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2056년 11월 12일 (101층) - 용사의 일기
바란도 마신강림으로 모든 마력을 소진한 모양이다.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된다!!! 이대로는!!!]
미카엘이 발악을 하고 있다.
여태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나는 신성력과 마력을 조금, 그리고 미카엘의 힘인 비력을 끌어 올렸다.
"...."
"심판자의 의지..."
세 가지의 힘이 몸에 적절히 달라붙도록 했다.
그 중에서 미카엘의 힘을 중점으로 두었다.
무형검 에그...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은 무형검은 비력의 색인 초록빛을 띄게 되었고, 길게 뻗은 검이 되었다.
[이 자식들!!!]
미카엘이 마지막 남은 마력과 신성력을 소진하여 마법을 시전 했다.
그의 주변으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빛줄기가 여러 개 생성되었다.
"저건 나한테 맡기고 나아가도록 해."
데미안이 이야기했다.
미카엘에게서 나오는 마력 덩어리들은 데미안이 바쁘게 뛰며 막아내 주었다.
그 덕에 나는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
"심판자의 검..."
나는 검에 신성력을 가득 담은 뒤 우리엘의 날개를 펼쳤다.
높게 도약하여 하늘에 퍼진 신성력을 두 발로 디딘 뒤, 그 추진력을 이용해 미카엘에게 날아갔다.
[오...오지 마!!!]
마신에게 붙잡힌 미카엘이 울부짖었다.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군...'
나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 미카엘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아...으...아..안 돼...]
미카엘의 가슴이 빛나기 시작했다.
나와 마력이 공명을 하는 듯 하다.
내 안에 있는 미카엘의 가호가 주는 마력이 날뛰는 느낌이 든다.
[내... 계획이...]
미카엘은 초록색의 재를 날리며 소멸해갔다.
그 끝은 꽤 허무했다.
"...."
미카엘을 쥐고 있던 마신도 미카엘과 함께 사라졌다.
"끝인가..."
나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전투 불능 상태였던 이들이 하나 둘 정신을 차리고 있다.
일찍이 자신의 상처를 수복하던 아르킨이 모두에게 힐을 나눠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르킨은 악마 측도 함께 힐링을 해주고 있었다.
바란은 그 모습을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끝났어..."
나는 배를 움켜쥐고 있는 카타리아에게 이야기했다.
데미안도 지상으로 내려오고, 바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 주변을 둘러 보았다.
"...."
그때였다.
전투의 여파로 다양한 색을 띄게 된 하늘의 구름이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느낌까지 주는 구름 사이에서는 빛줄기가 세어 나왔다.
빛줄기 하나는 세 개로 갈라졌고, 하나는 나를, 또 하나는 바란을, 또 다른 하나는 데미안을 비췄다.
"....?"
"멜른...!"
카타리아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우리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습이 사라져 갔다.
'공간 마법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공간이 지나고 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몸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처음 와보는 곳으로 이동 되었다.
작은 섬.
섬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다.
마치 누군가 만든 인공 섬 같다.
바닥은 대리석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고, 섬은 알 수 없는 공간, 마치 하늘 같은 곳에 떠있다.
그리고 이내 데미안과 바란도 내 옆에 소환되었다.
둘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주변을 둘러 보았다.
"왜 우리 셋만 이곳에 온 거지?"
여전히 메이다츠의 모습을 한 데미안이 물었다.
"글쎄..."
바란은 말 없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여유롭게 기다리기로 했다.
"에나라브는 죽은 거지?"
바란에게 물었다.
"그렇다."
바란이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바란과 에나라브가 같은 지구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직도...
그때였다.
우리들 앞으로 긴 계단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 계단은 우리가 있는 곳의 더 위로 향하는 계단이었고, 누군가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제가 조금 늦었죠.>
따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의문의 인물은 서서히 모습을 보여갔다.
"...."
우리는 넋을 놓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금발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한 여성이었다.
흰색 원피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은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편안함을 주는 아우라가 풍겼다.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엘레오놀'이라고 해요.>
"엘레오놀...?"
데미안이 되물었다.
<모두 저를 '천신', 또는 '신'이라고 부르죠.>
"...."
"...."
"...."
우리 셋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천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지?"
바란이 물었다.
<바란 님... 당신이라면 제가 천신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을 거라 생각해요.>
바란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우리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뭐지?"
바란이 다시 물었다.
<우선은...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엘레오놀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러분을 이용했습니다. 죄송하다고 생각해요.>
엘레오놀은 진심을 다해 사과를 했다.
생각이 많아진다...
"어찌 되었든 세계가 파멸 하면 지구 또한 같은 운명이었겠지."
바란이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데미안도 동감한다는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 해주셔서 감사해요... 미카엘이 죽고 이 세계를 위협하는 위험은 사라졌답니다. 저의 딸인 마리아는 여러분이 성장하고 미카엘의 앞까지 도달하게 하기 위해 모든 생명력을 소진했어요. 미카엘이 지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했죠.>
<너무... 잘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이곳에 부른 이유 인사가 전부는 아닐 거라 생각해."
데미안이 이야기했다.
<맞습니다. 가장 먼저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라고 약속한 걸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리겠다는 건가."
바란이 물었다.
<아닙니다. 각자가 원하는 순간, 또는 원하는 세계로 보내드릴 겁니다. 지금의 기억은 가지고 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찬란한 끝이 기다리는 세계가 될 거예요.>
"...."
엘레오놀의 말은 곧 우리가 원하는 순간으로 회귀 같은 것을 해준다는 이야기 같다.
"우리 셋을 제외한 남겨진 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거지?"
데미안이 물었다.
그에 엘레오늘은 바란을 응시했다.
<우선 바란 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하죠. 바란 님은 가마긴, 미카엘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 간 지옥의 악마족을 구해주셨습니다. 즉 이미 바란 님이 거둔 자들이라는 거죠. 그들은 바란 님의 의지와 함께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엘레오늘은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 님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 정해야 할 것 같아요.>
"...."
데미안은 침묵으로 답했다.
<다음으로 멜른 님... 지구는 탑이 생겨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겁니다. 지금의 지구는 2056년이죠. 탑이 생기기 전인 2023년의 시간으로 돌아갈 거예요. 물론 이전보다 더 평화로운 지구가 되겠죠.>
"어째서 우리에게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거지?"
내 물음에 엘레오늘은 작은 웃음을 지었다.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신에 가까운 자들이 있죠. 누군가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하고... 누군가의 믿음이 되고...>
<멜른 님, 데미안 님, 바란 님, 세 분이 그런 존재입니다. 신은 아니지만 신과 같은 일을 해오셨죠. 그렇기에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이 정리되면 말씀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엘레오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란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먼저 이야기 하지."
<네, 바란 님.>
"내가 원하는 세계는... 지옥의 악마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탑과는 다른 나만의 성이 있는 지옥에서 생을 이어 나가고 싶군. 그런데 질문이 하나 있다."
<네, 말씀하세요.>
"헌터라는 개념이 아닌 인간의 존재로 헌터들 또한 함께 할 수 있나?"
엘레오놀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이죠. 바란 님이 원하시는 건 새로운 세계의 창조군요. 바란 님이 지옥의 왕으로 있고... 헌터 분들이 인간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가능합니다!>
의외였다.
누군가가 원하는 세계 하나를 창조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난 그 곳으로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엘레오놀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내가 범한 실수를 되돌리고 싶다."
그 다음으로 데미안이 이야기했다.
<회귀를 원하시는 건가요?>
"그래. 나는 죽어서도, 영혼의 형태가 되어... 회고하고 또 회고했다. 후회로 가득했지..."
<그렇다면... 중간계의 인물, 즉 탑에 소환된 자들의 운명도 데미안 님과 함께 하겠군요.>
"그게 가능하다면 꼭 부탁하지..."
엘레오놀이 따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디 데미안 님이 원하시는 결말을 맞이했으면 좋겠네요.>
나는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이대로 기억을 잃은 채 지구에서의 삶을 살아갈지...
바란 처럼 새로운 세계에 갈 것인지...
데미안과 바란, 엘레오늘은 나를 쳐다 보았다.
'그래...'
나는 결심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중간계가 멸망하기 이전의 세상은 어땠는지..."
데미안이 놀란 얼굴을 했다.
"데미안이 회귀하는 세계로 보내줘."
"...."
"...."
데미안과 바란, 둘 다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엘레오놀의 주변으로 신성한 마력이 솟아 올랐다.
<세 분의 소원, 그리고 어지럽혀진 이 세상을 30년 전으로 되돌리는 데에 제 마력은 모두 소진 될 겁니다. 여러분의 세상에서 저는 신으로서 역할을 못할 지도 몰라요. 그럼 세 분의 앞 날을 응원하겠습니다.>
엘레오놀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마력을 분출했고, 우리가 있던 공간은 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드디어 길었던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는다.
우리 셋의 형체가 희미해진다.
"잘 지내거라."
바란이 내게 이야기했다.
"너도..."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우리의 탑 등반은 끝이 났다.
이것으로 내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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