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무림생활백서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김태현
작품등록일 :
2023.09.27 08:04
최근연재일 :
2023.10.29 09:04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7,929
추천수 :
289
글자수 :
74,608

작성
23.10.23 12:08
조회
284
추천
18
글자
11쪽

5, 천마를 죽여야 할 이유.

DUMMY

5, 천마를 죽여야 할 이유.



백현의 첫 번째 삶은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기억조차 흐릿해졌다.

오히려 죽었다고 여겼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의 기억이 선명했다.

지금도 두 번째 삶만 떠올리면 소름이 돋았다.

생각해 보라.

평범한 사내가 낯선 세상의 산중에서 눈을 떴을 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그때 그 아이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다시 죽었겠지.’

한데 아이는 동사 직전의 백현을 조막만 한 손으로 끌면서 산을 올랐고, 하천을 건넜고, 동굴을 지났다.

그렇게 바깥세상과 단절된 공터에 들어섰다.

그곳이 매괴동(玫瑰洞)이다.

“이 꽃은 해당화야! 하지만 여기는 바다가 없으니 매괴라 하자. 어차피 같은 말이잖아. 그리고 매괴는 어디서든 잘 자란데. 나도 잘 자랐으니까 매괴야. 당신도 매괴가 되어서 건강하게 잘 자라봐. 우리 모두 매괴가 되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천진난만한 아이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댈수록 두 번째 삶은 익숙해졌다. 경계심은 눈처럼 녹았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할수록 기쁨은 배가됐다.

전생(轉生)이지 않은가.

죽어도 다시 살아날 터였다.

인간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때는 이 세상이 어떠한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동굴을 세상 전부라 여겼고, 전생이라는 기적에 환호했을 뿐이다.

“내 꿈은 동굴 밖에도 매괴를 심는 거야.”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밖은 하늘을 찌를 만큼 뾰족한 산이 병풍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게다가 눈과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니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왜 매괴냐고? 사실 여기는 꽃이 매괴 밖에 없어. 그러니까 매괴를 많이 심으면 따뜻해질 거야!”

당시 아이의 허무맹랑한 소리조차 웃었을 만큼 여유로웠다. 그래서 건강해지면 아이와 함께 매괴를 심기로 약속했을 정도였다.

하나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이가 백현을 주워왔을 때처럼 동사 직전의 소년을 데리고 왔다.

잘됐다고 여겼다.

‘나이가 비슷하니 오히려 말은 잘 통하겠지.’

한데 소년이 깨어났을 때 잘못됐음을 느꼈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거미줄에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팔이 찢겼다.

개미를 밟아 죽여도 저렇지는 않으리라.

소년의 손가락이 머리를 가리키는 순간 극한 공포를 느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기적의 전생조차 잊힐 만큼 두려웠다.

그때 아이가 앞을 막았다.

가족이라서 지켜줘야 한단다.

하지만 아이는 한 줌의 핏물로 산산이 흩어졌고, 소년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백현의 머리로 터트렸다.

그렇게 두 번째 삶이 끝났다.

하나 소년의 눈빛을 보면서 느꼈던 공포는 세 번째 삶도, 네 번째 삶에서도 계속됐다. 어쩌면 환락에 몸을 맡기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기력을 탕진한 건 소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번의 삶을 흘려보냈을 때 정마대전이 일어났다.

죽을 때가 됐나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마교도를 이끌고 등장한 존재를 보는 순간 잊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겉모습은 달랐지만, 저 눈빛을 어찌 잊으랴.

그놈이다.

한데 그놈이 천마 위지천이란다.

그제야 두 번째 삶에서 자신과 아이를 죽은 소년의 정체가 천마였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아이가 매괴를 심었던 매괴동의 위치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천산(天山).

하얀 눈과 검은 마교의 건물로 뒤덮인 얼음의 대지였다.

그날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진짜 전생이 시작된 날이었다.


*


백현은 도착하자마자 마차를 박차고 나섰다.

“백 공자. 아직 조심해야 해.”

“고마웠어.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연서화를 돌아보지도 않고, 풍도장의 정문을 열어젖혔다.

총관이 기다렸다는 듯 백현을 맞이했다.

“무사하셨군요. 걱정 많았습니다.”

걱정했다는 사람치고는 때깔이 너무 좋다.

그는 연서화에게 감사를 표한 후 백현에게 말을 덧붙였다.

“장주께서는 소흥의 시전과 전답을 살펴보시는 중입니다. 워낙 소출과 이문이 크다 보니 조금만 손을 놔도 문제가 생기지요. 해서 귀가하지 못하시고···.”

백현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습니다.”

“예?”

“그보다 풍도장의 화원을 누가 만든 겁니까?”

총관은 눈을 끔뻑였다.

“소장주께서 소예와 심으셨잖습니까.”

‘소예?’

원주인의 기억 속에 없었던 존재였다.

생각해 보니 풍도장의 풍경 역시 기억에 없었다.

그저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덧씌워졌을 뿐이다. 본래 전생하면 원주인의 기억이 모두 전이되어야 했다. 한데 이번 생은 마치 꼭꼭 숨겨두었던 기억의 보따리를 풀 듯 소예의 정보가 뒤늦게 섞여들었다.

‘첩실에게 얻은 아이.’

즉 이복동생이다.

그리고 지금은 장주의 시중을 들며 함께 소흥에 머물렀다.

“장주는 언제 돌아옵니까?”

총관은 백현의 어투에서 위화감을 느꼈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이내 공손히 손을 모으며 대꾸했다.

“여름이 되기 전에 돌아오실 겁니다.”

‘늦어.’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백현은 총관을 잠시 살폈다.

원주인의 기억을 더듬어봤을 때 총관은 장씨 성을 쓰고, 도법을 익힌 무인이다. 장주에게 충성을 다했고, 풍도장 가솔과 수백현 양민들에게 인심도 좋았다. 다만 원주인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고용관계에 불과했다.

궁금한 걸 캐물을 사이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안면이 있고, 착해서 휘두르기 좋고, 내게 호감을 느낀 자를···.’

백현은 정문 쪽에서 얼쩡거리는 연서화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연 소저.”


풍도장은 남방식 장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개방형에 벽은 낮고, 창은 많다.

후원조차 볼거리로 삼아야 하니 조경에 들이는 공이 어마어마했다. 한데 이 모든 조경을 백현과 소예라는 아이가 했단다.

‘이름도 매괴원이라.’

백현은 명칭마저 비슷하자 놀림을 당하는 듯했다.

반면 연서화는 찻잔을 빙빙 돌리면서 백현을 힐끔거렸다.

“집에 오니까 좋아요?”

“집이라.”

이전 생과 비교하면 풍도장은 격이 낮았다.

구파오가처럼 명문도 아니고, 일인전승의 신비문파도 아니었다. 하물며 사마외도처럼 신분을 통해 급격히 강해지는 것도 불가능했다.

돈이야 훔치면 그만이다.

결국 풍도장에 남아서 득 될 것이 없을 터였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수없이 많은 삶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수백현이라는 지역과 동네 유지 수준의 풍도장이어야 했던 이유가 뭘까. 며칠 사이에 이전 생의 흔적인 매괴와 불령이 등장했다. 어쩌면 월령에게 말했던 인연보다 더 큰 운명의 빛이 닿았을지도 모르겠다.

“이해해요.”

백현은 연서화의 나직한 한 마디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얘도 나랑 뭐가 있나?’

하나 연서화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딴소리를 했다.

“사람이 죽다 살아나면 변한다고 하잖아요. 백 공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관제묘에서 다 죽었을 거예요. 그만큼 큰 변화를 겪었으니 집이 낯설 만해요.”

아, 그런 거였나.

“말이 나와서 그런데.”

백현은 연서화의 말을 받았다.

“이제 강호라는 곳이 궁금해졌어.”

“강호요?”

“알다시피 내가 조금 유약했으니까. 한데 지금의 깨달음을 물에 흘려보내듯 하고 싶지 않아졌어. 그러니 연 소저가 아는 게 있다면 가르쳐주지 않을래?”

연서화는 시선을 피했다.

‘뭐야? 돈을 줘야 하나.’

백현은 연서화가 찻잔만 빙글빙글 돌리는 걸 보고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귀찮게 하는군.’

연서화는 백현이 주전자를 들자 황급히 찻잔을 비웠다.

그녀는 찻물을 채우는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뭐가 궁금해요?”

“강호 정세는 호덕경에게 들었으니 요즘 수련 풍토가 어떤가 해서요.”

백현은 새롭게 눈을 뜰 때마다 일정한 방식을 추구했다.

정보 수집과 영약 확인, 그리고 무공 수련이다.

자금이나 인맥처럼 언제나 채울 수 있는 부류라면 후 순위로 밀렸다.

“수련 풍토요?”

“거파나 명문정파의 분위기가 궁금해서요.”

한데 연서화는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책에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옛날에 지은 책을 골랐네요.”

“네?”

“고수가 되려면 단련과 혈공, 두 가지만 명심해요.”

혈공(穴功)은 생소했다.

연서화는 백현이 집중하는 순간 어찌된 일인지 더 열성적으로 말을 이었다.

“꾸준히 단련한 후 혈공을 거치면 고수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백 공자도 고수가 될 수 있어요.”

“혈공이 뭡니까?”

“예를 들어서 백 공자가 오랜 시간 꾸준히 육체를 단련한 후 공자의 체질과 맞는 영약을 복용해요. 그 후 믿을 수 있는 고수가 운기조식을 도와요.”

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사부가 제자의 수련을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나 연서화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달라요. 어떻게 육신을 단련했는지, 어떤 영약을 복용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고수가 운기조식을 도왔는지. 이것에 따라 운이 좋으면 하루아침에도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어요.”

잠력단이나 증폭환과는 궤가 달랐다.

연서화의 말에 의하면 혈공은 후유증이 없고, 범인도 하루아침에 고수가 될 수 있으니 구파오가의 수련법마저 바뀌었단다.

‘그 고지식한 늙은이들이 혈공이라는 걸로 제자를 키운다고?’

백현은 눈을 끔뻑이다가 물었다.

“그렇다면 돈이 많은 부호가.”

“좋은 영약과 좋은 조력자를 구하겠죠.”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껏 그가 수없이 많은 삶을 영위했지만, 강호의 절대법칙은 하나였다.

붓은 돈을 이기지 못하고, 돈은 칼을 이기지 못한다.

일신의 무공은 모든 것을 우선했다.

한데 여기는 돈으로 무공을 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고수로 만들어준단다.

‘진짜 이상한 강호다.’

연서화는 놀란 백현이 재밌었나 보다.

“결국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혈공으로 폭발시키는 거예요. 단련과 영약, 고수의 도움은 부차적이죠. 그래서 가끔 혈공제가 열리기도 해요.”

“혈공제?”

“문파의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제자에게 동시 혈공을 진행하죠. 그때 만약 대성이 뜨기라도 한다면 인근 판세가 뒤집힌다니까요. 그래서 혈공제는 양민뿐 아니라 인근 방파들도 촉각은 곤두세워요.”

혈공제 한 번으로 권력구도가 완전히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요즘 방파들은 정마를 가리지 않고, 혈공에 목숨을 걸 정도였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잔칫집이 될지, 초상집이 될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고요.”

“재밌겠네.”

이상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연서화의 말대로라면 쓸만한 녀석들을 구하고, 영약만 충분하다면 하루아침에 수십 명의 고수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백현은 입꼬리를 올렸다.

‘후훗, 일단 동료만 구하면 강한 동료로 알아서 바뀐다는 거잖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수록 웃는 횟수가 늘었다.

그러던 중 백현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

‘나야 세력을 키울 방법이 있으니까 웃는데 너는 왜 웃는 거냐?’


작가의말

소예에 관한 내용은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혈공제에 관한 설명이 당겨졌습니다.


저녁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_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생무림생활백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는 여기까지 하려 합니다. 23.10.30 250 0 -
15 7, 혈공제(穴功祭). (5) +1 23.10.29 196 15 12쪽
14 7, 혈공제(穴功祭). (4) +1 23.10.28 180 11 10쪽
13 7, 혈공제(穴功祭). (3) +2 23.10.27 181 12 12쪽
12 7, 혈공제(穴功祭). (2) +2 23.10.26 173 14 11쪽
11 7, 혈공제(穴功祭). +2 23.10.26 193 14 12쪽
10 6, 가짜 사부 구하기. (2) +1 23.10.25 215 12 12쪽
9 6, 가짜 사부 구하기. +2 23.10.24 253 16 13쪽
» 5, 천마를 죽여야 할 이유. +2 23.10.23 285 18 11쪽
7 4, 첫 번째 동료. (2) +2 23.10.22 308 15 10쪽
6 4, 첫 번째 동료. +3 23.10.22 393 19 10쪽
5 3, 친구니까 미끼 정도는 해주겠지. (2) +3 23.10.06 809 31 12쪽
4 3, 친구니까 미끼 정도는 해주겠지. +2 23.10.05 829 26 12쪽
3 2, 마교가 여섯? 그렇다면... (2) +2 23.10.04 965 26 12쪽
2 2, 마교가 여섯? 그렇다면... +2 23.10.04 1,246 30 10쪽
1 1, 다시 올 때는 혼자가 아니야. +5 23.10.04 1,679 30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