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인 (6)

내가 아니었다면.
내가 애들을 보며 수없이 고민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심마 중 하나였다.
과거의 질문들엔 부정과 의심이 묻어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니. 내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더 좋은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늘 그랬다. 괜히 나란 무엇이 오지랖을 부려 손을 내밀고, 또 그것을 잡으라 하여 그들까지 나와 같은 수렁으로 끌어내린 것은 아닐까란 생각 속에서 헤매였다.
이렇게 좋다는 생각을 하는 지금도 그런 질문을 했다. 허나 더 이상 미결된 질문 속에서 고민하진 않았다.
지금은 아니란 것을 안다. 다만, 내가 과거에서 뻗어나갔을 수많은 갈래들을 모두 다 보았기에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 여전히 가지 않았던 길과 갈래들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것은 후회를 위함이 아니었다. 난 그 속에서 후회를 찾지 않았다.
그저 다음의 선택을 위함이었다. 돌아보고, 반성하여 다음엔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뒤를 돌아봤다.
그래서 이제 난 안다. 여기 있을 아이들을 향한 나의 질문들이 그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난 그들에게 묻지 않는다.
그날의 날 만나, 내가 내민 손을 맞잡은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내가 아니었다면,
아니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즐겁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아니었다면’이란 말은 멍청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헌데도 난 멍청한 말을 내뱉는다. 내뱉어야 했다. 상처가 되는 말이 아니라, 칭찬의 의미로서 그것을 내뱉으려 했다.
배움이 짧아 슬픈 인간의 사고란 이렇듯 유약했다.
**
붙잡은 칼날을 본다.
상처하나 없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힘을 잃은 두꺼운 채도의 그것이었다.
힘은 잃었지만, 아직 식지 못한 열기만이 잔잔하게 느껴졌다.
소녀를 불렀다. 내겐 막내였다. 그리고 막내도 대답했다. 어찌 부르냐는 거였다. 막내에게 이유를 말해주었다.
“네 칼은 충분히 강하다.”
“그래도 닿지 못했지 않았습니까?”
“이 칼을 받아내는 게 내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쉬이 받아내진 못했을 거다.”
손가락들을 풀었다. 채도는 평범하게 물러났다. 막내의 얼굴을 봤다. 욕설은 없었다. 분함도 없었다. 재기발랄하고 거친 모습도 없었다. 당혹감만이 보였다.
“내가 쳐다보는 게 이상하더냐?”
“한 번도 이렇게 빤히 쳐다본 적은 없으셔서요.”
“널 데리고 간 날도 널 봤을 거다.”
“그때에도 어르신은 절 봤다기 보단, 제 얼굴에서 다른 무엇을 보셨으니까요.”
아비를 죽인 이의 등에 돌팔매질 하던 소년. 그 소년은, 누군가에겐 하나뿐인 언니를 팔아먹은 자의 자식이기도 한 소년이었다.
소년은 반들반들했다. 살이 올랐고 손이 물렀다. 언니를 매각한 독수(毒樹)의 독과(毒果)로 부풀어 있던 소년을, 소녀는 찔렀다.
그때의 소녀의 얼굴은 소야차의 그것이었다. 그렇게 소년은 쓰러졌다. 무력해졌다. 뚫린 폐로 힘겹게 숨을 들이셨지만, 그럴수록 뚫린 구멍을 통해 피가 넘쳐흐를 뿐이었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연달아 찔러댔다. 일격을 막지 못했던 소년의 부푼 살은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초병들처럼 제 의무를 다할 뿐이었다. 난 그런 소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정아, 그때의 그 얼굴이. 정녕 네 얼굴이 맞았느냐?”
당혹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제 그것은 부끄러움이라 불려야 했다.
“내 앞에서 위악의 가면을 쓰지 마라.”
감히란 말은 없었다. 서로 그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내가 법도 높은 명문정파의 사부가 아니었던 까닭은 아니었다.
사부와 제자들은 이런 사이여야 한단 생각뿐이었다. 나도 그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에게 의지하는 한 그 말은 없어야만 했다.
“사부님, 저희도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그럼 사부님도 부정보단 긍정의 말들을 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송아, 난 지고 어르신이 아니다.”
“의원님 못지않습니다.”
“...내가 그 정도더냐?”
여기저기서 ‘그렇다’는 확언이 들려왔다. 일엽은 아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는 핀잔까지 주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혹, 부정의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까닭이라도 있는 것이냐?”
“사람의 마음은 부정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거지였을 시절,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의 소나무집 둘째 아들이던 시절. 둘째는 그 시절을 끔찍이도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는 듯 싶었다. 부정의 의미를, 그리고 부정의 덧없음을.
“지고 어르신이나, 사부님이나. 혹은 천광 스님 같은 분이나 모두 부정적입니다. 필사적일 만큼요.”
그 속에서 도리어 필사(必死)를 봤다.
“모두 머리가 좋으신 분들 아닙니까? 그런 분들이 모두 쉼 없이 부정을 소리칩니다. 마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끔 하려는 것처럼요.”
소리침은 속삭임이 되었다.
손꼽힐 강자들인 천광이나, 혈의도 모두 한낱 속삭임 속에서 가려지길 원했다.
“사부님,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걸음이 다가왔다. 다섯 걸음이었다. 모두가 날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의 저희가 소중하시다면, 부디 긍정을 받아들여주십시오.”
*
결연함의 앞으로, 짓궂음이 올라왔다. 감명을 받았기 보단 아찔하단 생각만 들었다.
난 아직 스승치곤, 진중함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송이도 좀 놀려줄까 싶었다.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젠 내게서 부정마저 빼앗아가려 하더냐?”
재촉은 없었다. 움찔거림이 들려왔다. 치열하게 날 향하던 눈알들이 굴러 옆으로 향했다. 더 치열해진 그것들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했음에도 알아듣지 못한 날 위해 누가 독박을 쓸지를 결정하는 듯 했다. 말도, 전음 같은 것도 없었음에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보일 지경이었다.
‘송아 니가 시작했다.’
‘......’
‘아침에 보니 그래도 대사형이 대인이랑 얘기를 하시는 것 같던데.’
‘뭐가 됐든 직계 제자들이 해결하십쇼.’
‘나...나도 맥락상 말을 꺼내긴 적절치 않으니까 알아서들 해요.’
피식하는 웃음이 났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던 눈빛이 다시금 날 향했다.
“다시 말하마. 정아.”
막내가 고개를 들었다. 부끄러움이 당혹감으로 돌아간 뒤였다.
“나였기에, 네 칼날을 받아냈다.”
“.....예..?”
“내가 네 사부였기에 받아낼 수 있었다.”
사실 위력의 문제라기 보단, 성향의 문제였다. 사실 실력의 문제라기 보단 얼마나 잘 아는지의 문제였다.
자식이 남들에게 신경질을 내면 쉬이도 다툼으로 이어지는 법이지만, 부모에겐 한낱 투정이 되고야 마는 법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아는 까닭이었다.
“그래,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졌다고 해야겠지.”
패배 선언에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뭇 그리운 눈빛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닿은 것은 정이 하나만이 아니다.”
엽이 처음을 받아냈다. 동생들을 위해서 선두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서야 물러났다.
그것을 이어 받은 것이 향과 송이었다. 그들은 엽이 벌어다준 시간 동안 내 움직임을 보고 새겼다. 그래서 조금 더 오래 버텼고, 조금 더 잘 싸웠다.
그리고 닿지 못한 그들을 대신해 명과 정이 나섰다. 하나는 내 움직임을 묶었다. 내 움직임을 묶은 동안 심정이 움직여 기어코 채도를 휘둘러 내게 닿았다.
그러니 따지자면, 정말로 닿은 것은
그들 모두였다.
“그래서 내 패배인 것이다. 모두들 정말 잘 커주었구나.”
제자들의 얼굴에 환희가 돌았다. 깊은 숨이 내쉬어졌다. 무기를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날 향하던 시선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을 앞에 두고, 난 우공의 자루를 쥐었다. 지금까지의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해 바로 몸에 익히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지금부턴, 내 앙탈이다.”
우공을 뽑아들었다. 도신에 새겨진 먹빛에 모두의 색깔이 빨려 들어간 것처럼, 녀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역시, 썩 보는 맛이 있었다.
『三五一. 추인』
밤은 본디 어른들의 시간이었지만
애들의 시간이기도 했다.
밤이 잠의 시간이라 그랬다.
간만에 만난 사내의 스승놀이에 모두들 지쳐 곯아떨어졌다. 그 속에서 애들은 하루의 지침을 회복했다. 회복은 고작 하루의 상처를 되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조금 더 커졌다. 조금 더 굵어졌다. 그렇게 어른에 가까워졌다.
“자넨 안 자도 되나?”
더 이상 키 크지 않는 아재가 사내를 향해 물었다. 사내에게서 바로 얼마 전까진 소년을 보았던 까닭이었다. 그 소년은 오늘 긴 태도를 잡고 놀던 소년이기도 했다.
“난 잠을 많이 자지 않아도-... 아니, 밤하늘을 보는 게 좋아서 깨어있네.”
사내가 부정을 긍정문으로 황급히 되돌렸다. 아재는 그게 퍽 우스웠다.
아직까지도 무엇인가를 배운 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몸을 비트는 게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태우고 있던 죽통을 입에서 떼어냈다.
“비무는 잘 봤네.”
“어찌 보이던가?”
“그동안의 성취를 점검한다는 느낌도, 그동안 못했던 사부노릇 한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오랜만에 집에 들어간 가장이 애들이랑 노는 것처럼 보였네.”
아재도 하늘을 봤다. 여름날의 하늘은 퍽 밝았다. 별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저마다의 별이 있는 것처럼 참으로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자네는 어떻든가? 오견.”
뒤편에서 눈을 감고 있던 아재도 부스스 거리며 일어났다. 예민함에 겨우 섶잠이나 좀 잔 것인지 눈이 부어있었다.
“구견 저놈이랑 별 반 다를 게 없었네.”
“그렇군.”
“...하. 먹을 것 좀 있나?”
별달리 할 말이 없었음에도 오견은 일어났다. 그리고 출출해진 배에 집어넣을 요깃거리들을 찾았다. 먼저 깨어있던 아재가 그를 위해 육포를 건네주었다.
“내 이 나이 먹고 투정하긴 싫지만... 엽이 저놈이 만든 육포는 없나?”
“아, 거 애새끼도 아니고. 저놈 저게 이제 자네보다 지체가 높아. 으어어어딜 감히 족보도 없는 놈이 성도 천 씨 가문의 안 사위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나?”
구견의 지적에도 오견은 연신 투덜거렸다. 일엽이 만든 것이 제일인데 투정할 수밖에 없지 않느냔 거였다. 그래도 애써 받은 육포를 남기진 않았다.
“그나저나 시월.”
“말하시게.”
“이견의 유산은 어찌할 셈인가?”
구견이 투덜거렸다. 꼭 이 분위기를 좆창내놔야 속이 후련하냐는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견은 제 다움을 유지했다.
“차라리 개방이랑 합치시게. 그럼 자네가 고민하는 문제들은 싹 다 해결될 거야.”
“자네 말이 옳아. 딱, 반만큼.”
“반쯤 틀리단 말이군.”
“자네도 성장을 하긴 하는군.”
오견은 요기를 끝냈다. 그래도 아쉬운 게 남았는지 손에 묻은 육포의 양념들을 모두 쪽쪽 빨아먹었다. 쪽쪽이 물려놓은 아기들의 그것과 같았으나, 그것보단 훨씬 역했다.
“이 나이 먹고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자네 말이지 않나? 죽기 직전에 얻은 깨달음도 깨달음일 것이라고.”
“에휴, 배움에 끝이 없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말일 줄이야. 그리고 그걸 다 쳐듣고 있는 자네도 무섭고 말이야.”
“늙는 게 무서운 게 아니야. 한낱 고집 가득한 노친네로 남지 않으려는 게 퍽 힘든 일일 테지.”
“둘 모두 시답지 않은 소리나 하긴. 시월, 그래서 오견 저 놈이 어떻게 반 밖에 틀리지 않았는지를 말해보게.”
구견의 말에도 오견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멍해진 얼굴로 다른 둘처럼 하늘 보기를 시작했다.
“이견의 유산은 크네. 아주 커. 그래서 개방이 소화를 시키지 못할 정도야. 그리고 소화시킨다해도 문제일세. 그건 독점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 자체로 권력이었다. 그것도 어딘가에 고여 버린 권력. 그래서 필연적으로 썩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권력이기도 했다.
“그럼 기껏해야 새로운 개주인이 나올 테지. 거기에 낙양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을 걸세. 더 경기를 일으킬지도 모르고. 겨우 하나에 목줄을 채웠다고 생각할 텐데, 다시금 그런 놈들이 기어 나오면 어떻겠나?”
탄압,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발.
사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견이 생각한대로 둘 사이에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이견도 알아. 그래서 내게 낙양과의 타협을 언급했겠지. 그리고 그를 위한 비책과 정보도 남겨놓았고. 다만, 내가 아직 녀석의 뜻을 다 헤아리진 못했네.”
“하아.. 어렵군, 어려워. 왜 세상 모든 일이 망치질처럼 쉽지를 않을까?”
“그리고 시월 자네도 여전히 헤매는 것 같고 말이지.”
험악한 아재들이 앓는 소리를 해댔다.
사내는 그마저도 재밌었다.
“그래도 이젠 길 위에서 헤매지 않나?”
방향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예전만큼 무섭지 않았다. 그땐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무서웠지만 이젠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사내를 향해 구견이 중얼거렸다.
“길이 좀 편했으면 좋겠어.”
“왜?”
“여긴 자갈이 너무 많거든.”
그래서 조금만 걷더라도 신발이 헤지고, 발이 째지는 그런 길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길이 험한 까닭은 하나일 걸세.”
“뭐? 하늘이 좆같은 놈이라서?”
피식하는 소리가 울렸다. 사내의 웃음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저 위를 가리켰다.
“세상엔 저 별만큼 많은 사람이 살아가기 때문이겠지.”
“구견, 말을 말게. 시월 저놈 또 지랄할라.”
구견은 오견의 말에 그닥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에 흔히 있을, 조모로부터 옛날 얘기 듣는 손자처럼 귀를 열어둘 뿐이었다.
“오견, 그리고 구견. 난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네. 어떻게 하늘에는 저렇게 수많은 별들이 있음에도 불화가 없을까.”
사내의 말을 받은 건 오견이었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저들이 뜨는 것처럼. 그게 이치라 그렇겠지.”
“그 간단한 말에서 의문이 끝이 나는가?”
“그럼 정신건강엔 편하니까.”
“독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심인 놈이 그리 말하니 웃기는군.”
독도 단순히 독이라 사람이 죽느냔 말이었다. 오견은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자네처럼 나도 이치가 궁금할 뿐이야.”
“...지금으로써는 알기 어려울 걸세.”
오견은 말했다. 적어도 천 년은 지나야 그 이치의 윤곽이란 놈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오견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봤다. 눈이 또 무엇인가를 담고 있었다. 그걸 보니 독한 말을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비록 자네가 살아서 그 이치를 볼 수 없다곤 해도...하.... 자네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렇게 계속 고민하는 놈이 있어야, 천년이 비로소 그 값어치를 할 테니까.”
오견의 눈엔 별들의 운행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정적이라 별빛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은하수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저 수 많은 별들이 퍼져나가는 것을 보니, 별들을 품어주는 거대한 요람이 있지는 않을까 했다.
생각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누군가의 저속함이 그들을 도로 끌어내렸다.
“...씨빨럼들. 말 고상하게 하긴.”
“.......”
“.......”
“뭘 그리 어렵게 말하나? 정말 어쩌면, 그 이치란 게 참 단순할 수도 있지. 내 망치질이 철을 단련할 수 있는 이유도, 오견 저놈의 독이 독일 수 있는 이유도. 그리고 자네가 보고 있는 저 별들이 조화로울 수 있는 이유도 실은 단 하나의 간단한 이유일 수도 있지 않겠나?”
구견의 말에 오견이 덧붙었다. 하늘이 이치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모든 것을 알려면. 천 년으론 한참 부족하단 거였다.
“오견, 이왕 부족한 거 내 몇 가지만 더 물어보지.”
“예예, 시월 님.”
“만약 그 법칙이란 게 존재한다면, 거기서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도 알 수 있을까?”
오견은 한숨을 내쉬었다.
딱 그 답다는 말을 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삶의 벼리를, 수리와 기하의 공리에서 찾기를 바랐으니까.
어려운 문제였다. 그건 몇 번의 천 년이 돌아야 하는 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두고서 자꾸 어려워지려는 대화에 구견이 끼어들었다. 소감이었다.
“역시 자네는 참 감상적이야. 너무 감상적이라, 너무 위대하지도. 너무 선하지도. 너무 현명하지도 않지. 그래서 신엔 어울리지 않아. 끽해야 한낱 인간이라 불러야겠지.”
누군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 누군가는 그걸 티내지 않았다. 이어지는 구견의 말 속에 그걸 흘려보낼 뿐이었다.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분명하지. 자네 마음 속 고민은, 저 하늘의 별들만큼 빛이 나네. 그게 날 참 놀랍게 해.”
오견이 ‘웩’하며 혀를 내밀곤 헛구역질을 했다. 새삼 물질적인 독 뿐만이 아니라, 이런 유형의 새벽 감성이 사람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구견은 그게 아니꼬왔다. 그리고 사내는 어떻게 하면 오견을 더 놀려먹을 수 있을 지를 찾아냈다.
“난 자네들이 참 고맙고, 중하네. 저기 자고 있는 내 제자들과는 다른 의미로, 하지만 그와 비슷한 정도로 말일세.”
오한이라도 든 것마냥 오견이 몸을 떨어댔다. 사내는 말을 계속 이었다. 어디까지 진심이고, 어디까지 농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 혼자였다면, 실로 아무것도 아니었을 걸세. 세상 속에서 닳아지기만 하든, 이상 속에서 불타오르기만 하든 했을 테니까.”
이상 없는 세상은 공허했다.
세상없는 이상은 맹목적이었다.
사내는 그들이, 그 둘 사이에서 자신을 붙잡아 주었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야. 정말로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자네들한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만! 그만! 그만! 이 씨발놈들아!”
오견의 손이 휘었다. 그는 자리에서 구르며 조용한 절규를 계속 내질렀다.
“이 열대야 속에서 잠이라도 못 들까봐 그마이 무섭고, 소름 돋는 얘기를 지껄이나? 어? 씨발, 느그들이 언제부터 그캉 착하고 친절했다고?”
오견이 ‘득기’였을 때의 말투가 쏟아졌다. 모두 욕이었다. 허나 그걸 지켜보는 구견이나 사내는 모두 웃고 있었다. 자신들도 그것을 퍽 질색하는 편이었지만, 득기를 비웃을 기회를 놓칠 만큼 질색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살견 시절의 버릇이 남았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계속 그런 징그러운 말들을 속삭였다. 밤이 저물어갔다. 어른들의-
“득기 옵빠~ 참으로 연모-”
여전히 애들의 밤이었다.
“쫌! 그만하라고! 이-”
“싫은데?”
그리고 밤이 다 저물기엔 아직 그들이 하고픈 말이 많이 남았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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