 곳을 향해 크게 무언가를 뿜었다.
마력 덩어리는 빠르게 날아갔고, 고르가 급히 실드를 펼쳐 따라갔지만 쉽게 떨어져 나갔다.
"젠장...!"
결국 바하트릭의 마력 덩어리는 바란에게 닿았고 데미안과 모두가 봉인한 고치는 산산조각이 났다.
"...."
바란은 산산조각 난 공간 안에서 유유히 걸어 나와 바하트릭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공략대도 한 발짝 물러났다.
[처음 보는 형태의 봉인이군. 흥미로웠다.]
발란은 작게 웃음을 짓고는 바하트릭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크윽..."
옆에 있던 반헤임이 가슴을 움켜 잡았다.
"왜그래...!"
"으윽....젠장... 레기누스의 심장이 녀석과 공명 하는 듯 해..."
레기누스, 용의 심장을 이식 받은 반헤임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봐, 너희 레기누스를 쓰러뜨린 것도 모자라 심장을 이식까지 했단 말이야?"
데미안이 놀란 듯 이야기했다.
"맞아. 불안정 하기는 하지만 반헤임은 용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
그의 옆을 지키고 있던 피에르가 이야기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겠군... 저 녀석들을 잠시만 막아줘."
"뭔가 생각났구나?"
발락이 이야기했다.
그는 곧바로 전투 태세에 돌입했고, 헤네시아와 메루시아르 또한 같은 모습이었다.
'신뢰하고 있군...'
나머지 공략대도 바란과 바하트릭 앞에 섰다.
"크헉..."
반헤임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고 있다.
데미안은 반헤임의 뒤로 다가가 등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더 이상 이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바란이 공격을 시작했다.
바하트릭과 함께 우리 쪽에 마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벗어나 두 손에 검을 쥐었다.
몸을 두르고 있는 로브가 거슬리긴 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다.
"지상강림."
마력을 모아 바란의 발 밑에 마법진을 생성했다.
그리고 품에 있던 기폭제가 달린 단검을 바란에게 던졌다.
녀석이 다른 곳에 시선이 끌린 틈에 시야를 방해할 필요가 있다.
바란에게 던진 단검 여러 개는 바란의 시야에서 터졌고, 그와 동시에 지상강림이 발동했다.
하늘에서 커다란 어둠의 빛이 창과 같은 모습이 되어 바란에게 향했다.
'지금이야...!'
밑에 있는 공략대가 내 의도를 알아채 주길 바란다.
지금이 기회다...
"에어리어 플레임 레인!!"
내 의도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카타리아였고, 그 다음은 피에르였다.
반대쪽 하늘에선 화염비가 응축되어 바란에게 향했고, 피에르는 성스러운 화살을 여러개 날렸다.
그리고 바란은...
주변에 마법진을 여러개 소환하여 날아오는 것들을 모두 파훼시켰다.
하지만 내가 소환한 지상강림은 여전히 바란에게 향하고 있다.
나는 녀석의 밑으로 파고들어 공격이 통하도록 유도했다.
[네 녀석이군.]
바란의 목소리가 굵게 울려 퍼졌다.
바란에게 향한 지상강림은 손쉽게 잡히고 말았다.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녀석은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 내 목을 잡았다.
[.....]
"큭...."
[네가 에나라브로구나...]
바란이 속삭였다.
나는 살짝 아래를 쳐다보았다.
"...."
역시나...
모두가 놀라고 있다.
'뭐... 이제 상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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