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무림생활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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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작품등록일 :
2023.09.27 08:04
최근연재일 :
2023.10.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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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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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혈공제(穴功祭). (4)

DUMMY

7, 혈공제(穴功祭). (4)



“그렇게 웃지 말아 줄래요?”

이설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태가 나나?”

“어차피 혈공제를 본다고 백 공자의 마음이 바뀔 리도 없고, 할아버지는 영약을 수급할 시간을 벌고. 그러기 위한 혈공제잖아요.”

백현은 피식 웃었다.

“이 소저는 어떤데?”

“뭐가요?”

“이 소저가 그린 그림대로 되어 가나?”

이설은 표정을 숨겼다.

“그림이라니요?”

“사람이 가면을 쓰는 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잖아. 납치당했을 때 가면을 벗었으면 이제 결정해야지. 다른 가면을 쓸지, 아니면 아예 벗고 본래 모습을 보일지.”

“납치가 사람 여럿 힘들게 하네요.”

백현은 빙긋 웃었다.

“그런가?”

“수백현에서 이런 고민을 할 줄은 몰랐어요. 내가 그린 그림에서 수백현은 밑 작업에 불과했거든요.”

백현은 이설의 배웅을 받으며 불귀장을 나섰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나직이 한 마디를 건넸다.

“포기하지 마.”

“네?”

“그림은 마지막에 붓칠한 사람이 주인이야.”

이설은 백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생각에 잠겼다.

백현이 조언을 할 줄 몰랐고, 예상보다 정곡을 찔려서 당황했다. 그녀는 버릇처럼 비연도를 만지작대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가면을 바꿔쓴다는 게 저런 거였나?’

생각해보면 납치됐을 때 변한 건 백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백현에게 하루 종일 휘둘린 셈이다.

이설은 한 방 먹었음에도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가장 저점일 때 매수하기를 잘했어.’


*


백현은 불귀장을 나서는 순간 미소를 지웠다.

전도유망한 청년 역할은 여기까지다.

‘자갈밭을 걷는 기분이네.’

불귀장주의 말처럼 쉬운 길은 존재했다.

하나 그렇게 살았던 삶의 말로는 언제나 같았다.

아직도 땡중의 마지막 한 마디가 뇌리에 가득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천마와 싸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이 수세에 몰렸을 때 뒤를 공격하고, 천마를 궁지에 몰아넣었을 때 함께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었다면 생사의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다.

‘후.’

전생의 기억만 끌어와도 수백현을 장악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이번 생은 수백현에서 기반을 다지고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반드시 결실을 이루리라.

“제자야! 제자야!”

백현은 저자를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광조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저래?’

광조는 어울리지 않게 홍안이 된 채 백현을 맞이했다.

“일은 잘 치렀느냐?”

“아, 예.”

그는 어리둥절한 백현에게 서책을 내밀었다.

“네가 불귀장에 있는 동안 소일거리 삼아 무공서를 하나 썼단다. 대단한 건 아니고, 평소의 경험을 엮었더니 쓸만한 녀석이 나오더구나.”

백현은 서책을 받아들었다.

팔방위진보(八方威鎭步)라 쓰인 서책의 구결은 대단치 않았다. 마보참춘공에서 비롯된 발의 방향과 보폭을 기본으로 팔방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식이 적혔다.

‘하오문에서 구했겠군.’

이런 삼류 무공서는 강호에 넘치도록 많았다.

보통 낭인이나 하급 무사들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공에 접목하여 성명절기로 사용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기꺼이 몇 줄의 구결로 남겨서 팔기 일쑤였다. 하오문은 그런 구결들을 모아서 비슷한 것들끼리 엮는다. 무공명은 대충 구결과 연관된 이름을 붙이고, 여기저기서 팔아먹었다.

백현은 광조를 힐끔 본 후 남몰래 한숨을 흘렸다.

‘사기를 치려고 참 열심히 사는구나.’

광조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백현의 곁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일전에 산적을 만났지. 그 수가 무려 백여 명에 이르렀단다. 한데 한림원 대학사까지 지낸 지인이 옆에 있어서 평소처럼 상대할 수 없었지. 해서 지인의 주변을 돌며 산적을 처리했던 기억이 떠오르더구나. 팔방위천보는 그렇게 만들어진 보법이니 깊이 연구하고, 오래 수련하면 큰 성취를 보리라.”

백현은 팔방위진보라 적힌 무공서를 내려다봤다.

“그렇군요. 한데 혹시 백마장에 관해서 아십니까?”

“백마장? 잘 알지. 그러고 보니 모레 백마장에서 혈공제가 열린다더구나. 역시 이제 너도 혈공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어. 그래! 네 눈으로 혈공제를 구경한 후 이 사부와 함께 진지하게 혈공을 논해보지 않겠느냐?”

“좋지요.”

광조는 한몫 잡았다고 여겼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백마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마장의 역사는 깊지 않아. 청류원처럼 토박이도 아니고 태검문처럼 돈으로 인맥을 사지도 않았지. 하나 수백현과 소흥 사이의 초원평을 차지했기에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지.”

백마장(百馬場)은 이름처럼 초원평의 마장 대부분을 거느렸다. 게다가 수백현에서 성도인 항주로 가려면 초원평을 거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불귀장주가 신경을 쓰는군.’

백마장이 강해질수록 황룡상단이 힘을 쓰기 어려운 형국이다. 지금이야 관부를 움직여서 제어한다지만, 고수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초원평의 통행 자체를 통제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황룡상단이 지부를 세웠을 때 목 안의 가시처럼 내내 껄끄러울 터였다.

‘구경하고 오라더니.’

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귀장주의 말처럼 구경만 하고 돌아간다면 이전의 만남은 없던 일이 될 터였다.

‘끌려다니는 건 질색이었는데.’

하나 황룡상단과 엮이는 순간 그들이 절강성에 쏟아부을 자금은 모조리 백현에게 집중될 터였다. 그렇게 됐을 때 얼마나 많은 고수를 키워낼 수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백현은 오랜만의 두근거림에 입꼬리를 올렸다.

“허허, 혈공제를 그렇게 보고 싶더냐?”

“기대되네요.”

광조는 호언장담을 했다.

“이 사부가 혈공제만 수십 번이다. 혈공제의 꽃은 두 번 핀다. 처음은 혈공을 받고 성취를 확인할 때 한 번, 두 번째는 즉석에서 강호 동도를 초대해 비무로 성취를 확인하지. 어쨌든 우리 문파가 이만큼 강해졌으니 앞으로 알아서 고개를 숙여라. 이게 목적이란다. 이처럼 강호는 고수에게 따뜻하고, 하수에게 더없이 차가운···.”

백현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사부.”

광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백현에게 사부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성공한 자식이 돌아와 안기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래. 무슨 일이냐?”

“제자 좀 더 들이시죠.”

“아니 나는 열흘 후에 떠나는데···.”

백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틀이면 됩니다.”


*


호풍조장은 눈을 끔뻑였다.

“소장주,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요?”

백현은 호풍조장 휘하 스무 명의 무인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호풍조는 풍도장을 지키는 유일한 전력입니다. 한데 여러분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십니까?”

풍도장의 인심은 수백현 전체에 퍼졌을 만큼 넉넉했다.

그러니 호풍조가 하는 일에 비해 많은 월봉을 받는 건 호사가들의 안줏거리였다. 거머리나 식충이라고 암암리에 조롱할 정도였고, 돈이 필요하면 풍도장의 담을 넘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풍도장이 유지되는 건 오롯이 총관인 벽력타종 장태권의 힘이었다.

“부끄럽습니다.”

“만약 호풍조가 최소한 수백현 내에서 이름을 떨칠 기회가 생긴다면 어쩌겠습니까?”

“풍도장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백현은 호풍조원들을 응시했다.

저들을 보고 있자면 풍도장주가 어떤 기준으로 가솔을 뽑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열정과 의욕보다 선함과 의협이 가득했다.

“이틀 동안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적을 보여드리죠.”

호풍조원들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건 광조도 마찬가지였다.

백현의 청으로 동석하기는 했으나, 돌아가는 상황 자체를 알 길이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혈공제 때 백마장이 도전자를 청하면 호풍조가 나설 겁니다.”

광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도 안돼.”

“그걸 사부가 가능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내가?”

백현은 광조가 조금 전에 주었던 무공서를 꺼냈다.

“팔방위진보! 이거 완전히 숨은 보석입니다.”

“그, 그래?”

“예, 물론 팔방위진보만 보면 다소 평이할 수 있지만, 호풍조에게는 날개를 달아줄 겁니다.”

광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눈만 끔뻑였다.

“허허.”

이럴 때는 침묵하는 게 답이다.

백현은 광조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말을 덧붙였다.

“호풍조는 팔괘검보를 십 년 가까이 수련했습니다. 물론 팔괘검보 자체도 그리 대단한 무공은 아니더군요. 하나 팔방위진보와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지.”

“그 겹치는 부분을 일신의 무공이 아니라 진법으로 확장한다면...”

광조는 제자의 깨달음을 칭찬하듯 탄성을 내뱉었다.

“검진이 만들어지겠구나.”

새빨간 거짓말이다.

팔괘검보와 팔방위진보는 팔괘의 묘를 따른다는 기본 수칙 외에 겹치는 부분이 전무했다. 애초에 팔괘 자체가 실생활에서도 깊이 연관되어 있으니 아예 다른 무공이라 해도 무관할 정도였다.

하나 백현은 광조를 향해 손을 모았다.

이럴 때 쓰려고 만든 사부가 아닌가.

“이 모든 게 사부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사부께서 팔방위진보를 내어주시고, 두 무공을 합쳐야 할 계기를 만들어주셨죠. 다 예상하셨던 거죠?”

광조가 잠시 넋을 놓았을 만큼 대담한 전개였다.

하나 그는 이내 본성을 잃지 않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청출어람이라더니. 며칠 사이에 아주 대오각성을 했구나. 내가 비록 계기를 주었다지만, 네가 진짜 이뤄낼 줄은 몰랐다.”

백현은 사부의 칭찬을 듣고, 신바람이 난 제자의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호풍조를 둘로 나눠 여덟 명이 팔방에 서고, 조장이 중앙에서 조율합니다. 조장이 두 개의 팔괘진을 운용하고, 부조장이 깃발로 신호를 한다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의 약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겠죠.”

“그렇지. 내 생각대로다.”

광조는 만족스러운 듯 웃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 남은 시간은 이틀이다.

“제자야.”

그때 백현이 광조를 호풍조원들 앞에 내세웠다.

“이틀 동안 구룡도 광 대협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분명 달라질 겁니다.”

그때 호풍조장이 질문했다.

“저희가 무엇을 배우면 되는지요?”

백현이 광조를 빤히 쳐다봤다.

광조는 눈을 끔뻑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외쳤다.

“지금부터 그대들은 팔괘검벽공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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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7, 혈공제(穴功祭). (3) +2 23.10.27 181 12 12쪽
12 7, 혈공제(穴功祭). (2) +2 23.10.26 173 14 11쪽
11 7, 혈공제(穴功祭). +2 23.10.26 193 14 12쪽
10 6, 가짜 사부 구하기. (2) +1 23.10.25 215 12 12쪽
9 6, 가짜 사부 구하기. +2 23.10.24 253 16 13쪽
8 5, 천마를 죽여야 할 이유. +2 23.10.23 285 18 11쪽
7 4, 첫 번째 동료. (2) +2 23.10.22 308 15 10쪽
6 4, 첫 번째 동료. +3 23.10.22 393 19 10쪽
5 3, 친구니까 미끼 정도는 해주겠지. (2) +3 23.10.06 809 31 12쪽
4 3, 친구니까 미끼 정도는 해주겠지. +2 23.10.05 829 26 12쪽
3 2, 마교가 여섯? 그렇다면... (2) +2 23.10.04 965 26 12쪽
2 2, 마교가 여섯? 그렇다면... +2 23.10.04 1,246 3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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