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무림생활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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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작품등록일 :
2023.09.27 08:04
최근연재일 :
2023.10.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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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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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 마교가 여섯? 그렇다면...

DUMMY

2, 마교가 여섯? 그렇다면···.



멸살천마(滅殺天魔).

전생이라는 기적의 당사자이면서도 행복할 수 없는 목표였다.

어쩌면 천마를 모르던 때가 행복했다.

그때는 최소한 지루할 뿐 고통스럽지는 않았으니까.

생사(生死)의 굴레에서 벗어나니 인생이란 잠깐의 여행이었고, 만남과 이별은 덧없는 연기와 같았다.

그러던 중 그를 만났다.

천마(天魔) 위지천.

전생자의 대척점에 선 자로 어느 생에든 마도의 지배자였고, 천하의 주인이었다.

아주 작은 악연으로 멸살천마를 목표로 삼았다.

그때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무려 전생자였고, 무한한 시간의 주인이었다.

한데 쉽지 않더라.

여색을 탐하고, 술에 취하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삶을 낭비했잖은가. 하루아침에 검을 잡는다고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검을 잡는데 한평생, 살인에 한평생.

잘 죽이고, 빨리 죽이고, 많이 죽이려고 몇 번의 생을 거쳤다.

단 하나의 기치 아래 모든 삶의 초점을 맞췄다.

우정? 의리? 협도? 법리? 애정? 교우?

웃기지 마라.

천마를 죽이기 위해선 모든 감정을 지워야 했다.

정파의 무인은 이용하기 위한 대상이었고, 사마외도는 굴종의 대상일 뿐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해도 천마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패에 불과했고, 대신 힘을 빼줄 칼받이였다.

그랬는데.

정작 매번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성공의 실마리를 만들어준 건 방패와 칼이었다.

땡중과 말코도사.

그리고 그들 외에도 잠시나마 시간을 벌어줬던 이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우습게도 그들 중 대다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과의 관계였다.

‘만약···.’

땡중, 아니 혜천대선사가 돼야 했을 자의 말 대로 마음을 터놓았다면 달라졌을까. 사람을 무기나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했다면 어떤 관계로 이어졌을까.

모르겠다.

전생자는 신이 아니다.

대신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은가.

무한한 시간을 얻은 만큼 직접 경험해보면 될 것이다.

죽기 전 천마에게 선언하지 않았던가.

믿을 수 있는 친구와 강한 동료가 함께 했을 때 천마의 생사가 결정될 터였다.

‘멸살천마.’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결심을 내린 순간 다시 전생의 수레바퀴가 굴러갔다.

꾸르르르르르르르-

배탈이 아니라 수분이 느껴졌다.

시작이 좋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수분이 차오르는 건 양수를 뜻했고, 엄마 뱃속의 태아라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아기부터 시작할 때 성장 가능성이 가장 컸다.

‘제발 부잣집의 사랑받는 외동아들이기를.’

이것만큼 쉽고, 편한 길이 어디 있으랴.

수분이 점차 강해지더니 코와 입에 물이 들이찼다.

‘어! 흙탕물? 피 맛?’

숨이 막혀옴과 동시에 발작하듯 몸을 일으켰다.

하마터면 전생하자마자 질식사할 뻔했다.

흐릿했던 시야가 조금씩 맑아졌고, 고요하던 세상에 소음이 뒤섞였다.

“죽어!”

살아나자마자 듣는 첫 마디가 너무 탁하지 않은가.

박도를 들고 달려드는 사내를 뒤로한 채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강자가 모든 걸 차지하고, 약자는 빼앗기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이제는 흉신악귀처럼 인상을 쓰며 달려드는 도적 떼마저 반가울 만큼 익숙했다.

재빨리 몸을 살폈다.

이목구비는 제자리에 잘 붙어있고, 손톱과 피부는 깨끗했다.

‘통과.’

재빨리 혀도 놀려보고.

“아르르.”

보이고, 들리고, 느끼고, 말할 수 있다.

‘통과.’

한데 몸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슨 몸이 이래?’

몸속은 온통 탁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이 정도면 지독한 독공을 수련했거나, 오랫동안 중독됐을 때나 보일법한 몸 상태였다. 한데 내공은 존재하지 않았고, 속이 썩은 것과 달리 몸뚱이는 제법 건실했다.

괴상망측한 몸뚱이였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용했다.

‘그냥 죽을까?’

이런 몸을 치료하려면 제아무리 전생자라고 해도 수십 년이 걸릴 것이고, 운이 좋아 기연을 얻어도 십 년은 족히 고생할 터였다.

언제 강해지고, 언제 사람을 사귄단 말인가.

고민은 짧았고, 결심은 빨랐다.

‘죽자.’

잘 써는 놈이길 기도하며 지척에서 내리꽂히는 박도를 향해 목을 내밀었다.

다음 생이 어떻든 지금보다는 낫겠지.

그때 등 뒤에서 서늘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이놈은 살려둬야 한다.”

동시에 뒤통수에서 강렬한 충격이 전해지더니 기억이 끊겼다.

‘굳이 살려야겠냐?’


*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안 돼!”

이남이녀의 시선이 집중됐다.

하나 생면부지인 저들의 시선을 의식할 여유가 없었다. 재빨리 마차를 감싼 천 사이로 하늘을 살폈다.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시간의 흐름을 보아하니 기절하고 최소한 반나절이 흘렀다.

‘글렀네.’

이번 생은 시작부터 완전히 망했다.

물론 지금껏 전생할 때마다 결과는 늘 실패였다.

하나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기분 좋은 실패와 엿 같은 실패로 나뉘었다.

이번 생은 시작부터 후자였다.

‘죽지도 못했으니 이런 몸을 가지고 뭘 어째야 하나?’

수없이 많은 생을 떠돌다 보니 전생에 관한 몇 가지 법칙을 찾아냈다.

그중 하나가 동화(同化)였다.

원주인을 밀어내고 몸을 차지하는 순간부터 반나절.

그때가 지나면 영혼과 몸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니 아무리 사는 게 어렵고, 힘들어도 자살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살은 곧 원주인의 몸을 버리는 행위였다.

그러니 몸을 버리는 순간 가축으로 태어나 진창을 나뒹굴거나, 생사의 틈바구니에서 한동안 고생하리라.

‘천마한테나 엄격하지, 나한테만 왜 이러는 건데?’

거지 같은 몸뚱이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심경에 울화가 치밀었다. 한데 아랑곳하지 않고 동화가 끝났음을 알리듯 원주인의 기억이 덧씌워졌다.

‘풍도장의 백현이라.’

백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나?’

갑작스럽게 새 삶을 시작하면서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황망한 중에 깨어나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대로였다.

잠시 몸 상태를 살펴봤지만, 기절 전과 다를 바가 없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 납치와 절맥이라니.’

맥이 풀렸다.

가뜩이나 지난 생에서 천마에게 벽을 느끼지 않았던가.

최상급으로 태어났어도 성패가 불분명하거늘.

‘이건 고쳐도 한세월이고···.’

설령 운 좋게 치료한다고 해도 그때서야 정상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셈이다.

“하아.”

한숨을 쉬는 순간 온몸이 뻐근했다.

몸속에 가득한 탁기가 고이다 못해 요혈을 모조리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절맥이다.

오음절맥만 해도 약관을 넘기기 어렵다더라.

한데 심각한 것만 따져도 열두 개였다.

아예 관절마다 절맥이 박힌 듯했다.

이미 살아있는 게 기적이고, 움직이는 폭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하하, 운 좋으면 흰 머리가 나기 전에 절정을 밟을 수 있으려나?’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내가 목소리를 잔뜩 깔더니 으름장을 놓았다.

“야! 표정 풀고, 조용히 있어.”

자연스럽게 사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태검문의 진륜.’

기억에 의하면 일단은 친구 사이였다.

마차 안에 함께 갇힌 이남이녀와 모두 친구라는 관계로 엮여 있다.

한데 저들의 면면을 보는 순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땡중과 말코가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일견하기에도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볼 구석이 없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저 나이대의 평범한 소년과 소녀들이다.

“웃어? 이 새끼가 미쳤나.”

그리고 그중 저기 진륜이라는 놈은 백현을 괴롭힐 때 가장 즐거워하는 놈이었다. 그래도 대외적으로 친구라니 교우관계에 걸맞게 대꾸했다.

“어, 미안.”

“어, 미안? 이 지랄 하고 있네. 이 새끼가···.”

녀석이 주먹을 흔들었다.

예전 삶의 기억을 비춰봤을 때 저렇듯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는 녀석은 일단 얼굴부터 뭉갰다. 그리고 녀석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 후 재산을 챙기는 건 덤이다.

만사가 귀찮았다.

‘땡중과 말코를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건?’

동료를 만들겠다고 했지.

세상을 구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어쨌든 목표는 멸살천마였다.

진륜의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이 손을 뻗어 만류했다.

“진 소협, 그만 하세요.”

저 여인은 연서화다.

청류원 소속으로 이들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훌륭한 집안에 수려한 용모를 지녔으니 자연스럽게 대장 노릇에 열중했다.

“수백산으로 놀러 온 건 우리 모두의 의견이었어요. 오히려 백 공자는 풍경 좋은 장소를 찾느라 사흘 동안 이곳을 오갔다고요. 진 소협이 부탁한 일이니 지난 일은 탓하지 말죠.”

진륜은 의외로 순순히 연서화의 뜻을 따랐다.

“쩝, 알았어요.”

왠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도였다.

하지만 백현은 전생을 통해 인연을 맺지 않았을 뿐 수많은 인간관계를 엿봤다

저 둘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진륜은 그래도 성질을 죽이기 어려웠는지 반대편에 앉아 있던 호덕경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야.”

호덕경은 죄지은 사람처럼 몸을 웅크렸다.

원주인의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백현과 같은 처지일 것이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호덕경은 진륜에게 돈을 빼앗겼겠지.

예상대로였다.

“너도 똑같아.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더니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저 납치범들을 만났잖아.”

호덕경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미안.”

“사과하면 다야? 이러다 연 소저에게 무슨 사달이라도 나면 너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백현은 그 광경에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어느 세상이든 다를 게 없구나.’

고작 네 명의 관계 안에 강호가 존재했다.

구석에서 혼자 생각에 잠긴 이설도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낙향한 고관의 손녀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이설은 좀 나았다.

안색이 파리하고, 손목은 지나치게 가는 것으로 보아 병색이 완연했다. 펑퍼짐한 옷으로 체형을 가리는 것도 자신의 병약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 터였다.

‘아니! 과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

백현은 그렇게 이남이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다가 불현 듯 뜻밖의 사실을 눈치챘다.

‘잠깐! 왜 나만 바닥에 앉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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