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짜 사부 구하기.

6, 가짜 사부 구하기.
끝났다.
백현은 청령만상기결로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며칠 사이 밤낮으로 운기했더니 얇은 막이 몸 안팎으로 덧씌워진 듯했다.
“후우.”
숨을 내쉬는 순간 몸속의 모든 것이 깨어날 것처럼 활력이 용솟음쳤다. 이제 날이 갈수록 피가 깨끗해지고, 피부가 맑아지고, 힘줄이 질겨지는 등 몸 상태가 최상으로 변화했다.
‘이제 잘 때도 걱정 없겠어.’
좌공과 동공을 지나 와공까지 지나쳤다.
이제 청령만상기결은 호흡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신체의 한 부분이 되었다. 본래 이처럼 빨리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한데 이 또한 불령의 도움이다.
불령을 받아들인 후 탁기와 섞어서 배출할 때 육신의 구석구석을 살피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이미 백현이라는 몸의 지도를 지닌 채 청령만상기결을 운기한 셈이다.
이제 양신(陽神)도 멀지 않았다.
완성된 정신이 완벽한 몸을 갖추는 단계.
즉 심신일체를 넘어 심의기체(心意氣體)를 의미했다.
이제 자연체에 이르는 순간 육신은 지치지 않고, 내력은 마르지 않으리라.
‘내 몸은 알아서 완성될 테니 풍도장을 확인해야겠어.’
백현은 산책을 나서듯 처소를 나섰다.
본래 몸만 추스르고 수백현을 떠나려 했으나, 불령과 매괴로 인해 마음을 바꿨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만약 풍도장의 가솔 중 쓸만한 사람이 있다면 동료로 삼아도 좋을 터였다.
‘매괴원 말고 시선을 끄는 게 있으려나?’
장 총관이 백현을 맞이했다.
“소장주.”
“장 총관. 하나만 묻죠. 무공을 익혔습니까?”
백현의 무례에도 장 총관은 빙긋 웃었다.
“저야 소장주가 강호의 예를 접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하나 생면부지의 무인에게 그런 걸 물으시면 사달이 날 수도 있습니다.”
“주의하죠.”
“소장주의 물음에 답하자면 저는 장법을 익혔고, 한 번의 혈공을 받았습니다. 강호를 오래 떠돌지 않았으나, 아직까지 무공으로 손해를 본 적은 없습니다.”
백현은 장 총관의 상세한 대답에 탄성을 흘렸다.
원주인의 기억에 남아있는 장 총관은 우직했다.
재밌는 사람은 아니라도 충성스럽고,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고맙습니다.”
“소장주, 혹시 강호에 관심이 생기셨습니까?”
“네.”
장 총관은 잠시 고민했다.
“제가 소장주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백현은 입꼬리를 올렸다.
저 말이 듣고 싶었다.
생각해보라.
죽다 살아나서 사람이 변했다는 명분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하는 순간 의심하는 자가 생길 터였다. 그때를 대비해서 표면적으로 내세울 사부가 필요했다.
‘적당히 게으르고, 무능한 놈으로 부탁합니다.’
백현은 장 총관과 헤어진 후 풍도장 내원을 둘러봤다.
“흐음.”
장주와 일가의 처소, 작은 창고와 사당이 전부였다.
한데 처소와 창고는 지나치게 단출했다.
마치 뜨내기가 와서 잠만 자고 떠나는 장소처럼 침상과 서탁이 전부였다. 하다못해 싸구려 족자나 화병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원래 이래?”
시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주께서 소탈하시고, 청렴하시니,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흐음.”
창고는 작은 정자와 맞닿아 있다.
한데 창고를 지켜야 할 노인은 정자에 앉아서 먼 산만 구경하고 있지 않은가.
“소장주, 여기는 어떤 일이시오? 일개 창고지기이니 그렇게 보지 마시고, 편히 양 노라 불러주시구려.”
양 노는 자신의 업무를 잊은 것처럼 헤벌쭉 웃으며 정자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차를 방금 우렸는데 좋은 때 오셨습니다.”
백현은 차를 따르는 노인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범상치 않은 노인네다.’
노인은 웃고 있지만, 차를 따를 때도 더없이 신중했다.
오래전 저런 사람을 본 기억이 있다.
불령의 토대를 닦은 불광사의 주지승이다.
창고지기임에도 평생에 걸쳐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의 기도가 엿보였다.
‘묘하게 여유로운 것도 마음에 걸리고···.’
노인은 백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건넸다.
“드시죠.”
백현은 치를 마시는 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차라고?’
단순히 맛의 차이가 아니었다.
차의 기운이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물론 평범한 차의 기운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내겠는가.
잠시 기분이 좋아지고, 의욕이 고취됐을 뿐이다.
하지만 찰나간 전신으로 퍼져나갔던 차향의 힘만은 잊을 수 없었다.
“좋죠?”
백현은 빙긋 웃었다.
“좋네요.”
노인은 낄낄 웃으며 창고를 바라봤다.
“본래 저쯤에 제 다관이 있었습니다. 장사가 그리 잘되지 않았어요. 비쌌거든요. 그래서 결국 망했고, 땅은 장주에게 팔았죠.”
백현은 다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비쌀 만합니다.”
노인은 무릎을 치며 웃었다.
“장주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역시 장주의 피를 그대로 이으셨어요. 제게 떠나지 말고 가끔 차나 함께 마시자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궁둥이를 붙이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장주께서 차를 즐기실 만하네요. 차의 이름이 뭡니까?”
“장주께서 활거차라고 이름 붙여주셨죠.”
백현은 미간을 좁혔다.
“양 노가 만든 겁니까?”
“이것저것 섞어서 만들었죠.”
“대단하십니다.”
감동한 척 양 노의 손을 맞잡았다.
자연스럽게 맥문을 잡았지만, 양 노는 오히려 송구함을 표시했다.
“아니, 소장주께서 어찌 천한 손을···.”
백현은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순에 가까운 노인의 맥이 이처럼 일정하고, 부드럽다니. 활거차를 장복한 덕인가?’
아니면 활거차를 만들어낼 정도의 깨달음을 얻은 양 노의 잠재력일까. 아닌 말로 혈맥과 혈류만 논하자면 호덕경이나 진륜보다 좋았다.
‘재밌다. 재밌어.’
불현듯 양 노에게 혈공을 시전하면 어찌 될지 궁금했다.
백현에게 혈공이란 일확천금의 기회였다.
‘하루아침에 고수를 만들고, 후유증도 없어. 이건 요행수를 노려서 뽑기를 하는 셈이야.’
한데 백현은 이미 영약을 분해하여 내공으로 바꿔줄 최고의 고수를 알고 있었다.
‘그게 나지!’
이로서 동료를 쉽게 늘릴 방법도 찾았다.
아닌 말로 혈공을 직접 해주고, 영약까지 제공한다면 누가 교우관계를 거절하겠는가.
‘친구 만들기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백현은 빙긋 웃으며 양 노에게 이별을 고했다.
“자주 오겠습니다.”
*
“호풍각이라.”
바람을 지키는 자들의 거처였다.
백현은 풍도장의 호위와 경계, 순찰을 책임지는 호풍조를 바라봤다.
“흐음.”
양 노는 신비한 구석이라도 있었다.
한데 눈앞의 스무 명은 너무나 평이했다.
저들을 비유할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식충이들.’
풍도장주가 돌아오면 묻고 싶은 게 참 많았다.
하나 오늘로 결정했다.
저들을 왜 뽑았고, 왜 일을 맡겼는지 묻고 싶었다.
하나 호풍조의 조장은 그것도 모른 채 손뼉을 치며 조원들을 격려했다.
“자! 자! 소장주께서 처음으로 오셨으니까 평소 연습했던 거 알지? 제대로 한 번 보여드리자고. 가자! 가자!”
아무리 열심히 손뼉을 치면 무엇하나.
호풍조는 너무 굼떴다.
칼질에는 격도 없고, 힘도 없고, 의욕만 넘쳤다.
어떤 놈은 남몰래 헛구역질까지 하늘 걸 보면 지난 밤에 꽤 퍼마신 듯했다. 어떤 놈은 장검을 잃어버렸는지 맨손으로 허공을 찔렀다.
“아흑!”
백현은 비명에 한숨을 흘렸다.
조원이 있는 힘껏 내지른 검이 동료의 엉덩이를 찔렀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소장주, 오랜만에 시연을 보이다 보니 저 녀석들이 긴장했나 봅니다.”
백현은 무덤덤한 어조로 질문했다.
“혈공은 없을 것이고, 검법은 어디서 익혔습니까?”
호풍조장은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
“장 총관에게 팔괘검보를 받아서 익혔습니다.”
백현을 말을 잃었다.
팔괘검보를 거론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호풍조장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잘 봤습니다.”
호풍조장은 허리를 직각으로 꺾으며 외쳤다.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호풍조는 소장주의 검이 되어 강철도 베어버릴 것입니다!”
백현은 호풍조장에게서 멀어진 후에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지 마시오. 치료비가 더 나오겠어.’
밖은 이미 밤이다.
어쩔 수 없이 다루 대신 주루에 들어섰다.
백현은 주루 일층을 가득 채운 매담자와 취객들을 향해 외쳤다.
“처음부터 다시 듣죠. 어려운 이야기 말고 이 동네 이야기 어떻소?”
매담자를 비롯한 취객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 매담자 앞에 은자를 밀어 넣고, 취객들에게 술을 돌리는 순간 평화가 찾아왔다.
“풍도장의 백 공자를 위하여!”
누군가의 선창으로 술이 몇 순배 돌았고, 잠시 입을 풀던 매담자는 백현의 전낭을 노려보면서 혀를 놀렸다.
“혈공으로 인생 역전! 이거 기억하시는 분?”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은유림의 제자가 혈공을 받고 대성을 이뤘지.”
“대성을 찍고 은유림의 위상이 그냥 막 올라가더니 이름마저 바꿨잖소.”
“그래, 은자림! 이제 주변 방파가 죄다 은자림에 매달 상납금을 바친다더군.”
매담자가 박장대소를 했다.
“크하! 전문가들 많구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얘기 들어도 감흥 없잖소. 다른 세상 이야기인데. 은자림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다음에 이야기하고! 자! 다들 구룡산 알지?”
취객들이 야유를 보냈다.
백현은 그 광경에 오히려 매담자를 높이 샀다.
돈 받은 값을 하면서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팔 구멍까지 파놓은 셈이다.
“절강의 서쪽 방벽이잖소.”
“구룡산은 영산으로 유명해서 강호인들이 폐관을 위해 많이 찾잖소. 한데 요즘 떠오르는 신성인 구룡도 광조가 삼 년 폐관을 끝내고 출도했다더군.”
취객들이 탄성을 흘렸다.
구룡도 광조라면 내외일체를 이뤄 외력을 드러내지 않고, 내공을 감추는 경지에 이른 고수가 아닌가.
“광조가 명성을 떨친 단 한 번의 생사투! 그 대상이 바로 잔결칠살이었지.”
이후의 이야기는 뻔했다.
잔결칠살은 동해안 일대에서 악명이 자자한 사파의 무리였다. 구룡도 광조는 그런 잔결칠살의 악행을 막기 위해 나섰다.
이틀 동안 생사투를 벌였단다.
광조는 잔결대살이 휘두른 비수로 인해 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나 잔결칠살은 모조리 목이 잘렸고, 살아남은 건 광조였다.
“그런 구룡도 광조가 항주 쪽으로 가고 있다는 소문이외다.”
취객 중 한 명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구룡산에서 내려와 항주로 가는 길이면 우리 동네도 지나겠네?”
“하하하! 다들 눈 똑바로 뜨고 살펴봐. 구룡도 광조와 인사라도 할 수 있다면 최소 삼 년은 술 안줏감일세.”
백현은 만족감을 표했다.
구룡도 광조의 영웅담이나 금화검문과 무위방의 대립도 재밌었지만, 수백현 내의 권력 구도를 알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청류원과 태검문, 그리고 백마장.’
세 문파가 수백현의 이권을 두고 물밑 다툼을 벌여왔다.
하나 이곳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건 한 사람의 존재 때문이다.
불귀장주(不歸莊主)였다.
불귀장은 어사대부를 역임한 고관이 낙향하여 세운 장원으로 이설의 집이기도 했다. 이설의 조부인 불귀장주는 문파 간의 싸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서 세 문파는 암중에서만 서로의 힘을 줄여야 했다.
백현은 불귀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불귀장주만 진흙탕으로 끌어들여도 수백현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돌려줄 것도 있고.”
백현은 이설이 빌려줬던 비수를 만지작거리며 기분 좋게 나아갔다. 하나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걸음을 멈춰야 했다. 복면인 두 명이 비수를 늘어트린 채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돈 많더라.”
“죽다 살아났다며?”
백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강호란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지 않은가.
“살았으면 조상께 보시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네 생사여탈권을 쥔 우리가 바로 조상이시다.”
스릉-
복면인이 위협적으로 비수를 휘돌리면서 자세를 한껏 낮췄다.
“살고 싶으면 전낭 풀어.”
백현은 순순히 전낭을 풀려 했다.
어디까지 유치해질 수 있는지 한 번 보려는 게다.
한데 복면인은 전낭을 받아드는 대신 주춤거렸다.
“야. 야!”
이니 어둠 속에서 평범한 장정보다 머리 하나는 큰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리부리한 눈과 턱의 깊은 흉터.
환도에 매달린 아홉 개의 고리.
조금 전 매담자의 입에서 거론됐던 고수가 떠올랐다.
복면인은 흉신악살을 마주한 것처럼 두려워했다.
“구, 구, 구룡도 광조!”
“아니! 그 잔결칠살을 모조리 쳐죽인 구룡도라고?”
스릉-
사내는 복면인들을 벌레 보듯 하며 도를 뽑았다.
“그래, 내가 구룡도 광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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